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결혼 한다. 직장 다닌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게 마흔을 앞둔 오빠를 제끼고 먼저 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릴때 이후로는 몇 번 만나지 못하고 각자 살았다. 섭섭함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오빠한테 연락 하지 말라고, 잘 살고 있는데 뭘 귀찮게 하냐 그러는데, 난 그래도 오빠가 왔으면 좋겠어. 신랑 얼굴도 보고.”
“알았어, 갈게. 어머니는 잘 계시고?”
“별로 뭐, 아버지 술버릇이 그렇잖아. 그래도 전처럼 심하지는 않나봐.”
이창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요즘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똥수저다. 강원도 꼭꼭 숨은 산골 출신에, 글도 제대로 모르는 어머니, 무뚝뚝한 새아버지, 나이차 많은 늦둥이 여동생이 전부다. 재산도 없고, 그 흔한 차도 한 대 없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게 가난 뿐이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놀음빚에 팔려 떠돌이 노가다이던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친척이 몇명 바닷가 쪽 어디 남아있지만, 그나마 사정이 있어 연을 끊었다 했다. 심하게 휜 오다리로 잘 뛰지도 못하던 아버지는, 조금만 일을 해도 밤새 관절이 아팠다.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못 가봤을거고, 주민등록이 있어 투표라는 걸 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아무 근본도, 아는 것도 없는, 언뜻보면 염전에서 막 구출 된 것 같은, 희안한 사람이었다. 장날이면 어쩔 수 없이 낚시 의자 하나 펴놓고 구두를 닦았는, 오백원 천원 버는 족족 술로 날렸다. 맡겨둔 구두가 옆에 쌓이거나 말거나 고스톱을 쳤다. 일을 하러 나가는 길이나, 집에 돌아오는 길이나, 아버지의 주머니는 똑같이 비어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배고픔과 추위가 전부다. 갈라져 터진 작은 손으로 남의 농사를 도와주거나, 밭에 떨어진 작물을 주워다 팔팔 끓여 끼니를 때웠다. 부지런은 하지만 절대 웃는 일 없던 어머니는 잘 먹지 못해서인지, 연거퍼 유산을 했다. 그렇다고 내 출생이 엄청난 환영을 받은 건 아니다. 아이까지 업고 일을 했으니 백 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어쩌다 태어난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못할 소리지만, 차라리 유산이라도 되어서 그런 집구석을 쏙쏙 잘 피해간 애기들을 축하 할 일이다. 어머니도 그냥, 아이 못 낳는 병신 소리를 계속 듣지, 뭐할라고 또 낳아서 생고생이었는지... 지붕은 무너져가고, 벽은 갈라지고... 시장 고무줄 바지도 옷핀을 꽂아서 입을 만큼 바짝 말라 죽어라 일만하는, 그러고도 늘 배가 고픈, 그런 삶이 싫었을 거다. 입에 거미줄 쳐 놓고 애를 또 낳았냐… 동네 사람들의 타박만큼, 아버지의 술주정도 심해졌다. 밤이고 낮이고 무한반복되던 술 내놔, 돈 내놔… 내가 봐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좋아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배가 불러 오면서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주먹질에도, 어머니는 바보처럼 묵묵히, 팔자 탓만 하며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병든 서방놈 죽게 놔두고, 금붙이 훔쳐들고 나왔을때 어떤 년인지 알아봤어야 했어! 살려달라고, 제발 데리고 도망가서 살아달라고 매달려서 여기까지 왔더니, 이제와서 나를 무시해? 또 다른 놈 생겼다 이거냐? 내가 누구 때문에 외숙 얼굴을 못 보고 이 꼴로 사는데?”
아버지의 레파토리였다. 술만 취하면 어머니를 이상한 여자 취급했다.
“너도 이 자식아, 니 애미 편 들지마. 저 년 아주 무서운 년이야.”
어머니는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거라며 신경쓰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전에 살던 동네에 어떤 못된 여편네 험담하는 거라고 했다. 아무리 술주정이래도 그렇지, 몇번이고 똑같은 소리를 듣다보니 점점 반감이 생겼다. 불쾌했다. 어린 나이에 놀음빚에 팔려 온 것도 불쌍한데, 남편한테까지 저런 대접을 받는 가여운 내 어머니... 어린 아기를 위해 그렇게 말대꾸 한번 못하고 죽어지냈다. 무뚝뚝한 아들이라 남들처럼 사랑한다 낮간지러운 말은 못했지만, 내게 어머니는 한없이 안쓰럽고 가여운 존재였다.
