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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y 10. 2021

전남편은 영원하다

다시는, 먼저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왜 이혼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른다.


헤어진지 한참 되었어도 아직도 모든게 미스테리다. 결혼했던 기간보다 '이혼하고 있는 기간'이 훨씬 길다. 오년 딱 채우고 헤어져서, 진짜 밑바닥까지는 보여주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인스턴트 세대라 그런지 연애도 잠깐, 결혼도 잠깐이었다. 아이 둘은 여자애들이라 내가 맡긴 했는데, 사실 그가 데려갔어도 걱정 하나 없을, 좋은 사람이다. 양육비 밀린 적 없고, 오히려 보너스 나왔다며 그것까지도 아이들 몫으로 보낸다. 양가 부모님들도 믿지 않았을만큼, 큰 소리 한번 오간 적 없던 밋밋한 우리의 이혼은, 지금까지도 원인미상이다. 나는 너무 사랑이 고팠고, 내 생각에 그는 아마, 그냥 선천적으로 너무 다정한?? '결혼'하고는 잘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을 거다. 살다보면 정이 들거라는 착각... 결혼이 처음이던 두 초보의 실수였다. 그리고 90%는, 그 사람보다도, 내 실수였다.


아마 첫번째 실수는, 입사하자마자 사내 커플이 된, 그 시절 부터다. 업무를 배우기 시작한 첫 날부터, 무심한 듯 친절한 팀 선배에게 설레었다. 지방에서 막 올라와 아는 사람 없던 내게, 선배는 아주 큰 지지대였고, 든든한 방패였다. 사랑에 빠졌다. 앞뒤 안가리고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당당하게 공개 연애를 하는 것이 대세라 믿었고, 경솔하게도 오만군데쯤, 연애하는 티를 냈다.

“그냥 조용히 사귀지 그래? 나중에 안 좋은 일 생기면 어쩔려고.”


입사동기의 충고가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헤어질 걸… 시작할때는 나중에 있을 ‘안 좋은 일’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신세대니까. 그렇다고 첫 사랑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거라고 생각했을까? 그것도 그다지 나답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맞다. 경솔했다. 헤어진 후유증이 곳곳에 크게 남아있을때 – 회사 복도를 두리번 거리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날까 긴장하거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그가 많이 신경 쓰일 때, 아니면 두어명만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다 내 뒷담화일 것 같아 불편했다. 특히나 그의 새 여자친구가 회사 앞 까페에서 기다릴때면, 쓸데없이 밝고, 친절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먼저 인사까지 했다.


“어머, 오셨네요? 박 팀장님 기다리시죠? 커피 드셨어요?”

오지랍도 아닌 그냥 푼수였다. 있잖아요, 저랑 당신 남자랑요, 이 회사가 시끄럽게, 아주 요란하게, 정말 빵빵하게, 진짜 진짜 찌~인하게 사귀던 사내커플이었답니다… 티를 내고 싶었을까. 모르겠다. 미련일 수도, 집착일수도, 아니면 태연한 척 쿨한 척 하려고 오바하던 그런 날들이 계속 되었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의 새 여자보다 훨씬 멋있는, 새 남자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남자가 나타났다.


한 기수 아래 신입들이 들어왔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다들 얼굴 가득 ‘긴장했습니다’ 라고 쓰고, 단추 꽉꽉 채운 정장 속으로 잔뜩 힘주고 있었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그는 양복 자켓을 팔에 걸고, 그것도 와이셔츠 소매까지 이만큼 접어 올린 편안한 모습으로 신입답지 않은 미소까지 보였다. 골반에 걸친 양복 바지의 슬림한 핏에 다리가 엄청 길어 보였다. 아랫 기수였지만 군대를 갔다왔으니 당연히 나이는 나보다 많았고, 딱 내가 좋아하는 - 키 크고, 마르고, 깔끔한… 팔뚝에 푸른 힘줄이 보이고, 머리가 짧고, 목선이 예쁘고 잘 웃는… 한마디로 이상향이었다. 첫눈에 반했다. 순정바쳐 사랑했던 박팀장은 그 날 바로, 까맣게, 아주 새까맣게 잊혀졌다. 원래 사람의 기억은, 좋은 것, 유리한 것만 남긴다. 박 팀장은 회사 선배로서 존경했던 인물로 탈바꿈했다. 나의 진짜 첫 사랑은, 박 팀장이 아니라, 이 사람이다...


