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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Oct 30. 2022

그저 전시장이 좋아서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혹은 ‘내 삶을’ 그래도 좋아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다니며  '전시'를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각도와 형태, 색, 그 안에 보일 듯 말 듯한 여러 층위의 생각들을 만나며, 간접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인생은 조금씩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특히 글씨가 아주 작고 어려워 보이는 책들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집중해서 읽게 되는 일이 정말 드문 편이다. 과제가 있거나 그 외의 어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잘 읽게 되진 않는다. 그런데 시각예술은 굳이 집중해서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잡지를 보듯 가볍게 접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깊이 생각해 보려면, 생각들을 다시 거꾸로 찾아 들어가는 재미도 있다. 한 사람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들이 이미지로 변환되어 있으니, 변환된 이미지를 통해 탐구와 이해의 과정으로 확장시켜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떠올려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맥락이 있고, 미술사적 스토리가 있고, 작가 개인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설사 내가 맥락에 맞지 않는 전혀 엉뚱한 무언가를 떠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창의적이라고 칭찬 받을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도 작업을 해보긴 했지만, 전시를 보다 보면 압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은 저 작품은... '내보일 것 없는 내 조악한 표현들과는 달리' 정말 참 엄청나고 대단해 보이기만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하던 작업들을 지속하지 못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당장의 경제적인 문제가 무엇보다 컸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름을 알리는 대단한 예술가는 되지 못할 것 같다." 는 생각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또 돌고 돌아 이제는 일상 속에서 생각을 위한 예술노트를 만들어 보고 싶고, 예술의 치유효과를 경험하고 싶고, 예술을 매개로 하는 생각의 도구들, 교육프로그램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해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19p.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필리프 드 몬테벨로의 말처럼 "많이 배우고 기뻐하며 행복해하길" 바라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관장 제임스 쿠노가 말한 대로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면서 걷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미술관 방문객들이 가능한 한 최고의 미술관 교사를 만나기를 바라고, 이 책은 그런 교사들을 위해 바치고자 한다.

- 관람객과 호흡하는 경험과 해석의 미술관, 미술관 교육 책커버


정리되지 않은 짧은 생각들 중에는 예술과 종교에 대한 것들도 있다. 예술이 혹시 종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종교란 어떤 역할을 하는 거지?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한가지 답변은 예술의 다양성에 있었다. 종교의 도덕성은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는 하지만(각각의 단계에 맞게 바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삶의 다양성을 발현시키는 데에는 어쩐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삶의 그 어떤 추악한 부분이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대면할 수 밖에 없게 되는 현실의 부조리함, 이에 대해 니체는 예술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낼 수 있고, 또 생명력 있게 살아가기 위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술가는 넘쳐흐르는 생명력으로 세계를 자기 자신의 거울로 만들며, 그것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가는 세계를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_ 이주영, 현대미학특강


끊임없이 추락하는 인생을 다시금 끌어올리는 힘,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 중 하나가 아닐까.


왜냐하면 살면 살수록 삶은 고통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그저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테니까. 개개인의 인생에 있어 타고나는 운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는 법이니. 하지만 고래로 많은 종교들에서 계속해서 받아내고 있었던 건 인간의 고통이다. 삶은 기본적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나 아이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24시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뉴스 속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은 대체로 부조리하며 그래서 암울하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고자 하며 가능한 아름답게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야에서의 그런 노력들은 아름답다. 그렇지만 예술이란, 그 부조리함과 고통들을 마치 마법을 부리듯 눈 앞에서 미화시켜 끌어올려버리는 그런 힘이 있다.


모든 사람은 더 나아지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더 나아지는 삶을 위한 기본 조건은 배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아가기 위한 학업과정 외에도 새로운 콘텐츠를 배워나가는 일은 사실 어떤 직업을 막론하고 일생 동안 계속되는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육 과정 이외에 “배우는 것을 배우는 행위”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별로 없다. 종교 역시 사람들을 일방적인 전달 형태로 교화나 계도, 계몽 시키려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대에 와서 수많은 정보의 선택과 수용, 통합, 확장을 통한 건강한 소통과정에까지는 이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도 드러낼 수 있는 예술을 매개로 타인과의 건강하고 건설적인 소통을 이끌어내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하여 인에 의지하고 예술의 세계에서 노닐었다.”

-공자


그렇게 나는 예술을 통해 삶을 용서하고 삶을 사랑하고  속에서 노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 출처: 필자,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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