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도망간 아담, 기다리는 이브, 그리고 그녀의 사과

by 신소운

새벽 두시 반. 겨우 좀 쉴 만 하다. 문 앞에 대리 두명이 어쩌면 마지막일 누군가를 기다린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들끼리 낄낄거린다.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걸어 나온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흰 머리를 손으로 넘겨 빗으며, 자연스럽게 얼굴을 가리고 차로 향한다. 반듯이 접은 겉옷을 기사에게 넘기고 뒷자리에 오른다. 휘청거림 없이 꼿꼿한 자세. 독한 술 냄새에 비해 신기하리만큼 멀쩡하다. 기사가 서둘러 문을 닫으려하자 손으로 제지한다. 조금 떨어져 뒤따라 나온 여자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미리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오빠, 잘 가요. 자주 좀 와. 이젠 일도 안하면서 혼자 있으면 뭐해?”

“잊을만 할 때나 한번씩 와야 반가워하지. 자주 오면 귀찮을거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던져본다. 그녀가 웃는다. 노신사도 웃는다. 5초 이상 두 눈을 마주 봐도 어색하지 않다는 건, 감정이 남았다는 뜻이다. 설레임이 살아난다. 반세기를 숨겨온 아련한 첫사랑이, 긴 눈맞춤으로 숨쉰다. 마치 그때처럼, 처음 손 잡고 속닥속닥 숨을 곳을 찾던 그때 처럼, 혼자 남기고 뒤돌기 싫다. 습관은 못 고친다. 이 버릇은, 이 그리움은, 죽을때까지 못 고칠거다. 이제와서, 아니, 이렇게까지 살아왔어도 잊을 수 없었던 건, 버리지도 못 할 거면서 차버린 경솔함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았다. 큰 착각이었다.

악수 핑계로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차문이 닫히고, 그가 떠난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는 꽤 오랜만에 오셨어요. 거의 1년은 되가는 것 같은데요?”

1년 더 되었지... 소음 하나없이 조용히 언덕을 내려가는 검은 차를 바라본다. 함께 온 강 사장이 팔을 내민다. 종일 일하고 흐트러질 만도 한데, 땀방울 하나 흘린 자국이 없다. 언제나 바로 출근 한 사람처럼 싱싱하고 깔끔하다. 단단한 팔뚝에 의지하며 계단을 올랐다.

“케빈, 약속 없으면 한잔 하자. 어때?”

“예, 사장님. 준비하겠습니다.”

“사장은 네가 사장이지, 난 다 늙어빠진 허깨비고.”


애써 밝은 척 헛웃음을 날린다. 저 인간이 왔다 갈때마다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라도 한 것 처럼, 몸도 마음도 아프다. 한번도 멈춰 선다던가, 뒤돌아 본다던가, 창밖으로 손 한번 흔들어 주지 않는다. 보고 싶었다, 예쁘다, 빈말도 없다. 그래도 여전히, 저렇게 다 늙어도, 아니, 저렇게 늙어갈 수록 점점 더 멋있다. 마음 속을 다 알면서도 케빈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쓸만한 놈이다. 자연스레 낀 팔짱에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진작에 벗어버렸어야 할 구두를 여지껏 신고 있었으니, 발이 두배는 부은 것 같다. 좀 안 아픈 쪽으로 걸어보려해도, 이정도 부으면 힘을 줄 수가 없다. 빵빵해진 발바닥이며 발등이 가죽을 밀어내고 구두 밖으로 터지려 한다.