눈치 볼 것 없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를 가져야겠다… 일년 선배이기에 멋지고 싶었고, 어린 여자이기에 사랑스럽고 싶었다. 왔다갔다 만들어진 우연을 가장하여 친절을 베풀던 2주가 지나고, 매년 그랬듯이 거한 신입사원 환영회가 있었다. 시기도 묘하게 딱 내 생일 다음 날 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생일 파티 때문에, 아니면 새로 들어 온 그 남자 때문에, 유독 분위기가 좋았다. 3차로 우르르 몰려간 클럽에서는, 선후배 따질 것 없이 그냥 생일 파티하러 온 친구들 같았다. 잔뜩 분위기를 탄 그날의 주인공은 마음껏 즐겼다. 알딸딸하니 술이 오른 채로 그의 옆에 앉았다. 건배하고, 몇 마디 나누고, 또 건배하고, 소리 지르고, 건배하고 웃고… 유치한 농담에도 까르르 터뜨리며 슬쩍슬쩍 그의 팔과 어깨와, 손을 건드리고, 만지고, 쓰다듬었다. 술을 핑계로, 생일을 핑계로, 그를 독차지했다. 클럽을 나설 때, 나는 이미 그의 팔뚝에 매달려 있었고, 선배지만 동생이니 서로 말을 놓기로 했을 때에는, 이미 그와 손을 잡고 있었다.


“윤정씨는 집이 어디에요?”

“어, 오빠아아~~? 아까 말 놓기로 했잖아.. 나는 이쪽으로 네 정거장.. 혼자 살아, 자취야.”


네 정거장… 그 말이 가진 마력을 아는가..!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버스 네 정거장은 참 애매하다. 남자라면, 새벽1시 넘어 술 마신 여자를, 더구나 혼자 자취하는 예쁜 여자를 혼자 보내기에 참 많이 고민스러워야 한다. 술 냄새 풍기며 막차나 택시를 태우기기는 더 미안하고… 혹시라도 그럴 때, 애인이라면, 아니면 아주 딱 좋은 적당량의 사심만 있다면, 둘이 걷기에 정말 좋은 거리가 네 정거장이다. 바라던 대로, 그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사심이다... 둘이만 걷는, 손 꼭 잡고 걷는 우리끼리의 4차였다. 그도,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웃음이 끊기지 않는 밤거리를 걸었다. 시원한 공기에 술은 다 깨었고, 중간중간 포차라도 가서 한잔 더 할까 고민했지만, 그가 먼저 더 마실까 묻지 않아 그냥 걸었다. 그는 내가 충분히 마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 먹을 생각도, 더 먹일 생각도 전혀 없어 보였다. 반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멋지고, 자상한 그와 걸었다. 푹 빠져버린 진심을 숨기지 않았고, 그 역시 내가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 좋다… 인제 이대로 사귀면 되?”

“선배님, 취하셨습니다. 얼른 주무세요.”               


자취방으로 들어서며 그가 웃었다. 지하철이 끊겨서, 골목이라 택시가 없어서, 그리고 그의 집이 멀었으니까... 내 방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매너 좋게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작은 원룸에 낑겨 넣은 침대와 책상 때문에 오히려 바닥에 누울 공간이 없었다. 키가 큰 그가 구겨져 누우려면 화장실 안으로 다리를 뻗어야 했다. 그는 간단히 세수만 하고 침대로 올라왔다. 한 뼘 떨어져 누워 잠을 청한다. 자는 척 해야하나, 언제 잠 들어야 하나, 꼭 잠이 들어야 하나... 내일은 어떻게 눈을 떠야 예뻐 보일까… 조금 있다가 날 안으려하면 어떻할까… 온갖 고민을 다 하던 나와는 달리 그는 금새 잠에 빠졌다. 그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야광 벽시계의 불빛만으로 찬찬히 살폈다. 편안하게, 깊히 잠이 들어있었다. 나같은 음란 마귀와는 거리가 먼 천사다. 행복했다. 오래도록 지켜봐도 싫증 나지 않았다. 슬쩍 한쪽 팔을 그의 가슴 위로 둘렀다. 그는 나의 죽부인이 되었다. 맹세코!! 덮치지 않았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이상한 여자로 보이기 싫어 꼭 안고만 잤다. 물론 그가 원했다면 절대 밀어내지는 않았을 거다.                 


