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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r 05. 2023

1.3편. 아이 앰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나는 누구

 24 디졸브 (D) / 지율의 전화 통화 멀어지며 카메라 - 사무실로 이동

어느새 기분이 좀 풀렸는지, 책상 건너로 농담을 던지는 종태, 팀의 막내 시환을 놀리는 게 재미있다.


종태 그러니까 꼴찌 소리를 듣지, 너 지금까지 계속 대기 발령이었다며?

시환 꼴찌 졸업 아니구요, 대기도 아니에요. 초반에 부상이 있어서, 좀 쉰거에요. 그러고 나서 과수대 한 1년 있다가, 여기 특별팀 만든다 그래서 지원했는데, 자꾸 연기되고, 뭐 바뀌고.. 그래서 잠깐 지방 다녀왔습니다.


옷깃을 올려 목의 흉터를 감추는 시환, 눈치채고 한마디 던지는 종태 (웃음기 없다)


종태 일하다 부상 당한건데 뭐, 괜찮아, 안 가려도 돼. 야, 경찰 중에 기스 하나 없는 애 있나 찾아봐라, 다들 몇방씩은 있지. 얘 봐, 얘, 차은석이 같은 애.. 사우나 가면 사람들이 다 도망가. 덩치 크지, 칼빵 많지…


시환과 은석 웃음


종태 그래도 너도 어느정도는 했겠지, 서울에 남았으면? 이 팀장처럼 바로 본청가고 그런거 아니어도.. 거기랑 강진우랑, 학교때 유명했다며?

시환 이석호 팀장님이야 뭐, 저희때도 전설이구요, 공부 엄청 잘했대요... 진우 형은.. 유명했죠, 인기좋고, 실력 좋고... 지금하고 똑같애요. 맨날 놀고 탑 3..


종태 너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면 1등 한번쯤은 하고 나왔어야지? 경찰대 수석, 캬.. 멋지잖아.

시환 치, 경찰대는 뭐 다 수석만 있어요? 드라마가 사람 망치는 거에요. 공대는 MIT, 법대는 하바드, 요새 의사는 죄다 존스 홉킨스.. 주인공은 전부 수석이래. 그런다고 무슨 월급을 더 줘, 총알을 더 줘? 일은 똑같이 시키면서.. 콩알만한 학교에서 수석이 뭐라고.


종태 (피식) 야, 너, 딱 보니까 성적이 아니라 성격이 못나서 대기였구나. 집에 한 누나 다섯 쯤 되고 막내 아들 아냐? 5대 독자?

시환 (삐짐) 아니거든요? 외아들이에요! 무녀독남 3대 독자! 그게 뭐요?


어린애 같은 삐짐에 은석과 종태가 웃음을 터뜨린다. 귀엽다


종태 멀었네, 멀었어.. 언제 클래. 그래서 그렇게,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애한테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종살이를 하지.


종태를 보며 혼자 궁시렁거리는 시환, 마침 지율이 들어온다. 바로 웃음을 걷는 종태. 꾸뻑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가는 지율. 종태 눈치를 보는 시환, 일하는 은석.


종태 (찬찬히 훑어보다) 병원은? 왜 여태 안갔어?

지율 가려다가, CCTV 보러 들어오라고 하셔서요.. 서장님 전화..

종태 … 다친데는?

지율 괜찮습니다.

종태 CCTV는?

지율 예?


외면하는 은석, 올게 왔구나 하는 시환..


종태 처음 간 동네에서 그 많은 CCTV를 어떻게 그렇게 잘 피해다녔대? 니 말대로   때리는 건 하나도 없더라. 완벽해. 완전범죄야.

지율 (아하,   그 얘기구나..) ….


곁눈으로 지율을 살피던 시환이 슬그머니 서랍에서 약을 꺼낸다. 지율이 머리카락을 치우며 어깨 뒤쪽의 너덜너덜한 반창고를 보여준다. 시환이 다시 연고를 바르고 새 반창고를 붙인다.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종태.


종태 강지율. 좋은 서장님 만난 줄 알어. 경찰 새끼가 야바위를 까? 그래도 자기 부하라고 니 편 들더라. 너 카메라 앞에서 쇼하는 거, 자르고 다듬고 이쁘게 만들어서 가져가신다고 지금 작업 중이셔. 상부에 다 보여주면 안된다고.. 두 번 다시는 그딴 꼼수 쓰지마라.

지율 (건성) 예.

종태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사람을 그 지경을 만들어? 너 그놈 어떻게 알아?


