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병에 걸렸었다. 노년을 잘 보내려면 물가에 살아야한다는 점쟁이의 말에, 무작정 경기도 내의 물가를 다 뒤졌다. 이왕이면 여유로이 흐르는 강이 좋았겠지만, 이미 맛집과 커피숍이 즐비해 내가 찾는 그런 예술가적인 자리는 없었다. 산골짜기 후미진 우물 하나라도, 지적인 글쟁이의 입맛만 채워준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삼십년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아예 들어 앉을 계획이었다. 드라마틱한 작업실이 필요했다. 조용히 시골을 즐기며 글을 쓰겠다는 명분도 만족시키고, 나름 방송도 타던 언론인이다보니, 평소보다 조금 멋부린 서재가 갖고 싶었다. 천장까지 가득찬 책장 앞에서 누구랑 인터뷰라도 하는 날이 온다면, 존재만으로도 참 자랑스러울, 나만의 ‘글터’가 필요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에서만 평생을 살았다. 시골 동네도 처음이고, 집도 처음이고.. 아스팔트없는 흙길도, 모기떼 엉기는 저수지도 처음이다.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주말에나 한번씩 내려올 사람이 나보다 더 걱정이다.
“혼자 어떻하려고 그래? 그냥 서울 어디에 월세를 내더라도 사무실을 얻는게 낫지 않겠어?”
고집부렸다. 수입도 줄었는데 뭐하러 월세를 내냐고.. 정말 노년을 위한 투자라고 꼬셨다. 천년만년 사업할 것도 아니고, 남편도 나이들어 곧 일을 접으면, 두 노인네가 호호백발이 되어 살아갈, 커스텀 메이드 요양원을 찾자고 했다.
나무, 자연… 이런 것 절대 안 좋아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좋아하기로 했다. 왠지 이 나이가 되면 화초도 가꾸고, 텃밭도 넉넉히 있어야 성공해 보이는 법이다. 해본 적 없지만, 시금치나 부추 정도는 저절로 자라 주겠지 싶다. 지붕 얹은 평상 좌우로 커다란 바위를 심어 중후함을 끌어 올리고, 멋드러진 소나무 하나는 실제 오랜 로망이기도 했다.
지나갈 유행이긴 해도, 편백나무를 가득 채운 자연 치유적인 욕실을 만들고 싶었다. 코팅 된 통창 아래로 호수가 내려다 보이면, 글쯤이야 저절로 쓰여질거다. 오픈 된 주방과 긴 아일랜드는 필수고, 장식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새로 놓아야 한다. 파스텔 톤 냉장고가 예쁘긴 한데 나하고 안 어울린다. 십오년만 젊었어도 욕심 내 보겠지만, 이번 생에는 됐다.
갑자기 나온 매물이라고 들었다. 파주 조금 지난 임진강 낚시터 부근의 아주 외딴, 작은 호수다. 도라산 역에서 내려 하루 세번있는 마을 버스를 타거나, 개인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거리라서 인적이 뜸하다. 아주 외지다... 가끔 하이킹 나오는 군인들 말고는 사람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딱이다… 노상리와 장단면 사이 산길로 걸으면 한시간은 족히 걸릴거다. 자전거도 힘들어 할 비포장 언덕길 끝에 작은 수퍼 겸 국수집이 하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예쁘게 지어 놓고 왜 내놓으신대요? 그냥 집장사가 지었나?”
“아니에요. 원래 어디 교수셨어요. 은퇴하고 진짜로 살려고 지었다가, 막내 딸네 애기 봐주셔야 한대요. 캐나다에 사는데, 큰 애 하나 있고,지금 쌍둥이를 또 가져서, 그냥 여기 다 정리하고 이민 가시나봐요.”
지은지 겨우 2년도 안된 새 집이다. 교수라니 역시 취향이 딱 맞아떨어진다. 높은 천장에 차분한 인테리어, 무엇보다도 ‘광활한’ 서재… 손 볼 것도 별로 없고, 맞춤 가구까지 두고 간다니 왠 떡이냐 싶었다. 정말 물 가까이로 오니 벌써 노년 운이 트인다. 마당 아래로 돌계단을 내려가면 찰랑찰랑하니 손바닥만한 호수가 있다. 뭐, 개인에 따라서는 그냥 물 웅덩이라고 불러도 좋다. 어쨌든, 관광객도, 낚시꾼도 없으니 온통 내 차지다… 거의 다… 가 말이다. 아주 완전히는 아니고...
“저긴 뭐에요? 누가 살아요?”