그날 이후 더 많이 친해진 그를 자석처럼 내 품으로 빨아들였다. 모든 악의적인 뒷담화를 감내하며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전 남친도 다 알만큼, 나는 새로운 사랑 앞에 당당했다. 둘이 맞는 첫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보란듯이 손을 맞잡고 퇴근했다. 회사 앞 빵집에 들러 마음에 드는 예쁜 케이크를 골라 보라고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 같이 가자고 했기에 너무 기뻤다. 벌써 소개를 시키려는구나, 한껏 기대하고 나간 자리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유학가는 친구의 송별회였다. 실망스러웠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남대문 도떼기 시장처럼 시끄러운 남의 동문회에서, 별로 드러내지 못한 존재감에 무척 생뚱했지만, 예의상, 즐거운 척 했다. 새벽까지 계속된 술자리에 피곤했다. 남자는 먼저 일어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내가 불편해 하는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잖아. 케익 고르라 그랬을 때, 나랑 둘이 있는 줄 알았어. 아니면 최소한 친한 친구들 인사 자리 같은 거..”

“그 친구는 미국가면 못보잖아. 그날 봐야지. 우리는 계속 만날거고... 그래서 화났어?”

“특별한 날은 나랑만 있어야지. 둘 시간이 하나도 없어. 맨날 회사, 친구.. 무슨 약속이 그렇게 많아? 결혼하고도 그럴거야? 좀 걸러서 만나면 안돼?”

“와, 벌써 보인다. 결혼하면 맨날 이렇게 꽉 잡혀서 사는 건가?”


생각보다 빨리 그날이 왔다. 사귄지 세달만에 결혼을 준비했다. 둘 다 자취라서, 하루라도 빨리 살림을 합쳐 경비를 줄이라고 양쪽이 다 서두르셨다. 특히 우리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다. 서울에서 혼자 직장다니는 딸이 많이 걱정되셨던 것 같다. 급하게 날을 잡은 것 말고는, 크게 무리한 건 없었다.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조금 넓은 전세로 옮겼고, 각자 쓰던 살림살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로 가장한, 사실은 아주 조금 속도 위반인 첫 아이가 생겼다. 모두의 놀라움과 질투와 비난 (회사 사람들의, 나에 대한 비난..) 속에 식을 올리고, 그저 기쁘기만 한 신혼을 보냈다. 손 꼭 잡고 다니는 출퇴근이 세상 행복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었다…  


출산이 가까워지면서 육아 휴직을 했다. 늘 함께 출퇴근하던 그를 집에서 기다리게 되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데이트 같던 퇴근길도 사라지고, 아무 불만없이 늦게까지 놀던 회식도 그만하고 빨리 들어오라 재촉하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지만 - 그래서 단번에 사랑일거라 확신했지만 - 불행히도, 나한테만 그런게 아니었다. 절대 술자리를 거절하지 못했고, 남의 고민을 자기 일처럼 다 들어주어야 했다. 당구 한 게임으로 시작하는 퇴근길은 술취한 후배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야 끝이 났다. 본인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늘 자정이 지나 있었다. 연애 할 때 늘 늦게까지 함께 있었던 게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니 그걸 나 혼자, 집에서 기다려야했다.


“자기는 가정이 있잖아, 어떻게 맨날 다른 사람만 챙겨?”

“취했는데 혼자 보낼 수 없잖아. 너 취했을때도 그랬고... 위험하니까...”

그거였다... 그날의 친절은 '나'라서, 꼭 나였기에 그랬던 게 아니었다. 술 취한 여자애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데려다 준, 아무에게나 베푸는 매너였던 거다. 눈에 뭐가 잔뜩 씌였던 나로서는 큰 착각에 빠질수 밖에 없던, 순전히 내 실수였다. 결혼 못해 안달난 여자가 되어, 말끝마다 결혼, 결혼, 하며 혼자 날뛰어 그를 잡은 거다. 거절 못하는 착한 그 사람은, 나에게 순순히 붙잡혀 준거다.


