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숨은 그림 찾기 4
잃어버린 시간은 어디에 숨겼나
4.4.1 경찰서 안
총총 뛰어서 가볍게 위층으로 올라가는 진우. 터진 입술에 붙어있던 휴지 조각을 떼어낸다. 계단 중간에서 다른 팀 두 형사와 마주친다. 진우의 몇 년 선배, 정 형사와 권 형사다.
"인제 끝났어? 고생했다. 뭐 좀 잡았냐?"
"아직 모릅니다. 먼저 들어왔습니다. 팀장님이 찾으셔서요."
"고생이다. 너네 일도 바쁜데 초짜들 돕느라.. 가봐. 우리도 인제 퇴근!"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인사하며 돌아서는 진우 뒤로,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가며 이야기한다.
"아까 쟤네 옷 입은거 봤어? 허벅지 다 내놓고.."
걸음을 멈추는 진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문신 몇개 진짜 야리꾸리 하더라. 근데, 살이 너무 없어서.. 난 가슴 없는 애들은 줘도 안땡겨. 여자가 좀.."
결국 못 참고 따지고 든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 아니, 아냐... 올라가, 일 있다며?"
한칸, 두칸.. 계단을 내려가며 화를 참아보는 강진우.
"잠복나간 동료를, 뭐라고 하셨냐구요?"
"아, 그냥.. 우리끼리 그냥 하는 얘기야.."
중재하려는 권 형사, 같이 발끈하는 정 형사...
"별것도 아닌 걸.. 야, 좀 피곤해서, 선배들이 농담 좀 했다, 왜?.. 이 자식 봐라? 한대 치려고?"
"한대만 칠 것 같습니까?"
"뭐?"
"성희롱에 명예훼손, 경찰 모욕.. 거기다 본인이 경찰... 이거 명백한 경찰예절규정 위반입니다."
"하? 그래? 해봐! 가서 질러! 보고해! 시말서 하나 쓰면 끝나! 후배라고 이뻐했더니 이게 지금..."
"협박입니까? 강요죄 추가합니다."
"이 새끼가 진짜.."
"왜들이래? 가! 야, 넌 올라가고, 넌 내려가.."
마침 계단 아래에서 나타나는 은석과 종태. 싸움에 끼어든다.
"새벽부터 뭐야? 다 큰것들이 잠투정이냐? 강진우! 몸 쓰는 놈들끼리는 싸우는거 아니랬지! 진짜 죽일거 아니면..."
"와, 미치겠다.. 형님들이 자꾸 잘한다잘한다 하니까, 이 새끼가 위아래가 없잖아요!"
"잠복나간 여자 동료 허벅지, 가슴 어쩌구 하는 게 선뱁니까?"
진우의 한마디에 순간 표정이 바뀌는 종태와 은석. 정 형사 쪽으로 다가서는 은석을 슬쩍 잡아 진정시키며, 종태가 나선다.
"우리 지율이... 잠복 나갔지.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거야. 너희들이 여기서 씨부렁 거리는 동안.. 진우야, 감봉 받으면 밥 사줄께. 한대 쳐라!"
바로 주먹을 날리는 진우. 계단 아래로 휘청거리며 내려서는 걸 은석이 놓치지 않고 발을 건다. 밑바닥까지 나뒹구는 정 형사.
"이 사람아, 조심해! 해 뜨면 서장님께 말씀드려, 계단이 너무 가파르다고... 이게 옛날 건물이라 위험하거든. 잘못하면 아가리가 박살 나.."
여전히 씩씩거리는 진우와 은석을 다독이며 올라간다.
바닥에 누워 끙끙거리는 정형사. 같이 있던 권 형사가 부축한다.
"말 조심 좀 해라, 하필 강진우를 건드냐? 또라이잖아. 살살 웃다가도 성범죄만 뜨면 눈 돌아가는 애를.."
"지금 성범죄라 그랬냐? 너까지 나를 지금..."