“예전에 팬션이었는데, 문 닫은지 한참되서 아무도 안 와요. 너무 외지잖아요. 후 불면 무너지게 생겨서, 싹 다 허물고 새로 지어야지, 누가 돈 주고 저런데서 숙박을 해요?”
속았다. 급하게 저지르다보니, 정말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지났다. 조금더 신중했어야 했다. 숙박하는 사람만 없지, 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소름끼치게 불편한, 생명체가 살았다…
“앞집 여자 조심해. 왠만하면 피하고, 절대 마주치지 마. 느낌이 안좋아. ”
내가 부르는 호수, 남편이 부르는 물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맨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불편한 폐가가 있다. 마당 여기저기 부탄가스통이 굴러다니고, 대충봐도 백개는 넘을 것 같은 까만 비닐봉지가 흙속에, 나뭇가지에, 창문과 울타리에도 잔뜩 널려 있다. 바람에 날라다니다 걸렸겠지 했는데, 2층에 숨어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일부러 묶어 놓은 것 같다.
‘미쳤나봐, 쓰레기를 왜 저렇게 걸어놨대?’
검정 비닐 뿐이 아니다. 깨진 창문에는 천조각을 대충 못 박아 바람을 막았는데, 그나마 한쪽이 풀려 헐렐렐하니 제멋대로 나풀거렸다. 어둠속에 언뜻 보면 귀신이라도 휙 지나가는 듯 해서 여러번 가슴이 철렁했다. 펜션이었다더니, 놀이기구로 썼는지, 부피가 큰 폐기물도 그대로 쌓여있다. 호수에 반쯤 가라앉아 썪어버린 노젓는 나무 배, 뱀도 들어가지 않을 갈기갈기 찢긴 튜브, 백년가도 안 썩는다는 플라스틱 물놀이 용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자세히는 안보이지만, 물가의 흙도 색이 불그레하니 거무튀튀하고, 아마도 어디선가 새어 나온 기름 같은 게 그대로 남아 진득한 돌덩어리로 굳어졌나보다.
“대나무라도 심을까? 저쪽 좀 가리게.. 저쪽만 보면 먹은 거 다 토할 것 같아.”
“그것 뿐이면 다행이게? 정말 정신 나간거면, 위험할까봐 문제지. 티비 못 봐? 이상한 사람들 많잖아.”
그거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나 보던 그 상황이 될 것 같다. 팔뚝만한 모종을 사다 심었지만, 빨리 자란다던 대나무 담은 좀처럼 커지지 않았다. 팬스를 높이 쳐 버릴까, 가즈보라도 지어 뾰족 지붕으로 가려 볼까… 눈 가리고 아웅이라더니, 우습게 볼 말이 아니다. 정말 궁하니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매일 밤, 낮으로.. 하루에도 몇번이고 건너편을 살폈다. 내 이웃은, 사람일까.. 그것도 멀쩡한, 많은거 안 바라고 제발 정신만 멀쩡한.. 더러워도 용서되고 무식해도 용서되니, 그냥 안전한 보통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계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친 여자가 산다. 집 밖으로 안 나오는지, 일주일에 한번도 보기 힘들다. 다행일까… 해가 쨍쨍한 대낮에 우비도 아닌, 파란 비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나와 호숫가를 돌아다닌다. 한손에는 자기 키만큼은 되어 보이는 큰 삽을 들고 여기저기 땅을 헤집는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닐테고, 쓰레기를 묻고 있을까? 마시지 않은 생수병이 박스째 굴러 다닌다. 여자는 가끔 거기에 앉아 물을 보다가, 산을 보다가.. 내쪽을 바라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겨운 아침 욕을 시작한다…
스트레스다. 언제고 내 집으로 넘어와 행패를 부릴지 몰라 늘 CCTV를 지켜봤다. 카메라를 몇개 더 달아야 하나.. 저 여자 때문에 돈 들인 내 마당에 나가 본 적이 없다. 하긴 뭐.. 원래 야외를 안 좋아하니까 불편한 건 없지만, 문제는 집 안에서도 불안하다는 거다. 늘 바깥을 살피고, 열린 창문이 없는지, 자꾸 확인한다.
“그 여자 많이 이상하죠? 거기서 벌써 오래 살았는데, 맛이 완전히 갔어.”
하나뿐인 수퍼에 주문해 놓은 물건들을 가지러 갔다. 주인 할머니가 썰을 푼다.