“그럼 아니라 그러지, 왜 결혼을 해? 등 떠민 것 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시킨 거 아니잖아?”

“네가 나 사랑한다며? 결혼하자 그랬잖아. 나도 그때는 결혼이 하고 싶었어. 해야 될 나이라고 생각했고, 남들 다 하니까, 해야된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너랑은 말도 잘 통하고, 같이 살아도 될 것 같아서 했어... 윤정아, 우리 아무 문제 없는 거야.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일 하는 사람은 늦는 거고, 집에 있는 사람은 기다리는 거고..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해? 야근하고, 회식하고.. 너도 회사 생활 해봐서 알잖아.”

“낼모레 애 낳는데 걱정 안돼? 양수라도 터지거나, 조산하거나…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옆에 있어야겠다, 그런 생각 안 들어? 맨날하는 회식 좀 빠지면 되지, 맨날 이래야 돼?”

“회사 여기서 안 멀어. 일 생기면 언제든 달려 올 수 있어. 너 만삭인거 회사 사람들 다 알고... 지금 짜증나고 힘든 거, 잠깐 그런 거야. 얼른 복직하고, 승진하고.. 그러면 다 괜찮아 질거니까 싸우지말자, 응?”


출산, 복직, 승진 … 남 이야기인 것 같았다. 만삭이라 그런지 눈물만 쏟아졌다. 비련의 여주인공은 늘 이렇게 비참하고 초라하다. 하긴, 당당하면 비련이 아니다. 그래도 이왕 절실할 거, 비련보다는 비장으로 가기로 했다. 비장의 여인… 이만큼 불러 온 배를 무기로, 아이를 볼모로, 그를 잡아 앉힌다... 어떻해야 나 혼자 온전히 그를 차지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봤다. 눈물 뒤에 가려진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꼬옥 안아주었다.


“하나만 낳고, 바로 복직하자. 솔직히 요새, 네가 너무 달라지니까 맞추기가 힘들어. 둘이 같이 다닐때 좋았잖아. 회사가서 힘들고, 집에 와서 불편하고.. 애기 태어나면 더 할 텐데 벌써 이러면 어떻해? 내가 더 잘 할께. 울지마, 애기 슬퍼.”


싸움이 되지 않았다. 이만큼 불러온 내 배를 무기로, 아이를 볼모로.. 그가 나를 잡아 앉혔다. 너무 좋은 남자였고, 누가봐도 나는 그저 남들 다 하는 임신으로 생색이나 내는 만삭 임산부였다. 행복하지 않았다. 장점이라 생각했던 친절, 배려… 따뜻하기까지 한 백마탄 왕자님을 잡았는데, 그 백마로 온 동네를 한바퀴 다 돌고 나서야 집에 들어온다는 걸 몰랐다. 너무 서둘러 결혼했을까. 살다보면, 맞춰진다고 했다. 맞추어가면서 사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은 자기 삶을 계획 할 만큼, 그리고 계획한 것 만큼 밀고 나갈 능력이 없나보다. 자기 들숨날숨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특히 내가 그랬다. 복직은 커녕... 첫째를 낳자마자 둘째가 생겨버렸다…!!! 남들 다 하는 흔한 실수가 정말 적절치 못한, 개떡같은 타이밍에 터졌다. 회사는 물건너 갔고, 갈등은 커졌고, 방 한칸 전세집은 더 좁아졌다.


“아니야, 장모님 계셔서 괜찮아. 그래, 지금 나갈께.”

갓난 아기에, 임신까지 한 딸이 힘들까봐 엄마가 올라와서 지내게 되자, 남편은 아주 홀가분하게 밖으로 돌았다. 세어도 세어도 끊임없이 새 친구들이 솟아났다. 자동으로 청소빨래식사가 준비 되었고, 빳빳하게 다려진 와이셔츠까지 골라 입으며 다시 싱글로 돌아간 듯 했다. 그 꼴도 보기 싫고, 아버지를 계속 혼자 둘 수 없어 핑계김에 친정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다. 나도 나쁠 것 없었다. 계획대로 둘째를 친정에서 낳고, 오랜만에 무남독녀 외동딸로 돌아가 수발 받으며 지냈다. 친정은, 내 입에 꼭 맞는 잔치상 같은 거였다. 점점 길어지던 산후 조리에, 사실은 산후조리를 핑계로 너무나 편안해진 육아에, 좁아터진 서울 집으로 돌아 오고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도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유를 만끽하며 이사람 저사람 만나며 잘 놀겠지... 처음 서너달로 생각했던 게 일년이 되고, 이년이 되었지만, 어느쪽도 그만 다시 합치자 말을 꺼내지 않았다...   