예뻐 보이고 싶었다. 남자는 나이 들어 멋있다면서도, 여자는 같이 늙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화려해 보이고 싶었다. 전보다는 조금 낮은 걸 신긴 하지만, 5센치 이하로는 안떨어진다. 통굽은 유행할 때만 딱 신어 봤다. 아직도 기다란 손가락같이 뾰족한 힐이 붙은, 광 잔뜩 낸 하이힐만 신는다. 조금이라도 굽이 닳아서는 안되고, 가죽이 늘어져도 안되며, 앞쪽 접히는 부분에 주름이 생겨도 안된다. 자고로 여자에게는 - 예쁜 여자에게는, 하이힐은 립스틱이다. 잠 잘 때와 샤워 할 때만 빼고 온종일을 함께 한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눈만 뜨면 힐부터 찾아 신고, 밥을 먹어을 때에도, 화장실을 가서도 늘 힐을 신고 있었다. 종아리를 긴장시켜 다리가 날씬하고 길어보인다고 했다. 힘을 주고 걸으면 잔 근육이 생겨 엉덩이도 올라가고 섹시해 진다고 들었다. 따라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최고 스타였던 윤복희의 미니 스커트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했다던 남다른 각선미, 춤 동작, 패션 감각... 그 시절 온 나라를 쇼크에 빠뜨린 한뼘짜리 치마... 흑백이긴 해도 먼 나라까지 위문 공연을 다녀 온 신문 기사를 잘라 책 갈피에 고이 간직했었다. 당시 그녀가 신었던 빨간 구두는, 보통 사람이면 몇 달은 돈을 모아야 비스무리한 걸 구할 정도로 유행이었다. 가수의 길을 적극 지지해주셨던 그녀의 부모님이 서울에서 직접 주문을 해서 똑같은 걸 공수해 왔었다.


유지나… 예명이다. 빠르게 시대가 바뀌던 때였다. 트로트가 아닌 ‘대중가요’로 승부를 걸었다. 이미 쟁쟁하던 윤시내, 이은하 등을 비집고 방송을 탈 수 있었던 건,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한 가요제 덕분이었다. 오직 가요제를 나가기 위해 대학을 갔다. 70년대에는 정말로 찾기 힘들었던 여자 대학생으로, 그것도 방송국 가요제 - 동양 방송의 '젊은이의 가요제' 금상을 수상했다. 1회때는 나이가 어려 참가 할 수 없었고, <젊은이의 가요제>로 이름이 바뀌던 2회에 겨우 만 19살의 나이로, 최연소 참가자면서도 자그마치 2위를 차지했다. 미용실과 의상실을 따라다니며 대회 준비를 해주던 부모님의 기쁨은 말할것도 없었다. 바로 장사를 접은 아버지가 매니저로 따라 다녔고, 관리라는 이름 아래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말 원해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너, 한번도 저 분에 대해서 안 물어봤지. 아는 얼굴일텐데, 무슨 사이인지 안 궁금해?”

붙여주는 담배를 한 입 빨고 운을 뗐다. 케빈이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여쭤보면, 이야기 하실려구요?”

유지나가 웃었다. 그래, 그렇지, 너라는 녀석. 밑에 둔 지 십년이 넘었다. 서른살 젊은 아이가 기사 겸, 비서 겸, 매니저 겸… 한마디로 그녀의 수족이 되겠다고 찾아왔었다. 사십년을 붙어다닌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서, 누가와서 그 일을 해도, 탈모가 올때까지 열심히 해도, 그녀 눈에 차지 않았다. 이미 전성기도 지난 때라 뭘해도 만족스럽지 못했고,섭외도 물어오지 못하는 것 같아, 짜증만 냈다. 가족처럼 지내던 스탭들이 다 떨어져 나갈 때 자진해서 들어온 젊은 아이는, 말도 안되는 걸 시켜도 꼬박꼬박 다 했고, 말대꾸는 커녕 왜요? 어째서요? 토 다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속을 꽤뚫어보는, 잘 만들어진 로봇같았다. 스무살 가까운 나이차와 계집애 같이 고운 얼굴 때문에 불륜이니 제비니 수근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숨겨놨던 아들이라는 루머도 퍼졌다. 보란듯이, 더 떠들라는 듯이, 그녀의 자택에 방을 내주고 한집살이를 했다. 하루 종일 24시간을, 그렇게 십여년을 함께 살았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아들도 아니지만, 분신이라고 할 만큼, 다 트고 지냈다.


“가게는? 사장되니까 어때? 할만해?”

“사장은요, 겉으로만 그렇지, 누님이시죠.”

“맡았으니까 잘 키워. 그래도 나 죽기 전에는 싹 팔아서, 내가 다 쓰고 죽을거야. 알지? 다 주는 거 아냐.”

“그럼요, 언제든 그만해라, 말씀만 하세요. 그대까지, 값 잘 받게, 이쁘게 유지하겠습니다.”

