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la J Jan 11. 2023

[100-11] 뜻밖의 좋은 일

(feat. 엽서의 여행)


엽서의 여행


시애틀에서 엽서가 도착했다. 약 2주 남짓 걸린 것 같다. 문자로 통화로 게다가 요즘은 영상통화도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얼굴도 가끔 보며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런데도 오랜 기다림 끝에 우편함에서 발견되는 엽서는 미소가 되고 기쁨이 된다. 문득 ‘디지로그’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요즘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인데, 이어령 선생님이 이 디지로그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앞으로는 ‘디지털+아날로그’ 세상이 될 거라고 이미 전부터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노라고.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이어령 선생님은 아날로그를 뱀에, 디지털은 도마뱀으로 비유한다. 뱀의 꼬리는 어디서부터 인가? 뱀의 몸 전체가 꼬리가 되니 뱀은 연속체이다. 즉, 연속된 흐름, 파장이 아날로그다.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도망갈 수 있지 않나. 꼬리에 경계가 있다는 말이다. 즉, 셀 수 있게 분할되어 있는 것. 계량화 될 수 있는 수치, 입자. 그것이 디지털이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정의                     

• 아날로그 analogue
[전기·전자] 어떤 수치를 길이라든가 각도 또는 전류라고 하는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일. 예를 들면, 글자판에 바늘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수은주의 길이로 온도를 나타내는 온도계 따위가 있다.

• 디지털 digital
[정보·통신] 여러 자료를 유한한 자릿수의 숫자로 나타내는 방식.


요즘은 나에게 우울감이 있는 시기다. 내외부의 일들이 정체되어 있는 걸 느낀다. 흐름이 막힌 느낌. 그러니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답답함은 곧 우울감으로 번진다. 내 주변의 세상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면서 내 인생이 늘 그랬듯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런저런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그는 엽서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엽서는 뉴욕에서부터 그와 함께 시애틀로 갔다. 시애틀의 한 우체국에서 우표를 얻게 된 엽서는 다른 우편물들과 이리저리 부딪치고 섞이고 분류되고 이동하는 과정들을 거쳐 인천까지 왔을 것이고 인천에서 다시 또 여기저기 여행을 하며 우리 집 우편함까지 도착했을 거라고. 그 엽서를 보는 순간 얼굴에 반가움의 미소가 지어지고 기쁨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앞으로도 내가 할 일은 행복하고 기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편함을 열어보는 일인 거라고.


출처 unsplash


보아하니 엽서는 확실히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사실 엽서를 받는 순간 보낸 사람의 대범함과 무모함에 꽤 놀라기도 했는데, 아무런 커버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별 내용은 없지만) 주소 바로 옆에 아무나 읽을 수 있도록 과감히 드러나 있는 내용, 다른 우편물들과 함께 뒤섞이고 분류되고 이동하면서 얻게 된 듯한 구겨짐과 해짐. 운이 나빴더라면 엽서는 어디선가 빠져 도착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고, 비를 맞아 내용은 알아볼 수 없게 상해버렸을 수도 있었을 거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것이 엽서의 운명이려니 했을 그였다. 그러나 대견하게도(?) 엽서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아주 당당하게 여기까지 도착을 했다.


나는 다소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내 우편함에는 언제나 소식이 오긴 온다고. 90%이상이 돈을 내라는 요금청구서들이고, 간혹 빨리 내라는 독촉장들, 그 외 쓸데없는 광고나 투표하라는 소식지들. 아날로그식 손 편지를 하지 않는 요즘시대에 뜻밖의 반가운 손편지나 소식이 우편함에 꽂혀있을 일은 좀체로 없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모바일로 바로바로 보내는 시대, 한국인들에게는 사실 크리스마스 카드건 엽서건 손편지는 이제 많이 어색하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가까운 이가 아닌 제3자에게 해야 편하다.


문득 내 삶이 이런가 싶은 생각이 든다.


70% 정도의 의무와 서글픔, 우울함 같은 것들이 28% 정도의 괜찮음으로 그럭저럭 살아지는데, 뜻밖에 한 번씩 찾아오는 2%의 행복감에 잠시 기뻐하며 어쩌면 내 삶에도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안도하고 그 순간의 행복감에 목을 축이며 또다시 길을 나서는 과정들.


안 그래도 2023년 새해가 되면서 지인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던 차였다.  



2023년 새해에는
뜻밖의 좋은 소식들, 좋은 일들이
지난해보다는 좀 더 많이 생겨나는 한 해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엽서의여행



** 엽서의 그림은 내일의 글로…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100-10] 침묵에 대하여 생각한다_노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