"아니 그게... 근데 솔직히 위험했지, 뭘? 입조심 하라 그랬지? 안그래도 요즘 경찰 도덕성이 어쩌네 저쩌네, 말도 많은데!"
혼자 털고 일어나 가버리는 권 형사. 바닥에 앉아 짜증을 내는 정 형사와 그에게 인사하는 척, 빙 돌아 비켜가는 당직 경찰.
4.4.2 VIP 룸
"왔다~! 안녕! 우리 알지? 비슷한 나이일 것 같은데? 친구하자!"
잔뜩 기대하고 들어간 VIP 룸에서 지율을 맞아주는 네명의 수다스러운 남자들... 조금씩 시들해져가는, 이제는 그다지 핫하지 않은, 초창기 아이돌 그룹이다. 근처에 스케줄이 있었는지, 짙은 화장에 악세사리까지 주렁주렁 하고 앉아있다.
'아니야, 이런 애들이 아닐건데..'
요즘 방송에는 좀 덜 나오더라도, 이미 대중에 알려졌다. 이런 곳에서 약을 할 일도, 그럴 이유도 없다.
"건이 생일이라서 왔어. 우리끼리 파티 할라고... 근데 요즘은 팀으로 나눠서 다니거든. 룸 잡아놓고 같이 놀 사람이 없네? 앉아. 몇 살이야? 스물.. 일곱? 여덟?"
이름이 주노..였나.. 예능에서 가끔 본 그가 소파를 가르킨다. 일단 들어온 거, 테이블 부터 카메라로 스캔한다. 겨우 맥주 몇병과 따지도 않은 양주 두병, 과일 한 접시.. 생수, 생 밤, 생 크림 케이크.. 아, 젠장... 중딩도 피운다는 담배 한 개피도 보이지 않는다...
"뭐 더 시킬까? 야, 긴장 풀어, 괜찮아. 우리 나쁜 짓 안해. 못 해, 인기 떨어져.."
그래... 그러니까 헛탕인거야...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왠 한숨...? 아, 너 혹시 데미안 팬이야? 걔 녹화갔어, 강휘랑... 어쩌냐? 오늘 못 오는데?"
방안을 살핀다. 한 가운데에 걸린 50인치는 되어보이는 CCTV 모니터... 20개의 화면이 열려있다. 입구 정면으로 들어오는 손님들, 바, 테이블, 무대, 맨 꼭대기 디제이 자리까지, 한눈에 보인다.
다른 맴버가 맥주를 건넨다. 이름이 뭐더라... 아, 얘가 생일이라는 건이..?
"화질 좋지? 아까부터 다 보고 있었어. 너 놓고 싸우던 남자 둘, 권투했나봐? 주먹이 그냥 팍! 팍!"
무시하고 전면 유리로 다가간다. 비스듬히 경사진게 밖에서 올려다 본 그대로다. 발 아래에 춤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취한 사람, 자는 사람... 잘 보고 고르라고 옆에 망원경도 세워놨다.. 건이가 따라왔다.
"이거는, 처음에는 신기한데, 생각보다 잘 안보여. 머리통만 보이잖아. 재미없어. 우리, 저쪽에 앉아서 티비로 보자."
어깨를 안는 그의 손을 휙! 잡아 비틀어 돌린다.
"아! 아! 항복! 미안해..! 아악! 뿌러져!! 진짜야, 아퍼!!"
손을 놔주는 지율. 건이 잡혔던 손목을 살살 돌리며 풀어준다.
"아, 근데... 왜 이렇게 아퍼.. 뭐야, 너? 힘이 장난 아닌데?"
"크크크... 호신술 했냐? 잘 봐라, 경찰 아닌가."
다른 멤버의 농담에 순간 멈칫하는 지율.. 조용해진 룸..
"...뭐야, 진짜 경찰이야? 에이, 설마.. 아니지?"
"..."
대답 대신 화장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다. 깨끗하다. 찍을 것도 없다... 이 방은, 정말 잘못 들어왔다.
"오호, 진짜 경찰인가봐? 유흥가 집중 단속, 뭐 그런거?"
