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3화. 곰 세마리 3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 다들 행복했을까

by 신소운

3.1. 한식당 (계속)


"누구야? 또 강지율이야?"

"아닙니다. 문 형사님입니다. 영장 발부가 거부된 건인데, 빈손으로라도 그냥 가시겠다고.."

"무슨 일인데? 급한거면 긴급체포라도 해야지."

"긴급체포 사안이 안됩니다. 주소지도 분명하고, 범죄에 직접 연루된 증거도 없습니다."

"그럼, 도주나 증거 인멸 가능성은 있나보네?"

"그건 잘..."

"무대포라도 아주 생각없는 놈은 아니야. 뭔가 있으니까 밀어붙일 텐데, 무슨 사건이야? 내가 알고 있는 건가?"


"지난 봄에 퀵 서비스 배달원이 모텔에서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활고로 자살한다는 유서도 있었고, 실제 자살로 보였는데, 죽기 얼마전까지 온라인에서 마약을 판매해왔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배달하던 물건들 중에 마약이 있다는 걸 알고나서, 몇차례 빼돌려서 판매 한걸로 보입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다가 살해된듯해서 강력팀이 사건을 맡았습니다. 약 4개월의 추적 끝에 범인들을 체포했구요."


"근데 지금와서 왜? 뭐가 문제야?"

"문형사님이, 살해 당한 배달원이 거래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약 매매 혹은 매수와 관련된 십여명을 더 구속 시켰는데, 그때 조사 받았던 한 업체를 아직까지도 많이 의심스러워하십니다. 거기에서 마약을 제조해서, 수제 초콜렛으로 둔갑시켜 유통시키는 것 같다는데, 심증 뿐입니다. 벌써 두차례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셨다가, 거절 당했습니다."

"의심하는 이유는?"


"배달원의 자취방에서, 그 회사 상품이 여러개가 나왔고, 최근 1년 반 동안 그 한 곳에서의 배달 주문이 유독 많았다는 것, 상점 없이 온라인으로만 주문해서 구매하는 형태인데다가, 고객의 요구대로 특별 제작하고, 가격대가 많이 비싸고 생산량이 한정되어있는데도 특정인들이 반복적으로 구매한다, 뭐 그런... 제가 보기에는, 그냥 유명세를 타는 맛집이 가진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사장이 벨기에 출신이라 가격은 많이 부풀려졌을수도 있구요. 검찰에서도 수상한 점이 없으니까 영장을 거부했을겁니다."


"검찰 입장은, 자네가 대변 할 일이 아니지. 담당 검사가 누구야?"

"서울 지검 형사 3부, 장승주 검사입니다."

"서울 지검 형사 3부... 아버님 직속이네? 그래서 전화 한통도 안 해봤나?"

"...."


"이 팀장,"

석호가 재빨리 둘러댄다.

"아닙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제가 보기에도 영장이 나올만한 사안이 아니라서.."

"석호야."

서장이 나지막히 부른다. 이석호가 고개를 숙인다.

"...예."


"공과 사는 이럴때 구분해야지. 아버지 신세지기 싫다고 팀원들이 하는 일을 손 놓고 구경만 하나? 전화 한통 해 주는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문 형사 혼자 매달리는 것 보다 팀장인 자네가 나서서 수고 좀 덜어줘야지. 리더는 앞에서만 잡아 끄는게 아니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줄 때도 있어야 하는 거야. 검찰 편에 서서 영장 안 나옵니다.. 그건 아니지."


"하지만, 수사관의 직감만 믿고 영장을 발부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또... 그건 검찰 생각이고, 자네는 경찰이야. 현장에서 직접 수사하는 사람. 검찰청 책상에 앉아서 보는 거랑은 많이 달라... 이 팀장, 너, 진짜 형사가 되기 위해서 꼭 받아야하는 두 가지가 뭔지 알아?"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서장이 미소짓는다.


"첫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하고, 둘째는... 신내림이야."

"예?"

"이세상 범죄는, 자네들같이 책만 봐서는 풀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문종태는 말이야, 신기, 똘기, 오기를 다 가진 놈이야. 강력계 30년이면 무당보다 촉이 좋지. 그냥 믿어. 괜찮아, 믿어도 돼. 자네 팀이잖아. 그래야 그 사람들도 자네를 믿지."

