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3화. 곰 세마리 4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 다들 행복했을까

by 신소운

4.1 원주 S 대학 병원


지율의 아버지. 예전의 그 당당하던 풍채는 흔적도 없고, 바짝 마른 팔다리로 구부정히 누웠다. 움직이지 않아 굳어가는 뼈마디에 이쪽저쪽 돌려 눕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코에 꽂은 호스로 숨쉬고, 밥 먹고, 약 들어가고... 움푹 패인 눈만 살아 아직도 그렁그렁하다. 침대에 손을 얹고 바짝 당겨 앉은 지율. 원망도 하소연도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질문을 묻고 또 묻는다.


"아빠는 다 알지? 나한테만 말 안하고, 큰 오빠랑 아빠는 뭔가 알고 있잖아. 왜 갑자기 원주로 내려왔어? 정년퇴직도 아니고.. 죽을때까지 경찰 할 것 같더니, 왜 엄마 죽인 놈 끝까지 안 잡고 포기해? 나 보고 잡으라고? 그럼 단서라도 줘야지. 나 없는 동안 뭐라도 알아봤을거 아냐. 큰 오빠는 왜 원주까지 데려왔어? 서울에서 일 잘 하고 있던 사람이, 이런 작은 동네에서 희생, 봉사, 뭐 그딴거 하겠대? 안 어울려.. 둘이 같이 사는 것도 이상해. 그런 적 없었잖아."


아버지는 눈만 껌뻑 거릴 뿐, 짦은 호흡도 힘겹다. 호흡기에 차오르다 사라지고, 또 차오르다 사라지는 입김.. 마르다 못해 갈라지고 터진 입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길 바래보지만, 역부족이다. 고통스러울까... 멀쩡한 정신에 서서히 굳어가는 몸... 본인이 죽어간다는 걸 잘 알고 있을 아버지.. 차라리 치매는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천진난만하게 걷다보면 어느새 종착역인거다. 치매없이 몸만 망가진 아버지는, 운동 좋아하고 힘 세던 지율의 아버지는, 이제 혼자 힘으로 팔 한쪽도 들지 못하는 임종 환자가 되었다.


"담배 끊으랬잖아. 엄마 죽었다고 담배는 왜 피워대서 이 모양이야. 나랑은 얼마 살지도 않아놓고.. 또 혼자 두고 갈라고?"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빨갛게 충혈된 흰자위가 또 그새 눈물을 가득 담았다. 듬성듬성한 눈썹을 헤치고, 깊은 주름을 타고, 검게 죽어가는 피부를 미끄러져, 눈물이 흐른다. 아마 그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분명, 미안해... 라고 했을거다. 아니면 예전 꼬마때처럼, 우리 딸 사랑해... 했을지도 모른다. 들어본지 너무 오래된 말이라 감정도, 느낌도 잊었지만, 한쪽에 엄마를 안고, 다른 한쪽 팔로 어린 지율을 번쩍 안아들던 그때의 모습을, 벽걸이 사진처럼 또렷하게 기억한다.


"울지마. 봐봐, 난 안 울잖아. 안 울거야. 할 일이 아직 남아서... 알지? 울 시간도 없어."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다. 울고 있을 시간에 범인이나 잡아라.. 눈물 한방울에 한 발자국씩, 그놈은 멀어져간다.. 넋 놓고 우는 순간, 놈은 자유가 된다...

"왔어?"

창률이다. 큰 오빠... 타이틀만 큰 오빠지, 집안에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썩어빠진 놈팽이...


"아버지 좋아보이시네. 오늘은 눈도 뜨고 있고.."

"약을 많이 줄였어. 간이랑 신장이랑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힘드시겠지만, 자력으로 버티셔야지."

네 눈에는 저 사람이... 버틸 힘이 있어 보이냐? 정말 할 말 없게 한다. 공부만 잘 해서 된 의사, 환자와 환자 가족은 뒷전이지. 니 아버지가 환자여도, 이거밖에 안되는 구나.. 지율은 가슴 속으로 온갖 불쾌함이 차올랐다. 창률이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낸다.


"이거 가져가. 공증 서류야. 아버지 유산에서 내 몫은 상속 포기한다고.. 전부 네가 갖는거야. 얼마 되지는 않아. 한동안 일 없이 연금으로만 사셨어."

"왜 내가 다 가져? 모신 사람이 더 가져야지."

"모신다고 생각한적 없어. 아버지가 나 챙겨주러 내려와 계셨지. 지금 사는 집은 내가 아버지한테 샀어. 그것만 가질께. 알지? 예전에 할머니 사시던 집.. 그것만 있으면 돼."


