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라는 게 말이지, 사람들이 다 욕해도 사실 있으면 좋은 거잖아? 특히나 나처럼 전쟁 겪은 세대는 알거야. 잿더미에서 살아남는게 얼마나 힘든지. 상상이라도 해봤어? 어린 아이 데리고 눈비 피할 지붕 한쪽 없거나, 하루 세끼는 커녕, 아픈 어머니 흰죽 한그릇 못 끓인다면...
말이 쉬워 무소유에 미니멀이라지. 정말 없어서 못 가지는 슬픔을 아나? 일당 받고 불려간 어느 부잣집의 차고가 네식구 모여사는 우리 '집'보다 클 때, 한창 크는 아이 책꽂이에 꽂힌 책보다 천장에 뛰는 쥐새끼 숫자가 더 많을 때, 가스가 끊겨 생쌀을 물에 불려 상에 내놓아야 할 때...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갖고 싶다는 게 취향이 아닌 생존이기도 해.
못났다 소리 듣기 싫어 악착같이 일했어. 가진게 없으니 갖도록 만들어야지. 처음부터, 하나부터, 전부 1부터 시작해야 했어. 불행히도 (!) 타고 나기를 착하게 태어나서, 나쁜 짓은 한번도 못해보고 답답하게도, 순진하게 살았지. 그래서 오셨나.. 그분이 마지막으로 오신 건, 정말 열심히 살던, 70년대 끝자락이었어.
남들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그 흔한 줄도 없고, 빽도 없고... 다리까지 절룩거리는 나를 데려가는 큰 회사는 없었어. 어찌어찌 먹고 살만큼 월급이나 나오던 작은 건설회사에 들어갔지. 한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건설 열풍이 대단했잖아? 건설회사다 하면 우와~ 하긴 했지만, 분수처럼 쭉쭉 뻗던 아파트를 시공하는 건 아니었고, 그 밑에서 자잘한 거나 봐주던 하청 업체야. 솔직히 기술자도 몇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그때그때 배워 노가다 하는 건데, 사장도 공사판 출신이라 아는 거 거의 없었지. 회계, 계약, 정산, 법적인 거는 전부 나 혼자 도맡아서 했어.
그때는 일을 하면 할 수록, 건설이 생각보다 남는 게 많더라고. 신기하지? 버려진 땅을 똥값에 사서 시맨트 발라 올리면 바로 돈이야. 농부가 이삭 줍듯, 어부가 고기 건져 올리듯, 건설도 그렇게 흙바닥에서 진주를 캐더라고. 일이 많아지니 월급도 올라가고, 사장도 내가 혹시라도 큰 회사로 스카웃 될까봐 아주 잘해줬어. 후덕하니 돈복있게 생긴 사람이었어. 나이는 그가 한 열살 더 많았지만, 우린 목표가 같았어. 부자가 되자... 진짜 건설회사다운 건설회사로 만들어보자...
공무원들하고 술자리도 많이 하던 사장이, 어느날 고급 정보를 빼왔어. 그 무렵에 국립묘지를 확장하면서 그 앞으로 대로가 생겼거든. 그걸 중앙 대학교 앞을 지나서 김포 공항까지, 서쪽으로 넓힐 계획이라는 거야. 교통도 좋아질거고, 서울이 커질거고.. 도로가 지날 그 땅은 무지 오를 게 뻔했지. 아직 발표 된게 아니니 얼른 손쓰면 엄청난 차익을 얻겠다 싶었어.
"무조건 사자!"
물어 온 정보대로, 일단 되는대로 사들였어. 회사 돈을 돌리고, 각자 개인 재산도 탈탈 털어 사업에 투자했어. 친한 사람들도 합세해서 지도에 색칠 할 만큼의 땅과 집을 사들였어. 사장은 신이 나서 크게 한턱 쐈지. 거액을 투자하신 투자자들 두명도 함께 룸싸롱까지 갔다니까. 성공했다! 이게 다 우리 땅이다!! 이젠 대기업 건설회사 안 부럽다!!!