농번기가 지나 남들은 한숨 쉬어가도, 어머니는 산자락 계곡 끝에 앉은 보신탕 집에서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다. 주인 아저씨는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꽤 현찰을 굴리던, 단단한 체격을 가진, 깡다구있게 생긴 사람이었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조금 많았는데, 둘은 호형호제하며 가까이 지냈다. 살 붙은 곳 하나 없는 어머니의 작은 몸뚱이가 장마비처럼 땀을 쏟으며 이리뛰고 저리뛸때, 아버지는 여유자적 주방 옆 골방을 차지하고 화톳장만 붙들고 있었다. 일당이고 월급이고 고스란히 가져다 몽창 다 날렸다. 평생을 술과 놀음에 빠져있던 그는 학교 선생님들에게까지 급한 병원비라며 돈을 빌려다가 놀음을 했다. 작은 동네라 금방 말이 돌았다. 어머니가 여기저기 굽신거리며 돈을 빌릴 때마다, 보신탕 집 아저씨가 나서서 갚아 주었다. 고마운만큼 창피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급한 불을 꺼준만큼 눈치보며 설설 기어야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못들은 척 참아야했다. 아버지는 온동네에 유명한 썩어빠진 놈이었고, 어머니는 참으로 불쌍한 여편네였으며, 난 지질이 복도 없는 녀석이었다. 남들에게는 큰돈도 아니었겠지만, 어머니는 그거라도 벌어야했기에, 돈 되는 일을 찾아 온 동네를 구걸하고 다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보신탕 집에서 멀지않은 나즈막한 둔턱에 새 벽돌집이 지어졌다. 논두렁을 넓히고 다져서 차 한대 지날 길을 만들고, 집은 비스듬한 경사를 돌아 저 반대편으로 들어 앉았기에 마을쪽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위직에서 은퇴한 어느 어르신의 별장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외딴 집’ 이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그 집의 청소 등 소일거리를 맡았다. 선생님, 사모님이라고 불리우던 부부는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집안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통유리도 달았다. 잘 손질된 소나무를 심은 탁 드인 마당 한쪽으로 포도 덩굴을 감아 올린 정자도 있었다. 잘만 가꾸면 정말 티비에 나오는 집 같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을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했다. 세금을 줄이려고 지은 언덕 끝 작은 축사에 아버지를 잡부로 고용했다. 돈들여 세운 부자집 별장에, 보이지도 않는 언덕 너머로 숨겨 지은 축사 옆, 소똥 냄새로 숨쉬기도 힘든 컨테이너를 숙소로 썼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천국이었다. 술취한 아버지와 싸우지 않아도 되고, 어머니 돈을 더이상 아버지께 빼앗기지 않으니 조금씩 금전적인 여유가 생겼다. 아버지 역시, 가끔식 외딴 집에서 싸주는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소 키워 받는 수고비로 술값을 충당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잔소리 하는 사람 없이, 그 사랑하는 라디오를 종일 틀어놓고 흥얼흥얼 할 수 있어 좋았을거다. 게다가, 소도 겨우 두 마리 뿐이니, 할일이 없어 더욱 좋았을 거다. 어머니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돈 빼앗아가고 주먹질까지 하던 남편이 안보이니, 제 2의 인생이라도 즐기는 듯 했다. 가끔 아버지가 너무 취해 일을 못할 때는 내가 대타로 갔는데, 솔직히 즐거웠다. 그 멋진 마당을 가로질러 당당히 축사로 올라갈 때 마다, 마치 내 소라도 보러 가는 것 처럼 뿌듯했다. 며칠에 한번 볼까말까한 동네 사람처럼, 저기 멀찌기에 뚝 떨어져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아버지와의 거리도 딱 이었다. 컨테이너에 들러볼 필요도 없이, 굳이 맘에도 없는 인사말로 어색 할 것 없이, 마치 서로 못 본 것 처럼 지냈다.
