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숨은 그림 찾기 5

잃어버린 기억은 어디에 숨겼나

by 신소운

4.5.1 병원


응급실로 실려오는 지율, 여전히 의식이 없다. 뛰어오는 수간호사 이지영. 심박수를 체크한다.

"용산서 강지율 경위입니다. 얼마전에 와서 치료받은 적 있습니다. 기록 있을거에요.."

잔뜩 긴장한 석호가 옆에 섰다.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지영.

"문 형사님 전화 받았어요, 약물이라구요? 30분에서 한시간 이내에 구강으로 섭취하셨을 가능성이 크고,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신다는거죠?""

"예, 발작이나 고열같은 건 없었구요, 잠깐 기절 한 줄 알았는데 15분 이상 지나도 안 깨어나더랍니다. 별 이상 없겠죠?"


지영이 청진기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석호를 안심시킨다.

"... 체온, 호흡 다 정상이구요, 맥박은 좀 약한데 지장 없어요. 지금봐서는 일반 수면제 같아요. 한 선생님, 성분 사라지기 전에 얼른 채혈하시고, 위세척해서 넘겨주세요. 병실도 잡아주시구요, 없으면 특실에라도 넣어달래요. 문 형사님 부탁이에요."

"다른 증상은 없는 걸로 봐서, 마약 종류는 확실히 아니겠죠?"

석호를 바라본다. 아, 이 사람이 새로 왔다는 팀장인가 보다..


"예, 괜찮아보여요. 약 잘못 드시고 실려오시는 분들 계시는데, 딱 그정도에요. 그래도 결과 나올때까지 옆에 붙어 계세요. 그리고, 이 분, 보호자 연락하셨어요? 입원 수속 하셔야 되서.. 경찰분들은 위급하니까 먼저 해드리기는 하는데, 혹시 추가 검사가 필요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보호자 동의서가 필요해요."

보호자... 지율은 가족이 없다... 비상 연락처라고는 문종태와 오세영...

"이 친구는 가족이 없습니다.. 저희 팀원이구요, 제가... "

"아, 남자친구셨구나.."

제가 팀장입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었지만, 번복하지 않았다. 법적 보호자가 없으니, 대충 관련 인물이라고 이야기 해두기로 한다.

"그럼 일단, 가셔서 수속하시고.. 이분 신분증 가져가세요. 용산 경찰서라고 말씀하시고, 필요하면 나중에 서류 보안하신다고 하시구요. 응급실에서 오셨다고 하세요. 많이들 오셔서 잘 알아요."


지영이 당직 의사를 부르는 사이, 최 형사가 석호를 안심시킨다.

"천만 다행이에요. 운이 좋네.. 팀장님은 가서 수속하세요, 저는 다시 저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저는 강 형사 좀 더 지켜본 후에, 복귀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어차피 좀 있으면 아침인데요, 천천히 나오세요."

지율의 지갑을 챙겨들고 윗층으로 올라가는 석호를 보며 안도한다. 수간호사가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린다.


"...예, 응급실 이지영이에요. 지금 용산 경찰서 형사님 한분 올라가실건데, 필요한거 있으면 내일까지 내시라 그러고, 응급으로 입원 먼저 시켜주세요... 보호자 이름은 문종태.. 예,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고 경호와 눈이 마주친 지영. 고개를 까닥, 인사하며 아는체 한다.

"형수님, 이 친구 좀 잘, 부탁 드립니다. 형님이 많이 아끼는 후배에요."


"에이그, 그 인간이 안 아끼는 후배가 어디 있어요, 다 아낀대지.. 걱정마세요. 그동안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제일 양호해요."

경호가 멋쩍게 웃는다.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세요. 다 잡아넣고 좀 주무세요. 토끼눈이에요!"


채혈 도구를 챙겨오는 한 간호사. 다른 한 손에 위 세척 장비를 끌고온다.

"한 선생, 잘 부탁해요. 끝나고 위층 옮기는 것 까지? 당직 선생님은 저쪽 봉합 환자 끝나는대로 오신대요."

"예, 알겠습니다."

종태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상없어보임. 걱정무/

생각보다 빨리 답문자가 온다.


/애기 팀장. 생긴 건 멀쩡한데 어리버리. 지 탓이라고 자책 중일듯. 위로요망. 신삥 순진무구 백지/

/잘 생긴애들한테 꼭 샘내더라/

/수액 없냐? 철 좀 많이 든 걸로/

/만들어 놓을게 와서 맞어/

/나 말고 당신. 일해. 있다가 들릴께/

/오지마, 정신없어/

/너 보러 안가. 우리 애들 보러 갈거야/


지영이 핸드폰을 넣으며 혼잣말한다.

