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4화. 숨은 그림 찾기 3

잃어버린 시간은 어디에 숨겼나

by 신소운

4.3.1 클럽


그다지 크지 않은 클럽. 단골이 많다더니 셋의 하나는 외국인이다. 누가 약을 주고 받을까 지켜보는 팀원들.

"어차피 어두워서 화질이 좋지 않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겠죠?"

"그래야죠, 어쩌다 얻어 걸리면 더 좋고.."

음악 소리에 시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옆에 앉은 지율이 귀를 가까이 붙인다.

"뭐라구요?"


시환이 한팔로 지율을 끌어 당긴다. 무릎으로 올라앉힌다. 자연스럽게 올라가 시환의 목에 팔을 두르는 지율. 코 끝으로 달라붙은 두 사람. 눈에 확 띄는 밝은 색 가발을 쓴 지율의 귀에 대고 소리를 높힌다.

"들려요? 아무거라도 하나 얻어 걸리면 좋겠다구요!"

지율이 춤을 추는 척,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린다. 화장품 냄새가 진하다. 가짜 기브스를 낀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척, 촬영을 계속한다. 다정하게, 다른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시환이 그랬던 것 처럼, 그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이야기한다.


"약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인상착의랑 부킹 되는것까지는 찍힐거에요. 혹시 오늘내일 사건 생기면, 주변에 얼쩡거리던 사람들 몽타주는 건져요."

"웨이터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아직 다 못 찍었죠?"

"누가 누군지, 잘 안보여요. 디제이도 너무 멀고.."


이들과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은 석호와 진우. 두사람의 대화 내용을 알 리 없다.

"저것들이 지금, 일은 안하고... 형, 쟤네 너무 달라 붙은 거 아니에요? 대놓고 연애질인데?"

대답 없는 석호. 조금 불편하지만 태연한 척, 혹시 클럽 직원들이 눈치챌까 주변을 살핀다. 포개어 앉은 두 사람이 못마땅한 진우는 불만이 가득하다.

"저걸 찍어야되는데, 카메라가 없네.."


그때, 지율 뒤쪽의 테이블 세팅을 마친 웨이터가 빈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치우려는건지, 주문을 더 받으려는건지 알 수가 없다. 지율이 먼저 보고 기브스 한 팔을 슬그머니 내리며 시환의 가슴팍으로 카메라를 감춘다.

"하나 와요. 봤을까?"

지율을 보는 척 옆을 살피다 웨이터를 발견한 시환. 연인인 척, 그대로 당겨 안으며 키스한다. 가까이 오던 웨이터가 오다말고 방향을 바꾸어 옆으로 지난다. 황당함에, 의자 등받이로 기대며 할 말을 잃은 진우. 아무것도 못본척, 멀리로 시선을 돌리는 석호.


"갔어요? 눈치 못 챘죠?"

"그런것 같아요. 시작할까요? 준비됬어요?"

"만약에 다 했는데도 부킹 안들어오면 어쩌죠? 룸에 가야 되는데.."

지율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뽀뽀한다. 눈웃음은 보너스다.

"걱정 말아요. 선배가 제일 예뻐요."


다정히 웃으며 일어나는 두 사람. 손을 꼭 잡고 스테이지로 간다. 거친 음악과 상관없이 꼭 끌어안고 둘만의 시간을 즐기는 두 사람. 심기 불편한 채로 뒤따라 나온 진우가 시환의 어깨를 친다. 뒤돌아보는 사람들.

"너 뭐하냐? 일 하랬지 누가 내 여자 끼고 놀으래?"

진우가 멱살을 잡는다. 당황한 지율이 시환의 뒤로 숨는다.

"형... 여길 따라왔어? 근데 말이 심하네? 끼고 놀다니?"


"야, 너 이리 나와! 당당하면 숨지 말아야지!"

진우가 손을 뻗어 지율을 잡으려하자 시환이 그를 밀친다.

"왜 이래, 내 여자야, 형이나 손대지 마!"

"이것들이 언제부터! 야! 너 아까는 나 좋다면서? 아까 그 술값을 다 내게하고, 가짜 번호를 줘? 잡히면 각오해!"

"얼마나 한다고... 꺼져! 이게 형, 형, 해주니까.. 아주.."

둘의 몸싸움이 시작되고 무대는 난장판이 된다. 소리지르며 내려가는 여자들, 구경하는 남자들.. 뛰어 올라와 말리는 웨이터들.. 한걸음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석호가 슬쩍 자리를 옮겨가며 천장 가까이의 유리벽을 살핀다. 조명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저기쯤이 VIP 룸 일거다.. 화장실 가는 복도와는 반대로, 아마 사람이 많지 않은 쪽에 그들만의 통로가 있을거다. 어쩌면 입구부터 다를지도 모른다. 외부에서 바로 올라가는 비밀 통로라도 있을까.. 그정도 규모는 아닌데..