“언젠가는, 한 여름에 이만한 털목도리를 두르고 와서, 소독약을 달라는 거야. 박근혜 정부에서 가스 실험을 하느라고 호수에다가 뭘 자꾸 뿌려서 , 자기가 숨을 못 쉰단다. 그때부터 좀 이상타 했는데, 아이고, 그런 난리도 없어. 언젠가는 소주를 한 짝을 사더니 요기에 털석 앉아서 그걸 다 깨고 있더라고. 손 다친다고 하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는 빈 소주병만 필요하대. 무거워서 못 들고 가니까, 소주는 다 따라 버리고 병을 막 깨부셔가지고, 그걸 배낭에 담아서 가더라니까? 가끔 여기 뭐 사러 나오면, 무섭다. 아줌마도 조심해요, 혼자 산다며?”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 사업하는 남편이 주말마다 온다고 설명했다. 여기는 별장이라고.. 우아하고 화려한, 세컨드 홈이라고..
“좋은데 많은데, 잘 알아보고 사지.. 복덕방 믿을게 못되.”
그렇다. 절대 믿을게 못된다. 사기 전에 한번이라도 가게에 들러 이야기를 들었으면…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수 없다. 내가 고집해서 샀으니 남편에게 신세타령 해 봐야 핀잔만 들을거다. 트렁크에 물건 들은 박스를 실었다. 수퍼 할머니가 공짜 음료수 하나와 전화 번호를 쥐어준다.
“그나마 동네가 작아서, 신고하면 바로 와. 옛날 구름자리 펜션이라고 하면 다 알아.”
“경찰도 왔었어요? 왜요? 무슨 일로요?”
“한두가지인가? 엄청 많아... 뭐였나.. 그 물속에 괴물이 산다고 농약을 사다 부어가지고, 주변에 나무고 동물이고 다 죽었었고, 또 한번은 아줌마네 지금 그 집 지을때, 공사하는 소리 시끄럽다고 불을 확 질렀지. 이사 못 들어 오게 할라고 길 입구에다가 시맨트를 개어가지고 이만큼 쏟아놓고.. 아이고, 말도 말아요. 이 동네 사람들 죄다 살인범이라고 경찰서 가서 조사도 받았는데?”
살인…?? 누가? 누구를? 이 작은 동네에서…??
“그 여자 아들이 있었는데, 요 근처 부대에서 군인이었어요. 외박인지 휴가인지 나와가지고 그 펜션가서 죽었잖아. 경찰에서는 자살이라는데, 그 여자 혼자 그렇게 남이 죽였다고, 매일같이 사람을 막 고소하고, 신고하고.. 장사하는 집에 증거 찾는다고 쳐들어가서 땅 다 파헤치고, 손님들한테 살인범이라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치니… 에이구, 결국은 그 펜션 주인이 떠났어. 뭐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나 그래가지고, 그 여자가 세 좀 주면서 아예 그리로 들어와 사는 거야. 아직도 가끔씩 헤까닥 하면, 살인범 찾는다고 병이 도지나봐..”
주인 할머니가 덩치 큰 잡종 개 한마리를 쓰다듬는다.
“이 녀석도 그 집에 왔다갔다 떠돌던 개가 낳았어. 근데 어째, 한마리만 달랑 낳은 것도 이상하잖아? 분명히 여럿 있었을텐데, 이 놈 하나를 나한테 떡 데리고 와서 키우라고 주더라고? 나머지는 다 죽여버렸는지, 엇다 갖다 버렸는지… 이상해도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얘만 이렇게 데리고 살지. 무슨 개가.. 한번에 새끼를 딱 한마리만 낳겠어, 안그래요?”
기자의 촉이다. 들을수록 흥미는 생겼지만,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부정이 뇌를 지배했다. 자살한 아들, 살인범을 찾는 엄마, 외부와의 단절, 혐오, 복수… 농약, 방화… 찍 소리 못하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새끼 잃은 떠돌이 개..?? 답은 하나다. 정신병… 내가 그 정신병자 옆으로, 자진해서 이사를 들어간거다…!
집을 다시 내놔야 할까… 냉장고를 정리하면서도 그 생각 뿐이었다. 보호자가 있는 여자라면 저렇게 방치하지는 않을텐데… 가족을 찾아 연락을 해줘야 하나? 경찰에 물어 볼까… 저 여자가 무슨 짓을 하기 전까지는 신고를 해도 무의미하다. 커텐 뒤에 숨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위험한 이웃이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지..
“예, 수고하십니다. 민원을 좀 제기 할까 하는데요..”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저정도 쓰레기면 신고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 옆집에 이사 오셨어요? 그런데 선생님, 그 구름자리 펜션이요, 저희가 민원을 너무 많이 받아서 어떤 상황인지 잘 알거든요. 그 집에 사시는 분이, 공공 시설을 훼손하시거나, 선생님 소유지로 쓰레기를 넘기는게 아니라면, 법적으로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게 없습니다. 거기도 사유지라서요, 외부에 노출되는 혐오 시설이 아니라면, 강제 집행이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소방서로 방향을 돌렸다.