그리고 다음날, 사장도, 회사도 사라졌어. 내 손으로 도장 찍은 수십장의 매매 계약서가 다 가짜였고, 부동산 업자도, 사장이 데려왔던 투자자도 다 거짓이었어. 내게 남은 건, 0원이 되어버린 네개의 적금 통장, 여섯개의 은행 대출, 지인들에게 써 준 차용증과 서로 얽히고 섥힌 보증, 맞보증... 그리고 전세금 빠진 전세집에서 서둘러 이사 나온 가족 뿐이었어.
가족... 다행히도 이 못난 인간을 사랑해 준 아내가 있었지. 늦게 결혼 해 겨우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하나를 두고, 그 큰 사기를 당한거야. 당장 들어갈 직장도 없고, 집도 없는 신세가 됬어. 아내와 아이는 급한대로 시골 어머니 댁으로 보내놓고 난 서울에 남았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 등산 배낭에 챙겨 온 옷가지 몇개도 받을 자격이 없었어.
아내와 아이를 보낸 날, 터미널에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어. 뭘 잘못했을까?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내가, 내 가족이 이런일을 당해야 하나? 억울하고 분하지만, 어디에 누굴 잡고 하소연 해야 하는 지도 몰랐어. 도망 간 사장을 고소 했는데, 내가 당한 고소가 더 많았지. 빼도박도 못하는, 범죄자까지 되어버린거야. 나도 사장처럼 숨어다녀야했어.
한동안은 터미널 앞에서 노숙을 했어. 갈 곳이 없으니까. 가끔 운이 좋으면 식당에서 잔반 버리는 걸 얻어먹기도 했어. 설거지나 야채 나르는 거.. 할 수 있는 아무거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다들 가족끼리 장사하던 때라서 딴 사람을 월급 주면서까지 쓰지는 않더라고. 가게 자리가 있어 장사를 할 수가 있나, 트럭이 있어 배달을 할 수가 있나... 그래도 이를 악 물었지. 어깨 너머로 배운게 있으니, 공사판 노가다를 해서라도 아이가 편히 누울 방 한칸은 마련하자. 그때까지, 독하게 살자...
운이라고 아주 조금 남았던 건지, 터미널 주변에는 한창 아파트를 짓고 있었어. 아무 공사장이고 들어가 무작정 십장을 붙잡고 졸랐지. 하지만 알잖아, 내가 잘 못먹고 자라 비리비리하고, 작고, 다리를 전다는 거.. 열에 아홉은 퇴짜였어. 내가 아무리 독하게 살려해도, 일거리가 없으니 어쩌겠어.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연명했던 것 같애.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잠자리는 길거리나 공사장이었어. 첫 겨울이 오고, 다 쓴 페인트 깡통에 구멍을 뚫고 자잘한 불쏘시개를 넣었지. 깡통 안에 말라 붙은 페인트가 타면서 절대 몸에 좋을 리 없는 냄새가 나지만, 그거밖에 없거든. 원래 공사장에서는 밤에 불을 피우면 안되는데, 얼어 죽는게 더 위험하지 않아? 그렇게라도 몰래 몰래 피워놓고 자야지. 요즘도 어느 공사현장에서 한밤에 화재.. 뭐 이런 뉴스가 나오면 난 속으로 이해해.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래도 다행인건, 자재를 덮어 놓은 비닐 성분 들어간 커다란 덮개들이야. 터미널을 어슬렁 거리다 주워오는 종이 박스을 몇개 깔고, 그것도 그당시에는 구하기 엄청 힘들었지, 귀했어.. 그 위에서 자재 덮개를 끌어다 덮고 자면 얼어 죽지는 않았어. 아침이 되면, 땅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종이 박스가 얼어있었어. 이글루라는 걸 알았다면, 차라리 그게 더 따뜻했을지도 몰라.