"우와~~ 나 이런거 처음 당해봐! 사진 찍어도 되? 인스타 올리게.. 요?"
헛다리 짚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가득한 지율, 애꿎은 머리를 벅벅 긁는다. 몇시간째 가발을 쓰고있다. 덥다.. 간지럽다... 화난다... 그의 모습에 갑자기 긴장하는 맴버들.
"여기말고, 룸이 몇개나 더 있어요? 가본 적 있어요?"
서로 눈치보며 머뭇거리다 하나씩 입을 연다.
"...세개는 넘겠죠. 내가 들어가본 게.. 여기까지 그 정도쯤?"
"나도 셋은 가본 거 같은데... 넷.. 인가..?"
"난 둘.. 근데, 매니저한테 말하지 말아요, 요새 식단 관리해서, 몰래 왔어요.."
에라이... 누군가 밤을 한 알 던진다. 재빨리 받아서 입안에 넣는다. 지율이 묻는다.
"여기서 파는 초콜렛, 먹어본 사람? 있어요?"
"...식단 중이라니까요. 여기 봐봐요, 우린 맨날 과일하고 밤이에요. 그나마도 시켜놓고 잘 안 먹어요."
"어쩌다 한번씩 마른 안주 시키는데, 더럽게 비싸고.. 먹고 나서 냄새 나잖아요. 안 먹어요."
"여자들라도 오면 한두개 더 시키지.."
건이 팔꿈치로 툭 친다..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 지율을 슬쩍 본다.
"왜, 경찰이라며.. 솔직할라고.."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다음 질문을 한다.
"혹시, 여기서 술 마시고 나서, 평소보다 많이 취했거나,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았다거나, 아니면 기억이 끊기거나 한 적 있어요? 그런 사람을 봤거나.."
"... 저희는..."
주노가 말한다. 그래, 얘가 아마 리더였던 것 같다..
"사진 찍힐까봐 이런데서는 많이 못 마셔요. 멤버들 집으로 가면, 그때 한번씩..."
"근데요..."
노란 형광 바지를 입은 멤버가 망설이다 입을 연다. 귀를 쫑긋 세우는 지율..
"화면 되게 잘 받으실 것 같아요. 우리 뮤비 기획 중인데, 카메라 테스트라도 한번..?"
"에이, 야, 경찰관이시라잖아."
지노가 막는다. 크게 심호흡을 하는 지율...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고개를 떨군다. 지친다...
"뭐 어때? 신기해서 금방 관심받을 거야. 멋있잖아? 비율이 딱 걸그룹인데..."
"미쳐가지고, 경찰한테 비율이 뭐니.. 죄송합니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요?"
지노가 다가온다.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흔들린다. 촛점없이 뿌얘진다.. 전면 유리벽이 빙빙 돌고 소리도 멀어지는 것 같다.. 눈을 비벼보려는데 팔을 올릴 수가 없다.. 혀끝까지 어눌해지면서 몸이 무겁다.. 어둠이다.. 무너진다...
"경찰관님? 누나? 정신차려요! 야! 야! 일어나!"
"갑자기 왜이래? 119 부를까?"
"미쳤어? 바로 뉴스에 나갈껄?"
"어떻게 좀 해봐! 매니저 형 어때? 금방 올텐데?"
"안돼, 회사에서 알게 되잖아.. 아직 숨은 쉬니까, 그냥 조용히 업고 나가자. 차까지만 가면.."
"그게 더 미쳤지. 그러다 들키면, 꼭 우리가 무슨 짓 한 거 같잖아.."
어쩔줄 모르고 입술을 뜯는 건이... 지율을 두드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지만 반응이 없다.
"안되겠다, 여기 오 실장님을 부르자. 상황 설명하고, 우리 먼저 다 나간 다음에 119 부르라 그래."
"그래, 그래, 그게 낫겠다.. 야, 짐 챙겨. 너는 빨리 오 실장님 불러. 여기 싹, 다 치워! 빨리, 빨리!"