그가 잔을 채워준다. 맥주는 원래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양주는 이제 몸이 힘들다. 희안하게도, 소주는 아직도 거뜬하다. 대신 샤베트처럼 살짝 얼린 과일즙을 섞는다. 그저 좀 다양한 맛을 즐기고 싶어서일 뿐, 취하고 싶은 건 아니다. 만약 이걸 먹고 술주정을 한다면, 토해도 향긋한 냄새가 날꺼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하던 술집, 직접 차렸던 술집… 평생을 술장사로 먹고 살았다. 안먹어 본 술은 없을거라 자신했다. 여기도, 혼자 마시기 심심해 시작한 살롱이다. 친구들, 지인들만 불러 지난 이야기나 하며 살고 싶었다. 돈은, 입소문을 타고 나서는 괜찮게 들어왔다. 청담동 한복판의 하얀 카페... 시중드는 아가씨 하나 없는 이상한 룸 쌀롱이다, 고위층의 비밀 바 라더라, 예약을 해야만 들어 간다던데… 별별 신비스런 소문에, 부르지 않아도 돈 좀 있다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간판도 없이 그저 옛날 가수 유지나가 하는 카페라고만 통하는 이 곳은, 정말로 꾹 잠긴 철문을 지나야 한다. 벨을 누르면 보안 카메라에 신분증을 내밀어 예약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연예인, 정치인의 특혜를 둔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런 부류가 아니면 그 돈을 내고 방을 잡을 사람들도 없을테니, 점점 일반인들은 들어 갈 수 없다고 소문이 났다. 그런 고급 술집을, 힘이 점점 딸린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얼마전, 케빈 강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이유가 뭘까, 무슨 사이일까, 수근댔지만, 정말 단순히,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다.


“여기 닫으면 너는 뭐 먹고 사니? 그냥 네가 사서 혼자 계속 하지 그래?”

“혼자서 하면, 이걸 뭐하러 합니까. 지금도 누님 옆에 있을려고 하는거죠. 나중에 다 팔고 나면, 같이 여행다니고, 식사 챙겨 드리고…”

“됐다, 됐어, 또 그 소리. 징그러, 장가나 가.”

징그럽다, 장가나 가라… 십 오년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처음 면접 보던 날, 예쁘장한 그 청년에게 물었다.

“왜 벌써부터 이런 일을 해? 연예인 될려구 온거면 잘못 온거구.”

“아니요, 누님 옆에 있을려구요. 운전도 잘 하고, 음식도 잘 합니다. 매니저로 뿐 아니라, 24시간 가까이에서 모시겠습니다."

팬이라고 했다. 평생을 들었으니 식상하지 않냐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 때는 눈이 부셔 눈물이 나고, 받지 못할때는 그 눈부심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사십, 오십을 지나며 점점 일이 줄어들면, 어느 사업가 어머니의 팔순 구순 잔치에나 불려 다니면, 그러다 정말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때는 팬이라 아는 체 해주는 치매 걸린 할머니도 고마운 법이다.

“징그럽다, 장가나 가라.”


처음 만난 날, 그를 채용했다. 제임스 강이라던 이름도 케빈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꿔주었다. 제임스는 호스트 바에서 쓰던 이름이라고 했다. 그래, 제임스 강… 어쩐지 어감이 좀 사기꾼 같다. 제비짓해서 뭐라도 뜯으려고 접근했을지, 아니면 그쪽일도 서른 넘어가며 단골이 줄었든지, 이유가 뭐든 그를 곁에 두고 부린다는 건 행운이었다. 사실 그 시절 가수 매니저라는게, 특히나 내 아버지를 대신 한다는 게 결코 아무나 막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카바레 기도 출신이던 아버지는, 그야말로 보디가드에, 매니저에, 코치였다. 기본으로 검은 승용차 세대쯤은 줄줄이 끌고 따라다니던 아버지의 깍두기 ‘동생들’ 덕에, 방송국 누구도, 정계의 아무리 높은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어쩌지 못했다. 조폭 딸이다, 재벌가 세컨드다, 말이 많았지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세월을 이기지 못해 퇴기로 물러났으니 주렁주렁 끌고 다닐 일도 없고, 케빈 하나로 충분했다. 다이어트 식을 챙기고, 수면제와 영양제를 구분해 놓고, 머리 만지는 것부터 화장과 마사지, 구두와 가방을 고르는 것까지, 그에게 모두 맡겼다. 하필 호빠 출신의 어린 놈을 달고 다닌다는 더러운 말도 돌았지만, 원래 연예인이라는 건, 그정도 가십은 있어야 사는 거다.