지랄같은 겨울이 지나가고 조금은 살 것 같던 날, 터미널 앞 벤치에 앉아 500원짜리 김밥 한줄을 먹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왔어. 근처 교회 전단지 한장이랑 천원짜리를 주고 가더라. 날 거지로 본거지.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봤어. 그 속의 나는, 그래, 노숙자에 거지였어. 세수로도 지워지지 않는 게 있었어. 낙인 같은, 문신같은.. 인두로 지진것처럼.. 호랑이 뛰놀던 시절에 노비나 범죄자들에게 새겼던 것 처럼, 내 얼굴에 거지... 라고 새겨져 있었어. 반년이 지나도 상황은 점점 나빠질 뿐이었지.
장수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날, 그 화장실에서, 이제는 물러날 때라는 걸 알았어. 포기가 아니라, 그냥, 난 다 한거야. 거기까지가 내 몫이였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너무 지쳐서, 억울할 힘도 없는 채로, 자리를 보러 다녔어. 쭉쭉 솟은 아파트를 동경하던 그때처럼, 더이상 내가 짓지는 않는 대신에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 줄, 내 마지막 아파트를 골랐지. 불쌍하게 보일까봐 공사장에서 죽기는 싫더라고.
큰 길을 보고 있는, 당시로서는 꽤 고층인 6층 짜리였어. 사람 많은데서 죽어야 얼른 치워주겠지, 안그래? 반지하를 포함한 아래 두층은 상가였는데,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파전 하나가 먹고 싶은거야. 그런데, 주인장 얼굴을 딱 보니 내 꼬라지를 안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파전 하나에 소주 두병을 싸달라고 했어. 종이에 대충 둘둘 말아 주는 걸 받아 들고 계단으로 올라 가는데, 윗층 약국에 박카스가 보였어. 참 좋아하던 거라서 그것도 두병을 샀지. 마지막 가는 길이니까 나한테 잘해주고 싶었어.
요즘은 두 집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하나씩 있잖아. 그때 5-6층 짜리들은 대부분 계단이었어.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숨이 찼지만, 괜찮았어. 좀 있으면 끊길 건데 뭐... 근데 다 가서 보니, 옥상 가는 철문이 잠겨 있는거야. 에라이, 배도 고프고 해서 계단에 앉아 소주를 깠어. 그런데, 그때..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들어오세요."
어떤 여자가 계단 아래에서 막 뛰어 올라오더니, 아파트 문을 열어주는 거야. 아주 예뻤어. 신인 탈렌트 김창숙과 꼭 닮은 미인이였다니까. 깜짝 놀랐지. 나를 아는 사람인가...?
"오래 기다리셨어요? 정말 혼자 오셨네요? 복덕방 아저씨는 늦으시나봐요?"
여자가 활짝 열어 준 문 안쪽을 들여다 봤어. 아파트..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생겼을까.. 맨날 콘크리트 때려붓는 것만 봤지, 실제로 그 안에서 예쁜 사람들이 알콩달콩 사는 건 본적이 없었던 거야. 홀린듯이 따라 들어갔어. 소주병을 숨기려 했는데 여자가 먼저 봤더라고.
"식사중이셨어요? 저도 저녁 안먹었는데, 그럼 아저씨 올때까지 같이 드실래요?"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여자는 자꾸 복덕방 아저씨 이야기를 했어. 대충 얼버무릴까 하는데 내가 들고 있던 소주와 파전을 가져가는거야.
"다 식었어요, 데워 드릴께 잠깐 앉으세요."
여자가 가르키는 곳에 아주 작은 식탁과 의자가 있었어. 아, 이집은 식탁을 쓰는구나.. 파전을 데우면서 소주잔과 잘 익은 김치, 멸치 볶음을 꺼내 주더라고. 이게 왠일인가 하면서도 손은 이미 젓가락을 들고 있었어. 염치없지만, 될대로 되라, 입으로 마구 집어 넣었지.
마주앉아 소주를 마셨어. 내가 좋아하는 박카스를 그릇에 부어서 조금씩 섞었지. 박카스 뚜껑을 따서 말이야, 그 밑부분을 끊어내지 않고 똑바로 잘 펴면 꽤 쓸만한 국자가 되거든. 소주 반 잔 붓고, 박카스 한 국자 넣고... 약간 노리끼리한 색이 돌까말까 한 정도가 딱 좋아. 사실은, 소주가 두 병 밖에 없어서 아껴 먹어야 하잖아... 아쉬운대로 맛있었으면 됬어, 뭐, 술 마시러 간것도 아닌데..