“아, 거기요.. 저희가 위험 시설로 인지는 하고 있구요, 주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나갑니다. 근데 그 분이, 특별히 인화 물질 같은 걸 쌓아놓은 것 도 없고, 전기나 가스 같은 걸 전혀 사용 안하세요. 뭐가 잡다하게 많이 쌓여있어서, 안전상 비상 통로를 마련하라고 주의 조치 했습니다. 그건 아마 잘 지키고 계신 것 같아요...”
….!!! 잘못 들었을까… ? 전기도, 가스도 안 쓴다고..? 그러고 보니 야간에도 불빛을 본 적이 없다. 일찍 자나보다 했을 뿐, 불을 안 쓸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전기, 가스가 끊긴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화재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미친거야.. 저 여자도 미쳤고, 동네도 미쳤어... 저렇게 위험한 사람을 잡아가는 제도가 없다니.. 나처럼 선량한 국민은 어쩌라는 건지, 기가 막힌다.
며칠간 숨바꼭질이 계속 되었다. 사람 흔적을 찾으려는 나, 꽁꽁 숨어 안 보여주려는 여자가 치열한 두뇌 싸움을 한다. 드디어 어느 날, 여자는 평소처럼 시커멓게 입고 자전거를 탄다. 기회다. 자전거로는 수퍼까지만 가도 3-40분은 걸릴테니, 아무리 빨리와봐야 한시간 반 이상의 시간이 있다. 여자가 사라지자마자, 뛰다시피.. 호숫가를 돌아 여자네 집으로 향했다.
소유지의 경계 표시 일까… 수퍼 할머니가 말한 소주병 조각들이 엄청나게 많이, 꾹꾹 땅에 박혀있다. 누구를 막으려고 이랬을까.. 개도 한마리 있다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미 쓰레기장으로 쓰고 있는 마당에는, 각종 약병, 라면 봉지, 헌 옷가지와 수상한 검정 비닐 봉지들이 가득했다. 다 모으면 1톤 트럭 하나 쯤은 가뿐히 채울 것 같다. 못쓰게 된 주방 용품과 가전 제품도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전기가 없다더니 아예 내다 버린 걸까... 정말 음식을 아예 안 할 것 같다. 텃밭처럼 보이는 구석탱이 작은 화단에 상추가 자란다. 뜯어먹은 흔적이 있다. 저것만 먹고 사나.. 무당 집처럼 다닥다닥 비닐 봉지가 묶인 건물 주변을 한바퀴 살폈다.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덩치 큰 들개 한마리가 다가왔다. 삐쩍 말랐지만, 아파보이지는 않았다. 이 놈이구나… 사납지않게, 무섭지 않게, 혼자 어슬렁 거리며 킁킁 거린다.
“배고프지? 우리집에 가자. 여긴 무서워서 못 있겠다. 이런데서 어떻게 사니...”
개는 순순히 따라왔다. 길을 잘 아는 듯이, 깨진 소주병을 잘도 피해 걷는다. 이상한 여자... 머리에서 떨칠 수 없었지만, 일단은 개 먹이를 챙겨주는 게 먼저다. 이빨과 걷는 폼으로 보아 열서너살은 족히 넘어보이는 노견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찹찹찹… 잘 먹는다. 갈비뼈도 살짝 드러나는 게, 아무도 보살피는 사람이 없나보다. 여자가 주인일 리 없다…
“너, 저 집에 살어? 목걸이도 없고… 그 여자, 주인 아니지? 밥도 안 주는 것 같은데.. 배고프면 여기 와. 사료 먹어봤어? 다음에는 사료 좀 사놓을까?”
대꾸없는 개에게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목욕을 전혀 안 해본 것 같지만, 털이 짧으니 괜찮을거다. 혼자 씻기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게 덩치가 크다. 오늘은 패쓰.. 대신 남은 밥과 국물로 빈 속을 채워 주었다. 손바닥만한 긴 혀로 잘도 먹는다. 새끼들은 어디갔니.. 정말 그 여자가 죽였어? 아무것도 모르는 둥근 눈동자가 물 그릇을 찾는다.
개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내 개처럼, 식사 후 남은 음식물을 모아놨다 주었다. 얼굴을 핥기도하고, 무릎에 앞발을 올리고 애교를 떨기도 한다. 주말에 다녀간 남편이 노견용 사료를 사왔다. 다행히 잘 먹는 것 같다. 원래 이름을 몰라 구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잘됐다. 구름이 잘 해줘, 보디가드로 쓰게.”