"치, 다 큰 애들을 무슨... 아무나 지 애들이래. 잠이나 좀 자면서 하지.."

옆에 선 젊은 간호사가 활짝 웃는다.

"선생님, 문 형사님 너무 멋있어요. 여기 오시는 경찰 중에 탑 쓰리!"

"어? 쓰리?? 순위가 점점 밀리는데? 1,2등은 누구야?"

"거기 좀 젊은 분 중에, 강진우 형사님 있잖아요, 그 분이 탑! 그리고 2등은, 좀 전에 저 환자 데려오신 분."


"무슨 소리야? 우리 남편이 저 나이 때는 훨씬 멋있었어! 경찰 안했으면 모델했을거야, 몸짱 보디가드..."

"아우~~ 못살어!!"

"그래도 경찰하고는 결혼하지마라. 노처녀가 낫다.."

"선생님, 남편분 때문에 일반 병동 안 가시는 거죠? 일부러 응급실만 계속 하신다고..."

"그게 편해. 저 인간 나가있으면, 어디서 칼맞고 올까봐 잠도 못 자. 이렇게 경찰서 앞에서 눈 부릅뜨고 지키는게 나아."


"대단하세요. 전 아직, 내 가족이 다치고 그러는 거, 상상도 못하겠어요."

"안다치고 건강하면 얼마나 좋아. 그러니 제 발등 찍은거야. 형사랑 결혼해 놓고 뭘 바래?"

"저기 실려오신 여자분도 경찰이세요?"

"어, 잠복 나갔다가 누가 약을 먹인 것 같대. 아우, 우리 딸은 경찰 안해야 되는데... 기집애가 벌써 경찰 시험 문제지만 사들고 와. 수능 공부나 하지, 미치겠어.."



4.5.2 용산 경찰서 / 회의실


임의 동행을 빙자해 잔뜩 몰고 온 클럽 직원들이 줄줄이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긴장한 사람, 전화기에 열중한 사람, 관심없이 벽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사람.. 그리고, 조사실이 아닌, 카운터 뒷쪽 직원 회의실에 앉아 있는 종태와 남자들.

"저희는 그런거 진짜 안 합니다. 규모가 작아서, 약 팔면 바로 누군지 알잖아요."

오 실장이 설득해보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오늘! 지금! 경찰이 약을 먹고 쓰러졌다구요, 당신네 VIP 룸에서! 뻔한 걸, 무조건 부인만 할 일은 아니잖아요?"


"아시면서 그러세요? 저희가 아니라, 그냥 손님들이 가져와요. 숨겨서 들어오면 누가 압니까? 몸 수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약 찾는 개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요새는 인터넷에서 막 팔아서, 쉽게 사니까요, 정말 저희는 그런거 안 팔아요."

"거기, 벨기에 초코렛은 팔죠? 게이브라는 사람이 만드는 수제 초코렛."

"아까 다 들고 가셨잖아요. 그거 비싼거에요. 무혐의 나오면 배상하세요."

질문하던 형사 뒤에서 팔짱만 끼고 듣고 있던 종태가 반응한다.


"무혐의면 배상해라... 우리가 뭘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나봐요? 그리고 그게 초콜렛이라는 것도 알고? 의심받을 물건을 왜 계속 팔아요?"

오 실장이 앞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어떻게 안 팔아요, 손님들이 찾는데? 약 들어있다는 소문은 저희도 들었어요. 이 동네 술집, 포차, 클럽 쫙 다 퍼졌구요. 그거 먹고 뻗었다, 깨어나니까 다 벗고 있더라, 소변 검사해도 안 나온다, 별별 얘기 많아요. 한 알에 8만원이라는데, 그래도 효과 좋다고 산대요.."

"한 '알'에 8만원이요?"


"처음에 들을때는, 원래 5만원이었는데... 부르는 게 값이에요. 전보다 더 세지고, 미리 주문하면, 원하는대로 만들어준다니까... 업소에서 거의 두배 붙여 팔아요."

"잘 아시는거 보니, 직접 거래하자는 사람 있었죠? 연락처 있어요?"