시끄러운 틈에 몇 발자국 더 이동해보려는데, 우당탕탕 무대에서 함께 뒹굴어 떨어지는 두 남자. 결국 직원들에게 질질 끌려 나간다.

"와, 이거! 야! 너 나가서 봐! 오늘 죽었어!"

"거기서 뭐하는 거야? 당장 경찰 불러! 저 자식이 날 먼저 쳤다고!"


꺼진 음악, 웅성이는 사람들.. 잠시 환하게 불이 켜진 무대에 혼자 덩그라니 서 있는 지율.. 사람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럽지만, 오히려 즐거운 듯, 도도하게 머리를 넘긴다. 검은 양복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 묻는다.

"손님, 괜찮으세요? 저분들하고 일행이십니까?"

"저 진상들이랑요? 아니에요, 아까 요 앞에서 1차하면서 잠깐 합석했어요. 그게 다에요. 아우, 정말.. 여기 수준이 왜 이래? 좀 되는 남자들 없어요? 짜증이야.."


"죄송합니다. 무대를 좀 치워야 해서요, 잠시 저희랑 같이 가 주시겠습니까?"

"싫어요, 내가 왜? 난 더 놀거에요. 저 사람들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모르는 사람들이라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술 이 좀 취하신것 같은데.."

"아니에요, 저 사람들이 취했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 잠깐 화장실만 갔다올테니까. 내 자리 치우지 말아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새걸로 다시 세팅해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놔둬요. 돈 내주는 사람들 다 쫒아내고 뭘 또 시키래? 남은거 먹을거에요."

묘한 여운을 남기고 돌아섰다. 뒷모습을 지켜보는 직원들... 한명이 손짓한다. 어린 직원이 꾸뻑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화장실로 숨어든 지율, 제일 먼저 칸칸이 열어보며 혹시 있을 피해자를 찾는다. 아무도 없다. 오늘은 헛탕인가.. 카메라 낀 손을 확인하고, 거울을 본다.. 일행인듯 들어오는 두 여자, 지율을 힐끔 보고는 말없이 화장을 고친다. 지율도 뭐라도 한마디 정보를 기대하며 기름 종이까지 꺼내들고 나란히 서 보지만, 여자들은 아무 관심없이 각자 할일만 하고 나간다. 가만히 거울을 보던 지율이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조금 더 진하게, 조금더 쉬워 보이게...


화장실 앞 복도에 나오다가 혹시나하며, 핸드폰을 확인한다. 아직도 실랑이 중인지, 아니면 경찰에 끌려가고 있는 중인지, 시환과 진우, 둘 다 소식이 없다. 갑자기 반대편에서 쓰윽 걸어오는 한 남자 - 석호다. 아는체 없이, 눈만 마주치고 지난다... 안심이다. 아직 그가 여기에 있다... 증거만 찾으면 되는데.. 모르는 사람처럼 지율을 지나쳐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석호.. 그도 분명 뭔가를 찾으러 갔을거다... 혼자 테이블로 돌아온 지율.. 그런데 그새 반쯤 치웠다. 어린 웨이터에게 화를 낸다.


"여기 제 자리라고요! 치우지 말랬잖아요? 더 놀겠다는데 왜 그래?"

"죄송합니다, 사람이 많을 시간이라... 혼자 계신 분들은, 빠 (bar) 쪽으로 자리를 드립니다."

"거기는 가방 놓을데도 없고, 여기까지 왔다갔다 불편해! 난 안가. 여기 있을거야!"

의자에 깊히 푹 들어가 앉으며 물병을 하나 집어든다. 정말로 목이 탄다... 버텨야한다... 벌컥벌컥 또 몇모금 마셨을때, 다른 직원이 가까이 온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직원이 일한지 얼마 안되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빠에 앉는게 싫으시면, 혹시, 술 친구 찾으시는 분이 계시는데, 올라가 보시겠습니까?"

올라간다... 기다리던 말이다...! 시치미 뚝 떼고 묻는다.

"올라가요? 여기 2층도 있어요?"

"일반인 분들은 못 가는 곳인데, 저희가 너무 죄송해서요.. 오늘은 특별히, 한번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잠깐 생각하는 척, 2층일 것 같은 곳을 올려다 보는 척... 둘러본다. 석호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지체할 틈이 없다. 의심하지 않도록 행동한다..

"어디로 가요? 물만 가져가면 되나? 그러게 왜 테이블을 치워서 귀찮게..."

물병을 챙겨든다. 직원이 안내한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외 출입금지>

비밀 통로다... 주방이 가까운지 약간의 음식 냄새가 난다. CCTV 하나 없는, 조용한 복도를 지난다. 끝에 붙은 작은 철문을 열자 뜬금없이 화려한 엘리베이터가 나오고, 지율은 직원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간다.




4.3.2 연행


번쩍번쩍 경광등이 돌고있는 경찰차 뒷자리에 수갑을 찬 시환과 진우가 나란히 앉아있다. 입구에서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경찰들. 말이 길어지는지, 메모까지 하며 끄덕끄덕 조사 아닌 조사를 한다.


