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McArthur Binion맥아서 비니언)
여러분의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2022년도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1년을 주기로 보면 가을은 보통 한 해의 농사를 갈무리하면서 다음 해를 계획해보는 시기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농사라는 것을 이제는 개개인 삶 속에서의 일상이나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한 해간 나는 과연 내 몸, 마음, 그리고 관계와 성장에 관련된 어떤 것들을 심고 기르고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실패와 성취들이 있었는지, 그렇게 또 앞으로는 어떤 것들을 심어나가면 좋을지 내가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경험들을 그림과 글 그리고 질문들로 사색하며 갈무리하고 준비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잘 살아온 편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서 오는, 가족관계에서 오는, 그리고 타인에게서 오는 모든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니 그 불편함들이 내 안에 모여 화가 되었고, 소심하고 생각 많은 나에게 그 모든 화들은 온통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나름대로 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밑 빠진 독에 물만 정말 열심히 붓고 있는 것 같을 뿐이었고, 매일매일을 그렇게 내 성격이 문제인가, 내 운명이나 팔자가 문제인가, 삶에 대한 내 생각이나 태도가 문제인가 고민만큼은 참 열심히 해온 것 같다. 세상에 웬만한 종류의 상담(점집, 역학, 타로, 종교, 명상, 자기 계발, 심리상담, 신경정신과 약 등등)도 어느 정도는 거쳐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계속 나를 잘 모르는 남들한테만 답답하게 자꾸만 답만 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을 제일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그리고 이미 모든 답은 자기 자신한테 있다고. 뭐 현재까지의 내 생각은 그 답은 자기 자신 안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서 배워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습관을 이용해 어쩔 도리 없이 해나가야만 하는 부분은 분명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각각이 제안하는 그 방법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참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또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을 쇼핑하듯 둘러보며 경험해나가다가 문득 나한테 뭘 직접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잠시 고백하자면, 아직은 막연하지만, 나는 미술치료와 현대미술전시를 기반으로 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남은 생의 미션으로 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지지부진하게나마 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몇 회기 시도해봤고, 동시에 미술의 치유적인 효과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문들을 바탕으로 나에게 직접 질문하는 도구를 만들어 보기 위해 그림 노트 같은 형식의 작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저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또 좋아하는 전시나 그림과 관련된 글들 역시 연구 및 개인 아카이빙을 위해 꾸준히 써나가고 싶었지만, 싶었지만… 싶었지만… 관점과 목적이 다른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내밀한 글을 써나가는 일이 어쩐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더구나 최근에는 예술과 관련된 좋은 글들, 좋은 책들, 좋은 프로그램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절이다 보니 끝없는 자기 불신과 자기 검열, 그리고 천성적인 게으름까지 더해 도무지 진행이 되지 않았다.
이번 브런치 북 공모전을 계기로, 또 2022년 10월 한 온라인 공동체에서 진행된 몇몇 분들과의 그림 소통을 통해 방향을 가늠해보며, 기존에 조각조각 써두었던 글들을 이리저리 모아 지난 몇 해간 두려움으로 미뤄만 왔던 일들을 조금씩 엮어본다. 우당 탕탕 어설프게라도 일단 길을 나서 보면 어디로든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아.
우연히 이 글을 만나게 되신 여러분들께도 여쭤봅니다.
- 여러분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으신가요?
- 나의 오늘은 안녕한가요?
잠시 눈을 감고 나의 한 해를 중간 점검해봅니다. 올 한 해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 현재까지 나의 감정, 생각, 경험들을 간단한 선이나 색으로 한번 표현해보세요.
맥아서 비니언 McArthur Binion(1946, 미국 미시시피주 마콩 출생) ,2020년 리만 머핀 갤러리 전시 중
맥아서 비니언은 71세 경인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참가하면서 늦은 나이에 국제적으로 재평가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시카고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작가는 자신의 여권, 출생증명서, 사용하던 주소록, 전화번호부, 가족사진 등 개인의 내밀한 기록들 위로 그리드를 그린다. 오일 스틱을 사용해 반복적으로 그린 그리드는 멀리서 보면 격자무늬가 그려진 추상회화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가의 내면과 역사, 경험과 기억들이 보일 듯 말 듯 감추어져 있다. 삐뚤빼뚤 하게 그물처럼 이어져 있는 선들은 상당한 힘으로 눌러 그린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 관계가 드러나는 개인적인 문서들, 태어나고 자란 곳의 풍경 등 현재의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어긋나는 의사소통의 경험들,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들을 다양한 색과 선으로 교차시키며 작가 개인의 역사와 경험을 압축하고 통합해 캔버스 안에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행위적, 시각적으로 구현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