"에이, 그런 걸 누가 남깁니까? 아시잖아요, 이름도 말 안하고.. 말해도 다 가짜일건데 알면 뭐하고.. 잠깐 말 꺼냈다가 안한다 그러면 바로 튀어요, 신고할까봐. 저희한테도 두어명 왔었는데, 안한다 그러니까 그냥 갔어요. 왜 그때, 경찰에서 냄새 맡고.. 아니, 어떻게.. 알고 우르르 와서.. 놓치셨잖아요."


종태가 재차 확인한다.

"그래서 당신들은 게이브한테 특별 주문 한 적 없다?"

"저희는 그냥, 보통, 진짜 초콜렛만 팝니다. 그것도 잘 팔려요. 안에 술 들은거 좋아들 하시니까... 검사 해보세요, 약 절대 안 나와요. 자신있으니까 이렇게 협조하죠. 결백하니까.."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용두사미라고 했나... 일은 벌려놨는데, 마무리가 신통치 않다.


게이브의 집에서 마약이 나왔어도, 그가 가지고 있는 수표가 마약상에게 받은 거라 해도, 그리고 그 마약상이 레드문에서 목격되었다고 해도... 그 세가지를 묶을 근거가 없다. 게이브의 마약 초콜렛이 레드문에서 팔린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

"그럼, 우리 형사가 들어갔던 방에 누가 있었는지, 참고인 조사하게 협조하세요. 누굽니까?"

오 실장이 난감해한다... 마약에 대해 물을때보다 훨씬 더 곤란한 얼굴이다.


".. 그런 걸 알려드리면 저희 2층 문 닫아야되요. 비밀 보장 확실히 약속 받고 오시는 건데.."

"그 방에서 사람이 쓰러졌어요. 아직 의식도 안 돌아왔고, 입원치료 중이에요. 홀에 있는 동안은 먹은게 아무것도 없고, 그 방에 들어가서 얼마 안 있다가 쓰러졌으면, 그 중 누군가는 분명히 설명을 해야 합니다. 영장 받아서 정식으로 조사 할까요, 아니면 비공개로 조용히, 질문만 할까요? 불편하시면, 여기까지 오실 필요도 없고, 약속 잡아서 저희가 그쪽으로 가서 만나도 됩니다. 협조 하시겠습니까?"


고민하는 오 실장을 지켜보는 종태.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블라인드를 살짝 들고 밖을 살핀다. 강력팀이 돌아왔다. 시간을 본다.. 새벽 5시... 피곤하다. 신기하게도, 시계만 보면, 참았던 잠이 쏟아진다. 혼자 중얼 거린다.

"날이 밝는구나. 역시 둥근 해가 떠줘야, 모난 놈들이 잠을 자요.."


오 실장에게 제안을 한다.

"잠깐 생각하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쪽에 연락을 해보셔도 좋고, 누구랑 의논을 하셔도 좋구요. 30분 후에도 해결책이 없으시면, 저희는 영장 신청하고, 그날 2층에 있었던 사람들, 전부 참고인 신청해서 경찰서로 초대 합니다."

"다른 방까지 다요?"


"다 모셔야죠. 평소 어땠는지, 그런 일이 자주 있는지, 뭘 봤는지.. 진술 받아야하니까요. 결정하시고 알려주세요."

종태가 나가며 묻는다.

"피곤한데, 커피 한잔 드릴까요?"

"그냥 물 좀 주세요."

"바쁘니까 30분 후에, 다시 들어올때 갖다드릴께요. 생각 잘 하고 계세요.."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오 실장. 잠시 머리 굴리더니 답이 안 나오는지 그대로 책상에 엎어진다.




4.5.3 경찰서


경찰서 안이 꽉찼다. 여지껏 마약 거래로 의심받던 클럽 사람들이 찬밥 신세가 된다. 한쪽 구석으로 꾸역꾸역 몰아놓고, 맨정신으로는 감히 눈도 못 마추질, 압도적 비주얼의 '그들'을 조사한다. 여기저기 맞고 찢어져 너덜너덜하긴 해도, 언제 덤빌지, 언제 튈지 모르는, 지뢰 같은 사내들이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조팀장. 잠깐이라도 집이든, 사우나든 가려는 폼이다.

"늦었으니까, 신원 조회 마치면 일단 유치장으로 보내. 조서는 아침 팀 한테 넘기고, 니들도 좀 자야지. 몇명이라고?"

"아홉입니다. 둘은 수배 중인 애들 맞구요, 나머지는 지문 확인만 하고 내려보내겠습니다."

"잘했어, 잘했어. 아홉이 어디야.. 야, 이정도 깨지고 아홉이면 성공한 거야. 큰 부상 없지?"