여자는 술이 좀 도는지,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했어.
"집이 좀 썰렁하죠? 있던 물건들을 다 정리 하느라고요. 싸게라도 팔려서 너무 다행이에요. 이사갈때 가져 갈수가 없거든요. 애가 둘인데, 식당하는 친척 언니가 있어서.. 임시로 가게에서라도 지내보라고 해서요, 거기로 가야되요. 일 도우면서, 어떻해서든 살아보려구요. 이 식탁도 못 가져가요."
그러고 보니 집안이 휑한거야. 여기저기 짐 싸놓은게 보이긴 했는데, 느낌이 참 안좋더라고. 사람사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 애도 둘이라면서 아이들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 텅 빈 신발장과 책장, 커텐하나 안 달려있는... 빈 집 같았어.
"애들이 안보이네요, 늦었는데?"
"아는 사람한테 맡겼어요. 둘째는 아직 애기라 대신 키워주신다는데... 언제 데려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짐정리하고 뭐하고 혼자 도저히 안되서요. 빚쟁이들이 자꾸 찾아오고... 큰애가 1학년인데, 그런 거 보이기도 싫구요.. 남편이 작년에 죽었거든요."
에휴...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미망인이라니, 애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참 팔자도... 나만큼이나 더럽구나... 하면서 술을 마셨어.
"남편은 둘째 얼굴도 못보고 갔어요. 사업하다가 빚을 많이 지고, 자살했거든요."
"아이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어. 술맛이 딱 떨어지더라고.
"왜 그런 짓을.. 아이들을 두고 가다니요? 돈이야 갚으면 되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집을 나갔는데, 경찰에서 전화가 왔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찾았는데, 시신 확인하러 오라고.. 만삭의 몸으로 물어물어 찾아가던 택시 안에서 진통을 시작해서, 병원 도착하자마자 분만을 한거야. 연고도 없는 경기도 외곽의 작은 병원에서 말이야... 지하 영안실에는 남편이, 윗층 산부인과에는 둘째가 누워 있었던 거지.
뭐 이런 재수없는 경우가 다 있을까? 나보다 더 심한 것 같았어. 어떤 삼류 영화에서도 이렇게까지 싸구려 눈물을 짜내지는 않을텐데 말이야. 에라이, 망할 놈의 세상... 한숨을 안주 삼아, 세상을 욕했어. 아니, 남편을 욕했지. 이렇게 젊은 여자가, 애기를 둘이나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까 갑갑했지. 남자인 나도 참 힘든데, 이 세 식구 인생은 어찌 되려고.. 참 모진 사람이구나..
"나도, 잘 살고 싶었어요. 물론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많이 비슷하네요, 남편분 처지가.. 나도 다 날리고 몸뚱이 하난데... 그래도 젊은 분이 용기가 대단해요. 많이 힘들텐데 꿋꿋하시네요."
"처음에는 저도 같이 죽어버릴까 했었어요. 근데, 저 그림이요, 냉장고에 붙은 그림... 큰애가 남의 집으로 가기전에 그려준거에요. 우리 가족이라고, 나중에 아빠 다시 오면 네 식구가 꼭 같이 살자고.. 저거 보면서 힘을 내요."
여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어. 예의상 냉장고 쪽을 쓱 쳐다봤지. 언뜻 크레용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보이더라고. 어른 둘에 아이 둘... 애들 그림이 다 그렇잖아, 노랗게 밝은 햇님과 나비가 날고, 꽃은 항상 빨강색, 나무는 초록색... 삼각형 지붕에 유리창이 달린 집.. 여기저기 어지러운 큰 글씨... 우리 아들도 그런 그림을 그렸었는데..