석호는 착찹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다. 눈앞의 전화기를 바라만 본다.




3.2. 사무실


시환과 마주앉은 중년 여성. 편안한 옷차림에 밑창이 두꺼운 검정 운동화... 별다른 특이 점은 없다. 지율이 물 한컵을 가져온다. 여자가 목례를 한다. 의자를 끌어당겨 조금 떨어진 곳으로 앉는다.


"그래서, 어머니랑 재혼하신 분이 수상하다, 그거죠? 어머니를 겁주려고 벌이는 자작극이다..?"

뭔가 어색한 시환. 웃음기 하나 없이 부자연스럽다.

"누가봐도 그렇죠. 나이 차이도 그렇고, 어떤 남자가 대여섯살도 아니고 스무살이나 많은 여자를 좋아해요? 최근에는, 터키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오겠다고 비자 서류를 해달래요. 처음부터 그럴 속셈이었겠죠. 지 가족 다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 엄마는 쫒아내고 지가 다 차지하려고.."


"애들 엄마도 같이 온대요?"

"아뇨, 여자는 작년에 죽었대나 봐요, 암으로.. 아니, 엄마가 죽었으면 할머니랑 살면되지, 왜 한참 전에 이혼한 아빠한테 와요? 그것도 이렇게 먼 한국까지? 다, 지 자식들 한국 국적 줄려고 우리 엄마를 이용한 거에요. 형사님 생각에도 그런 것 같죠?"

시환이 별대꾸 없이 모니터만 들여다 본다. 여자가 다시 설득에 나선다.


"그 사람이 처음에 방 계약하고 들어왔을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고, 엄마 눈에 들려고 열심히 하더래요. 자꾸 그러니까 고마워서 방값도 깎아주고, 반찬도 좀 주고 했더니 호의를 오해 한거죠. 어느날 갑자기 같이 산다고 하는데, 제가 너무 놀라서.. 친척들도 다 말리고, 난리였어요."

"따님이 반대하신 이유는요?"

지율이 물었다.


"반대 안 할 자식이 어디있어요? 아버지도 아니고, 엄마가 재혼 하는 거, 다들 싫잖아요. 남들 보기에도 이상하고, 게다가 그 남자는 외국 사람이고, 그 나이에 편하게 살지, 재혼을 뭐하러 해요? 월세 잘 들어올텐데 그거면 됐지.."

"재산 때문인가요?"

"아니요, 어머, 그런거 아니구요, 남들 눈도 있고.. 젊은 남자 만나 사네 어쩌네... 사위도 있고, 손녀도 있는데.. 좀 그렇잖아요. 재혼하고 나서는 애데리고 놀러 가기도 꺼려져요."


"어제 저랑 통화 하실때, 혼인 무효 소송이나 사기 결혼 같은 거, 궁금하다고 하셨죠?"

"예, 맞아요, 아무래도 그 사람이 거짓말로 다 꼬득인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결혼 취소하고, 그 사람 추방 시킬 수 있는지, 제일 잘 아실테니까 여쭈어 볼려구요."

"어머니랑 결혼하신 분인데, 왜요? 그 분, 이제 한국 국적 아니에요?"

"쫒겨가면 국적도 반납해야죠. 애들도 못 들어오게 하고.."


"어머니 재산이 그쪽 아이들한테 갈까봐요?"

"법적인게 그렇다는데, 설마요, 정말 그럴까요? 그래도 제가 친 딸인데.. 그 건물도,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어머니한테 주신거에요. 그러면 저도 상속권이 있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현 남편에게만 소유권을 주거나, 두 분이 나눠야한다면, 소송 하셔야죠. 그냥 놔두면 정말로 그분 자식들에게 일부 넘어갈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의자 뒤로 몸을 빼며 지율을 쳐다보는 시환. 망설임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지율.

"걱정 안하셔도 되요. 어머니 재산 없어요."

"예?"

"저희도 어제 알게 된건데, 1층에 있는 카페요, 그 분이 사셨대요, 7개월 전에... 모르셨죠?"

"그걸 팔았어요..?"

"두 분이 별로 안 친하신가봐요, 그런 중요한 일을 상의도 없이 진행하시게.."