순전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조금 수월해졌으니 올라가라 하셨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셨다. 아니라고 큰 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점점 드문드문해지던 그의 전화와 방문, 아이 핑계로 아예 발걸음을 끊었던 나.. 우리가 부부였나 할 만큼 서먹했다. 11개월 차이의 두 아이는 쌍둥이처럼 아옹다옹 예쁜 짓을 했어도, 별거를 너머 휴혼에 가까웠던 둘 사이를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근 2년만의 재결합(?)에 오히려 상황이 안좋아졌다. 모든게 불만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다정했지만, 또 여전히 바쁘고 약속이 많았다. 둘이 살던 집에 넷이 살자니 코르셋에 낀 것 마냥 답답했고, 외벌이로 대출을 더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취업을 하기에는 아이들이 걸렸다.


“애들을 다시 엄마한테 맡기고 취직하려고.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지, 안되겠어.”

“너무 멀어. 아직 어린데 엄마가 키워야지, 어떻게 주말에만 내려가? 네가 조금만 더 데리고 있다가, 유치원 갈 때쯤, 좋은 데로 옮기자. 많이 컸을거니까, 그때는 우리 부모님 쪽으로 가서 맡기고 일 시작하던지.”


집, 아이, 직장, 살림, 부모님… 모든 것에 이견이 생겼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다시 취업하기 힘들다는 내 입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언제까지 내가 키워? 자기는 아무것도 안해? 아빠잖아. 일하고 사람 만나고, 일하고 사람 만나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애만 봐야돼?”

“그럼 인제 내가 휴직 할까? 너 당장 직장 있어? 아니잖아. 왜 억지를 부려? 우리가 부모야. 애들 아직 어리니까 여기 충분해. 지금처럼 내가 거실에서 자고, 너네 셋이 방에서 자면 돼. 1~2년만 참아.”


내가 보는 문제의 본질은 방 넓이가 아니었다. 직장, 경력, 일… 거기에 방해되는 육아, 그리고 집은 맨 마지막이었다. 그가 보는 본질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한다… 정말 그거 하나였다. 우습게도 우리의 갈등 속에는 ‘우리’가 없었다. 그의 고민 속에는 내가 없었고, 내 고민 속에는 그가 없었다. 내가 불편하니 너의 불편함은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니까, 서로, 네가, 너도, 그리고 너만, 참으면 된다.. 양보하고 희생해라... 다 컸으니까, 각자 잘 알아서 아닌 척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들은 좁아도 잘 놀았고, 우린 좋은 엄마아빠였지만,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는 되지 못했다. 한 번 금이 갔던 유리 그릇처럼, 더 산산히 깨질 일만 남았지, 요술처럼 스르르 다시 붙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거짓으로 웃었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둘 다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그냥 살았다. 그도 나도, 집안에서 얼굴 마주보는게 제일 힘들었다. 싫거나 미운게 아닌, 그렇다고 싸우도록 치밀어 오르는 것도 아닌, 뭔가 많이 잘못 되어간다는 불안감에 대화가 점점 줄었다. 건드리면 한방에 감정을 팍 상하게 할 만큼, 짜증이 목구멍까지 한가득 올라와 있었다. 답답했다. 그는 종일을 나가서라도 보냈지만,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는 시장 한번 가기도 힘들어, 가로 세로 꽉차는 열두 평에 갇혀있었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그를 만나려면 예약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잠만 잘 분 찾습니다> 전봇대에 붙어있던 그 옛날의 전단지처럼, 조용히 들어와 잠만 자고 사라졌다. 친정에서 지낼 때는 거리가 멀었으니 아이들과 통화라도 했지만, 이제는 하루 한번 전화하기도 미안하고 눈치 보여, 퇴근길에 필요한 걸 사오라는 문자만 간신히 보냈다. 거지같다.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


룸메이트처럼 지내던 마지막 해, 내 생일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밤에 사들고 왔는지 케이크 하나가 싱크대에 놓여있다. 팔짝 거리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씻기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남편의 전화를 종일, 기다렸다. 늦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두시가 되어갔다. 전화를 했다.