"잘 그렸네요. 그래요, 나쁜 마음 먹지말고, 애들 크는 거 보면서 열심히 살아요."
"아저씨 애들도 예쁘잖아요, 보고 싶지요?"
"아들 하나 있는데, 못본지 오래 되었어요. 이런 꼴로 못 가겠더라구요."
"괜찮아요, 애들한테는 아빠 '꼴'은 안보여요, 아빠만 보이지... 최고니까."
피식 웃었어. 아빠 '꼴'은 안보인다... 재미있는 말이잖아. 지나가던 아줌마도 천원짜리 툭툭 던져주는 이 거지 꼴을, 정말 아이는 못 볼까... 나는 아직도, '최고' 일까..
"능력있는 아빠한테 태어났어야 했는데, 제가 잘못한거에요."
"옆에 있어주는 아빠를 하면 되죠. 집으로 가세요. 애들 얼굴 보고, 부인 얼굴 보고.. 어머니도 보고요. 같이 힘내면 다 살아져요. 이 전화 쓰셔도 되는데, 집에 한번 해보실래요? 많이 기다릴거에요."
여자가 집전화를 가르키는데, 술이 많이 올랐는지, 전화기를 보니까 아들이 너무 보고 싶은거야. 눈물이 툭, 툭, 떨어지더라고. 휴지 몇장을 주길래 얼른 닦았어. 창피하게... 꼭 술주정하는 거 같잖아.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버렸지. 신발도 대충 막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위에서 여자가 그러는 거야..
"오늘 꼭 전화해요! 좋은 소식이 있대요! 애들 보러 꼭 가세요..."
아파트를 나와 큰길을 걷는데,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그놈의 주황색 공중전화는 왜 그리 많아? 사방팔방이 다 공중 전화야. 마음이 복잡했어. 아이 씨, 나 오늘 죽어야 되는데... 그냥 조용히 사라져야 남은 사람들이 안 슬플텐데 말이야? 또 이만큼 걷다가 다음 공중전화 앞에 서면, 그래, 한번만, 목소리 한번만 듣고 가자.. 그러다가 결국은 터미널 앞에까지 걸어간거야. 아내랑 아이랑 버스 태워 보냈던 거기에 딱 가니까, 못 참겠더라고. 어머니 집으로 전화를 했지.
"너 어디서 살아있었냐? 당장 들어와! 니 마누라 진통온다. 오늘 내일 나오지 싶어.."
기억하나? 그 여자 집에서 말이야, 계속 애들, 애들... 내가 아들 하나라고 했는데도, 애들 보러 꼭 가세요.. 했잖아. 난 아내가 임신 했는 줄도 몰랐는데... 있는 돈 탈탈 털어 고향가는 버스를 타고 나니, 그제서야 그 생각이 나는 거야. 뭐지, 그 여자는..?? 점쟁이인가? 구미호라도 되나? 오싹하기도 했지만, 그냥 우연일거라 생각하기로 했어. 몇달만에 집에 가는 건데, 기분 좋게 가야지.. 안그래?
***
시간이 제법 지나고, 둘째가 뒤집기를 시작할 때,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형님같은 분이 연락을 하셨어. 서울에 다시 오지 않겠냐고. 아무래도 일거리가 있는 곳에 살아야 한다면서, 자기가 잘 알아봐주겠다는 거야. 동아줄이었어. 마침 반포에, 다른 사람한테 세 주고 있던 집도 하나 비는데, 두고 가는 게 많다고 몸만 들어와서 살라는 거였어. 아이구, 감사합니다, 했지. 이사 오기전에 청소먼저 하려고 형님을 따라갔어. 어딘가 많이 익숙한 대로변의 상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불편하겠지만, 일단은 살아봐. 좋은 집이 아니라 미안해."
"아닙니다, 형님, 저를 살려주시는 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집이 남자애만 셋이었어. 군데군데 좀 더럽겠지만, 잘 치우면 살만 해."
