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티내지 말쟈~~서울사람이라규!!!!
서울을 비대면매체를 통해서나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워워워 never forget, oh my lover 서울!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서울이 아름다운 곳이기에
저렇게 유명한 가수가 노래까지 부르며 찬미하는지 궁금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아, 아, 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이용의 노래는 좀더 구체적이었다. 종로와 을지로를 이야기 했으니까.
서울, 과연 나도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미지의 서울은 내게 꿈과 환상으로 자리했다.
내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지낸 곳은 지명에 설명을 더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곳이다.
‘전주 근처’라는 설명이 나오면 그제서야 아하~! 한다.
간혹 아, 사과 유명한 곳 아니에요? 라거나
‘무주 리조트는 가봤는데 거기서 가까운 곳인가요?’ 라고만 물어주는 이를 만나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실은 전주에서도 차를 타고 한 시간은 더 가야하고, 무주하고도 40분 운전 거리는 되지만 말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인구수가 적기로 전국에서 1,2위를 다투어온
아주 작은 군소재지에 살던 나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TV에서 자주 보는 서울은 판타지에 가까웠고, 전주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그곳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전주나 서울, 이른바 도시는 가끔 아버지가 출장길에 사온 선물로나 나와의 직접적인 인연이 생겼을 뿐,
관념적인 하나의 ‘개념’에 가까웠다. 간혹 서울에 사는 이모, 전주에 사는 고모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하고는 이상한 거리감 마저 느껴졌을 정도. 왠지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느낌이랄까.
도시에 대한 나의 동경을 눈치 챈 부모님이
"우리도 전주에 개인병원을 가진 의사 친척이 있쒀"
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잠시 기뻤지만 증조할머니의 사촌 동생의 아들이라고 했다. 살짝 김은 샜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저는 그분을 뭐라고 불러요?"
간단한 질문이었는데, 답은 복잡한 모양이었다. 토론식 수학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진리 탐구를 하는 석학을 방불케 했던 부모님은 한참 촌수 계산을 하시더니, 내가 불러야 할 호칭이 할아버지냐, 삼촌이냐를 두고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휴. 도시에 사는 친척에 대한 로망은 그때 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어 번 정도는 친구들 앞에서 그분을 당당하게 소환하기도 했다.
전주와 개인병원, 의사라는 단어 정도만 강조하면서도 으쓱했을 게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굴 한 번, 옷깃 한 번 스칠 기회가 없었던 분을 두고 말이다.
20대에 나는 서울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서울에 사는 친척이 되었고, 서울친구가 된 것이다.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촌티내지 말자’
촌티를 내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낯선 서울에서 낯설지 않은 척,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척 해야 했다.
쉽지 않았다.
서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지하로 다니는 열차는 복잡한 노선마다 사람이 북적였고,
하늘을 다 가리며 서 있는 높은 건물마다 회사는 많았으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내가 살아온 군 소재지의 인구 전체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매일 타는 지하철, 늘 오가는 길이지만 익숙해지는 얼굴 하나 없었다. 서울의 매일매일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혹여 눈길을 놓쳐 인사를 못한 사람이 있을까봐 걱정할 일은 없었다. 혹여 매일 마주친다 해도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고 관계짓기가 될 확률은 없었다.
거진 모든 사람이 친척, 이웃, 부모님의 지인이고
행여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한 두마디 건네보면 관계어가 생기던 곳과 가장 극명하게 다른 점이었다.
차가운 느낌이지만 그건 서울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냥 스쳐지나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누군가의 손녀도, 딸도, 조카도, 이웃도 아닌 별 의미없는 ‘누구’일 뿐이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해방’ 이었다. 내가 편한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흠이 될 리 없고,
부모님 귀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니까.
원치 않은 관심이나 필요 이상의 도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시골과 확연히 달랐고
나는 그게 좋았다.
작정하고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 월리처럼,
어지간히 촌티만 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배경과 사람들 틈에 묻힐 수 있는, 이곳은 서울이었다.
오, 서울~~ 완전 내 스똬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