조 팀장이 둘러본다. 큰 부상은 없지만, 안 다친 사람도 없다...


"진우는? 강진우 안보이는데?"

"강 형사님 아까 현장에서 바로 퇴근 하셨습니다. 병원 들리신다고.."

팀 막내 오민규가 답한다. 찢어진 소매 자락이 너풀거린다.

"다쳤어?"

"조금 긁히셨는데, 그거 말고... 아까 클럽 지원 가셨던게, 부상자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응급실이라고 연락이 와서, 먼저 가셨습니다."


"지 발로 갔어? 걸어서? 확실하지?"

"예,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가셨습니다.. 팔다리 다 붙어있고, 멀쩡하십니다."

"알았어. 짜식이 보고도 안하고 혼자 사라져? 낙오인지, 납치인지, 아니면 뻗었는지... 얘기는 하고 다녀야지. 쫌 된다 이거야? 전화도 없었네... 야, 너네들한테도 안왔어?"

조 팀장이 아예 가방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말리지 않으면 정말로 전화를 할 기세다.


정환이 물티슈 한장을 더 뽑아 얼굴을 닦는다. 피 묻은 몇장이 테이블에 쌓여있다. 다른 사람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기, 팀장님, 진우... 그 날... 다 되어갑니다. 괜히 건들지 마십시오."

"응? ... 아... 벌써? 언제지? 오늘이 12일... 젠장.. 진짜 낼모레네? 야, 니들, 강진우 잠수 타면 안된다? 가능하면 이번 주, 아니면 다음주까지는 내근으로 잡아 앉혀 놓던가. 사고 안 치게 잘 봐."

"애도 아니고, 저희가 잘 본다고 걔가.."


"작년에도 다 끌려가서 죽을뻔 한 거 기억 안 나? 내가 아주, 그 자식 한번씩 또라이 짓 하는데 미쳐. 오민규! 진우 잘 따라다녀. 어디 가는지, 뭐 하는지, 절대 혼자 놔두지 마."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날인데.."

"그런게 있어, 강진우 저주 받은 날..."

"한강에서 물귀신이 올라와서, 걸리면 다 죽어... 우리는 앞으로 2주동안 비상이다, 알았지?"

정환의 말에 갑자기 푹 가라앉은, 무거운 분위기의 선배들을 바라본다. 민규는 궁금하지만, 더 물어볼 용기는 없다.


후다닥 계단을 내려오는 시환.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나오던 종태와 마주친다.

"류시환이! 인제 병원 가냐?"

"예, 보고서 때문에요... 약물 나온거랑 클럽 갔던거... 결과 보고, 보고서 쓰고... 아,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어요."

"서둘지 마, 괜찮대잖아. 더 자게 놔두고, 이리와, 한잔 해."

들고 있던 커피를 주고 새로 한 잔 준비한다. 탁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근데 너, 초코렛집 애기 방, 제습제 말이야. 국과수에 따로 부탁했다며? 그거 먼저 테스트 해 달라고? 그 많은 압수품 중에, 콕 찍어서 어떻게 알았냐?"

"그게 사실, 몇개 부탁한게 더 있었어요. 모빌이랑, 인형, 기저귀까지 다 부탁했는데.. 기저귀를 포장을 열어서 서랍에 쪼르르 놨더라구요. 그것도 혹시 뜯고 안에다 넣었을까봐... 근데 그런거에서는 하나도 안나오구요, 제습제는.. 옷장 구석에 몇통이 쌓여 있었는데, 그중에 두개가 유통기간이 지난거에요. 애기방에 둘 건데 날짜 지나도록 왜 안버렸지 하다가.."


"뜯은거를?"

"아니요, 눈으로 볼 때는 새거였어요. 비닐 포장도 다 붙어있었고, 날짜가 지났는데, 새거랑 같이 놨더라구요. 근데 그런 비닐 포장은, 아래층에서 초코렛 포장을 하니까, 아마 거기에서 티 안나게 다시 잘 붙였을것 같아요. 그러니까, 열어서, 안에 제습제는 버리고, 약을 소량씩 포장해서 집어넣고, 비닐을 다시 붙이는 거죠. 물이나 열에 녹이기 전에는 입자가 있는 결정체 상태라서, 흔들면 소리도 비슷하구요. 다른 제습제 통이랑 같이 놔뒀으니까 의심 안 받았을거에요."


"약 먹는 하마... 대단하다. 그놈도 대단하고, 너도 그 난리통에 참, 째끄만 숫자까지 다 읽고.. 유통기한이 어떻게 눈에 들어오냐?"