“저 여자 개 일지도 모르는데, 내 보디가드로 써? 불쌍하니까 잠깐 봐주는 거지. 저 집은 먹을게 없을거 같아서..”
“난 상상이 안 간다. 요즘 세상에 전기 없고 가스 없고.. 어떻게 살아? 샤워도 안하나? 화장실은 ?”
“가서 물어봐, 똑똑.. 저 옆집 사는데요, 응아는 하시나요?”
남편이 웃는다. 때마침 여자가 스피커를 켰다. 아무때고 정해지지않은 시간에 갑자기 울리는 기도 소리, 찬송가 소리… 어떤때는 또르르 목탁 두드리며 염불까지... 정체 불명의 종교인으로 귀의한다.
“와.. 진짜네, 소리를 꽤 크게 트는구나? 일부러 당신 들으라고 저러겠지?”
“아마도.. 여기 나밖에 없잖아. 대남방송보다도 자주 해. 저 여자도 가끔 망원경으로 이쪽 보는 거 같애. 당신 온 거 다 봤을거야. 새벽에 켜지 이시간에 안 저러는데, 일부러 당신 들으라는 거야.”
“하지마, 소름끼쳐. 커텐 닫어. 난 이렇게 못살어… 경찰은 별 말 없어?”
“응, 대신 가끔 와. 친해졌잖아… 참 어이가 없어. 귀촌이라고 우아하게 보낼 줄 알았더니, 미친 여자 옆에 사니까 경찰하고도 친해지고... 119도 다 가족이야, 에휴”
얼마 전에, 지인들과 가벼운 모임을 했었다. 마당에 불을 피웠다. 고기를 막 굽자마자 소방서에서 전화가 왔다. 옆집 여자가 화재신고를 했단다. 유독가스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아닌 거 알지만 전화 드렸습니다. 그냥, 옆집 분이 또 신고 하셨다구요..”
나야말로 저집에서 불이 나지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기에, 어쩔수 없는 실소가 터졌다. 그 뿐 아니었다. 망원경 속 여자는 점점 이상한 짓을 했다. 성격책을 한장씩 찢어 손에 쥐고 중얼거리다가 바람에 휙 던지기도 하고, 종이 인형처럼 사람 모양을 오려서 호숫가에 띄우기도 했다. 검정 봉다리를 가득 모으길래 드디어 청소라도 하나보다 했더니, 땅을 파고 묻고, 꺼내서 다시 묻고, 또 꺼내고.. 몇날 며칠을 삽질만 했다.
“이제 그만 봐, 이러다 변태 되겠다. CCTV 보다가 눈 빠지겠어. 확실한 건, 우리 땅까지는 안 넘어 오잖아. 그냥 혼자 저러다 말 것 같은데?”
“큰일 날 소리... 방심하다, 한방에 훅 가는 거야..”
산속의 가을은 도시보다 빠르다. 아침저녁 서늘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여자가 큰 사고를 쳤다. 느긋하게 차 한잔을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첨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 한 철을 같이 (?) 보내는 동안 물에 들어가는 걸 몇번 보기는 했지만, 이제쯤 추울텐데 싶었다. 망원경을 꺼내들고 호수를 살폈다. 어두워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다시 청벙거리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뭔가 아니다 싶어 경찰에 전화를 했다. 근방이었는지 몇 분 안되어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는데 열려있다. 여자가 없다... 라이트를 물쪽으로 향하게 경찰차를 세워놓고 다같이 살폈다.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그쪽으로 뛰었다. 홀딱 젖어 축 늘어진 여자는 의식이 없었고, 역시나 물을 뚝뚝 흘리며 바들바들 떠는 구름이가 있었다.
“신고 감사합니다. 생명에는 지장 없을 거에요. 개가 또 살리네요.”
또 살린다… 구름이가 수시로 여자를 구한다고 했다. 서늘함이 내리는 이맘때에 항상 사고를 친단다. 한동안은 추위때문에 집안으로 들어 온 벌레를 잡아야한다고 연기를 피워 소방서를 출동시키더니, 최근에는 이렇게 찬 물속에 들어가 기절할때까지 있는다고 했다.
“혹시 죽으려고 그러나요, 일부러?”
“글쎄요.. 본인이 아니라니까 뭐라고 단정짓기 힘들죠. 차라리 자살하려고 그랬다 그러면,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키고 할텐데.. 매번 아니라 그러거든요.”
담요에 돌돌말은 여자를 119에 태워 보내고, 집 주변을 살폈다. 추워하는 구름이를 챙기는 척, 경찰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겨우 한사람 걸어 다닐만큼, 기다란 통로 한 줄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뭐가 뭔지도 모를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찼다. 악취가 심하다…
“놀라셨죠? 힘드시면 밖에 계세요.”
