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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Aug 18. 2019

[뮤지엄노트]전쟁을 겪은 두 화가의 다른 표현법

박서보, 아스거 욘 _국립현대미술관


전쟁을 겪은 두 화가의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른 표현과 대안들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선생님은 한국전쟁을 겪었고, 덴마크의 사회운동 예술가 아스거 욘 역시 세계대전을 겪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대치되는 이분법적 냉전체제의 프레임 속에서 살았다.  세상이 이분화되며 폭력적인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 두 예술가가 고민하고 표현하며 걸어온 길들을 바라본다.


박서보 선생님은 20세기의 예술은 매우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감정들, 생각들이 마구 튀어나와 자신을 주장하는 경향들이 없지 않은 거다. 여과 없이 토해낸 감정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 자체를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그림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갖 스트레스와 피로함 들을 온전히 흡수해내며 ‘여기 와서 쉬어라’ 할 수 있는 그런 숨구멍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따라서 그 과정 역시 구상적인 의미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나의 생각을 주장하기보다는 수신의 과정 자체로 삼게 되는 것이다. 찢어지기 쉬운, 물에 젖은 한지를 사용해 힘을 조절해가며 묵묵하게 자신의 아집과 생각과 감정들을 계속해서 비워내어 가는 단순한 행위의 반복. 밭을 갈듯 마음을 갈듯 그렇게 작품이 탄생한다. 박서보 선생님의 구도적 행위는 동양의 선 사상에 깊은 이해가 있었던 아그네스 마틴의 보일 듯 말 듯 섬세한 떨림의 연필선들을 문득 함께 떠올리게 했다.

이와는 다르게 아스거 욘은 이분법적으로 양분된 힘을 비주류의 대안적인 관점으로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일정한 관점으로 그려져 우리의 인식을 일방적으로 고정시키고 있는 고전 작품들 위에 과감하게 낙서를 하며 수정을 감행한다거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던 태피스트리를 공공장소에서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함께 작업을 하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들을 반항적으로?! 열정적으로 감행한다. 또한 창조성이란 천재 작가 한 명에게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교류와 대응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라며 일부러 호안 미로, 피카소 등의 대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변형하는 작업들도 하는 등 다양한 실험들을 한다. 예술의 자본주의화, 엘리트화를 비판하며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의 일상화를 도모하는 사회주의적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주류문화가 아닌 민속문화로 전락한 북유럽의 건축 패턴, 조각상 이미지들 2만 5천여 점을 수집하여 북유럽 미술에 관한 책을 계획하고 한권만 완성하고 떠났다고 한다. 무엇이든 두 가지 힘이 있으면 이들이 상충하며 대립구조를 띄게 된다는 그의 통찰에 공감한다. 철학과 과학기술 역시 그런 두 가지 힘들 중 하나인데, 그 사이를 매개하며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예술이라고 그는 보았다.


전시관은 때때로 나의 성소 같다고 생각한다. 추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박서보 선생님이 의도하는 것처럼 그냥 그 숭고함에 깊은숨을 쉴 수 있어서 좋다. 또 아스거 욘과 박서보의 작품들이 의도적으로든 우연하게든 함께 기획되어 아름답지 않은 인류의 사건들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아름답게 각색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은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경험이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층층이 쌓인 시간 속에서 익혀져 나온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들이 소통하는 곳. 호불호나 옳고 그름의 도덕적 판단보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할 수만 있다면, 어느새 함께하는 나의 눈과 의식도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며 깨어나는 경험들을 종종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나와 나의 세상은 지금 안녕한 걸까? 어쩐지 내가 해나가야 할 고유의 역할은 해나가고 있지 못한 것 같아 그새 또 부끄러워져 버리고 말았다.


2019.08 Ayla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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