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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효 Feb 12. 2022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담?

잊고 있었지만 본래 있었던 그런 것.비대면이 발견해준 빛바랜 구석

2014년부터 강의를 시작한 후 나는 한 학기에 최소 12학점, 최대 22학점까지 맡아 강의했다.

과목도 다양했고, 시간강사, 겸임교수, 대우교수 등 학교마다 내게 부여해주는 이름도 달랐지만

어쨌든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하던 일(방송 프로그램 기획 및 구성)도 놓지 않았다.

틈틈이 취미로 글도 계속 썼다. 운이 좋게 희곡과 뮤지컬은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고,

단편소설은 모음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박사 논문은 쉼표만 찍은 채 수료로 남은 상황이라 스스로 나를 나태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 수 있었는지 신기할 수준이다.

나한테 그런 열정이 있었다는 것도, 체력이 허락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다.

돈 때문에 한 것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표를 두고

고된 하루하루를 과정이라 여기며 견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무리 큰 보상을 해준다고 해도 이젠 못한다.

지금은 체력도 안되고 경제적으로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인지 불과 몇 년 전의 일인데도 아득히 먼 과거로 느껴질 뿐이다.

‘불태웠다’라는 말로 압축해봐도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찾아내면 지금 느끼는 격동적 혼란스러움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여전히 나는 혼돈 속에 있다.     

원동력. 나를 움직이는 힘은 뭘까. 뭐였을까. 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선택의 순간 나는 필요보다는 즐거움을 선택하는 편이다.

어쩌면 애시당초 뚜렷한 목표가 없어서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무엇을 위해 단계별로 계획을 세우거나 수행하는 사람은 아니다.

방향만 정해놓고 재미있는 일이면 한다.

지금 당장 50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100만 원을 주는 일과 30만 원을 주는 일을 선택할 때

나는 페이보다는 내가 신나서 재미있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철없고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고,

부족함 없이 살기 때문이라는 뾰족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결코 나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아니다. 대출금도 많고 그렇다고 부동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 걱정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은 하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하다 느끼지는 않고,

로또가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따금 상상하면서도 굳이 로또를 사지는 않는 게으른 사람일 뿐이다.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지 않을 정도의 현실감은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일의 우선 가치를 돈에서 찾지는 않는다.

과정이 재미있으면,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데 돈까지 주니 감사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실속 없다고 볼 수도 있겠고... (이 문제의 본질은 어쩜 회피인지도 모르겠다만)

이런 성향이 변하지 않는 한 나는 일을 계속하더라도 부자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딱히 갖고 싶은 것도 많지 않아서, 없이 살아도 박탈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는 것.

가난해도 불행하진 않다며 정신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 정도이다. (이것도 어쩜 본질적으로는 회피기제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2020년 1학기부터 2021년 2학기까지 2년간 비대면으로 강의를 했다.

처음에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불편하고,

학생들의 긴장감이나 다양한 감정들이 만들어낸 강의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게 답답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과 마이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대면 강의 때보다 지각이나 결석이 많지 않았고, 학생들의 참여는 오히려 활발했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언제든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을 채팅창에 쓰도록 하면서는 더욱 그러했다.

적극적인 몇 명으로 인해 강의 분위기가 좌우되던 것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

내성적인 학생들이나 강의실을 오가기에 물리적 환경이 불리했던 학생들은

오히려 비대면 강의를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 수업 자료를 업로드하고 강의에 대한 공지를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 댓글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

강의 중 이해하지 못한 점이나 다음 주차 강의를 통해 기대하는 점 등이 자유롭게 올라왔고

그것은 내가 강의를 준비하고 끌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은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하면 되었고,

과제물에 피드백 코멘트를 적어서 재업로드하면 그에 대한 질문이 댓글로 올라오기도 했다.  

대면강의를 할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효율적인 소통방식이다.


대면으로 2년간 만났던 학생들인데도 비대면으로 만나보니 새로운 모습이 많이 발견되었다.

착실하고 적극적이며 활달한 친구들이 대면에서 눈에 띄었다면,

비대면으로는 개개인의 고민이나 열정의 깊이가 보인다고 할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누구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느낀 비대면 강의의 장점이었다.

문제는 대면 강의 땐 ‘내성적이고 강의실을 오가기에 물리적 환경이 불리했던’,  

그래서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비로소 두각을 나타낸 건 일부 학생들 뿐 아니라,

나도 포함된다는 점을 다소 늦게 깨달았다는 점이다.


나는 비대면 강의가 더 좋았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었지만,

그만큼 강의를 충실하게 할 수 있었고, 학생들한테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학교까지 운전해서 오가는 대여섯 시간이 아껴주는 건 단지 물리적 시간뿐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적 자양분도 포함되었다.

4학기, 햇수로는 2년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이제 '대면'을 요구하는 일들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 지금 내게 당면한 중요한 문제가 되었지만.

 

강의뿐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을 지향하면서는 단체 회식이 사라졌고,

행사나 기획 회의도 줌과 문서 전송으로 간소화되었다.

별 의미를 찾지 못해도 으레 술잔을 앞두고 지루함과 부담감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

꽉 막히는 도로에서 운전으로 보내야 했던 그런 시간에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익히기를 미뤄두었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만지작 거릴 수 있었다.  

참으로 작지만 소중한 변화였고, 그러한 것들에 부여되는 의미는 점점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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