“아까 그 오빠 말이야, 네가 보기에는 나한테 아직 마음이 있어 보여?”

“그럼요, 그게 아니면 이렇게 오래도록 찾아 오실 만날 이유가 없죠. 가정도 있으신 분이.”

마지막에 한번 콕 찌른다. 그래, 그는 유부남이다. 얼마전에 기다리던 손녀를 품에 안은, 여전히 가정적인 남자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훨씬 전, 그는 잠시나마 그녀의 남자였다. 사십년전 가요제에서 금상을 받던 그 날, 대상을 받은 이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명문 대학 그룹 사운드의 보컬이었고, 미남이었으며, 작사작곡이 취미라던 모범생… 게다가 고위 공무원 아버지를 둔 공부 잘 하는 외아들이었다. 본선 이전부터 대기실에서 처음 주고 받던 눈빛, 서로를 응원하던 마음, 수상 후 유난히 일 핑계로 자주 만나던 두 사람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사랑을 키웠다.


그 시절 가요제 수상자들은 연말에 한번 다같이 앨범을 냈다. 1등을 했으니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송국에서 내어주는 앨범은, 인기 가수가 되는 탄탄 대로였다. 십대 가수 쯤이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만들어지는, 엄청난 혜택이었다. 그러나 하필 그 해에, 동양 방송이 타 방송으로 넘어가게 되어었고,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반년 넘게 준비했던 앨범도 당연히 취소 되었다. 다행히 그 쪽 일에 밝았던 아버지는, 미련없이 전속 계약을 취소하고 타 방송으로 눈을 돌렸고, 독자적으로 제작자를 만나 무사히 앨범도 냈다. 큰 반전없이 가수를 시작 한 그녀와는 반대로, 집안의 반대와 군대 문제까지 겹친 그는, 그대로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갓 스물의 짧은 첫 사랑이라 생각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섭외에 바빠지면서 저절로 잊혀지는 것 같았지만, 어떤날은 새벽을 깨우는 단꿈으로, 어떤날은 아예 밤잠부터 설치게 하는 그리움으로,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녀의 빈 손바닥은, 남들 뒤로 몰래 다가와 꼭 움켜졌다 사라지던 그의 손을 기억했다. 무대 뒤 가림막을 지날때마다 매끄럽던 그의 입술이 생각났다. 볼이 빨개지도록 생생하던, 정말 한번씩 죽도록 돌아가고 싶던 그와의 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때 저 사람하고 사귀었음 어땠을까? 니가 보기에, 우리 어울리니?”

“잘 통하시는 것 같아요. 얘기거리도 많고..”

“그래, 아마 이제는 그냥, 그런 척 하는 걸 거야. 그때 못 한게 아쉬워서, 미안하고, 후회되고 …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솔직히 말은 못하고, 억지로 태연한 척 애쓰는 거지.”


그 시절 그때에도 둘은 '척'만 했다. 좁은 녹음실에서, 아닌 척 슬쩍슬쩍 건들고 지나던 스킨쉽, 여럿이 몰려다녀도 늘 끝자리에 앉히고 옆을 지켰던 사람, 남의 이야기를 듣는 척 시선은 멀리해도 발등에 비벼대던 그의 귀여운 발장난...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지고, 가요 프로그램을 나갈때마다 확인하던 출연자 명단은 그녀에게 우울함만 안겨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사랑이라 어디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아버지가 알까봐 슬픈 티도 내지 못했다. 집앞에 가득 쌓이던 선물과 꽃다발 속에서 그의 이름을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늘 실망 뿐이었다. 대신, 티비로 자신을 지켜 볼 거라는 생각에 늘 최선을 다했다. 찾아볼까 한두번 생각은 했어도, 종일 감시하는 아버지와 기자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 잠 잘 시간도 없게 빡빡하던 스케줄이 눈에 띄게 한가해졌다. 취향이 바뀌면서 젊은 세대가 장악했다. 노래 같지도 않게 떠들어대는 랩이 등장했고, 발라드의 황제, 한국의 마돈나... 외국어 섞인 요란한 수식어로 매일같이 젊은 가수들이 쏟아졌다. 자고나면 순위가 바뀌었다. 똥파리 번식하듯 팍팍 늘어나던 후배들에 밀려 음반 한 장 내기도 힘들어졌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연예인 좋아하는 건, 결국 아이쇼핑 같은 거야. 이거 이쁘다, 저거 이쁘다 호들갑 떨어도, 건성건성 둘러보고 돌아서는, 나만 윈도우에 갇혀서 저 좀 봐주세요, 좋아해 주세요, 아무리 목이 터지게 울어봐도, 더 이쁜거 나오면 어쩔수 없어.”