“어, 아직 안잤어? 지은이 알지? 승진했다고 술 마시고 있어. 그만 자. 많이 늦을거야.”

정지은… 남편의 대학 동기다. 둘이 사귈까 말까 썸타던, 꽤나 진지했다고 들었다. 갑작스레 나와 결혼 하면서 청첩장도 전하지 못 할 만큼 미안해 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이 시간까지 거기 있어야 돼? 생일 날 전화 한통 없이 너무 한거 아냐?”

“축하해. 오늘 바쁠 거라서 케이크 미리 사다 놨잖아. 먹었어?”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자기는 어떻게, 옛날 여자친구가 부인보다 먼저야?”

“여자친구 아니야.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 다 모였어. 전부터 약속 잡았던 거고.”

“그 사람들이 날 뭘로 보겠냐고? 내 생각은 전혀 안 해?”


목소리를 높였다. 백번의 술자리도, 천번의 약속도 이제는 덤덤할 수 있지만, 하필 정지은, 여자 동기였다. 남편은 잠시 침묵했다.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래, 들어갈께… 아니면 늘 하던말, 미안해… 를 예상했지만, 그렇게 말해도 용서 못 할 기분이었지만, 내게 돌아 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윤정아,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나한테 소리 지를 일은 아닌 거 같아. 지은이하고 사귄적도 없고, 사귀었다고 해도, 옛날 일 때문에 이럴 필요가 뭐가 있어?”

“자기는 내 기분 모르지? 알면 이렇게 못하지. 아무리 옛날 일이고,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해도, 둘이 어땠는지, 뭘 했는지, 나 혼자 상상하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 알지, 알거야.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는 알겠지... 윤정아 나는, 입사해서 지금까지, 박 팀장님하고 같이 일 해. 그래도 너나 팀장님한테, 지난 일 때문에 불쾌한 적 없어. 매일매일, 괜찮을려고 노력해. 지난 일이잖아.”


아… 박팀장… 잊고 있었다. 그래, 그는 박팀장과 함께 일한다. 내가 같이 근무 할 때는 그래도 다들 자제했겠지만, 휴직, 퇴직이 벌써 3년이 넘었으니 무슨 말인들 못했을까.. 얼마나 수근거렸을지.. 의리랍시고, 갓 들어와 물정 모르는 새 신랑에게 몰려가 얼마나 많은 뒷말을 했을까... 그가 당연히 다 들어 알고 있을거라는 걸, 왜 여지껏 생각 못했나...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떠올라 머리속이 복잡했다. 전화를 끊었다. 애들 옆에 누워봤지만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여지껏 한번도 언급 없었기에, 아니, 적어도 나는 싹 잊었었으니까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가 힘들었을까? 불쾌했었나... 그날 통화 이후 그는 두번 다시 박 팀장 이름을 꺼내지 않았지만, 기분 탓 인지, 조금 더 냉랭해 진 것 같았다.


계절이 몇번 바뀌고, 지인의 소개로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었다. 그만하면 연봉도 나쁘지 않았고, 아이들도 충분히 컸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금 사는 집에서 먼 곳이라, 어쩔수 없이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남편이 반대했다. 긴 설득 끝에, 새 직장 가까운 곳으로 조금 넓은 집을 얻어서, 친정 부모님을 모셔오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최선의 절충안 이었다. 그는 여전히 부드럽고 차분하게 답했다.

“그래, 정 그러면 그렇게 해. 아버지 혼자 계시면 안되지. 너 하고싶은 대로 해. 난 괜찮아.”   

결혼 할 때 처럼, 일사천리로 쭉쭉,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파트를 계약하던 날,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다섯번째 결혼 기념일의 바로 다음날 이었다. 당연한 것 처럼, 교통 카드를 한번 꾹 찍고 갈아타는 그런 것 처럼, 도장을 찍고 다음 집으로 옮겨갔다. 나도 그도, 아무 불만도, 질문도 없었다.


