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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01. 2020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책 리뷰

이 책은 독일을 배경으로 써 내려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내가 요즘 느끼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웠다. 특히나, 번역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문장과 단어 선택도 적절해서인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부터 짚어보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무례하다고 표현했으며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이 시대를 처벌과 배제, 혐오의 시대로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독자로 하여금 품위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도록 한다.

구성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품위 있는 삶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중심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다시 한번 품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나 의견도 피력이 되어있지만, 중간중간 인용하는 문구나 책의 내용들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품위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품위에 대해 타인과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열려있는 태도와 공명정대함을 언급한다. 여기서 공명정대함은 말하고 행함에 있어 숨은 의도 없이 떳떳한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쉽게 이해하면, 품위 있는 삶이란, 정직과 겸손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


작가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품위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말랑말랑한 가치’ , ‘완충재와 윤활제’로 비유하기도 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모든 태도와 자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타인과 대화할 때 지켜야 할 어조와 성량, 그리고 단어 선택까지도 포함한다. 이처럼 품위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품위는 다치지 않을 권리이며, 이 권리는 칼이 들어오지 않도록 지켜준다.


역행하는 문명화, 그리고 현대인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주로 술자리에서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쏟아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컴퓨터나 휴대폰에 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곳에 올라오는 말들의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나, 소셜 미디어는 일종의 반향실로 작용하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기존의 미디어보다 공감대가 수월하게 형성되며 소리의 울림도 훨씬 크다. 또한, 게시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대중과 자신의 친구 및 지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좋아요를 받는 소망도 깔려 있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의 의사소통을 주제로 연구한 올리버퀴링에 따르면, 사용자의 90퍼센트 이상은 공개 게시판의 토론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며, 응답자의 7퍼센트만이 게시물에 댓글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소수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며 그 방향성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 중 일부는 타인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일을 놀이로 여기며, 단순히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관심은 원래 특정한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경향이 있지만, 특히 터부를 깨는 이야기나 스캔들처럼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 더군다나, 소셜 미디어에서 대중의 관심은 자산과 같기 때문에 비즈니스처럼 치열한 경쟁으로 나타나고, 결국 관심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왜곡되고 오염되는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

역사학자 티모시 가튼 애쉬인터넷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하수구로 표현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과 세계화라는 시대적 현상 속에서 다양한 가치가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으며, 점점 더 우리는 쉽게 쉽게 다루고 넘어가려 한다. 디지털 세게에는 모든 것이 0 아니면 1이다. 어쩌면, 그만큼 차갑고 서늘한 공간에 우리는 모여 무언가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걸까? 이 모든 현상들은 불안이 극심해진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이 철석같이 믿는 진실을 뒤흔드는 모든 것을 위협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안전이 통째로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각 개인이 나름의 안정감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특정 집단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때 이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척 및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다 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했는가

타인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나름의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작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한 대화를 통한 이해와 설득,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자세를 강조한다. 또한, 콰메 앤터니 애피아의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모든 행위는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러기 때문에 각각의 인간은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을 주문한다.

품위는 한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행위로써, 다른 이들과 기본적인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받아들이며,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기 확신을 조금 낮추어 잡는 것이야말로 품위이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요즘 의료계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의료정책​에 대해 답답하고 때로는 무기력감을 느끼며 내 삶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는 가짜 뉴스와 왜곡된 프레임이 판치고 있다.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품위 있는 삶을 살아왔는지 고민이 되었고, 이런 시대에 과연 품위 있게 살아가는 게 가능하기는 할지 의문도 들었다. 그럼에도.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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