한물 가는 것 보다 더 힘든 건, 마음없이 진행된 결혼이었다. 첫사랑의 기억은 혼자만 숨긴 채로 아버지의 ‘아는 동생’을 만났다. 당시 연예계의 큰 손이라 불리던 사업가 였는데, 마포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다며 한 층을 선뜻 그녀에게 내주었다. <지나 기획> 첨단 장비를 갖춘 녹음실, 복도 전면을 두른 거울, 흰 대리석으로 치장한 연습실… 당시에는 드물던 소규모 공연장까지 갖춘 최초의 연예 기획사 였다. 회장 자리에 오른 아버지는 연신 흐뭇해 했고, 가수가 되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주차장까지 북적거렸다. 방송국 소속이 아니라 개인 회사, 그것도 아주 능력 좋은 그가 스폰하는 회사였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번듯한 인생 역전이었다.


가족, 가정... 사생활은 중요하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도 조건 맞춰 선 보고 결혼하는데, '한물 가' 가수인 그녀가 준재벌급인 그를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소문이야 어쨌든, 불륜으로 만난것도 아니었고,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사회 통념보다 조금 나이 많은 이혼남이었을 뿐이었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공식적으로는 그의 세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첫 결혼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안 썼다. 그를 통해, 자존심 구기지 않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들이 바라던대로, 가정 생활은 망쳤다. 그녀는, 자타공인 현모양처에는 소질도 없었고, 챙김을 받는 거에만 익숙하지, 반대로 누굴 챙겨야 한다는 걸 상상조차 못 했었다. 다른 엄마를 가진 십대아이들이 넷이나 있었다. 한시도 조용할 날 없는 전쟁터였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낮에는 시어머니가, 밤에는 남편이 적군이 되어 그녀와 싸웠다. 미스 코리아만큼 큰 키에 서구적 몸매를 가졌던 그녀는 스트레스로 살이 붙자 거구가 되었다. 불임 때문에 먹기 시작한 한약까지 무게를 더했고, 특히나 턱 아래로 늘어져 내린 여분의 살때문에 순식간에 심술난 아줌마 얼굴이 되었다. 역시나 남편은 얼마 안 가 다른 여자가 생겼고, 아이가 없는 사람이 물러나 주는 게 순리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그때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이혼하고 나오게 되니 회사도 닫아야 했고... 많이 힘들었어. 살 뺀다고 안먹어 본 약이 없고, 성형을 시작했지. 그땐 기술이 뭐가 좋았겠니? 자꾸 망치고, 또 하고, 또 망치고, 다른데 가서 또 하고… 가다가다 일본까지 가서 했는데, 이미 다 망가져서 되돌릴 수가 없었어. 나이가 드니까, 이젠 더 보기 싫지? 여기도 필러 넣었다가 뺀거야. 아직도 이래. 그때는 주름 없엔다고 파라핀을 주사했는데, 남들 다 하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돈 많이 주고 했지. 그 의사 놈들도 미친거야. 하긴 의사인지 아닌지도 몰랐고..”

짧아진 꽁초를 손에 낀 채 조명에 이리저리 비춰본다. 나이 들면 제일 먼저 늙는 게 목과 손이다. 게다가, 잘못된 시술로 울퉁불퉁 하니 피부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손등에 파운데이션을 바른다.


