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탓했다. 버린다고, 잊는다고, 무책임하다고 원망했다.
거슬러 돌아갈수 있다면, 아니 술 취해 걷다가 차에 들이받혀 휘리릭 날아올라 의식이라도 잃는다면, 구조하러 뛰어온 씩씩한 경찰 아저씨와 영혼이 바뀐다면.. 그것도 아니면 약으로 빠져든 깊은 잠에서, 희미하게 이름을 불러 나를 깨우는 간호사와 몸이 뒤바뀐다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으로 두번째 삶이 주어진다면 나는, 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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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말하는 '재수'하고는 연이 없었다. 부모복도, 재물복도, 그렇다고 관운이나 배우자 복도 한톨 붙지않아 홀홀 벗은 가벼운 인생을 살았다. 일곱살부터 여기저기 떠넘겨지다 열 셋에 친척집을 나왔다. 뭘 할 수 있었을까. 먹여주고 재워주던 좁아터진 공장 뒷방 한켠에 감사했다. 다행히 관리자의 눈에 띄어 공장이 아닌, 사장님 댁 도우미로 들어갔다.
성북동... 여섯명이 꼭 붙어자던 이름뿐인 기숙사보다 훨씬 깨끗하고 넓은, 차고가 있었다. 그것도 세 칸이나.. 바닥까지 대걸레로 닦아내는 고급진 공간에는 늘 좋은 냄새가 가득했다. 나이가 조금 있는, 깔끔하고 친절하던 정 기사님이 늘 반짝반짝 정성을 쏟았다. 사모님을 모시는 분은 따로 있었다. 정 기사님보다는 조금 젊은, 그래도 연배가 조금 되시는 아주머니였다.
"네가 면허를 따야 내가 수월하지. 정 기사님 쉬는 날, 운전 좀 가르쳐 달라 그래."
곧 새 식구가 들어온다고 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일이 많아 질거다. 요리와 운전, 시장, 외출... 모든걸 책임지는 아주머니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빨래, 청소, 잔심부름... 그리고, 가끔 백화점 지하 마트를 따라가는 거였다. 평생을 남의 집 부엌과 공장에서만 보낸 나로서는 사실 그것도 힘들었다. 간신히 깨우친 한글도 어려워, 날짜 지난 신문을 바지 춤에 접어 넣었다가 세탁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공부했다. 눈치로, 통빡으로.. 꽤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원어민 영어 붐이 일었다. 영어라고는 알파벳도 몰랐지만, 내 입으로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들여온다는 거버 이유식 병으로 모양새를 알아갔다. 당근, 바나나, 콩... 그림을 컨닝해가며 겨우 몇글자 구분했다. 눈치 빠른 정 기사님이 몰래 몇 권씩 책을 사다 주기도 했다. 한달에 두번 있는 쉬는 날, 차고 옆에 붙은 기사님의 창고 방에 누워 몇장 읽어봤지만, 진도는 빠르지 않았다. 정 기사님이 웃었다. 눈가의 잔주름이 멋있었다.
"못해도 돼. 그래도 다 먹고 살아."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예쁘던 작은 사모님이 셋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잡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이들에게만 집중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처럼, 마당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정성껏 키웠다. 업고 안고, 손바닥에서 놀던 큰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면서 일을 그만 두었다. 슬프지 않았다. 조기 유학이라고 미국에 간다니 축하할 일이다. 그래도 처음 키워본 아이라 그런지, 마음이 많이 쓰였다. 아직 지 양말 한짝도 빨아 신지 못하는 귀한 도련님이 먼 길을 간다는게 걱정이었다.
"공부 많이 해서 좋은 대학 가."
이별 용돈으로 오만원씩을 주었다. 부잣집 아이에게는 푼돈이겠지만, 감사하다며 받았다.
"아줌마는 인제 누구네 집으로 가?"
어느새 올려다 봐야할 만큼 커버린 큰 아이가 나를 걱정했다.
"아무데고 가겠지. 젊고 건강한데 뭐가 걱정이야?"
"집도 없잖아."
"등짝 붙이고 누우면 집이야. 혼자 사는데 큰 집이 뭐가 필요해."
"우리랑 같이 미국가자."
"황 비서님이 가시잖아. 말 잘 듣고, 공부 많이 하고 와."
중고생 아이들만 보내기 걱정되어, 젊은 비서 하나가 보호자로 따라가기로 했다. 아이들 과외한다고 자주 들락거렸는데, 한눈에 봐도 참 좋은 청년이었다. 안심이다. 명문 대학 출신에 아이들하고도 잘 맞았다. 집도 사주고 대학원도 보내준다는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거다. 나처럼 학교 문턱은 몇번 못 가본 입장으로는 상상도 못할, 드라마에서나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쉬운 마음에 아이들 방을 한번 더 둘러보고, 짐을 챙겼다.
오래 살았다. 열 여덟에 들어와 거의 이십년이다. 여전히 고운 작은 사모님도 중년이 되고, 한참 전에 그만 두신 정 기사님과도 연락을 안한지 오래다. 목소리마저 덩덩 울리던 이 고급스런 저택은, 아이 셋이 가고 나면 빈 껍데기가 될거다. 20년... 큰 사모님 환갑 때 만든 연못에도 물고기를 몇번이나 새로 채웠고, 물가를 빙 둘러싼 바위 사이 영산홍과 작약이 피었다 졌다를 반복했다. 마당을 뒤덮는 목련 꽃잎도 내가 다 치워야 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내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세상을 다 갖지만, 일찍 간다.. 풍수 전문가의 말에 부리나케 대문 공사를 했었다. 여자가 죽는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큰 사모님을 살리지 못했다. 많이 배우지 못한 내게 검정 고시라도 봐야한다며 학원을 등록해주시고, 방송 통신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셨던 분이다. 죄진것 없으니 당당하게 살라 말해주신 분이다.. 졸업을 못해 늘 죄송했지만, 언제든 다시하면 된다 응원해주셨다. 암 투병 전, 목련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과 활짝 웃고 계신 사진을 한장 얻어들고 작별을 고했다.