지율 모릅니다. 처음 봤습니다.

종태 근데? 모르는 놈인데, 막 패주고 싶게 생겼든?

지율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냥 뛰길래, 죄지은게 있나보다.. 그러다가 죽일듯이 덤비길래, 질 나쁜 놈인것 같아서, 잡아야겠다.. 그게 답니다.

종태 잡아도 좀 살살 잡지, 조각조각 생닭 조각 치듯이 뽀샤서 데려 왔냐? 응? 다음에는 꼭 한몸으로, 팔다리 다 붙은 걸로, 통짜로 데리고 와. 절대 니 맘대로 해체하지 말고. 알았어?

지율 예.


종태 서장님이랑 이팀장한테 사과하고.. 이 문제로 며칠 불려다닐거야. 다행히 네가 때린 증거는 없으니까.. 다들 눈감아주면 좋고, 아니면 너도 경고 정도는 각오해. 당분간 사건 맡기지 않고 지켜본다니까, 더 이상 사고 치지말고.   

은석 근데 아까 신고 들어 온 형제 고시원이요, 그 정도는 큰 문제 없어 보이는데, 두 사람이 탐문 한번 가죠? 류 형사가 같이 가니까, 별일 없겠죠? (시환을 본다)

시환 (얼른) 예, 저희가 다녀오겠습니다.


은석 (시환에게 파일을 건넨다) 아침에 신고 들어왔어요. 청파 초등학교 앞에 있는 오래된 고시원인데, 누가 자꾸 동물 사체를 갖다 놔요. 원래 생활 안전팀에서 맡았었다가, 진전도 없고..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이 전부 외노자들이라, 혹시 혐오범죄가 아닌가 해서 우리한테 지원 요청 들어왔어요.

종태 (지율 보며) 아무것도 하지마! 잠깐 가서 슬쩍 둘러보고, 주변에 사이 안좋은 사람 있는지, 동종업소가 장난치는 건지, 그런거 위주로 알아봐. 생명에 위협이 있고 이런거는 아니니까, 힘쓸 일은 없어. (지율 가르키며 시환에게) 힘쓰면 안돼!


은석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두달 전에 다른 범죄 정황도 있었습니다. 공동 주방에서, 누군가 물컵에  살충제를 뿌려놨답니다. 두명이 실려가고, 위세척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지율 피해자가요? 불체자… 였나요?


종태 그러니까 도망갔겠지. 현재까지 그 일은, 본인 확인도 안되고, 어디를 얼마나 다친건지, 피해 여부도 몰라. 그냥 어디서 누가 그랬다더라, 소문들은 사람들이 자꾸 말 옮기는 거지. 거기 경위님 두 분, 할 일 없으니까 가서 얘기나 들어드려. 주인이 아주머니야. 외노자들 많은 동네니까, 나중에 일 생겼을때 필요할수도 있고, 알아둬서 나쁠거 없어.


나갈 준비를 하는 두 사람, 시환이 지율의 겉옷을 먼저 챙겨 입힌다. 자연스럽게   돌아서서 팔만 끼워 쉽게 걸치는 지율. 참지 못하고 두 사람을 불러 세운다.


종태 그리고 일 할때는 말이야, 둘이.. (종태를 돌아보는 시환과 지율) 딱 파트너만큼만 한다. 이 건물은 있잖아, 터가 안좋아. 안팎으로 좋은 인간들만 드글드글해. 신발 하나 꾸겨신어도, 껌 한조각 씹고 다녀도 말이 나와. 알겠어? 쓸데없이 입에 오르내리지 말고. 오늘 일년치 구설수 다 했잖아, 그치?


눈치 챙기는 두 사람, 조용히 머리만 꾸뻑.. 사무실을 나간다. 낮은 한숨을 쉬며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 종태. 은석을 향해 손을 내민다. 책상 위의 껌을 한 팩 토스한다. 보지도 않고 척 받아 하나 꺼내들고, 질겅질겅 힘주어 씹는다. 다시 은석에게 던진다. 역시 돌아보지도 않고 받아서 제자리에 놓는다.


 25 탐문 가는길 (D)

하교길 학생들, 분주한 상점, 식당… 지율이 운전대를 잡았다. 상처 난 손이 신경 쓰이는 시환.


시환 제가 운전 할 걸 그랬나봐요. 좀 쉬시게..

지율 팀장님 차에서 잤어요. 안 피곤해요.

시환 죄송합니다. 같이 갔었어야 했는데..