케빈이 재떨이를 받치고 그녀의 꽁초를 빼다가 질끈 눌러 꺼준다. 친절하고 잘 생긴 마흔살의 싱글 남자, 아직 인기 좋을 텐데…

“넌 멀쩡한 애가 연애를 안하니?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 나가서 나같은 걸 꼬셔보겠다, 그것도 아닌 것 같고… 호스트 뛸 때 너무 놀아서 질렸어? 그 바닥 한번에 끊기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잘 빠져 나왔다?”

“철 들고 싫어졌어요. 잠깐 하던거라 별 미련 없었구요.”

“돈 많은 여자 하나 제대로 엮어보지 그랬어. 정말 사귀자는 사람도 많았지?”

“그렇게 만나서는 잘 되기 힘들어요. 사귀는 건지, 모시는 건지 헷갈리고, 언제 차일까 눈치 보여서, 마음 편할려면 차라리 계속 손님인게 나아요.”

“그 많은 여자들 중에 마음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있었어도, 시작 안하죠. 안 될 게 뻔하니까요.”

“후회 안돼? 뭐 어릴때야, 혼자가 좋았지만... 근데 이제는, 누가 그리워. 50까지는 나도 몰랐어. 독신으로 누리는 자유가 멋있다고 생각했었지.”


술이 아닌 생수병으로 손을 뻗었다. 케빈이 재빨리 뚜껑을 따고 컵에 따른다. 끝에 살짝 손목을 돌리는게, 술 따르던 버릇이 남았다.

“그러고보면, 연예인 팔자라는 게 따로 있는 거야. 유명세랑 구설수는 정말 한 끗 차이잖아. 난 그걸 구분 못했어. 누가 내 얘기하면 그냥 다 좋았어. 그래서 이 판이, 나처럼 복잡하고, 꼬인 인생들이 많아. 잘 산 것 같은데도 남은 건 없고, 그렇다고 크게 손해 본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억울하니.”

그녀가 물을 몇 모금 마시고 피곤한 다리를 들어 올려 비스듬히 누웠다. 케빈이 쿠션을 옮겨 기대게 준다.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됐어, 그런 거 하지마. 니가 내 몸종이니, 월급 받는 사장이. 이정도만 기대게 해줘도 쉴 수 있어. 고마워.”

잔뜩 모양 낸 과일 안주가 말라간다. 그녀는 평생, 5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마지막 손님이 나갔는지 조용하다. 청소하느라 이방 저방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러둔대로 아무도 이 방은 기웃 거리지 않는다. 그녀가 케빈과 술을 마시는 날이면 의례히 먼저들 조용히 퇴근한다.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다. 아마 아직도, 그 삐딱한 시선이 즐겁다.


“니 얘기 좀 더 해봐. 술도 안먹는 애가 술집은 왜 해?”

술은 싫지만, 돈이 들어 오는 술 장사는 싫지 않다. 왕년의 인기 가수라서, 이름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단골이라서, 여종업원도, 노래방 기계도 하나 없이 고상한, 고급 살롱이라서… 그냥 뭐가 되었든 붙어 있을 이유는 많다. 싫지 않다. 청담동 뒷골목 고급 빌라들 속에 꽁꽁 숨어, 담장 너머로 지붕만 간신히 보이는 하얀 이층집. 비밀 품은 모두에게 쉬쉬하는 이 은신처에서 묵은 피로를 푼다. 그럼에도 선택된 사람만 들어 올 수 있는 곳 - 에덴. SNS 용 사진이나 찍어대는 싸구려 종자들이 싫다는 그녀의 고집이다. 연예계 사십년에 얻은 건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 뿐이다. 인기가 그립고 성공이 목마르지만, 그만큼 부풀려진 헛소문과 비난에 지쳤다. 연예계에서 밀려난 퇴물이지만, 결국 하는 게 술장사지만,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다. 돈 몇푼 쥐어주며 거들먹거리는 취객도, 어린 거 믿고 함부로 몸 굴리는 철없는 계집애들도 딱 질색이다.


“이름이 좋잖아요, 에덴. 저도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여기서 착하게 살려구요.”

크흐흐흐… 그녀가 웃었다.

"착하게? 누구를 위해? 너를? 나를? 신을 위해? 여기는, 가만히 착하게 살라고 에덴이 아니라, 깨고 나가라고 에덴이야."