어느날 외딴 집 어르신의 부탁으로 축사 옆 빈 땅에 견사를 지었다. 기둥을 세우고 철조망을 둘렀다. 아버지는 건실한 척, 사람 좋은 척, 주인 내외를 꼬득여 도사견 세 마리를 사들였다. 빈집과 소를 지킨다는 이유였지만, 분명히 보신탕 집 아저씨와 꿍짝이 맞았을 거다. 아직 어린 도사견들은 철이, 영희, 도식이라 이름 지어졌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갔다. 별로 정이 가는 얼굴도 아니고, 남의 땅에서 남의 돈으로 키워 고깃값이나 벌겠다는 맘뽀가 미워 일부러 관심주지 않았다. 개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아버지는 한마리만 옆 칸으로 옮겨 사료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성급한 녀석이 급하게 먹으려다가 입천장이 홀랑 벗겨졌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낑낑거리고 앓으며 죽어갔다. 어르신 앞에서는 불쌍한 척 한숨 팍팍 쉬고는, 바로 보신탕집 아저씨에게 넘겼다. 개 판 돈 몇 만원으로 아마 밤새 또 부어라 마셔라 했을거다. 그렇게 가득 쌓인 술병은 가끔씩 여물 싣는 손수레에 싣고나가 소주 몇병과 바꿔 왔다.
대책없이 사는 아버지 대신, 손빠른 어머니는 외딴집 내외의 신임을 얻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날에는 늘 풍족하게 한 상 차렸다. 직접 기른 깻잎이며 상추, 오이, 고추… 누가봐도 기분좋게 넉넉하게 뜯어다가, 남는 족족 다 집으로 가져왔다. 한 여름에는 먹고 버린 수박 껍데기까지 잔뜩 싸들고 왔는데, 하얀 부분을 잘라내 씻어다가 오이노각처럼 빨갛게 무쳤다.
“또 그 사람들 먹던 거 주워왔지?”
“아니다, 아까 다 엄마가 먹은거야. 그집 식구껀 진작에 버렸지.”
그러나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애들보다도 작고 마른 어머니의 몸으로는 그만큼의 수박을 다 먹지 못한다. 우리 형편에는, 먹고 버린 수박 껍질도 귀했다. 젓가락도 대지 않는 가짜 노각 무침을 본인 앞으로 당겼다.
“가난한거 싫지? 너도 저런 집에 태어날걸… 내일은 맛있는거 해 줄께. 아침에 서울 간다더라. 태풍 온다고 아마 한 이삼주는 안 내려온대. 냉장고 비울 겸 싹 가져다가 새 반찬 해줄께.”
어머니는 빠른 젓가락질로 수박 껍데기 무침을 연신 입으로 밀어 넣었다. 손등이 쥐포처럼 바짝 말랐다. 핏줄인지 멍인지, 원래 피부색이 뭔지 모르게 온통 얼룩덜룩한 반점과 기미로 뒤덮혔다. 발톱만큼 두꺼워진 손톱은 온갖 잡때로 시커멓게, 허옇게, 누렇게, 변색되고 갈라지고 부러졌다. 마디마디 휘어 굽어진 손가락에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반찬 투정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누구네 쓰레기까지... 아직도 남의 집 냉장고를 뒤져야 배를 채운다는 게 싫었다.
“창수네, 안에 있나?”
벌컥 문이 열리고 보신탕집 사장이 들어었다. 밥상에 앉은 나를 발견하자 얼굴에 썩 반갑지는 않은 표정이 스쳤다. 반갑지않은건 나도 마찬가지다... 기어다니는 여동생 쪽을 힐끔 쳐다본 것도 같다.
“또 왜요?”
“또 왜냐니? 일 시킬라고 왔지.”
“태풍이라 손님도 없을 건데… ”
“손 놓고 있다 갑자기 오면 어쩔꺼야? 미리 손질 해놔야지, 냉장고가 텅텅 비었어.”
“내일 하면되지, 이 시간에 뭔 일을 한다고…”
어머니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면서도 새빨간 봄 잠바를 걸쳤다. 밤중에 불려가는 게 한두번이 아니라 놀랍지 않았다. 아저씨가 대신 갚아 준 빚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도, 술먹고 온동네를 다 때려부수고 난리를 쳐도, 보신탕집에서는 고분고분 했다. 내 기억에, 솔직히 아저씨가 나를 예뻐한 적은 없지만, 창수네, 창수네, 하면서 엄마는 수시로 챙겼다. 아버지한테 두드려 맞아도 하소연 들어주는 그 사람 뿐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버지가 축사로 옮겨간 이후로는 더 자주 오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의 비위를 건들지 않아야 우리 식구가 먹고 살 수 있었으니 엄마는 늘, 거절 한번 없이 따라 나섰다.