"세상에... 그거, 다 그 남자가 시킨거죠? 그 돈 가져다 뭐 할려고? 어머머, 우리 엄마 미쳤나봐..."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율이 한마디 하려는 걸 시환이 나선다.

"아니요, 안 미치셨어요. 건물이 오래되어서 누수도 많고, 여기저기 수리 할 게 많았는데, 지금 살고 계신 빌라에서 대출 받아다가 수리 먼저 하고, 대출금을 못 갚으셨대요. 집을 날리게 생겨서 건물을 팔기로 했는데, 건물에도 대출이 남아 있어서, 모자라는 돈을 남편 분이 메꿔주셨어요. 전혀 모르셨어요? 건물이고 집이고, 이제 따님 지분 없어요."


"아니, 이게 무슨... 잠깐 엄마한테 전화 좀 해 볼께요,"

여자가 전화기를 꺼낸다. 말리는 지율.

"아뇨, 여기서 말고, 전화는 나가서 하시구요, 전화만 하지말고 가는 길에 집에 들르세요. 어머니 많이 편찮으시다는데, 언제 가봤어요?"

대답이 없다.

"집안에 당뇨 있죠? 엄마 쪽으로 많으신가봐요? 딸들한테 쭈욱...? 젊으신데 벌써 심해요?"

"예...?"


"약 잘 드시나 물어보고, 신고 계신 그런 신발, 좋은거면 하나 사다 드려요. 외출도 잘 못하신대요."

여자가 자기 신발을 내려다 본다.. 답답해진 지율이 셔츠 깃을 펄럭인다.. 덥다...

"아, 진짜... 얘기 안 할라 그랬는데... 아주머니! 아까 아침에 어머니가 전화 하셨어요. 자기 딸이 조사받으러 온다 그랬는데, 그동안 신고 들어온 거 다 없던 일로 해달라고. 그런데 자료를 뒤져 보니까, 지금까지 총 17건 신고 들어 온 것 중에, 어머니나 재혼 하신 분이 신고하신 건 한 건도 없어요. 전부 거기 사는 사람들이나 동네분들이 하셨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시환이 처음으로 눈을 들어 여자를 쳐다본다. 긴장한 얼굴, 알듯 말듯, 불안한 표정의 여자.

"따님 조사 받으면 안된다고, 그 기록들 다 지워달래요. 자기가 고시원 주인이고 당사자니까, 없던걸로 하자고... 그동안, 따님이 범인인거 다 알고 계셨을 거에요."

그제서야 입을 꼭 다물고 시선을 피하는 여자. 입이 마르는지 꿀꺽, 침을 삼킨다.

"불량 청소년도 아니고, 그런 장난을 왜 합니까, 애도 키우시는 분이?"


시환이 일어나 책상을 정리한다.

"가세요, 어머니한테 들러서 사과 하시고, 가족들끼리 잘 알아서 해결하세요. 저희도 사건 종결 할께요."

"그럼 처벌은, 어떻게 되나요? 벌금형 인가요?"

여자가 묻는다. 시환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피해자가 종결 하신다잖아요. 어머니께 직접 보상하세요. 전 몰라요."


여자가 서둘러 일어나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선다.

"가볼께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씀, 가셔서 직접 해요! 싹싹 빌어요! ... 아, 짜증나.."

지율이 의자를 빙글 돌리며 머리를 기댄다. 건진 것 하나 없이, 허무하다.


"기분 풀어요, 별 일 아니라 다행이잖아요."

시환이 위로한다. 어느새 사라졌던 미소가 돌아왔다.

"이런 걸 줄 알았으면, 아까 문 형사님이나 따라 갈 걸... 시간 낭비, 힘 낭비..."

"파트너 두고 어딜 혼자 가요? 낭비를 해도 같이 해야지. 소독 해야죠? 제가 해 드려요?"

서랍에서 약통을 꺼낸다.

"아뇨, 주세요, 제가 할게요... 시환씨 좀 쉬어요, 성질 날텐데.."


"성질 안 나요, 기분 좋은데요."

"뭐가 좋아요? 건진 게 하나도 없는데?"

"좋죠, 뭔가 따듯한 가족의 모습을 본 거 같아서 좋고, 선배님 치고받고 어디 깨지지 않아서 좋고.."

"와아.. 나랑 보는게 완전 다르네.. 나는, 정말 추한 꼴을 본 것 같은데.. 치고받고 스트레스도 못 풀고.."