“아뇨, 괜찮아요. 예전에 일 할 때, 이런 거 많이 봤어요..”
“기자를 하셔서 그런가, 다르시네요. 전에 사시던 분들은 이 근처에도 못 오셨어요, 무섭다고.."
그랬겠지… 그래서 나한테 헐값에 얼른 팔고 도망갔겠지… 아, 젠장…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다..
“이분은 윗층 다락방에서만 살아요. 다른 데는 공간도 없구요...”
다락방 문을 열었다. 160 겨우 넘는 나도 머리를 숙여야 서있을 수 있을 낮은 천장… 성인 세명쯤 들어갈 아주 작은 공간… 위, 아래, 사방을 가득 채운건,노란 포스트 잇이다… 천장에 가득, 벽에 가득, 방바닥까지 온통 노란색 포스트 잇이 붙어 있다. 방 안에, 완전히 노란... 오믈렛이다... 미친거 맞다…정말 맞다…
“오싹하죠? 다 그분이 붙이는 거에요. 몇 천장 되겠어요. 뭘 자꾸 적어서 모아두는 것 같아요. 동네 분들 이름도 있고, 아들 군대 친구라는 사람 연락처도 어디 있던데.. 어떤건 되게 오래 됬구요.. 이런 건 숫자만 있는데,저렇게 암호처럼, 혼자만 알게 글씨도 만드시더라구요. 정상은 아닌거 같죠?”
방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들여다 봤다. 경찰관의 손전등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한쪽 벽에는 줄줄이 연결해서 붙인 수백장의 포스트 잇이 보였다. 손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그린, 호수의 전체 지도인 것 같다. 여기서 여기는 몇 발자국, 저기까지는 몇 발자국… 그렇게 표기되어있다. 김정호도 아니고… 뭘까.. 간간히 그림도 붙어 있다. 주로 성인 여자와 어린 아들, 소년, 청년, 성인 남자… 어쩌면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는 걸 그린 건지, 키가 점점 자란다. 그리고 그 위로 내리꽂은 칼 자국…
“여기 이런 칼 자국도요, 처음에는 누굴 죽이려고 그러나 긴장했는데, 아마 남들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한테 난도질을 하는 것 같아요.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니면, 이렇게 죽임을 당했다 하는 상상? 아직한번도 남한테 해꼬지 하지는 않았거든요..”
해꼬지… ? 설마 나한테는 아니겠지..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감정 품을만한 일도 없다고 믿고 싶다..
“기자님은 살인 사건 같은 것도 취재 해보셨어요? 만약에 사건 하나 터지면, 이 방안에 있는게 다 증거가 되겠죠? 그래서 일부러 안 건드리고 있어요. 아직은 압수 할 것도 없고, 우리가 보기 싫다고 맘대로 치우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저 쪽 보세요..”
손전등이 멈춘다. 십년도 더 모았을 것 같은 신문지 더미 위에 푹 들어간 자국이 있다. 저 위에서 자는 것 같다. 아, 속이 불편하다. 더 이상은 못 보겠다...구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무 제재없이 멀쩡히 돌아 온 여자는, 여전히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혼을 쏙 뺐다. 여전한 민원과 실종 신고, 살인 제보.. 악성 민원으로 벌금형도 받았지만, 그야말로 개 무시다.
”너는 언제부터 저 집에 살았어? 저 여자도 처음부터 저렇지는 않았겠지? 혹시 너, 전에 펜션할 때 부터 저기 살았니? 뭐 본 거 있어?”
구름이를 붙잡고 얘기해 봐야, 돌아 오는 건 맑간 미소와 따뜻한 혓바닥 뿐이다. 구름이가 우리집에 오는 걸 눈치 챘는지, 동네 사람들한테 하던 짓을 나한테도 똑같이 하기 시작했다. 자기 개한테 이상한거 먹였다고 신고도 하고, 며칠 안보이면 내가 독살했다고 우겼다. 동네 수퍼와 마을회관에 붙는 협박 편지 – 너희들은 모두 살인마다, 복수한다, 몇월며칠에 수돗물에 독극물을 넣겠다.. 등등, 그 끄트머리에 나에대한 메모도 넣었다.
