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피운 꽃_5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먼 미래의 이야기
산적 왕과 공주의 만남
커다란 굴뚝이 눈밭 위로 솟아 있었다. 핀족 여인의 집보다 좁은 굴뚝에 산적은 낑낑대며 굴뚝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순록도 바로 너무 빨리 달려서 지쳤기 때문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차례차례 순록 두 마리와 노파도 들어갔다.
“아얏!”
갑자기 산적이 꽥 소리쳤다. 내려가는 도중에 누군가 산적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산적의 딸이었다.
“이 짐승 같은 짓을 하는 건 내 딸밖에 없을 거야!”
“엄마? 엄마야?”
산적 딸이 물고 있던 발목을 내려놓고 놀란 눈으로 서있었다. 갈색 피부는 조금 희어졌고,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산적은 딸에게 달려가 코를 열심히 비틀어주었다. 산적의 눈에는 어느새 물기가 가득해졌다. 산적 딸은 펄쩍 뛰어와 산적의 몸을 감싸고 수염을 잔뜩 잡아당겼다. 노파와 순록 두 마리는 또 찌는 듯한 집안의 더위에 외투를 벗어두고 쉬었다.
“말도 없이 떠나면 어떡해! 늑대에게 갈기갈기 찢긴 줄 알았지 뭐야!”
“말했으면, 떠나지 못하게 했을 거 아니야. 사랑스러운 염소 아줌마. 나도 엄청 보고 싶었다고. 산적의 왕이 이 먼 곳까지 무슨 일이야.”
“그것도 질문이라고. 네 코를 비틀어주려고 왔지. 얼른 다시 우리 산적이 우글거리는 숲으로 돌아가자.”
“아니 엄마. 나는 지금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거야. 지금은 아니야. 난 더 이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숲 속의 늑대와 갈까마귀 말고도 이 세상에는 너무 신기한 동물도 가득하고, 다양한 사람도 많아. 난 내가 이 세상 제일가는 안하무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제멋대로인 해적 공주도 있더라니까! 그 꼴을 보아하니 반성이 되지 뭐야.”
“그만큼 봤으면 됐지. 뭘 더 보고 오겠다는 거야. 그리고 숲에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충분하다고!”
“이곳에 오면서 오로라를 봤어? 별보다 반짝이는 눈밭 위의 햇살은? 엄마는 바다를 본 적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가면 생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고.”
“바다를 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어. 먹고사는데 문제없잖아.”
“난 먹고살려고만 살고 싶지는 않아. 그건 행복하지가 않아.”
“내 옆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거야?”
“엄마 옆에 있는 것도 물론 좋아. 그렇다고 엄마와 함께 떠날 수는 없잖아.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으니까. 나는 바다도 보고 높은 산에 올라도 봐야 행복하지만, 엄마는 바다 같은 산적들과 평평한 땅에 있어야 행복하니까. 언젠가는 엄마 옆에도 있을 거야. 그리고 산적의 왕도 될 거야. 숲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기와 방법도 점점 발전하잖아. 우리도 더 사납고 멋진 산적이 돼야 하지 않겠어? 해적들도 바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보고 배운단 말이야. 이렇게는 우리 산적들은 숲 속에서 모두 굶어 죽고 말 거야.”
산적 여인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귀를 잡아 뜯고 수염이나 잡아당기는 천방지축 공주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자신보다 훌쩍 자라 있었다. 더 이상 딸에게 당장 숲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왕의 자리에 앉은 딸을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옆에서 지켜보던 노파가 입을 열었다.
“딸 코는 열심히 비틀어줬으니. 얼른 산적들에게 돌아가서 왕 노릇을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게 제일 행복한 거잖아요. 옆에 둔다고 행복하겠어요? 여기서 딸 코나 더 비틀다가 다시 돌아가요. 건강한 게 잘 지내는 걸 봤으니 됐잖아요. 나도 이제 딸을 보러 가야겠어요. 자, 이제 떠나자.”
순록 한 마리는 그 집에 남고 다른 한 마리와 집을 나서 눈의 여왕을 향해 떠났다. 순록은 다시 멈추지 않고 달렸다. 뾰족뾰족한 눈송이, 둥근 눈송이, 물처럼 흩날리는 눈송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노파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추위와 마주했다. 이제 노파와 순록의 심장 빼고는 그곳에 따뜻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장갑을 더욱 조였다. 이제 눈의 여왕이 사는 곳으로 순록이 머리를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