지율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버려져 있던 버섯 농장을 리모델링을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편안한 서울 아파트를 정리하고, 그 돈으로 비닐하우스를 싹 밀어내고 전원주택을 지었다. 대단히 크고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산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고, 이웃도 없다. 집보다 넒은 콘크리트 마당도 시골과는 안 어울린다. 아버지의 소원이, 지율이 돌아오면 다같이 모여 바베큐 파티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한번도 이루지 못했다. 올 사람도, 오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출퇴근 멀잖아."

"괜찮아. 사람 없는 데가 좋아. 귀찮어."

그래, 저 인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좋아한다... 서류를 들고 일어선다. 올라갈 준비를 한다. 아버지에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너한테 항상 미안했어."

"뭐가?"

"전부 다.. 내가, 네 걸,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아."

"기억 안 나. 하나도..."


"나에 대한 기억은 돌아왔니? 엄마, 아빠.. 시율이...?"

"없어.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큰오빠 너... 너에 대한 건 좋은 기억은 정말 하나도 없어."

"그때, 너 많이 어렸어. 네가 기억하는 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네가 훨씬 많아. 난, 너 태어나던 그날부터 다 기억해. 우리,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다고? 그럼 해명 좀 해봐. 왜 나한테 다 잊으라고 했어? 기억하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고 그랬잖아. 병원에서, 공항에서.. 돌아오면... 죽인다고 했잖아."

"오래전 일이야. 네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어. 나중에 다 알게 될거야, 아직은 시간이 좀 필요해."


눈을 꼭 감아버리는 아버지.. 호흡기에 찬 입김만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숨이 가빠진다. 한쪽 손을 들어 올리려 애쓴다. 늘 이런식이었다. 아버지는, 큰 오빠가 코너에 몰릴때 마다 편을 들었다... 지율이 인사 대신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나선다. 서서히 눈을 뜨는 아버지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거즈로 닦아준다. 서랍에서 손톱깎기를 꺼내 침대에 걸터앉는다. 햇빛을 등지고 앉은 창률이 아버지 손톱을 깎는다. 찰칵, 찰칵, 찰칵... 잠깐씩 멈추기를 여러번... 결국은 고개를 떨구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죄송해요, 아버지... 다 저 때문에..."

어른답지않은 커다란 흐느낌... 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 잘 펴지지도 않는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창률의 손을 어루만진다.




4.2 엄마 찾기


"류 형사님, 혼자 당직이십니까? 아무도 없네요?"

안내 데스크의 이찬호 순경이다. 퇴근길인 듯,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좋은 일 있어요? 데이트 가나?"

"아닙니다, 집에 갑니다. 이거 전해 드리려구요, 아까 아무도 안계셔서.. 다들 안 들어오세요?"

"강 형사님은 병원 갔다가 내일까지 쉬구요, 다른 분들은 오실 때 되었는데 안 오시네요. 뭐에요?"


"여청과에서 왔습니다. 담당자 연락처 여기 밑에 있구요, 실종자를 찾고 있는데, 한국 국적의 필리핀 여성이랍니다. 8살 남자 아이가 있는 주부인데, 처음에는 아이 학교에서 아동 방임으로 신고가 들어왔구요, 여청에서 알아보니, 아이 엄마가 행불인 것 같답니다."

"아이는 지금 어디있어요?"

"친할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사는데, 둘 다 건강이 안좋습니다. 그래도 센터에 갈 필요는 없어보여서 집에 머물게 하고, 재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볼께요. 퇴근... 잘해요. 부럽다, 집에도 가고.."


이 순경이 경례를 한다. 시환이 웃으면 같이 경례한다.

"왜 이래요, 부담스럽게? 얼른 가요."

비슷한 나이 일거다. 계급만 아니면, 좀 더 편안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찬호가 주고 간 폴더를 펼친다. 여자 사진, 아이 사진.. 청파 초등학교 2학년, 김하운... 눈이 맑고 둥근게 전형적인 필리핀계 혼혈 아이의 얼굴이다. 고놈, 귀엽게 생겼네...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이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시간을 본다. 아직 밥 때까지 한참 남았다. 집으로 방문을 해 볼까.. 팀원들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일어선다.


/30대 필리핀 여성 행불 접수, 청파로 47-가, 가정방문/




4.3 초콜렛

"무슨 일이세요?"

문이 열리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젊은 여성 - 산달이 가까워보이는 임산부다.

"아이고, 좋은 일이 있으시네요. 예정일이 언제에요?"

종태가 경찰 배지를 내어 보이며 들어선다. 여자는 별 의심없이 옆으로 비켜서준다.

