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는 마음의 집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본래의 자신을 만난다.
- 파울로 코엘료 -
초등학교 4학 때 압구정동에 성당이 세워졌는데 어머니가 동네 지인의 권유로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셨다.
그 후로 우리 형제는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당에서 세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세례를 받으려면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매주 미사에 참석해 성당의 주요 기도문을 외운 후 수녀님께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렇게 쉽지 않게 우리 형제는 세례를 받고 성당의 이름으로 나는 바오로, 동생은 베드로가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6학년 말에 성당을 갔는데 우연히 성탄절 예술제를 알리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포스터 그림을 보았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 보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뭔가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성탄예술제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창과 연주, 뮤지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는 뮤지컬을 신청했다.
그런데 배역을 정하기 위해 간단한 오디션이 있어 노래를 한곡씩 해야 한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생님들 앞에서 떨며 동요 '등대지기'를 불렀다.
주중에 성당 선생님께서 집으로 전화를 주셔서 말씀하셨다.
“바오로가 이번 뮤지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으니까 성당에 꼭 와야 해.”
“네…”
일주일 후 배역을 발표한다고 해서 어떤 배역일까 궁금해하며 뮤지컬 첫 모임에 나갔다. 참여하는 친구들과 모였는데 아는 친구가 없고 모두 낯설었다. 배역을 발표하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인 예수님 역할을 내가 맡게 되었다고 하자, 함께 하는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시 성당에서 인기 많은 남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그 친구가 그 주인공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황스럽고 자존심이 상해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선생님께서 내가 꼭 해야 한다고 만류하셔서 결국 인생의 첫 뮤지컬에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압구정 성당의 성탄예술제는 예산과 지원을 많이 받는 중요한 축제였다. 나는 매일 모여 노래와 간단한 안무를 연습하며 성탄절이 다가오는 동안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의 응원 덕분에 노래 연습도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도 마지막 장면에서 불렀던 노래의 일부가 기억난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나 너희와 함께 하리라~~"
공연 당일, 선생님들의 헌신으로 멋진 무대가 제대 앞에 만들어졌다. 40년이란 세월이 지나 실제 공연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공연 당일 주인공 역할을 무사히 해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동네 신자분들이 나를 주인공 예수님으로 기억해 주셨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중학생이 되어 압구정동을 떠나 논현동으로 이사를 가고 성당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지만, 성탄절 심야 미사에는 참석했다. 그때마다 이유 없이 편안함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 성탄예술제 참여하지 않았다면 성당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까지 깊어졌을까 싶다.
예수님 역할을 맡았던 그 경험이 성당과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IMF 위기로 학비를 늦게 내 제적을 당하고 방황하던 시절, 강남역 영어학원에서 만난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당시에 유명한 모델이었지만 병역 비리 문제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 형은 압구정동에 있는 소망교회를 다녔는데 여러 번 교회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결국 그 형 권유로 몇 번 교회를 다녀봤지만, 자꾸 성당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형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형, 저는 교회도 좋은데 성당에 더 가고 싶어요."
그러자 그 형은 따뜻하게 응원을 해주었다.
"부담 갖지 말고, 성당에 나가봐."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혼자 압구정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미사를 드리고 혼자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마음이 고요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집을 구할 때나 장기간 머무르는 공간을 찾을 때면 먼저 성당과 가까운 곳을 찾게 되었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
부족하지만 글을 마무리하고 성당 미사 갈 준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