"세상을 좀... 예쁘게 봐요. 아직 살만해요."

지율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상처에 약을 바른다. 어느새 옆에서 새 반창고를 준비하는 시환.


"병원이 1시죠? 점심 먹어야 되는데... 뭐 드실래요?"

"시리얼?"

"에이, 또.. 밥 먹는거 연습하기로 했잖아요. 다른 거 없어요?"

".... 아이스크림 ...?"

"아우, 진짜..... 콜!"


시환의 눈웃음에 짜증도 다 잊었다. 약통을 정리한다. 지율의 가방과 자켓을 챙겨들고 일어선다. 한쪽 팔을 내민다.

"잡을래요?"

"아니, 괜찮아요. 가요."

장난스럽게 문을 열어주며 호텔 벨보이처럼 인사하는 시환. 지율의 뒤를 따라나간다.




3.4 출동

자동차 안, 뒷자리 젊은 순경 둘은 아직 얼떨떨한 채로 실려가고 있다.

"문 형사님, 저희는 뭘 하죠?"

"그냥 근엄하게 서 있으면 돼. 나랑 차형사가 다 알아서 할거야."

"근데 이거, 명령도 없이 이렇게 막 가도 되는 건가요?"

"안되지. 안되니까 자기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라고. 나중에 문제 안 생기게."

"알겠습니다."

"오바타임은 내가 주는 거야.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다."

"예..."


/...백오십 미터 전방, 소방서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입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진다. 차은석이 묻는다.

"이 팀장 온대요?"

"몰라, 안물어봤어. 길게 해봤자 같은 소리 계속 할거고.. 오던지, 말던지.."

"살살해요, 영장 없어요."

"흐흐흐... 야, 네가 말하니까 꼭 '연장 없어요'.. 로 들린다."

"장난하지 말고."

"알았어, 나야 항상 살살하지.. 살살 안하는 놈들이 문제지."


은석이 창밖을 본다. 계산을 해 본다. 아이들이 있다면 학교 갔을 시간, 어른들이 있다면 몇명일까. 규모가 작은 수공업이니까 아마 별일 없을거다.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비디오에서 사장이 한국말을 꽤 잘 했다. 통역은 필요 없을것 같고, 있다해도 유럽 사람이니까 기본 영어는 되겠지..


룸미러로 뒷자리를 살핀다. 이제 막 순경 생활을 시작한 어린 애들 둘... 바짝 긴장한 얼굴이 전혀 경찰 같지 않다. 어이가 없다. 저런 애들을 뭐에다 쓸려고 데리고 왔을까.. 잘못되면 쟤들부터 징계감이다. 그냥 둘만 올 걸..


"뒤에, 괜찮아요? 긴장 풀고.."

"괜찮습니다."

"얼굴에 다 보여요. 그래서 어디 범인이 무서워하겠어요? 경찰이 더 쫄았네."

"아닙니다."

"다 왔어요. 두 사람은 문 밖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요. 아무것도 안해도 되요, 알았죠?"

"예."

"이번 일은 비공식적인 거니까, 절대 다치지 말고, 끼어들지 말고... 만약에 어디 문제 생기면, 문형사님한테 청구하고.."


종태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차은석이 많이 컸다, 애들 걱정 할 줄도 알고.."

"애들도, 정도껏 애들이어야지.. 그러길래 왜 데려왔어요? 그것도 퇴근하는 애들을?"

"경찰 제복을 보여줘야 기선 제압을 하지. 애들 어리다고 옷만 빌려다 걸어둘수는 없잖아."

"형님도 참 4차원이에요. 차라리 류시환이라도 데려오죠?"

"걔는 이런일에는 쓸모 없어."


은혜로 48-9... 도착이다.

<유로피안 베스트 / 벨기에 수제 초콜렛>

차례로 내린다. 순경 둘이 지시받은대로 대문 양쪽으로 하나씩 나누어 선다. 문 틈으로 안쪽을 살핀다. 조용하다. 은석이 벨을 누른다.

/띵똥.../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종태가 시계를 본다.

"시작합니다, 이석호 팀장님... 사십오분 드립니다. 충분하시겠지요... 뭐라도 들고 오던가, 아니면 이대로 나랑 갈라 서던가..."

철커덩...

문이 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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