"아직 2주 남았어요."

"힘드시죠? 저도 애아빠 입니다. 와이프가 고생하는 걸 봐서요.. "

"예... 근데 무슨 일로..?"

"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장사 잘 되시죠? 주문 많구요?"

"예, 큰 회사 같은데서 대량 주문도 들어오구요, 잘 되요..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작업실에 있는데.."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자가 거실 소파를 가리키며, 지하 계단으로 내려간다.

"앉아서 잠깐 기다리세요, 나오라고 할께요."

종태와 은석이 선채로 빠르게 집안을 둘러본다. 가족 사진, 꽃 화분, 막 구입한 듯한 아기 욕조, 건조대에 걸려있는 신생아 옷가지들... 닫혀있는 방문 세개에 화장실, 거실에 비해 큰 티비와 장식장, 그 안을 가득 채운 양주... 여러 나라 국기가 그려진 술잔 세트... 애주가인것 같다...

"일단 집 안에 들어오는 건 무사 통과, 이제 작업실로 들어가야 되는데..."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난다. 남자가 부인을 부축하며 나타난다. 홈페이지에서 봤던 사진과 똑같이 생긴 얼굴... 검정색 요리 모자를 썼다. 종태를 보고 모자를 벗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게이브 입니다."

모자에 눌렸던 곱슬거리는 금발이 이마로 흘러내린다. 뺨이 조금 상기되었다 - 초콜렛 제조 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긴장해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다.


"안녕하십니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근처에 다른 일로 왔다가 여기 계신게 생각이 나서요. 용산 경찰서 문종태 입니다. 이쪽은 차은석.. 비지니스 잘 되시죠?"

"잘 되요, 바쁘고 좋습니다."

게이브가 밝게 웃으며 답한다. 선한 인상은 선입견이다. 모든 백인이 천사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종태는 머리속으로 타일렀다.


"저희가, 사장님 상품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혹시 샘플을 몇개 가져갈 수 있을까요? 파셔도 좋구요, 골고루, 이것저것...다..."

"구매는 온라인에서 해요. 여기 왔으면, 샘플 가져가는 거죠?"

"잘 아시네요.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나요?"

"가끔, 샘플 보내라는 사람들 있어요. 안 보내요. 저희 초콜렛, 고급이에요, 최고... 많이 비싸요."


"아래층에서 작업 하시나봐요.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경찰이니까, 특별히, 들어가요. 다른 사람은 안 들어가요. 더러운 거, 먼지 나요."

생각보다 쉽게 허락한다. 계단을 내려가 비닐 모자와 장갑을 주며 당부한다.

"원래, 비닐 옷 입는데, 잠깐이니까.. 뭐 안 만지고 그냥 눈으로 봐요. 알았죠?"


"저희가 비닐 좀 써야해서요, 충분히 가져왔어요..."

종태가 증거 수집용 작은 비닐들을 꺼내 보여준다. 게이브의 표정을 살피는 은석. 예상했다는 듯, 변화가 없다.

"몇개씩, 그냥 랜덤으로 담아도 되요?"

"많이는 안되요. 주문했어요. 오늘 택배 가요."

"오케이, 조금씩만 담을께요."


작업실로 들어선다. 햇빛이 들지 않는 길쭉한 방에 전등만 켰다. 재료별로,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는 수십개의 상자... 한두개 샘플만으로는 어림없다. 눈에 보이는 초콜렛 몇개를 대충 담고, 각자 흩어져 둘러본다. 게이브가 한걸음 떨어져 지켜본다.


종태가 작업대 위에 올려진 컨테이너에서 서로 다른 몇가지 가루들을 한 수저씩 옮겨 담았다. 모래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진득하니 무거운 느낌도 난다. 모양 만드는 둥근 금속판 가장자리에 남은 작은 덩어리를 긁어 모았다. 중탕을 하고 남은 초코렛 찌꺼기도 잊지 않는다. 은석은 데코레이션에 사용하는 사탕 가루를 담는 척하면서, 줄곧 게이브를 살핀다. 저 표정... 느낌이 온다... 헛탕이다..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젠장... 포장 용기와 사은품까지 수거하고 나서야 게이브에게 다가간다.


"협조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수월했습니다.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거, 여기서 제일 큰 거에요, 종류별로 하나씩 다... 경찰서 가서 같이 드세요."

성인 한쪽 팔 만한, 초대형 선물 세트다. 옛다, 엿 먹어라... 그렇게 들리지만, 태연한 척 인사를 한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서장님께 먼저 보여 드리고, 대신 홍보 잘 하겠습니다. 명함이랑 브로셔 있으면 몇장 부탁 할까요?"


