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la J Jan 09. 2023

[100-9] 안다는 것

(feat. 볼프강 틸만스)

안다는 것


향수에는 뿌리자마자 느껴지는 향, 그 첫 향이 날아가며 은은히 남아도는 잔향이 있다. 또 이 향들의 베이스가 되어 첫 향과 잔향을 만들어주는 향이 있다.


사람, 책, 그림, 어떤 사건들, 이야기들에도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 첫 향처럼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첫인상, 만나가면서 알아가게 되는 향, 그리고 그 어떤 만남에나 이별이 있듯 마지막의 인상과 그렇게 전체적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 잔향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중간, 끝의 느낌이 달라지고 그제야 이 사람이, 이 책이 그 사건의 의미가, 그 그림이 보여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첫 감정들을 잘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첫 향의 느낌을 거짓이라고 할 수 없고, 은은하게 남는 향이 진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하나의 사건과 그 내용 안에 잘 보이지 않는 의미들, 속마음들, 무의식들, 노력들, 다양한 정보들이 시간과 함께 겹겹이 레이어링 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이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듯하다가 이내 마치 향처럼 다시 흩어진다.


예를 들면, 책에는 표지가 있고 제목이 있다. 첫 향의 느낌이다. 서평이나 리뷰들을 통해 각각이 느꼈던 그 향을 시향 해본다. 직접 책을 만나게 되면 내용 안에 처음과 중간과 끝에 정보, 사건과 맥락, 의미들이 겹겹이 레이어링 되어 있고, 그렇게 내용을 읽어가면서 느껴지는 향들은 시간과 함께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소프트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뇌속을 간지럽힌다. 그렇게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는 가장 강렬하게 느껴졌던 향의 순간만이 남는다. 그것은 상큼한 첫 향일 수도 있고 은은하게 지속되던 잔향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톡 쏘던 의외의 향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의 향도 그 책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향은 날아간다. 느낌도 감정도 내용에 대한 기억도 시간과 함께 향처럼 날아간다. 대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Wolfgang Tillmans, Freischwimmer 20, 2003  출처 l Artsy
Wolfgang Tillmans, Freischwimmer 20, 2003  출처ㅣTate Modern
Wolfgang Tillmans, It's Only Love, Give It Away, 2018 출처ㅣArtsy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100-8]인생항해 Life as voyag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