“애기 잘 재워라.”
동생을 또 내게 맡기고, 어머니가 그의 용달차에 올랐다. 철컹철컹 … 빈 철제 개 장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빗속으로 사라졌다.
개를 자르는 기분은 어떨까. 소돼지는 도축장이 따로 있으니 직접 잡을 일은 없지만, 개는… 어디서든 사오면 아저씨가 잡아서 크게크게 자르고, 다음은 어머니가 다듬어서 조그만 덩어리로 나누어 보관한다. 가끔 수육이 남았다며 몇 접시 가져오곤 했다. 특별히 개라는 생각을 안하면 먹을만 했지만, 기분인지, 아니면 냄새가 불쾌해서인지 입에 대기 싫었다.
“냄새 나.”
“무슨 냄새? 곰탕도, 뭐든 끓이면 이정도는 다 냄새 난다.”
“아냐, 달라. 개 잡는 냄새.”
“무슨, 잡는 냄새 따로 있고, 먹는 냄새 따로 있나?”
“기분 나쁜 냄새야. 보신탕 냄새.”
그 날 이후 어머니는 향수를 몇병 가져와 옷이며 방 구석 여기저기에 뿌렸다. 아저씨가 사줬다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의 말이 걸려 뭐라 했나보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또, 그 향수 냄새가 역겨웠다. 어머니가 가져오는 수육에서, 탕에서, 화가 치밀도록 독한 싸구려 향이 났다. 입맛 없다고 안먹고 버텼다. 조그만 방안에서 최대한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앉았다. 어머니에게도 그 냄새가 배었다. 그게 싫어서, 쳐다보기도 싫어서 뒤돌아 누웠다. 어머니는 그 국물에 찬밥을 말아 동생한테 먹였다. 애기 입에서 개 냄새 난다고 짜증부렸지만, 어머니는 그거라도 먹여야 한다며 계속했다. 늘 비어있던 고물 냉장고가 차곡차곡, 팔고 남은 개고기로 채워졌다. 싸늘한 윗목 비닐 옷장 옆의 철재 오봉 위에는 싸구려 화장품이 늘어났다. 맘에 안들었지만, 툭 부러지게 생긴 어머니의 팔다리를 보며 간신히 화를 참았다.
태풍이 최고점이던 며칠 후, 일 간다며 나간 어머니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빨래대가 날아가고 댓돌까지 물이 찰랑거렸다. 설마 이시간에 또 외딴 집에 갔을까. 그 집은 비만 오면 진입로가 잠겨버린다. 빈집 좀 놔두지 뭘 어쩐다고 매일같이 들렀다. 에잇, 귀찮은데.. 동생도 잠들었으니 잠깐만 가봐야겠다.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일자로 똑바로 가기가 힘들만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우비 모자는 진작에 벗겨지고, 길 여기저기 물이 잔뜩 고였다. 힘들게 외딴 집까지 올라갔지만 현관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빗소리를 뚫고 굵직한 개 소리가 들렸다. 도사견이다. 컹, 컹, 컹… 낮게, 끊임없이 짖었다. 축사에 올라갔나? 아버지가 또 술 퍼먹느라 사료를 안줬나? 아, 진짜… 이번에는 며칠을 굶겼을까… 자전거를 세워두고 미끄덩한 진흙길을 걸어 올라갔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인는 건, 용달차였다. 뒷칸에 실려있는 빈 개장… 아저씨의 용달차다. 이 시간에 왜 왔지? 그래서 개들이 짖었구나.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개를 사러왔나? 견사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미친듯이 짖어대는 개, 푹푹빠져드는 진흙, 눈 뜨기도 힘든 빗줄기… 느릿느릿 힘들게 용달차 쪽으로 가까워갈 때, 잠시 아버지 컨테이너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그 틈으로, 짧게, 아주 잠깐 불빛이 새어나왔다 사라졌다. 컨테이너에서 나온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였다. 서두름 없이 천천히, 챙 모자도 쓰지않고 오는대로 다 맞으며 걸어가 용달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둔한 바퀴가 천천히 구르며 진흙을 튕겨냈다. 몇 걸음 앞에서 꺾어지며 지나던 차안 조수석에 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깜깜해서 처음에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담배 불을 붙이던 라이타 불빛에, 분명 빨간 색 잠바가 보였다. 땡볕에 밭일 할 때나 필요한 스카프 달린 챙 모자를 꾹 눌러 쓴 조그만 여자… 분명 어머니다. 아주 잠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이 밤중에, 그것도 이 빗속에 저 모자까지 쓰고 있을까? 둘은 나를 보지 못하고 무심히 지났다.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주우욱, 주우욱, 바퀴자국을 내며 진흙길을 내려갔다.