게이브가 책상 쪽으로 걸어가는 사이, 쓰레기통에 벗어 놓은 비닐 장갑을 집어든다. 데코 할때 쓰는 주사기도 몇개 건졌다. 어느새 큰 종이 박스 두개 반 분량을 수집한 두 사람. 명함과 브로셔까지 쑤셔넣고 대문을 나선다. 만삭의 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라 나선다. 게이브가 어깨를 안으며 안심시킨다.

"괜찮아요, 전에도 했었잖아, 걱정마."

부인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는 모습을 훔쳐보며 트렁크에 짐을 싣는다.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의심을 풀지 않는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때는 미리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그때는, 영장 가지고 와요. 아니면 못 들어와요."

게이브가 미소 짓는다. 진짜로 웃는지, 억지로 웃는지... 농담인지 협박인지 모르겠다... 그래, 거기... 너, 뭔가 있다... 종태도 여유있게 손을 흔들며 웃어보인다.


두 사람이 들어가고 차를 돌린다. 그제서야 마음을 놓는 신입 순경들.

"휴.. 별일 없는거죠?"

"일이라는 건 말이야, 적당히 별일이 있어야 아무일 없는거야. 너무 별일이 없으면, 오히려 수상해."

종태의 말에 동의 하는지, 은석은 아무 말 없이 길을 찾는다. 골목을 나서기도 전에, 맞은 편에서 멈추는 하얀 차 - 석호다.

"벌써 끝나신 겁니까?"

"팀장님이 직접 오셨네요, 그것도 시간 딱 맞춰서.. 제 선물 가져 오셨습니까?"


석호가 영장을 내민다.

"오호, 역시 능력 좋으시네요."

"이런거 시키지 마세요. 다음에는 정말 모른 척 합니다."

"팀장님이 한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생색을 내요? 서장님이 해줬잖아요? 아까 둘이 식사하고 있는거 다 알고 전화한건데."

황당해하는 석호, 애써 웃음을 참는 은석.


"그럼 처음부터 서장님께 부탁을 드리지, 왜 저한테 시키셨습니까?"

"테스트 한번 해 봤어요, 팀장님이 들고 뛰어오나 어쩌나.. 그게 모양새도 좋잖아요? 직속 상관이 이석호 팀장인데, 훅 건너뛰고 서장님한테 쪼르르 가면, 우리 팀 꼴이 뭐가 됩니까? 이 팀장 위신 세워 줄라고 일부러 그랬죠. 나는 실속 챙기고, 팀장님은 체면 차리고, 서장님은 어른 노릇 한번 확실히 하고."

머리 꼭대기에 있는 건, 머리카락 뿐 아니라... 경력, 연륜, 노련미, 뺀질거림... 농락... 이런거였다...

"압수는요? 순순히 내줍니까? 너무 쉽게 내준다는 건.."

"자신있다, 이거죠... 걸릴 것 없다.. 나도 그냥, 간 본거에요. 페이크요. 방심하게 하려고 일부러 밀리는 척 했어요. 바로 들어가서 애들 모아다가 압수 갑시다. 영장도 있는데."

"지금이요?"

"지금 해야죠. 방금 왔다 갔으니까, 살짝 안심했을 거에요. 부인이 만삭이니까 숨 좀 돌리게 하고, 지율이나 누구, 아니지, 그놈은 여자 일은 잘 못하지... 어디 친절한 여경 하나 같이 와서, 임산부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싹 들어내자구요."


"정말 뭐라도 나와야 합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자신은 팀장님 뱃속에 들은게 자신이고, 내 뱃속에는 그런거 없어요. 나는 확신만 먹고 삽니다."

종태가 밸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다.

"은석아, 애들 지하철에 내려주고 들어와. 난 이 팀장 차 타고 간다."

석호의 차에 오른다. 사라지는 은석... 석호는 뭐가뭔지 아직도 어리둥절 하지만, 종태가 시키는대로 경찰서로 향한다.


"정신없죠? 현장 일이 그래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어도, 나는 놈 아래 바짝 엎드려 살살 기어가면, 살기도 해요. 누가 마지막까지 남아 숨쉬는지... 그건 어느 한 놈 목 딸 때 까지 아무도 몰라요."

조수석에 앉아 메세지를 보내는 종태.

/영장 발부, 되는 놈 다 나온다, 15분. 주소 - 용산구.../


사거리 신호를 살피는 척, 힐끔, 종태를 본다. 신기, 똘기, 오기를 다 가진 놈이야... 서장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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