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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클루니 Nov 24. 2024

16화 후회하지 않을 용기

꿈이 이루어지는 길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혼의 후회를 낳을 뿐이다.


- 메리 앤 에번스 -


성가대 발표회가 있다고 해서, 경기도 화성에서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서울로 올라왔다. 발표회 후 성가대 단장을 뽑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자진해서 단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성가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찬반 투표가 진행되었고, 나는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매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후회의 시간을 보내다가 주일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


평소 성가대는 3층에서 미사를 드리지만, 그날은 2층에서 조용히 미사를 보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미사 후 서울대교구에서 나온 두 분이 피정에 대해 소개했는데, 주제가 '선택'이었다. 마치 나를 위한 것 같았다. 미사가 끝나고 바로 피정에 신청했다.


바쁜 회사 일과 성당 활동을 잠시 뒤로하고, 2005년 초, 2박 3일 동안 진행된 '선택' 피정에 참석을 했다.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정확한 명칭은 '젊은 미혼 남녀를 위한 선택'이었다. 결혼한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는 피정이었고, 의도치 않게 내가 그곳을 들어가게 된 거다.


군대에서 제대할 무렵, 이상형에 대해 부대원들과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4살 연하에 눈이 크고 잘 웃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가족으로 함께 살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피정에 참석한 사람은 50명이 조금 넘었고, 여자 인원이 더 많았다. 첫 프로그램은 자기소개였다. 한 친구가 돌아가신 할머니 덕분에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큰 눈과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2박 3일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해왔던 많은 선택들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성당 성탄예술제 뮤지컬 참여

고등학교 봉사서클 가입

힘든 동생을 두고 군 입대

대학교 4학년 때 학비 문제로 제적

YMCA 인명구조원 자격시험 신청

청와대 고위인사의 청탁 거절

여자친구 어머니의 부탁

청와대 경호실 시험 포기

일반 회사로 취업

해방을 위해 재즈댄스 시작

그리고, 나의 상황에 맞지 않는 성가대 단장을 하겠다고 했던 선택들 까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선택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번 피정은 내 인생에 큰 쉼표였다. 비로소 선택들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새로 성가대 단장을 맡기로 한 것도 당장은 감당하기 어렵고 불편했지만, 용기 내어 한 선택인 만큼 훗날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정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후, 첫 뒤풀이 모임에서 자기소개 시간에 호감을 느꼈던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착하고 잘 웃는 예쁜 모습에 끌렸지만,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화이트데이에 친한 회사 형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형님이 한마디 해줬는데, 그 말이 마음에 꽂혔다.

"마음에 그렇게 들면 결혼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가 있든 없든 후회하지 않게 용기 갖고 얘기라도 나눠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작은 초콜릿을 사들고 무작정 그 친구가 사는 서울 집으로 찾아가 전화를 걸었다.

"나, 함께 선택 피정에 참석했던 사람인데요.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요?"


뜻밖에도 시간을 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 저녁, 초콜릿을 건네며 용기 내어 말했다.

"마음에 드는데 한 번 만나보면 좋겠어요."


망설이던 그 친구가 내 제안을 받아들여줬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진짜 연애가 시작됐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즐겨했던 재즈댄스도 그만두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 데이트를 했다. 만나면서 처음으로 이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성가대도 안정화되면서 다시 발표회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발표회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단장을 맡았기 때문에 강하게 거절했지만, 단원들이 돌아가며 간절히 부탁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인생에서 한 번 하는 성가대 단장인데, 단원들이 이렇게 원한다면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결국 발표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도움이 정말 필요한 곳을 찾아 발표회를 진행하고 싶다는 취지를 단원들에게 전했고, 은평구에 있는 '요한의 집'을 찾게 되었다.


'요한의 집'은 나이 팔십이 넘은 요한 선생님과 따님들이 민간 시설로 개인 집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부모와 지내던 아이들을 데려다가 함께 사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발표회 준비는 쉽지 않았다. 화성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연습을 하고 다시 내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졸음운전으로 반대차선 달리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도 연습과 준비를 이어갔다.


한편, 연애가 깊어지면서 여자친구에게 내 집안 사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우리 만남을 반대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었기에, 추석 때 작은 선물을 대신 전하며 인사드리는 정도로만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발표회를 준비한 끝에, 2005년 연말에 '요한의 집' 후원을 위한 첫 번째 성가대 발표회를 열었다. 그날 우리는 한마음으로 성가를 부르며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단원들과 함께 모은 후원금은 역대 최고 금액인 500만 원 이상이었고, 이 금액을 잘 정리해 '요한의 집'에 전달할 수 있었다.


너무 힘들었던 발표회가 끝난 지 일주일 후, 여자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 OOO 아버지인데, 자네 우리 집에 와서 식사 한번 하고 가게."

이 전화는 우리의 관계를 인정하고 결혼을 허락해 주신다는 의미였다.


힘들게 성가대 단장을 맡아 발표회를 준비하고 마친 후,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주어진 귀한 선물 같았다.

'나도 드디어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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