아버지는? 같이 술 드셨나? 근데 왜 어머니는 안들어가고 혼자 차안에 있었지? 남자끼리 무슨 이야기를 했나... 불현듯, 어머니를 놀음빚에 팔았다는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팔았을까? 안돼, 설마… 개값 흥정하러 왔겠지. 그렇지만, 이런 날..? 집주인도 서울가고 없는데? 잠깐 망설이다 아버지한테 가보기로 했다. 아니겠지만, 그래도 물어봐야겠다. 설마 당신이 인간이라면, 최소한 내 아버지이라면, 그리고 남편이라면 그런짓은 안하겠지. 안그래도 죽지못해 사는 어머니를… 보신탕 집 아저씨는 가족이 없었다. 힘도 세고 술도 세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남들과 그닥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자주 바뀌었고, 어머니만큼 그렇게 오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와 친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집만 가면 매번 공짜로 술을 마셨다. 그래도 내가 아저씨를 싫어했던 건, 매일 아버지를 취하게 만들어서만은 아니었다. 늘 무표정에, 절대 웃지않는, 속을 알 수 없었다. 딱 개나 끓이는 게 천직이라며 버릇없는 생각도 했다. 그래, 사실 내가 아저씨를 싫어한 진짜 이유는, 늦은 밤 자꾸 엄마를 불러내어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술취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밤낮없이 노예처럼 일을 해야한다는 게 참을 수 없도록 화가 났다. 말은 안해도, 분명 아저씨도 눈치채고 있었을거다.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발목까지 진흙에 빠져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모르게 엉망이었다. 바닥이 더러워질까 빼꼼히 머리만 내밀고 들여다 봤다. 담배 냄새가 코로 확 들어왔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는 아니었다. 담배값이 오르고나서는, 누가 거저 주면 한두대 피울까, 절대 본인 돈으로 사지 않았다. 그 돈으로 술을 한병 더 살 위인이다. 그 담배는, 아마 아저씨가 피웠을 것 같다. 역시나 아버지는 내가 노크한 것도 모르고 널부러져 있었다. 불도 환히 켜 놓은 채로, 안그래도 냄새나는 컨테이너 안에는 언제 빨았는지 쾌쾌한 이부자리 냄새하며, 오줌 지린 듯 불쾌한 악취가 났다. 발 딛을 틈 없이 가득 한 술병,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물 찌끄레기, 약봉지, 낡은 군용 담요 위에 쏟아놓은 화토장, 수십개는 될 것 같은 쓰고 버린 나무 젓가락…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못봐주겠다. 이러니 잠깐 얼굴보러 왔던 어머니도 그냥 갔겠지. 술이 깨고 나면, 개값 못 받은 걸 억울해 할까? 기억이나 하려나, 아저씨가 왔던 걸? 근데 어머니는 왜 먼저 차안에 있었지? 하긴, 나 같애도 들어오기 싫었을거다... 한심한 마음에 불을 꺼주고 나왔다.
다음 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물도 빠지고 길도 제법 걸을만 해졌다. 집주인이 오기전에 술병이나 치워줄까 하다가도 본인이 알아서 했겠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던 그 날, 선생님의 호줄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일찍 집에 가라고 했다. 집앞에는 이미 동네 사람 서너명이 모여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돌아보았다. 일찍 왔네… 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는 별로 놀라거나, 슬퍼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비 쏟아지는 며칠간 방안에서 꼼짝않고 술만 마시다 죽었다고 했다.