"팀장님이 그랬잖아요. 그 여자는, 뭔가 두고 나간게 있으니까 도망을 쳤을거다.. 잡힐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방 어딘가에, 의심받지 않을 곳에 잘 숨겼을거다, 생각했죠. 사실은, 미국 드라마에 보면, 애기 모빌에서도 막 나오고 그러던데, 우린 아닌가봐요."

"실망했냐?"

종태가 찔러본다. 시환이 대답대신 환하게 웃는다. 대견한 놈... 맹물로 봤는데, 슬슬 한사람 몫을 한다.


진동이 울린다. 사이버팀이다.

"류 형사님, 아직 안에 계시죠? 잠깐 올라오셔야겠는데요? 그 필리핀 여자분 찾았는데, 좀 복잡해졌어요."

"지금요? 퇴근 안해요?"

"어... 다시 출근 한 걸로 쳐야죠, 해도 뜨는데..? 아무튼, 올라오세요, 보셔야 될 게 있어요."

종태를 바라본다. 올라가라 손짓하는 종태, 시환의 손에서 커피컵을 뺏어 남은걸 홀짝 마시고는 쓰레기 통으로 던진다. 전화를 끊고 터덜터덜 힘없이 올라가는 시환.


"아이 씨... 선배한테 가야 되는데.."

"걱정마, 이 팀장이 붙어 있잖아. 출근 잘 해! 좀 있다 사무실에서 보자."

"아우, 약 좀 올리지 마요! 가뜩이나 열 받는데!"

"얼른 다녀와! 냉커피 타 놓을게!"


4.5.4 병실


/꿈/


아이들 셋이 수돗가에서 놀고 있다. 인형을 안고 있는 조그만 여자 아이. 눈을 꼭 감고 오빠들에게 더러워진 얼굴을 맡긴다. 작은 아이가 앞머리를 잡아주고, 큰 아이가 조심조심 서툴지만 성의껏 동생을 씻긴다. 눈이 아플까 비누는 뺨에만 칠하고 물로 닦아낸다. 엉터리 세수지만 좋다. 활짝 웃는 여자 아이, 수건이 없다. 웃도리를 벗어 얼굴을 닦아주는 작은 오빠... 건네준 웃도리가 교복이 되고, 이름이 새겨져있다, 송시율...


교복을 입은 작은 오빠와 가게로 뛰어들어간다. 과자를 사서 나오다가 큰 오빠를 만난다. 아까와는 정 반대로, 소리치며 화를 낸다. 무서워하며 집으로 도망오는 아이들, 대문을 잠그면서 얼핏 뒤돌아본 골목에서, 큰 오빠와 이야기하고 있는 중년 남자. 어두운 녹색 잠바 혹은 우비, 아니 코트를 입은... 머리가 길어 얼굴을 다 가린 낮은 목소리의 아저씨.. 목소리.. 왼쪽 광대뼈의 흉터... 배달 오토바이... 이쪽을 본다. 한걸음씩 다가온다... 혹시 아는 사람일까 여자 아이가 가까이 간다. 손을 뻗으면 닿을만큼 가까이 가본다.. 저 머리카락만 치우면 얼굴이 보일거다...


안돼, 나오지마.. 작은 오빠가 쓰러진다.. 사방으로 튀는 붉은 피, 움직이지않는 오빠... 큰 오빠의 책가방에서 칼이 나온다, 한개, 두개, 세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칼에 손가락을 베이는 여자 아이, 그걸 보며 웃는 큰 오빠... 거봐, 나오지 말랬지, 죽는 댔잖아... 손가락이 아파 입으로 피를 빨아들인다. 지문이 빨려들어간다. 삼켜진다... 컥... 토하고싶다... 니 잘못이야, 네가 지문을 먹어버렸어... 중년 남자가 모자를 벗는다. 긴 가발도 벗는다... 아버지...? 넌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다 잊어... 큰 오빠와 아버지가 한걸음씩 다가온다. 돌아오면, 그 즉시 죽어... 다 죽여버릴거야.. 그러니까 다시는, 돌아올 생각 하지 마...


점점 가까워지는 두 남자를 피한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괜찮아, 이리와... 나랑 있으면 안 무서워... 아빠한테 와, 오빠한테 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아이에게 다가와 국방색 코트로 감싼다... 따뜻하다... 아빠... 오늘 왜 늦었어...? 안도하며 올려다본 그의 목덜미에서 피가 흐른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숨이 막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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