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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Jan 10. 2023

[100-10] 침묵에 대하여 생각한다_노트

(feat.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존 케이지, 로스코채플등)

침묵에 대하여 생각한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이 시작된다.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

Maria-Culm 사원 제단에 새겨진 글
(괴테의 일기에서)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말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는 수단.  

주제가 아닌 배경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타인의 말이 아닌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순간.  

소음과 소음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주는 순간.

혹은 일방향으로만 흐르던 방향이 전환 되는 순간.  

침묵은 언어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언어 역시 침묵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일 테다.

침묵은 어떤 이미지일까. 공허이거나 심연이거나.  



침묵에 대하여 생각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말이 멈추는 시간이 없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주변의 말들은 우리를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내가 말하거나, 남이 말하거나. 적막과 침묵의 시간 같은 건 관계에서도 매우 두려운 일이지만, 시간이 아깝다거나 하는등의 다양한 이유로도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끊임없이 바라본다. 잠시라도 눈을 쉬거나 귀를 쉬게할 여백의 공간은 없어 보인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삶의 길을 잃게 되거나 삶의 의미를 잃어 방황하게 될 때, 혹은 일상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싶을 때, 아니면 그냥 좀 힐링이 필요할때, 어쩌면  깨달은 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머리를 들때도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명상을 했다더라 그래서 나도 명상하면 성공 할 수 있으려나 등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최근에는 일부의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접근방식의 명상법들과 명상가들도 앞다투어 나타나고 있다. 나도 한동안 명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알다시피 대부분 명상이라고 하면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다양한 접근방식의 명상법이 있겠지만, 어쨌건 중심은 그것이다. 일단 말을 멈추기.   



침묵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어둠과 적막이 두려운 사람들은 조용한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던 날에는 조용해지는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불이 꺼지고,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는 순간 내부의 목소리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때는 이때다 하고 올라오는 온갖 잡다한 생각, 생각, 생각,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감정들. 그런 생각과 감정의 대부분은 매우 부정적인 방향이다. 그런 날에는 잠이 들 때도 불을 켜고 음악이나 사람들이 떠드는 팟캐스트나 드라마 같은 걸 틀어놓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듣지 않아야 하니까.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논란이 되었던 음악이 있다. 아방가르드 작곡가였던 존케이지의 4분 33초.


1952년 8월 29일 뉴욕의 한 콘서트홀에서는 존케이지의 피아노 연주가 있을 예정이었다. 연주자였던 존 케이지가 등장했고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객석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4분 33초 동안 피아노 건반 하나 건들지 않았다. 33초, 2분 40초, 그리고 1분 20초를 지날 때마다 악보를 넘길 뿐이었고, 가끔씩 건반 뚜껑을 닫았다 열 뿐이었다. 그렇게 4분 33초가 흘렀고 그는 일어서 나갔다.  


아주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 연주에 대해 존케이지는 말한다.


“4분 33초 동안 1악장에서는 콘서트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로, 2악장 때는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로, 3악장 때는 청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걸어 나가는 소리로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로스코 채플:

텍사스 휴스턴에는 로스코 채플이라는 곳이 있다. 마크 로스코의 블랙들이 있는 공간이며, 언젠가 한 번은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인데, 종교 불문, 전 세계의 종교가들이 방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크로스코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린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이곳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한다. 짐작건대 침묵의 공간을 구성해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코 채플 내부, 출처ㅣArtsy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침묵에 대해 혹은 소음이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해 줄곧 생각은 이어지고 있었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는데, 읽다 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마저 읽어야겠다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물꼬를 터줄 힌트들을 얻는다.  


이어령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개구리들이 울 때마다 돌을 던지곤 했단다.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합창하다가 돌을 던지면 일제히 멈추는 순간. 아무 소리도 없는 그 정적의 순간에 반해서 눈을 감고 가만히 서있곤 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고요해지는 그 순간 귀가 멍멍해지는 침묵이 생겨나는데, 면도날로 자르듯 생겨난 그 침묵이 참으로 신비로웠노라고. 그때 그 정적에 대한 기억이 88 올림픽 때의 굴렁쇠소년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거라고.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침묵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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