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lia Sánchez
크게 숨을 들이 쉬고 내쉬며 잠시 멈추고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 때, 예술작품은 좋은 재료가 되고, 갤러리나 박물관은 명상의 공간이 된다.
색을 보고 형태를 음미하며 의미를 찾는다. 시각과 지각이 어우러지면 비로소 이해의 순간이 온다. 색과 형태는 천천히 스며들며 잔상으로 남는다.
멈추는 시간,
머무는 시간,
사색하는 시간.
질리아 산체스(1926년, 쿠바)의 작업은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다. 그림은 공기를 머금으며 숨을 쉰다. 잡아당겨지고 솟아 오르면서 그림은 생명을 갖는다.
이런 형태의 작업이 시작된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건물 옥상에서 울고 있던 순간, 아버지가 쓰시던 하얀 침대 시트가 파이프와 벽에 부딪히며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녀의 눈에 마치 시트는 인간의 피부 같고 파이프는 인간의 뼈와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아버지의 영혼이 마치 바람처럼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얀 시트와 파이프, 벽이 어우러지던 그 순간 눈물 사이로 그림이 보였다고 고백한다. 이후로 그녀는 그 순간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산체스의 작업은 추상적인 형태로 몸, 특히 여성의 몸을 은은하게 은유한다. 베이비블루나 베이비핑크, 회색, 흰색의 부드러운 색의 조화, 캔버스의 천이 잡아당겨지며 봉긋하게 솟아 오른 형태의 선이 부드럽다.
에로틱한 것과 포르노적인 것 사이의 본질과 차이에 대해 한병철은 그의 책 투명사회에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벌거벗은 것의 직접적 전시는 에로틱하지 않다. 몸에서 에로틱한 부분은 바로 “옷의 벌어진 자리” “두 개의 가장자리 사이” 이를테면 장갑과 소매 사이에서 “빛나는” “피부”다.
한병철, 투명사회 중
부드러운 선과, 살짝 벌어진 틈 사이 마치 숨을 머금고 있는 듯한 산체스의 작업을 보며 잠시 숨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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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크게 들이마시면서 가늘고 길게 내뱉어본다.
에로틱한,
사색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