“벌써 며칠 지났대, 썩는 냄새가 나더라니까. 태풍 왔던 그때야. 어쩐지 한번도 동네에 얼씬도 안하더니, 거기 처박혀서 술만 마셨구만. 빈병이 엄청나게 나왔어.”
“내려와서 고스톱이라도 치지, 왜 그랬대? 평소에는 한판만 치자고 난리더니, 막상 그런 날에는 거기서 혼자 죽어? 에이그, 참…”
그 날 이었을까. 그럼 내가 본 게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나.
“넌 니 애비한테 언제 가본거야?”
“축사 치운다고 태풍 오기전에 한번 보구요...”
“그게 다야? 그럼 한 열흘을 넘게 못봤네?”
“원래 거기 나가살면서부터 잘 못봤어요. 그래도 중간에 비 많이 올 때 한번 갔었는데...”
“갔었어? 언제?”
“화요일 밤에요.”
졸린 동생을 토닥토닥하던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반대쪽으로 등을 돌렸어도 다 듣고 있었나 보다.
“그때는 살아있었고?”
“모르겠어요. 소 밥 챙겼나 해서 갔다가, 술 드시고 주무시는 것 같아서 그냥 내려왔어요.”
“화요일이면, 대충 그때쯤 일거야. 너 왔다가고, 자다가 죽었나?”
“누구는 또 낮에 죽었을거라던데? 방에 불도 안켰고, 라디오도 꺼져있었대.”
말하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를 봤다고, 아저씨가 들어갔다 나왔고, 내가 불을 껐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내게, 화요일 밤 몇시에 갔는지, 무엇을, 누구를 봤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는, 아버지나 축사, 컨테이너, 그날 밤에 대한 어떤 말도 내게 하지 않았다. 다만, 보신탕 집 아저씨와 무어라 속닥속닥,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가족도 없고 돈도 없던 우리는 장례식도 생략하고, 아저씨의 용달차로 화장터를 다녀왔다. 우는 사람도, 억울한 사람도, 딱히 죽음을 의아해하는 사람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저씨는 더 자주 어머니를 태우러 왔고, 그래서 어머니는 더 바빴고, 아예 동생까지 데려가서 일을 했다. 동생이 잠들어 그냥 거기서 재운다며 일주일에 하루, 이틀, 삼일… 점점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강릉의 큰 종합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기숙사가 딸린 ‘좋은’ 학교라고 했다. 아저씨가 알아본 곳이라는 말에 바로 알았다고 답했다. 멀리 가고 싶었다. 무작정, 집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미리 짠 것 처럼, 어머니의 전화도 줄어들었다. 대신 매달, 아저씨 이름으로 꼬박꼬박 용돈이 들어왔다. 무언의 압박 같은 거였다. 눈치 껏, 어쩌다 명절에나 한두번 통화할 뿐, 우리는 둘 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아니, 죄는 짓고 아직 들키지는 않은 사람들처럼, 그것도 아니면, 네가 한 일을 나는 안다…라는 듯한 공범처럼, 서로 말을 아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던 공포의 끝은, 늘, 과연 어머니일까.. 하는 자의식이었다. 내가 상상하는 그걸까. 명치 끝 어딘가에 축사 앞에 질척거리던 검붉은 진흙 덩어리가 꾸욱 막혀 있었다.
그날의 비, 움푹움푹 빠져들던 젖은 흙, 미친듯이 짖어대던 도사견과 인기척 하나 없던 마을… 구역질나게 더러운 컨테이너, 스쳐지난 빨간 잠바, 아저씨의 용달차… 안 본척 못 본척, 나를 피하던 어머니의 눈… 어둡지만 일분일초도 슬픈 적 없던 얼굴, 내 뒤에서 소근거리던 두 사람… 모르는 새 무척 많이 닮아있던 그 무표정… 알콜중독 남편에 맞고 지낸 불쌍한 여자가 아니라, 드디어 할일을 했다는 후련함이 느껴지던 … 아니다. 비약이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아버지는 사고였고, 어머니는 말년 운이 좋았으며, 아저씨는… 그냥 때 맞춰 짜잔하고 나타난 흑기사다. 어차피 아무것도 기억 못 할 어린 동생은 아저씨를 아버지로 알고 살거다. 이미 아저씨 성으로 바꿨다니 잘 된거다. 모두를 위해 그게 낫다. 나만 쏙 빠져주면, 잊혀져주면,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잘 지낼거다.
