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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Feb 05. 2021

어쩌다 정신과 의사

책 리뷰

정신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뇌부자들”이라는 팟캐스트 혹은 유튜브 채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설령 들어본 적 없더라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 김지용 선생님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어쩌다 정신과 의사”이다.


물론, 김지용 선생님만의 이야기는 아니기도 하다. 정신과 진료를 가고 싶지만, 아직 망설이고 계시는 분 혹은 정신과 진료 경험이 있지만, 치료자라는 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던 분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특히, 환자와 치료자 관계에 있어 저자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정신과 의사로서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오늘도 편견과 싸우고 있다. 정신과 의사라면 진료실에서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기록이 남나요?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떡하죠?
정신과 약은 몸에 해롭다던데,
꼭 먹어야 하나요?


사실 이러한 인식은 진료실에서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정신과라면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궁금증일 것이다. 요즘에 나는 환자가 물어보지 않아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없지만, 처음 진료 보러 오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A부터 Z까지 설명하는 것이 치료 순응도에도 꽤 높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으니까.


2017년 3월 18일, 팟 캐스트 “뇌부자들” 첫 방송을 업로드 한 날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좋은 마음가짐으로 앞장섰던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그때 무얼 하고 있었을까.


내가 레지던트 1년 차를 마치고 2년 차로 올라간 직후였다. 문득, 의국에서 윗년차 선배, 동기와 정신과에 대한 팟캐스트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농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정신과 의사가 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개인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인 것처럼 배워왔고,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그나마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팟캐스트가 적절해 보였다.


김지용 선생님 말씀처럼, 정신과 의사들이 자기 모습을 가린 채, 마치 모든 인생사에 통달한 현인처럼 가르치는 듯한 모습만 보여 온 것도 아마 오늘날의 정신과의 높은 문턱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와 우리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전문가로서 부담되는 일이지만 실제 모습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주 드는 생각 중에, 나의 약점을 알고, 나의 결핍을 알고,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아가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진료를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치료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특히, 미성숙하고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마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반응하는 나의 행동들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 회피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치료자도 있고, 정신분석가에게 정신분석의 도움을 받으며 변화를 유도하는 치료자도 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 성숙해진다는  어떤 것일까.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재작년 겨울,  만 30세를 앞두고,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이론을 포함한 소아정신의학, 성숙(maturity)에 대한 여러 이론들도, 눈 앞에 나열되어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까.


저자도 막상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보니 어렵다고 했고, 내 주변에 정신과 선생님들의 가정을 보아도 그렇다.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가 온전히 사랑받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좌절의 경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0점이 아닌 70점이어도 좋으니, 기분에 따라 감정적이 아닌, 일관성 있게 대하는 것이 안정적인 애착관계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될 때는 안된다고 아이에게 확실히 알려주고, 그로 인해 좌절한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다독여 주는 것. 엄마, 아빠도 온종일 너와 함께하며,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널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 이것이 아이가 겪어야 할 건강한 좌절이다.

- 본문 중에서 -


인생이 90분짜리 영화라면, 현재 러닝타임은 1/3을 지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위기와 시련도 있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클라이맥스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인공인 이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중요한 인물, 새로운 가족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까. 의대에 입학하고, 의사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꽤 길었는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만났던 환자들에게 나는 위로를 받았고, 부족했던 나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만들어주었다.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고, 노력하고 있는 모든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직은 부끄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지 나도 글로 적어봐야겠다. 진심으로 내가 왜 하게 되었는지, 나의 개인적인 이유를 말이다. 지금까지 이 길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데, 만약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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