애당초 에덴은, 마음놓고 뛰노는 평온한 신의 품이 아니었다. 시험에 들게 해 얄짤없이 짤라버리겠다는 잔인한 계획대로 지어진, 바깥 세상과 단절된, 실험실이었다. 신은, 동산을 가꾸어 찰흙 인형 아담과 이브를 현혹시켰다. 모든 걸 다 주어 나태함에 빠뜨리고, 뱀의 얼굴로 선동한다. 이보다 더 자유롭고 싶지? 이것보다 더 행복할 수 있어. 틀을 깨고 뛰쳐 나가야 정말 네 맘대로 사는 거야... 에덴은 감옥이잖아. 신에게서 벗어나 네 인생을 살으렴… 삼켜진 빨간 사과 조각이 가슴에 걸려 심장이 되었다. 살아있는 심장을 얻은 아담과 이브는 세상으로 나가서 사람이 된다. 미워할 줄 알고, 후회 할 줄 알고, 슬플때 울 줄 아는, 인간이 되어 고난을 살아낸다. 에덴은, 야트막한 동산이기도 하고, 잘 치장한 높은 탑이기도 하다. 절대 권력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할 일 없는 공주, 왕자들이 낮잠 자던 곳이다. 누구든 거기서 탈출해야 참 된 주인공이 된다.


“택배가 왔었어. 한참 약이랑 성형이랑 다 힘들때, 남들 눈이 무서워서 문밖에도 못나갈때, 어떻게 알았는지 집으로 배달이 왔는데, 그 사람인거야. 손으로 쓴 악보하고 자기 목소리로 녹음한 테이프 하나. 그게 에덴이야.”


/…우리 다시 만날 곳은 어디인가요, 꼭 잡은 따뜻한 손 놓치않는 곳,

그 시절 그 날에 당신을 안을 수 있다면, 어둠만 가득한 나의 일기, 이제는 덮으려 해요


우리 둘 쉬어가던 그 언덕, 그 나무, 속삭이던 우리 사랑 남아있는 곳,

그 마음 그 눈에 미안하다 할 수 있다면, 언제든 훨훨 날아 날 위한 그 눈물 닦으려 해요.../


그녀를 위한 <에덴>이었다. 혼자 가볍게 통기타로만 반주한 노래, 옛날 그때처럼 잘 참아 담담한 감정, 울림 가득한 진실된 목소리… 정말 그 사람이었다. 오래 숨겨 온 사랑과 그리움과 미안함을 모두 품고 있었다. 그에게도 가슴 아린 사랑이었던 거다. 연락했다. 그의 아버지처럼, 고시를 패스하고 공무원이 되었고, 부인과 아이가 있었다. 언제나 마음 한 쪽에 그녀가 남아 있었다고 했다. 사랑이었다 했다. 시작 할 엄두도 못내고 쪼그라들었던 겁 많은 첫 사랑... 누구도 먼저 사과를 권하지 못했고, 깨지 못한 에덴의 금기에 갇혀 정해진 삶을 살았다. 심장이 없는채로, 각자의 에덴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와 달라지는 건 없다. 그 많은 걸 포기하거나, 감히 누굴 거역해 사랑을 찾아 오는 짓은 못한다. 사과를 권하지도, 스스로 찾아 깨물지도 못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루지 못했으니까 아름답다고 착각하지. 결국은 추하게 끝났을지 누가 알어? 가끔 한번씩 얼굴 보고, 술 한잔 하고... 불륜은 아니니까... 사과 한조각으로 깨버리기에는 너무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서, 이렇게 조심하면서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거야. 요즘 애들이 말하는 남사친, 여사친이 되버린 거지. 솔직히 그것보다는 좀 깊은 사이였으면 좋겠고, 더 자주 봤음 좋겠지만, 이 나이에 애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천박하고... 어떻게 된 게, 옛날이랑 똑같애. 남들 속이면서, 만나도 안 만나는 척... 보고싶어도 안보고 싶은 척.”

“정신적인 사랑, 뭐 그런 걸 수도 있죠.”

“에이구, 그렇게 고상하지도 않아. 그냥, 도의상, 교육 받은 대로 잘 참고 있는거야. 도덕, 윤리... 그런거. 조심해 줘야, 아주 나중에까지 얼굴 볼 수 있겠지.”


