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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Jan 14. 2021

마음이 흐르는 대로

follow your heart

지난 12월에 김지용 선생님의 “어쩌다 정신과 의사”라는 책과 지나영 선생님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라는 책을 비슷한 시기에 구입해서 진료실에 두고 틈틈이 읽었다. 정말 마음이 흐르는 대로 이 책, 저 책 꺼내어 읽기도 하고 어쩌다 손에 잡히는 책부터 읽다 보니 최근에서야 두 책을 비슷한 시기에 다 읽었다. 사실 “뇌부자들”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로 익히 알려진 김지용 선생님은 직접 뵌 적도 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친숙했던 반면에 지나영 선생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페친이 되었고, 어마어마한 이력에 놀랐고, 책을 구입했으며 현재는 “닥터 지하고” 유튜브 채널도 구독 중이다.


나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전에 이승우라는 사람이니까. 개인의 역사(history)가 있듯, 작가의 글을 통해서 그 역사를 엿볼 수 있는데, 내용을 통해 진하게 묻어 나오는 사람도 있고, 행간의 의미를 통해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사람도 있다. 뭐랄까? 당연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다 똑같을 수는 없다. 때로는 평범하고, 때로는 독특할 수도 있다. 내 동료들도 그렇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시선이나 편견, 혹은 대중들이 쉽게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어느 직업이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유독 선생님들의 책을 읽다 보면 환자를 대하는 자세부터 지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각자의 주어진 위치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하고 있구나!” 공감하면서 그 자체만으로 내게 정말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지나영 선생님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남은 글을 채우려고 한다. 먼저, 지나영 선생님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장학생으로 학업을 시작해서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인턴, 이후 미국 의사시험인 USMLE 최우수 성적으로 미국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수련했다. 소아정신과 펠로우 과정을 마친 후, 존스홉킨스와 그 연계 병원, 케네디 크리거 인스티튜트에 소아정신과 교수진으로 합류했다.


얼핏 이력만 들어보아도 타지에서 언어장벽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정신과 의사를 택했다는 것은 온전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하고, 공감하고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라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선생님도 동료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고,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환자분들 하나하나가 결국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된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또, 언어 실력이 조금은 미숙해도 감정과 생각은 전달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배웠다. 무엇보다 홀로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긍정 에너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17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삶이 경고 신호와 함께 갑작스럽게 멈추게 된다. 피로, 어지럼증, 두통 증상을 호소하고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인해 직업적 기능은 물론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이를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단순히 정신과 질환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기에 “쉬면 나아질 것이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답답했을지 심정이 이해가 된다. 실제로,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비슷한 이유로 협진 의뢰가 오지만 정신질환이 아닌 경우도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생님이 겪었던 피로, 어지러움, 두통 증상은 생각해볼 수 있는 원인이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진료 현장에서도 난감한 경우가 많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아파보고,
사랑해보고, 다른 문화권에 살아봐야 한다.



병이 빼앗아간 것보다 주고 간 것이 많았다

지나영 선생님의 말씀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의사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환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다. 물론, 누가 아픔을 겪고 싶겠냐마는 내가 아팠을 때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면 환자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정신과 진료를 하다가도 여러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본다. 그러다 보면 “그냥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진료 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근골격계 통증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 충분히 들어주고, 의학적인 검사나 전문적인 진료를 권유한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즐겨했던 나는 잦은 발목 부상으로 고등학생 때 오랜 기간 깁스한 상태로 목발을 가지고 다녔고, 대학생 때는 허리디스크(L4-5, 추간판 탈출증)로 재활치료를 했고, 레지던트 수련기간 동안에는 목디스크(C5-6-7, 추간판 탈출증)로 계속 시술을 받았다. 어릴 적에는 통증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고 내 신세가 서러웠던지, 우리나라 최고의 근골격계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치료해야겠다고 꿈꾸었던 적도 있다. ^^


의사라는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보면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이 호소하는 고통에 점점 익숙해지게 된다. 때로는 그것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나중에는 환자의 호소가 의미 없이 그저 공허하게 울릴 수도 있다. 매일매일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마치 나의 고통인 양 힘겹게 느끼고 가슴 아파하며 듣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의사들은 환자의 괴로움에 너무 크게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고통에 공감하고, 또 치료자로서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련을 반복한다. 환자와 보호자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어떤 가르침과 수련보다도 의사로서 더 값진 배움이다.

- 본문 중에서 -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라는 은사님의 말씀처럼, 환자의 보호자 입장이 되어보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의사로서 냉정해 보일 수 있는 입장도, 막상 보호자가 되면 답답하고, 치료과정에 서운함이 들기도 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정신과 특성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살”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둔 환자를 우리는 진료실에서 자주 맞이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숨기거나 혼내는 보호자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과 자살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고민을 하는 위치에 있다. 내 죽음은 어떨까? 내가 죽은 뒤에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동시에,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지도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한 번뿐인 삶인데 당신이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면, 잘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했기에, 내가 도착하는 곳이 어디든 내게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더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참다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living outside in)

내 진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living insi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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