"아까 다 얘기해놨는데, 뭐가 저렇게 오래 걸려? 빨리빨리 좀 하지."

"쟤들이 안놔주잖아. 친해지고 싶은가보지, 경찰하고... 돈 봉투 안찔러주나 잘 봐라."

"에이, 형은...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설마? 아, 그나저나 안에 선배 혼자 있는데.."

"이 팀장님 있잖아, 연락 하겠지."

담담한 진우의 말에 시환은 기가 막힌다.


"이 태도 뭐야? 언제는 친구처럼 지율아, 지율아, 엄청 챙기더니.. 어떤 놈이 안에 있는 줄 알고, 걱정 안돼?"

"그러는 너는, 선배님, 선배님 하던 놈이 잠복 들어가니까 바로 덮치냐?"

"뭘 덮쳐, 일 한거지? 그 사람이 가까이 오려고 하잖아, 카메라 들키면 안돼니까 그랬지."

"웃기지마, 너 속 다보여. 시커먼게 얼굴만 방글방글, 착한 척, 순진한 척.. 그걸 다 받아주는 지율이가 진짜 대단하다."

"왜 억지야.. 아, 그리고 아까, 형 진짜로 막 치더라? 나 얼굴 맞았어, 여기! 봐봐!"

"나야말로 아직도 피 떨어지는 거 안보여? 어디 선배를... 와, 진짜 너.. 끝나고 두고 보자."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전화 자꾸 오는데, 수갑이나 좀 풀어주던가..!! 아직도 할말이 남았어?"

고개를 쭉 빼고 기다리지만, 반응이 없다. 지쳐갈 무렵에서야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두 경찰.

"빨리 빨리 좀 와요! 누가 자꾸 전화 하는데, 못 받고 있잖아. 이거 풀어!"

"기다리십시오. 큰길 나가면 바로 풀겠습니다. 가자."


경찰차가 움직인다. 별 의심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클럽 직원들.. 끝까지 안 친한척 하느라 각자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길거리에 하나둘 쓰러져 자고있는 취객, 큰 소리로 통화하는 남자, 택시를 잡으려고 왔다갔다 휘청거리는 여자... 새벽 2시 반... 건전한 시민이라면 깊히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용산은 여전히 깨어있다. 경찰차가 멈춘다.

"이거 풀어줘요, 이석호 팀장 연락 온거 없어요?"

"없습니다."

수갑이 풀리자마자 핸드폰부터 확인한다. 지율도 석호도, 소식이 없다.


"어? 아, 이거.. 이 순경님, 지금 서로 들어가죠? 나 호출이야, 먼저 들어갈께."

진우가 시환을 바라본다. 역할극은 끝났다. 할 일은 한 거다.

"알았어, 나는.. 다시 돌아가서, 근처에서 잠복할께요. 여기서 내려주세요... 형 먼저 가."

"그래, 수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온 길을 따라서 다시 클럽으로 뛰어가는 시환. 연락없는 지율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잠복 중인 상황에서 함부로 문자를 보낼수도 없다. 저만치 클럽이 보이는 곳에 몸을 숨긴다. 석호에게 문자를 보낸다.

/선배는요? 별일 없어요?/

잠시 후, 석호에게 답이 온다.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다니요? 나갔나요?/

/모릅니다. 테이블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다급해진 시환이 전화를 걸려한다.

/기다려요. 15분만/

/오는데 15분 걸립니다. 요청합니다./


석호를 무시하고 전화를 걸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문종태다.

"어디야? 약 찾았다."

"나왔대요? 어디서요?"

"옷장에 있던 제습제... 언제 들어와?"

"선배를 놓쳤습니다. 지원요청 하려던 중 입니다."

"간다. 밖에서 기다려."


통화하는 중에도 문자가 계속 온다. 석호, 석호, 지율... ? 지율이다!

/먼저 자. 오빠들이 놀재. 2층 간다 메롱 ㅋㅋㅋ/

석호에게 문자로 알린다.

/2층 가셨답니다. 올라가십시오/

/계단이 안보여요.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젠장... 점점 속이 탄다. 어디일까... 촉이 지시하는 대로,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VIP가 도착한다면, 분명 주차장에서부터 뭔가 특별한 서비스가 있을거다... 문자를 보낸다. 급한 마음에 글이 짧아진다.

/주차장에서 바로 들어가는 길 찾는 중. 건물안 직원 전용이나 통행금지구역../

걸음을 멈춘다. 주차장에도 직원이 하나 서있다. 얼굴이라도 알아보면 못들어가게 할거다. 가로막고 서 있는 저 문이, 2층으로 가는 길일것 같은데.. 저 길로 지나갈 수 있는 건, 아마 VIP 손님, 클럽 매니저, 직업 여성... 그리고...? 석호에게 한번 더 문자를 보낸다


/주방에서 술안주 올라가는 길..?/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화. 숨은 그림 찾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