그의 노래 <에덴>은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한 골목 깊숙한 곳에 에덴을 열었다. 언제든 그가 찾아 올 수 있도록, 언제든지 제 발로 돌아올 곳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 벌써 이십년을, 예약된 끝방의 문이 열리고 그의 모습이 보이면, 다시 설렌다. 젊을 적 장난기는 없어졌어도, 그녀를 보는 깊은 눈빛은 그대로다. 둘 다 간지러운 맨트는 생략했다. 예의없이 함부로 들이대는 유부남처럼 보일까봐, 그리고 한물 간 꽃뱀으로 보일까봐, 서로 자제했다. 그에게, 우아하고 싶었다. 어차피 나이 먹는 걸 숨길 수는 없으니, 이왕 늙어가는 거, 참 멋있게 나이들었다, 보여주고 싶었다.


“바라만 보는 게 될까, 싶지? 되더라. 오래 지나니 되고, 나이드니 되고, 보고만 있는것도 행복해. 웃기지? 수절 과부가 망부석이 된다는 게, 예전에는 그렇게 우스웠는데, 요새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한창 예쁠때 연애라도 제대로 해 볼 걸 말이야, 아무것도 못 해보고 이제와서 뒤늦게 뭐니, 이제와 어쩌라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바닥 이야기가,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가수 말고, 학교 잘 다니고 살림 했으면, 지금쯤 같이 살고 있었을까? 아냐, 이만해도 다행이지. 같은 하늘 아래 살잖아. 이것도 동거라고 해두지, 뭐.”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케빈이 그녀의 등을 받친다. 쿠션을 빼고 자신의 무릎으로 눕힌다.

“피곤하신데, 댁으로 모실까요?”

“아냐, 여기서 잠깐 쉴래. 재미 없었지? 늙은 여자 사랑 얘기 들어주느라? 너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주절주절 떠들 일도 다 있네.”

잠을 청하는 그녀에게 자켓을 덮어주었다. 그제서야 한잔 술을 마신다. 다른 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 아직도 기다리는 이브, 이브의 에덴에 공존하는 또 한사람 - 케빈 강… 신도 아니고 뱀도 아닌, 그냥 혼자있는 이브에게 친구가 되어줄 나무 그늘 정도일까. 어쩌면 이브의 심장이 되고 싶은 작은 사과 조각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곁을 지키고만 있으면, 언젠가는 그녀가 기꺼이, 한입에 꿀꺽 삼켜 가슴에 영영 품어 줄까.


에덴에 산다. 이브라서, 아담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이브 옆이 좋아 머물기로 했다. 잔을 채우고 조심조심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등받이로 몸을 기댄다. 유지나의 에덴을 곱씹어 본다. 이제쯤 그도, 그녀의 아담이 되고 싶다. 마지막 남은 몇모금을 음미하며 잔을 비운다. 깨지않게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파라핀을 넣었다 뺀 자리가 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흐릿하게 남은 파운데이션을 엄지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았다. 잔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이 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밥도, 머리도, 운전도 누가 해 줘야 하는,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여자다. 이젠 첫사랑까지 해결해줘야 하나…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지긋이 뺨에 대고 있었다. 어린 여자처럼 보드랍지 않아도, 모성애도 순정도 남아있지 않아도, 이브다. 비겁한 첫 사랑을 못잊어 내 갈비뼈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자. 누가 자신의 진짜 아담인지도 모르는 둔한 여자 -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나쁜 여자다. 편안히 자도록 가만히 손을 내려놓았다. 안다. 조금전 손에 입을 맞출때 그녀가 잠에서 깼을거다. 당황스러워 자는 척 한다면, 귀엽다. 그렇게 놔두자. 똑같이 모른척 넘어가주자. 호빠 출신이라 선수 짓 한다고 욕 할까봐, 돈 많은 연상녀에 빨대 꽂는다고 밀어낼까봐, 아무 마음 없는 척 시치미 떼고 살았다. 내일도, 모레도, 똑같을 거다. 같은 하늘 아래 사니 이것도 동거라 치자.


청담동 하얀 카페 에덴에서, 이브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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