누구도 날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흔한 말, 집에 좀 들러라, 전화 자주해라 하는 말들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적어도 나 하나는 완벽하게 떨어져나갔다. 그나마 동생은 그집 식구가 되어 사랑받고 자라는 것 같았으니 마음이 놓였다. 오붓해 본 적이 없어인가, 그리움도 없었다. 어머니를 뺏겼다기보다는, 그렇게라도 밥은 굶지마라 혼자 생각했다. 춘천에서의 군생활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강원도에 간 적이 없다. 어릴 때 닭 잡는 걸 본 이후로 닭을 못 먹는다는 사람처럼, 내게 고향이란 건, 뇌가 터질만큼 거대하고 버거운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런 고향에, 정말 큰 결심을하고,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반기지 않을 걸 알기에, 전화없이 그냥 버스에 올랐다. 최대한 늦은 밤에 도착해, 정말 얼굴만 잠깐 보고 피곤하다고 누워버리자… 그 곳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바뀌어 있었다. 털털거리던 흙먼지가 보일만도 한데, 전부 포장도로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 살폈지만,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큰 길에서 내려 걷는 내내, 불빛이 흘러나오는 아파트가 당황스럽다. 그때는, 아파트는 커녕 이층집도 드물었었다. 처음보는 풍경이 믿기지 않았지만, 여전히 감흥은 없다. 쭉쭉 뻗은 도로가 끝나고, 산자락에 자리한 보신탕집까지는 산길로 걸어서 간다. 아저씨 덕에 살림에는 여유가 생겼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감정 기복이 심했다. 이제 내가 돈버니 올라오라고,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도 했었지만, 누구 하나 죽기전에는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저 인간이 가만 두겠냐… 뭔가 약점을 잡혔나보다 짐작했어도, 묻고 싶지 않았다.
외딴집 길목 앞을 지난다. 진입로가 단단한 아스팔트로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었나? 축사 옆 컨테이너는 아직 그대로 일까? 답답하다.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 왜 죽었을까? 아저씨는 왜 거기서 나왔고, 어머니는 왜…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다. 크게 숨 한번 쉬며, 외딴집 쪽을 외면하고 걸었다. 지난 일이다. 그냥 폭음으로 죽은거다. 원래 간도 망가져있었으니 무리한거다. 만약 조금이라도 엄마가 관련되어 있다면? 아저씨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그걸 알면서도 어머니가 밖에서 기다린 거라면? 아니, 아저씨한테 시키고 본인은 망을 보고 있었다면…? 화장터에서 내내 붙어서서 내 눈치를 살피던 아저씨, 조각상처럼 동요없이, 놀랍지도, 슬프지도 않던 어머니… 그날 거기에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내게 아무 말 없던 두 사람. 그게 정상인가? 나 몰래 한 혼인 신고, 꼬박꼬박 보내오던, 내가 요구한 적 없는 용돈… 입막음이었나. 왜 그랬을까. 요즘이야는 보험금이라도노린다지만, 우리는 그때 너무 가난해 그런 것도 없었을 텐데... 그럼 그냥 동생… 그 때문이었나.
반쯤 올랐을까, 저 앞에서 큰 소리가 나며 풍덩.. 뭔가 물 속으로 빠졌다. 차도 다니지 않는데 무슨 사고인가 싶어 서둘러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 어둠 속에 간신히 보이는 계곡, 그 밑으로 처박힌 불빛 두 줄기, 물 위로 솟아오른 시커멓고 커다란 물체... 짐 싣는 칸이 반쯤 잠긴 걸로 보아 아마 시골에서 많이 쓰는 삼륜 오토바이가 굴러 떨어진 모양이다. 겨우 허리에나 올까말까한 낮은 물이지만, 운전석부터 꼬꾸라져 박혔다면 사람이 다쳤을 수도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누가 깔렸나? 119를 불러야 하나? 가까이로 내려가 핸드폰 불빛으로 물 속을 살폈다. 오토바이 아래에 사람이 있다. 못 움직이는 듯 했다. 물속에 한발을 딛고 가까이 들여다 봤을때, 마지막 숨을 내뱉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혹은 새아버지- 술주정뱅이 놀음꾼 내 아버지의 숙소에서 나온 마지막 인물, 나를 쫒아내고 어머니와 살며 용돈을 보내던 철면피, 술만 먹으면 그 연약한 어머니에게 주먹질을 한다는 나쁜 놈... 어제도 오늘도, 꿈속에 나타나 내 목을 조르고, 팔다리를 잘라 도사견에게 던져주던 그 인간이다.