쓰러진 지율을 소파에 눕혀놓고 앉았던 자리를 정리한다. 행여 그룹의 흔적이라도 하나 흘렸을까 테이블 아래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맴버들. 지노가 클럽 메니저 오 실장에게 메세지를 남기며, 차가운 물수건으로 지율의 팔과 손을 닦는다.
"실장님, 저 2층 룸에 지노에요.. 이거 확인하시면 바로 올라오세요. 아까 넣어주신 여자분이 쓰러졌어요. 의식이 없어요, 빨리요..."
4.4.3 비상
인적이 거의 끊긴 새벽 3시. 클럽 입구가 보이는 길 건너에서 시환이 잠복 중이다. 술에 취한 척, 바닥에 삐뚜름히 앉아 지원을 기다린다. 여전히 지율을 찾지도 못하고, 2층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석호가 답답하기만 하다. 오래지 않아 큰길에 정차하는 세대의 승합차. 조용하지만 빠르게, 은석이 내린다. 시환이 벌떡 일어난다.
"강 형사는 아직이에요?"
"팀장님이 찾고는 있다는데, 안될 것 같습니다. 그냥 밀고 들어가는게.."
종태가 앞장선다.
"당연하지, 수사관이 실종됐는데 뭘 기다려? 가자!"
그를 선두로 길을 건넌다. 승합차 석대에 이미 무전을 쳤을 입구 직원이, 열명 남짓의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다급하게 통화를 마무리 한다. 종태가 경찰 배지를 내민다.
"... 예, 알겠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무전을 끊은 남자가 종태에게 정중하게 인사한다.
"어서오십시오. 2층으로 오시랍니다."
"잘 생각하셨네. 쉽게 갑시다."
"이쪽입니다..."
절대 열리지 않을것만 같던 작은 철문이 드디어 열리고, 일행이 2층으로 향한다. 한줄로 서도 비좁은 비상구를 지나니 카페트가 깔린 넓은 통로가 나왔다. 누구와 마주쳐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바닥에만 콩알만한 조명등이 줄지어 깜빡인다. 굳게 닫힌 두어개의 문을 지나고 나서야 앞장선 직원이 멈춰선다. 막 문을 열려는데, 종태가 말을 꺼낸다.
"아참, 아래층에 저희 동료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올라오는 길을 못 찾은 것 같은데.."
"방금 전에 모셔왔습니다. 먼저 오신 분이 문제가 생겨서..."
"문제요?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를 업고 뛰어나오는 한 사람.
"문 형사님, 뒷일 부탁드립니다..."
이석호다. 빠른 속도로 어두운 복도를 따라 멀어진다. 종태가 소리친다.
"최경호! 따라가! 보고해!"
"예!"
"이해진, 지원 차량 요청하고, 인원 되는 대로 다 보내라 그래. 최은석은 2층 출입 통제하고, 여기있는 사람들 전부 임의 동행 간다. 류시환, 애들 둘 데리고 들어가서 싹 긁어 담아."
룸에서 나온 오 실장이 종태를 말린다.
"형사님, 아직 손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협조는 해드리겠지만, 시간을 좀 주셔야죠."
"영업 방해라서 안된다, 이겁니까? 저희한테는 공무 방해입니다. 이 영업장에 잠입했던 여자 경찰이 의식을 잃은채 발견되었습니다. 긴급 체포도 가능한 사안이에요."
"여기는 정말 VIP 들만 오시는 곳이라 각별히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영장 없으셔도 적극 협조를 해드릴테니까, 잠깐만 시간을 주시면 한팀씩 밖으로 모시고 나가..."
"공무 집행 중입니다. 항의하는 사람 전부 다 경찰서로 모신다고 전하세요. 제 발로 걸어 나갈겁니다. 먼저 시범을 한번 보여드릴까요?"
옆에 있는 VIP 룸으로 걸어가 쾅쾅쾅...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영업 종료합니다. 다 나오세요! 거부하시면 2차는 용산 경찰서로 모십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