있잖아, 아무리 그게 깜깜한 저녁이었어도,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똑같은 신발장, 똑같은 벽지, 똑같은 작은 식탁과 부엌... 그 집 인거야. 분명 그 집인데, 전에 왔을때랑은 다르게 소파도 있고, 커텐도 있고.. 사람 사는 온기가 돌았어. 여기저기 아이들 손자국이 묻어있고, 엊그제 본 것 처럼 여성 중앙이고 뭐고, 잡지책도 쪼로록 꽂혀 있는거야. 믿을 수 있겠나?
"형님, 여기 세 살던 사람이요, 혹시 애기 둘 있는 젊은 여자 아닌가요?"
"아니, 아들만 셋이지. 신혼때 들어와서 8년을 살았어. 애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갔는데, 물건도 많이 망가지고, 뭐 좋은 거 아니라고 다 버린다길래, 쓸만하니까 일단 놔두라 그랬지. 어때? 이 정도면 괜찮겠지? 버릴 건 버리고, 잘 골라봐. 돈 아끼고 좋잖아.. 고생해. 얼른 이사하고 일 시작해야지."
형님이 열쇠를 넘겨주고 나가셨어. 뒤에 대고 감사하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그 집에 쏠려 있었지. 믿기지 않았어. 파전을 샀던 식당도 그대로고, 1층 약국도 맞고... 계단 올라와 꼭대기 층 오른쪽 집.. 분명 이 집인데,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꿈이었나.. 정신차리려고 물이나 있으면 한 잔 마실 생각에 부엌으로 갔어. 냉장고 문을 열다가 깜짝 놀라 휙 닫았지. 그림 있잖아... 그날 냉장고에 붙어있던 아이의 그림이 말이야, 그게 거기에 붙어 있는거야. 어른 둘, 아이 둘, 햇님, 나비, 꽃.. 다 그대로 인데, 여기저기 서툴게 쓴 큰 글씨가.. 그때 멀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글씨가 눈에 들어왔어.
/장경수, 이숙정, 장현철, 장현선/
삐뚤빼뚤 ... 우리 식구들 이름이 써있는 거야. 백일 지난 둘째까지.. 어른 둘 아이 둘... 그 그림 속 아이들이 아들 하나, 딸 하나.. 내 아이들이었어..
반포 초등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상가 아파트 602호에 살았어. 50원짜리 병아리를 사다가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진짜 큰 닭이 되었지. 복날 잡아먹자고 농담했다가 딸래미가 눈물 쏟는 바람에 집사람한테 등짝 한대 맞고.. 냉장고 옆 때묻은 벽지에 두 아이의 키를 쟀어. 큰 놈 운동회라고 달리기 연습하다가 발목을 접지른 날, 작은 아이는 처음 자기 이름 세글자를 썼어. 그렇게 거기서 아이들 다 크도록 산거야.
그 이후로는 귀인을 본 적 없고, 바란적도 없어. 내 집에 사는 귀인 셋으로 충분하잖아. 마누라님 떠받들고, 왕자님 공주님 모시면서 그렇게 살았지. 별거있나? 그냥 믿는거야. 내가 그다지 복이 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거... 일제 겪고전쟁 겪고, 총 맞고부도 맞고... 하다하다 나중에는 IMF도 왔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아이들도 건강히 자라 부모가 되었고, 손주도 보고…
지나고보니, 위기는 계속 오더라고. 너무 자주오면 힘들고, 너무 적게 오면 사람 고마운거 모르겠지. 어차피 인생 시계는 앞으로만 가잖아. 살 놈은 벼락을 맞아도 살고, 죽을 놈은 접시물에도 빠져 죽는대. 누가 알겠어. 옥황상제 장기판의 말이 되어 요리조리 손끝에서 놀아나봐도, 결국은 그냥 한판 짜리인걸. 억소리 나는 보험도 나 죽은 후에나 나오는 거고, 영화처럼 어느날 갑자기 몇십년 젊어진대도, 또 이 고생길을 다시 걸어와야하니 그것도 노땡큐라네.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살아야지, 우리는, 살라고 만들어진거잖아. 그러고보면 다 똑같아. 소처럼 살다가 나비가 되어 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