<빨간 지붕 여자! 기자랍시고 막 사생활 침해하는데, 너 내가 감방에 넣을거야. 내 개 훔쳐다 고문하고 죽이는 거 다 봤어. 범인은 그 자리에 돌아 온다잖아. 내 아들 죽이고 이제 돌아와서 간 보는 거지? 완전 범죄 꿈 깨. 네가 하는 짓, 다 녹화하고 있어..>
여자는 한달에 한번쯤 외출을 한다. 어디로 가는지, 뭘 사러가는지 모르지만, 검정 비닐 봉지가 늘어나는 걸 보면, 뭔가 사오기는 하는 모양이다. 제발, 그냥 상추만 따먹어라… 불 피우고 뭐라도 하다가는, 너네 집, 우리 집 다 날린다…
들리는 소문에, 여자는 외출을 해서, 시내에 있는 무당, 절, 교회를 한바퀴 다 돈다고 했다. 아들 생일이나 좀 특별한 날에는 자장면 집에서 혼자 먹기도 한다. 사람들은 절대 아는 체 안 하려 하지만,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사납게 덤비거나, 드물게는,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고 했다. 다 불어버릴 자장면을 꼭 용기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간다. 한끼에 한입씩 밖에 안 먹으니, 한그릇이면 한 일주일은 족히 먹을거라 수근거렸다. 가끔 뭔가 자꾸 게워내는 모습도 보이고, 어딘가 아픈게 분명하지만, 병원 데려갈 가족도 없나 보다. 그냥 저대로 살다 가려는 걸까…
“으아, 미치겠네.. 저 여편네가 또 신고 했대. 이게 도대체 몇번째야?”
가게에 앉은 동네 아저씨가 하소연 한다. 아들 죽인 범인이라고 또 경찰을 부른 모양이다.
“이제는 아주 증거를 만들어 내나봐. 죽은지 5년도 더 지난걸, 뭐가 자꾸 나온다는 거야?. ”
“아무리 참고인 조사래도 그렇지, 이번에는 정말 안 갈거야. 아니, 이 동네 사는게 무슨 죄라고 맨날 살인범이래? 불쌍해서 좀 받아주려고 해도 너무 하잖아.”
아저씨들끼리 산책로에서 막걸리 좀 나눠 먹었다고 신고를 했다. 아들이 발견되었을 당시에 술병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 몇개는 막걸리였다는 이유다. 아들이 죽은 장소 부근에서, 같은 상표의 술을 먹으며 살인을 추억했다… 이전부터 별별 이유로 온 동네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당장 가서 따지든지 해야지..”
“아서, 참아. 미친 사람하고 이야기가 되나? 상종 안하는게 약이야…”
집에 돌아와보니, 마당 한쪽으로 종이 몇장이 날아와 있다. 이쪽으로 바람이 불었나 보다. 아침 일찍부터 여자는 성경을 찢어 날리고 있었다. 자잘한 글씨로 하얀 공간까지 가득 채웠다. 평범해 보이는 날짜, 장소, 학교 이름, 구구단 4단, 이승만 부터 순서대로 대통령 이름… 그리고 아마 가족이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과 생일 같은 게 적혀있다. 찾는다, 누구인지 꼭 잡아낸다… 여자의 다락방에 가득 붙었던 노란 포스트 잇이 생각나 으스스… 소름끼친다.
경찰에도 물어보고 나름 검색도 해봤지만, 종결된 사건이다. 군 복무 중 아들이 휴가 나와 혼자 사체로 발견됨... 자살이다. 수면제와 술을 복용하고 커텐 길게 찢어서… 1층 욕실에서 발견… 그러나 유서가 없음. 여자, 카드, 사채, 군대 폭력… 다 뒤져봤지만 별 소득 없었다. 일기장이나 친구들과의 문자에서도 아무 특이한 점을 못 찾았고, 그래도 여자는 아직 타살이라고 믿는다. 먹다 남은 음식물이 2인분 이상이었고, 술병과 수면제 양으로 보아 분명 한사람보다는 더 많은, 혹시라도 함께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지.. 겁이나 그냥 죽이고 도망간거라 우겼다.
그날은 다른 손님이 없었다니, 타살이라면 의심받을 건 마을 사람들 뿐이다. 그들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지갑을 버렸다…? 신분증을 숨기려 물가에 던져 버렸을거다. 그래서 그렇게 땅을 파고, 물에 들어가고.. 혼자 아둥바둥 애썼나. 방 한쪽에 곱게 접어놓았다던 군복, 죽기전에 일일히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작별 인사를 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이 멀쩡히 자기발로 걸어 들어와 죽었다… 만약 나였다면, 내 아이의 장난 같은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일까..?
남편이 왔다. 지난주에 이어 또 이것저것 과일을 사왔다.
“요즘은 잠잠해? 과일 가져다 놓으면 진짜로 먹기는 해?”
“모르겠어. 전에 딸기는 가지고 들어갔는데.. 아무 말 없어.”