“짐 정리 할 거 많겠다. 가서 도와줄까?”

“괜찮아, 엄마 있는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택배로 보내던지 할께.”


너무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헤어졌다. 분명히 그를 사랑했다. 왜 이혼을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혹시라도 왜 결혼했는지를 묻는다면, 솔직히 그것도 잘 모르겠다. 만약에, 그 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한번 더 생각하고 같이 이사 가자 했으면, 그가 따라 왔을까. 충분히 그랬을 거다. 자기는 회사에서 좀 멀어지더라도 식구들이 좋다면 기꺼이 함께 갔을 거다.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함께 갔다면, 행복했을까..  


“너네는 정말 재결합 안 하니?”

몇년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상주 자리에 서있던 전남편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무슨 재결합을 해, 이혼한 지가 언젠데?”

“그러게 이혼은 왜 했어? 난 또 너네 누가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지. 그냥 계속 이럴거였으면, 서류라도 그냥 놔뒀어야지. 이런 경우가 세상에 또 어디있니? 이혼한 것도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이혼하고도 멀쩡하게 같이 다니는 걸 보면 아주 속이 터진다, 내가.”


이상하긴 하다. 이렇게 사는 거, 남들이 보기에는 친구 같아요 어째요, 겉으로만 좋아보이지, 사실 더 비참하다. 언제든 돌아오라 기다리는 사람처럼, 네가 원하면 아무때고 문 열고 들어와도 괜찮다, 무방비로 사는 내가 싫다. 그는 오고 싶으면 오는 사람이다. 반대로 나는, 내가 쫒아낸 것도 아니면서 여전히 눈치를 본다. 몇번이나, 다시 합칠 생각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자존심은 아니다. 그런건 진작부터 없었고, 그가 내켜하지 않는데 부담 줄까봐, 절대 먼저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반했고,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고, 내가 먼저 결혼 하자고 했었다. 그러고는 내가 먼저 싫은 소리를 했고, 내가 먼저 마음이 멀어졌다... 이제는 먼저, 다시 사랑하기 싫다. 그렇게 혼자 바라만 보던 사랑이 재미없었다. 진작에 깨끗히 잊고 다음 사랑을 꿈꾸어 볼 걸... 이렇게 무수리처럼 기다리는 내가 불쌍하다.


/날 추운데 어머니랑 해물탕 어때? 애들은 토요일이 괜찮다는데/

오늘도 나의 전남편은 톡을 보낸다. 왜 우리랑 먹어? 다른 약속 없어 심심해? 가시를 바짝 세우고 답을 하려다 꾹 참는다.

/좋지. 자기가 이쪽으로 오나? 그때 그 집?/


주말이면 늘, 약속시간 보다 삼십분 일찍 와서 하하호호 엄마와 티비를 보며 떠들거다. 아니면 시내에서 아이들을 먼저 만나 종아리가 땡길때까지 돌아다니다가, 한집사는 사람처럼 우르르 약속 장소로 들어 올거다. 평소에도, 구차스럽게 아이들 핑계 없이, 우린 여전히 함께 커피를 마시고, 외식을 한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당당하다. 전 장모 – 내 엄마 - 에게까지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한다. 생일마다 받는 케이크 상품권… 예전이나 지금이나 뭐 엄청난 금붙이를 받아본 적 없지만, 그래도 회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 저녁 메뉴 이야기로 툭툭 던져지는 시시콜콜한 카톡을 보면서, 가끔은 우리가 정말 이혼했는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졸혼인지, 그것도 아니면 직장이 멀어 따로 지내는 주말부부인지,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남편으로서는 참 잘못 골랐다 싶었는데, 전남편이 되고나니 세상 둘도 없는 완벽한 남자다.


이번 토요일에도 올거다단정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사 준 크림색 목폴라로 긴 목을 반쯤 가리고 나타나겠지. 무심히 코트 자락을 펄럭거리며 아이들과 저만큼 걸어가면, 나는 또 그 뒷모습에 설레일지 모른다. 이렇게 완벽한 그는, 앞으로도 영원할 내 전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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