성북동을 떠난다. 큰길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젊은 기사님을 만류했다. 짐도 없고, 단촐하니 배낭하나 지고 여행 가방 하나를 끌었다. 사모님도 가시고, 미련은 없다... 빈 손으로 왔으니 빈 손으로, 그리고 빈 마음으로 간다. 터덜터덜 익숙한 골목을 나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높다란 담장, 유명 회사 중역들이 사는 집.. 아닌척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가 이리저리 고개 돌리고, 낯익은 이웃 도우미 아주머니가 보인다. 구부정한 인사를 했다. 막 차에 오르려던 그녀가 돌아본다.
"오늘 가는 거에요? 이제 못 보겠네."
겨자색 차고문이 독특한 예쁜 집이다.
"그러게요. 이 댁은 별일 없으시죠? 할머니 건강하셔야 할텐데요."
"나아지지도 않고, 심해지지도 않고.."
여자가 다가와 목소리를 낮춘다.
"너무 오래되니까 요새는 자식들도 잘 안오고.. 기사들만 왔다갔다, 꽃이나 보내고 그래요."
"그래도 다행이죠. 간병인 오고, 아주머니 계시고.."
"아직 몇년은 괜찮을 것 같아. 어떻게, 여기 간병 한번 해볼래요? 삼교대하는데, 돈도 괜찮아요. 밤에 잘 사람을 새로 구하는 거 같던데, 사모님한테 전해 줄까?"
"천천히요. 며칠은 쉬구요... 나중에 못 구하시면, 그때 연락 주세요."
"그래, 그것도 좋아. 아유, 이 짓이... 언제 하루 마음놓고 쉬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고생 많았어요. 잘가요. 잘되면 또 보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잘되면 또 보자... 어떻게 되어야, '잘' 되는 걸까. '잘' 되면, 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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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많지 않은 나이.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가족도, 기술도, 집도 절도 없는, 열세살에 친척집에서 쫒겨나던 그때처럼, 다시 몸뚱이 뿐이다. 그래도 조금 커진 가방 하나와 제법 나이 먹어가는 얼굴로, 어른인척, 무섭지 않은 척... 이번에는 울지않고, 담담하게 걷는다. 한성대 앞 사거리를 지난다. 간판을 훑는다. 전단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서빙 구함, 모텔 청소 하실 분, 영어 일본어 2개월 속성, 간호 조무사 무료, 잠만 잘 분, 강아지 산책...
세상은 늘 두렵다. 나만 두고 떠나던 사람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기다리던 가족들, 아니.. 그냥 한 집에 살던... 친척 혹은 집 주인... 명절, 주말, 방학, 휴가... 빈 밥그릇과 너덜거리던 담요 조각, 사진 한장 없이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아빠... 불 꺼진 지하실이 무서워 눈을 부릅뜨고 버티던 어린 시절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버틴다. 원래 그런거다. 감으면 보이지 않고, 뜨면 아무것도 없는.. 온갖 것을 잡아끌어다 주변을 채워도 항상 허공으로 사라지는,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그런 허공이었다.
"어디세요?"
"춘천. 올래?"
십여년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어제 본 사람처럼, 항상 옆에 있던 사람처럼.. 받아준다. 어쩌다 만난, 어쩌다 따뜻했던, 그리고 어쩌다 떠난... 정 기사님이다.
"가면요?"
"낚시 해야지. 매운탕 끓이고, 상 차리고, 상 치우고ㅡ 또 차리고, 또 치우고.."
"... 잘 할려나?"
"못해도 돼. 그래도 다 먹고 살아."
"아저씨는 결혼 안 해요?"
"인제 해야지, 너 내려오면... 뭐 이렇게 오래 걸리냐? 기다리다 할배 됐다."
그가 웃었다. 영어책을 챙겨주고, 학원 끝난 늦은 밤에 마중 나오던 그가, 그때처럼 포근하게 웃는다. 나 때문에 사장님 댁에서 쫒겨나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 내게 오라 말한다. 아이를 지우고 누운 옆자리를 지키던 그의 눈물이 생각난다. 자기가 그만두고 가겠다고, 나는 갈 곳이 없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큰 사모님께 대신 빌던 모습, 입덧이 심해 고생하던 작은 사모님께는 절대 비밀이다 신신당부하며 떠나던 마지막 날.
"할배라도 괜찮으면 얼른 오고... 할배라서 싫어졌으면, 좋은 놈 생길때까지만 잠깐 있어보고.."
두번째 삶이 주어진다면, 나는 네가 되고 싶다. 하필 내 뱃속에 내려앉아 얼굴도 못 본 너... 다른 아이를 애지중지 아끼는 나를 멀리서 지켜봤을 너... 아마도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을 너. 두번째 삶을 살게 된다면, 나는 네가 되어 나를 미워하겠다. 이렇게나 한심한 나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다시 주어진 그 두번째 삶에서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에 나와서, 꼭, 꼭, 꼭.. 나를 만나 안겨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