지난 주말부터 여자네 문 앞에 과일을 몇개씩 가져다 놓았다. 짧은 안부 쪽지와 함께… 안녕하세요, 앞집이에요… 며칠 못 뵈어서 안부 여쭙니다… 맛있게 드세요… 뭐 그런 정도. 여자에게서 한마디도 들은 건 없지만, 어제 그제 딱 두번, 한번은 마당에서, 또 한번은 2층에서 망원경으로 훔쳐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황급히 커텐 뒤로 숨었을 뿐, 전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다.
“다행인가? 그래도 마음 놓지 마. 잠깐 괜찮아도 언제 이상해질지 몰라. 거리를 둬.”
“당연하지. 그리고 우리, 이 집 팔아야겠지? 세금 많이 나올려나? 복비 주고 손해 보더라도, 정리하는 게 맞는 거 같애.”
“그래, 일단 다시 내놓고.. 그때까지 진짜 조심해야지. “
“소문 다 나서, 안 팔리면 어떻해?”
“뭘 어떻해? 여기서 행복한 노후를 맞아야지. 원래 계획이었잖아.”
남편의 농담에 한숨 섞인, 그러나 썩 싫지만은 않은 미소를 지었다. 눈치빠른 남자다. 놓칠리 없다.
“뭐야, 그 얼굴? 진짜 여기 눌러 앉아도 괜찮다는 거야?”
“여보, 있잖아… 나 필이 왔어. 저 여자 이야기로 소설을 써볼까해.. 공포, 괴기 뭐 그런 거… 아니면 시선을 바꿔서, 허무한 청년들의 이야기.. 의미없는 자살, 삶의 이유… 왜 예전에 내 친구 아들도 별 이유없이 그냥 뛰어내렸잖아. 수능 끝났다고 방정리 다 해놓고, 엄마아빠 회사에 전화해서 인사하고 바로 죽었어. 뭘까? 애들이 나약한 건지, 아님 애들을 자꾸 죽게만드는 뭐가 있는 건지..”
“에이구, 그만하세요. 남의 아픔가지고 그런거 상상하는 것도 죄야.”
“위로가 될 수도 있지. 다들 미쳤다고 도망가는데,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거잖아. 먼저… 이름은 뭐가 좋을까?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아주 위험한 여자…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주인공이니까, 왠지 약하고, 예민하고.. 슬퍼야 하는데.. 40대 중후반 여자 이름 흔한 거… 뭐가 있을까? 희정? 희주..? 그래, 희주 어때? 기쁠 희도 있고, 슬플 희도 있잖아. 그리고 저주할 주.. 아니면 예쁠 주, 밝을 주..?”
“집이나 빨리 팔아야겠다. 진짜 소설 쓴다고 눌러 앉자 그러면 난 싫어.”
“그냥 모티브만 그런 거지, 내가 뭐 저집 가서 인터뷰를 하겠어, 뭘 하겠어? 무서워. 옆집 비밀 캐다가 내가 먼저 갈 지도 몰라.”
구름이가 왔다. 뒷다리에 힘이 없어 가끔씩 저렇게 주저 앉아 슬프게 운다. 몸만 아플까… 아니면 사라진 새끼가 보고 싶을까? 천천히 다리를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 유리문 안을 들여다 본다. 눈꼽 가득한 흐린 눈에 내가 또렷이 보일리 없지만, 분명히 여기쯤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쳐다보는 것 같다. 안스럽다. 잘시간이 다 되었지만, 사료를 가득 주었다. 꼬리가 떨어지게 흔들며 허겁지겁 삼킨다…
“혹시 말이야… 저 여자도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닐까? 구름이 처럼…?”
여자의 집은 이미 어둠이 내렸다. 남편은 한번 힐끔 돌아다 봤을 뿐, 답이 없다.
“그러고 보니까, 팬션집 여자라고만 불렀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서울 사람이라는데, 서울 어디 살았을까?”
“관심 갖지마.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야.”
평소답지 않은 단호함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내가 뭘 어쩔 일은 아니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운 구름이가 컹컹 짖다가 꼬리를 흔든다. 손을 흔들어주자 큰 귀를 펄럭거리며 뛰어간다. CCTV를 본다. 불꺼진 마당을 가로지르는 구름이가 카메라에 잡힌다. 모니터 여러개를 지나 옆집으로 가고 있다. 여자가 잘 있는지 체크하고 돌아 올거다. 아니면, 오늘은 그 집 현관 앞 맨 땅에서 자더라도, 배 고프면 언제고 돌아와 제자리에 앉을 거다. 내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걸, 나만이 들어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깜빡했다. 자기전에, 내일 여자에게 가져다 줄 과일이나 몇 개 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