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피운 꽃_4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멀어진 미래의 이야기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바람과 물의 만남
순록 두 마리는 오랜만에 뛰어노는 기분에 신이나 달려갔다. 너무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스쳐가서 노파와 산적은 순록들을 진정시키며 달려갔다. 늑대의 울음도, 갈까마귀의 소리도 들을 새가 없었다. 지나치는 게 자갈밭인지 나무 사이인지 알 겨를도 없었다. 하루 만에 라플란드에 다다랐다. 어두운 밤이 찾아오고 두 사람의 눈앞에 형형색색의 얇은 커튼 같은 오로라가 펼쳐졌다. 순간 노파와 산적은 넋을 잃고 말았다.
“저희의 친구 오로라예요. 이곳에서만 볼 수 있어요. 하늘의 밤을 덮은 이불 같은 친구지요.”
조금 더 나아가자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문은 아주 작고 낮아서 산적은 겨우겨우 문에 끼지 않게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들어갈 수 있었다. 순록 두 마리와 노파, 산적과 그곳에 사는 리프족 여인까지 오두막 안에는 아무도 편히 앉을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순록과 노파, 산적은 앞다투어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바빴다. 리프족 여인은 모두를 진정시킨 후에 말을 꺼냈다.
“전 아는 게 별로 많지 않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누군가가 떠오르네요. 눈의 여왕말이에요. 눈의 여왕도 낱말 맞추기를 좋아한답니다. 혹시 눈의 여왕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요? 이 세상에 눈이 있는 곳이라면 모두 잘 알기 때문에, 당신의 딸이 있는 곳을 알지도 몰라요. 여왕의 여름휴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얼른 떠나야 눈의 여왕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눈의 여왕이 더 먼 북극으로 떠나 만나기 힘들 거예요. 일단 핀족의 여인부터 만나세요. 핀족의 여인을 만나야 눈의 여왕을 만나도 얼어 죽지 않을 수 있답니다. 제가 쪽지를 전해 줄게요.”
말린 대구에 글을 몇 자 적고, 노파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순록은 다시 차가운 눈밭 평원 위를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초록, 노란 빛깔의 오로라가 밤의 하늘을 비추어 나아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다. 드디어 핀족 여인이 사는 핀마크에 다다랐다. 핀족 여인은 지겹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한 해에 손님이 세 번이나 오다니. 아주 귀찮은 해야.”
핀족 여인은 거의 벌거벗은 채로 있었다. 한여름 한낮 내리쬐는 태양 아래 서있는 것처럼 집이 아주 뜨거웠기 때문이다. 산적 여인도 온몸을 두른 옷을 마구 풀어헤쳤다. 노파는 손에 꼭 쥔 쪽지를 핀족 여인에게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산적도 질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딸을 본 적 있냐는 질문을 꺼냈다. 핀족 여인은 입을 열었다.
“물의 어머니 당신이로구만. 당신이 딸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건 바람에게 들었어. 나는 바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지. 추운 곳에 있는 바람들이 아주 쓸 만해. 빠르고 강하거든. 당신이 사는 그 따뜻한 곳의 바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워서 영 답답하단 말이지. 그리고 산적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당신의 딸은 코를 얼마나 열심히 골던지 도저히 이 집에 놔둘 수가 있어야 말이지.”
산적 여인이 그 말을 듣고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 딸? 내 딸을 봤단 말이야? 어딨어! 내 딸 당장 내놓으란 말이야!”
“누가 보면, 내가 당신 딸을 여기 잡아뒀다고 생각하겠어. 지금 옆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을 거야. 어찌나 많이 먹고 푹 자는지.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같다니까. 일단 가만히 있어. 지금은 물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겠으니까.”
하지만 산적 여인은 이미 너무 흥분해서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산적 여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재주넘기를 열 번이나 넘었다.
“물의 어머니. 어차피 당신의 딸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아주 오래전 집을 나와 몇 번을 녹았다가 언 얼음처럼 단단하고도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거든. 당신의 딸은 우주를 알지만, 당신은 알지 못해. 그리고 당신의 심장은 이렇게 추운 곳에 더 있다간 살아남지 못할 거야. 심장을 꺼내 본 적 있어? 이미 심장의 꽃잎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인지….”
노파는 조심스레 심장을 꺼내보았다. 집을 떠나서 처음 꺼내보는 심장이었다. 노란 그리움의 수술이 더 짙어졌고, 곧 질 듯이 꽃 전체가 기울고 있었다. 모두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노파의 심장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몸속 물도 얼고 있어서 그래. 얼른 이곳을 떠나 당신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당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딸을 봐서 뭐하겠다고 그래.”
“그 말은 당신이 내 딸을 알고 있다는 말이군요. 어차피 이대로 돌아간다 해도 노란 수술만 가득해져 내 심장은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내 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세요.”
핀족 여인은 아주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사이 산적 여인은 다시 바지를 팔로, 윗옷을 다리로 끼며 허겁지겁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 필요 없어. 내 딸을 보러 갈 거야. 옆집이라고 했지? 나를 안내해. 당장 가서 코를 비틀어줄 테니.”
“그 어미에 그 자식이로 구만. 여기서 옆집은 문 열면 인사를 나누는 그 옆이 아니야. 반나절은 가야 하지. 코 고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아주 깊은 밤에는 여기까지 그 소리가 들린다니까. 어차피 물의 어머니가 가야 하는 곳을 지나는 길에 그 집이 있어. 단단히 채비하고 가라고. 몸속 물을 좀 녹았으니 그래도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산적 여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옆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지만, 불안한지 집 전체가 떨릴 정도로 열심히 다리를 떨어댔다. 핀족 여인은 순록을 불러 이야기했다.
“물의 어머니는 이미 너무 지친 상태야. 내가 뒤에서 바람을 불어줄 테니 바람을 타고 아주 빨리 달려가거라. 지난번 그 아이의 힘만큼 노파의 힘이 강하긴 하지만, 견디기 힘들 거야. 두 사람이나 빨리 가긴 힘드니 중간에 옆집에 산적을 내려놓고 가. 눈의 여왕이 사는 곳에 도착하면 눈에서 자라는 붉은 베리로 뒤덮인 커다란 관목에 물의 어머니를 내려놓고 곧장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핀족 여인은 이번엔는 신발과 장갑을 잊지 않고 물의 어머니와 산적의 손과 발에 씌워주었다. 순록 두 마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살을 에는 바람이 옆을 스쳐 지나가도 버틸 수 있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드디어 옆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