그가 거기서 죽어가고 있다. 그도 나를 보고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지만, 오토바이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했다.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핸드폰 불빛을 끄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모른척 하자. 어차피 나 혼자서는 저 무거운 걸 옮기지 못한다. 한 십분만 기다렸다가 119를 부를까도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꺼내는 척 흉내라도 내고 있으면, 아무도 의심 안 할거다. 의심은 무슨? 내가 밀어 빠뜨린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사고를 목격한, 어쩌다보니 두번씩이나 사람 죽은 현장에 있게 된… 난, 목격자일 뿐이다. 잠든 것 처럼 뻗어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의 담배 냄새, 자꾸 쌓여가던 공짜 고기와 화장품, 밤마다 사라지던 어머니, 뜬금없이 태어난 늦둥이 동생… 그래, 못 본척 하자. 이제와서 119를 불러도 늦었다. 가던 길 간다. 바로 코앞에 어머니 집이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 아무 일 없는 척 지나가자. 만약 아저씨가 늦으니 마중이라도 나가자고 하면 어떻할까? 오는 길에 못 봤냐고 어머니가 묻기라도 하면, 떨지않고 완벽하게 시치미 떼야한다.
움직임이 사라진 아저씨를 내려다보며, 핸드폰을 꺼냈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머리속으로 연습 해본다. 예, 어머니 저에요, 오랜만에 집 앞에 왔는데 잠깐 들어가도 되죠? 아저씨 집에 계세요? 창미 결혼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왔어요… 그래, 그렇게 말하는 거다. 태연하게 들어가서 얼굴을 보고, 돈봉투를 주고, 밥이고 과일이고 없이 바로 나와 서울로 간다… 오토바이 뒷꼭지에 반사되는 달빛을 보며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 뚜우우… 귀에 바짝 댄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숨을 고른다. 그때, 심장 떨어지도록 짜랑짜랑한 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멀지않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벨 소리가 들리다가 황급히 꺼졌다 -- 동시에, 내 귀의 발신음이 끊겼다. 내가 건 전화를, 어머니가 거부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바로 내 등 뒤 요만큼 떨어진 어두운 숲길에서, 불빛 하나 없는 스산한 계곡에서, 어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오토바이 아래에서 죽어가는 아저씨를 손놓고 보고만 있던 내 뒤에서, 분명 어머니의 전화벨이 울렸다 꺼졌다.
귀를 바짝 기울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숨었나. 보고 있었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까이에 있다.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걸, 아저씨가 저기서 죽은 걸, 지금까지 숨어서 다 보고 있었다. 어쩌면 오토바이가 떨어지기 전까지, 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20년 전 그날 밤 아저씨의 용달차에서처럼,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는 그날처럼 똑같이, 이만큼 숨어서 남일처럼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전화기를 꽉 움켜 쥐었다. 천천히,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게, 덜덜 떨리는 두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어머니의 집을 목전에 두고, 아저씨를 물 속에 처박아 두고, 전화벨의 주인을 숲길에 남겨둔채,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발자국 소리에 장하며 점점 빠르게 언덕을 내려간다. 뒤돌아 볼 엄두도, 나무 사이를 살필 용기도 나지 않는다. 계곡 입구 간판을 돌아 도로에 접어들면, 지나가는 아무 차라도 잡아 타자.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을 시내로 나가 제일 먼저 보이는, 후져빠진 여관에 숨어들자. 두번 다시, 어머니와 전화 할 일은 없다. 두번 다시, 이곳에 오는 일도 없다.
외딴집 앞을 뛰어 지난다. 버스 정류장도 그대로 지난다. 판판하게 깔아 놓은 아스팔트 위로, 지나가는 차가 한대도 없다. 미친 사람처럼 달렸다. 제발, 이 마을을 뜰 때 까지, 내 집에 도착 할때까지,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