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생각노트
노트1.
몇 주 전,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며칠 전쯤인지 또 몇 주 전쯤인지 외교안보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발령 문자로 나라가 한번 들썩였던 것 같고, 우연히 넷플릭스의 Borgen, 덴마크의 외교부장관으로 임명된 비르기트에 대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삶과 아니, 생존과 연결된 피부에 와닿는 여러 키워드들이 둥둥 떠오르면서 은둔형 외톨이로 대변되는 정모 양의 사건을 또 접한다. 나에게는 여러 정보들이 연결성을 가진 의미로 다가왔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밀린 글로 풀어가려다 일단 편하게 노트를 해놓기로…
노트2.
유네스코는 전쟁(1,2차 대전)을 치르면서 탄생하게 된 조직이다. 전쟁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 서로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긴다고 생각한 당대 석학들이 모여 국제지식인위원회를 만들었고, 그것이 유네스코의 전신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1945년에 유네스코를 창설하였는데, <유네스코헌장> 서문은 다음과 같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 역시 인간의 마음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유네스코 헌장 서문
노트3.
시대마다 문화에 대한 정의도 그래서 정책의 포커스도 계속 달라져 왔는데, 문화다양성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양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문화를 어떻게 잘 믹스해가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포인트가 있다. 힘의 불균형. 작은 집단내에서도 아니, 두 사람만 모여도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힘의 역학관계.
힘의 역학관계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주목해오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늘 약한 쪽, 발언하지 못하는 자였기 때문이댜.)
1. 인간본성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던 로버트 그린의 책에 나온 이 이야기에 대한 예를 종종 들곤 했었다.
" 바뀌어야 할 것은 나나 상대방이 아니라 둘 사이의 역학관계다" 114페이지
2. 여성, 타자의 은유라는 책의 이 구절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주체와 타자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앞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흔히 타자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주자, 난민, 소수자 등과 같이 주변화된 특정 집단을 연상한다. 많은 글들이 이와 같은 특정 집단을 다루면서 '타자'개념을 사용한다. 그들이 '타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주체와 타자의 개념,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다루면서 타자를 특정 집단으로 '동질화/정체화'하여 고정하는 것을 경계한다. 타자성은 본질이 아니라 위치이며,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맥락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한 개별자 안에도 주체와 타자의 위치, 권력에 의한 주체/타자의 자리매김이 교차한다.
노트4.
외교안보에 대한 이야기가 어쩌면 오히려 클리어했는데, 외교정책의 3가지 목표?라는 것은 1) 안보 2) 번영 3) 권위 라고 한다. 국제관계나 국제법이라는 것은 이성적 장치에 의해 작동하지 않으며 다만 힘의 밸런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외교와 침략(혹은 전쟁)이란 결국 힘의 중심이 어디로 치우치느냐 그 한 끗 차이에 의해 갈리게 된다는 것.
개체와 집단의 제 1목표가 생존이다. 그래서 안보가 첫 번째 목표다. 집단을 이루려는 이유도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서다. 그 생존이라는 것을 이제는 다른 층위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은데, 생존이란 단지 경제생활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나의 생각과 공명할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적절하게 발화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정되거나 수용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나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노트5.
모든 사람들의 생존과 관련된 환경과 조건은 다양하다. 그 힘들이 부딪히는 첨예한 광경들을 최근 보르겐에서 보게 되었다. 비르기트라는 덴마크의 여성 외무부 장관은 기후위기 때문에 그린란드의 석유개발을 지지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린란드에서는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나라경제랑도 연결된 문제라 절실하다. 북극권의 자원을 노린 강대국들과의 문제도 있고, 언론과의 문제도 있다. 십 대 아들은 과격한 환경보호운동가라 말썽(?)을 피우고 다닌다.
기후위기 문제, 워킹맘 문제, 국제외교분쟁 등등등 다양한 입장들이 어떻게 서로의 이익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협의가 가능할 것인가. 계속 봐야겠지만... 멋있다고 한다. 아직 제대로 보기 전이므로 아무튼,
노트6.
나는 현실에서는 숨을 쉬며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하게 되는것이 예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피 튀기는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곳,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곳이예술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다.
http://www.impacton.net/news/articleView.html?idxno=3537
기사내용 중
30년 문화예술 후원 파트너십이 깨졌다. 영국 석유기업 BP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압박이 문화예술기관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문화 산업에 막대한 후원금을 들여 기업 이미지 워싱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요지다. 결국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은 기후 활동가들의 압박에 못 이겨 BP와의 30년 파트너십을 종료했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출처 : IMPACT ON(임팩트온)(http://www.impact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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