지율 시환씨가 왜요, 제가 연락 안하고 혼자 간건데요. 출근시간 전에 들어올 줄 알았어요, 진짜로. 그냥 몇가지 확인만 하러 간건데 그놈이 튀어 나와서... 분위기 안 좋았죠? 미안해요.


시환 아닙니다,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 다치셔서..

지율 다치는거야, 맨날 하는 거고… 아까 문 형사님 말 못들었어요? (흉내낸다) 경찰은 원래 얻어터질 각오하고 사는거야... (시환 웃음) 그래도 여기니까, 이정도는 괜찮아요. 전에 일하던 데는 우범지역이라서, 총을 쓰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아직 착해요. 경찰이 서라면 서고.. 아까 그 놈은 예외지만, 그렇잖아요, 교통 딱지 뗀다고 한줄로 쭉 서서, 식권 받듯이 자기 차례 기다리고...


시환 (웃음) 식권… 와, 그렇게도 비유가 되네요, 경찰 한명 서있고, 차 줄줄이 서서..

지율 처음에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여기는 총을 안 써도 이게 되는 구나.. 거기서는 상상도 못해요. 한여름에도 방탄 조끼 입고, 무장하고.. 그거 입어도 총 맞으면 엄청 아파요. 불에 덴것 처럼 동그랗게 화상이 생겨요. 죽지 않을 뿐이지, 안에 근육이랑 뼈까지 다 상해요. 조끼 없는 데만 조준해서 쏘기도 하고.. 거기에 비하면 여긴 …


/플래시컷/ (D) 시환 회상

체육관에서 혼자 운동하는 지율, 머리를 바짝 올려묶고 반바지에 스포츠 브라를 입었다.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더운 여름, 샌드백을 친다. 손, 발, 온몸을 동원해 터져라 두드리며 분노를 쏟아낸다.   룰루랄라 아이스 커피 두잔을 사들고 들어오던 시환, 입구에 멈춰서서 지율을 본다.   근육만 붙은 마른 몸에 가득한 상처, 흉터, 수술자국, 멍, 땀…. 놀랍고 감탄하고, 안쓰럽고, 동경하는..   복잡한 감정.


/카메라 차 안/ - 창밖을 보는 시환, 시선이 멈춘다. 지율도 따라서 눈으로 좆는다. 횡단보도 불이 바뀌었지만, 미처 반도 못 지난 할머니와 어린 아이가 느릿느릿 보행을 계속한다. 지율, 차를 세우고 경광등을 켠다. 빙글빙글 돌며 번쩍번쩍, 시선을 끈다. 주변의 차들이 멈추고, 시환이 내려 할머니를 인도까지 모신다. 등을 끄고 다시 출발한다. 다른 차들도 서서히 따라 움직인다.


지율 봐요, 역시.. 아직 대부분은 착해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다음 신호에 멈춘다. 네비로 남은 거리를 확인한다. 멀지 않다.. 신호가 바뀌고 출발하려는데, 우측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며 쌩 하니 전진하는 외제차. 신호 위반은 아니지만, 위험할 수 있었다. 지율이 따라 붙는다. 시환이 카메라 앵글을 확인하며 시간을 체크한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곡예 운전을 하는 파란 BMW. 한뼘만큼 치고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칼치기에 경적을 올리는 차들이 늘어난다.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


시환 4분 지납니다.

지율 잘 나오겠죠? 차가 예뻐서 화면발 좋겠네.


그제서야 자세를 바로하고 운전대를 고쳐잡는다. 시환이 사이렌을 켠다. 속도를 올려 바짝 달라 붙는다. BMW가 모르는 척, 서지 않는다. 대신 다른 차들처럼 안전 운전, 속도를 줄인다.


시환 (확성기) 경찰입니다. 3235 BMW, 정차하세요.


여전히 시치미 뚝 떼고 제한 속도로 얌전히 가는 BMW.


시환 (확성기) 늦었습니다. 난폭 운전하셨잖아요. 세우세요.


지율 피식. BMW가 정지한다. 조금 떨어져 선다.


시환 (벨트를 풀고 내린다) 착한 사람이네요, 안 도망가고..


 26 도 (D)


지율 (걸어가 운전자 창문을   노크한다, 경찰 배지를 내보인다) 면허증 확인하겠습니다.

운전자 무슨 위반을 했다 그래? 남들하고 딱 맞춰서 살살 가고 있었는데?

지율 (어쭈 반말? 하는 표정) 영상 증거 있습니다. 위험한 거 알면서 일부러 그랬죠? 상습입니까? 보복 운전? 누구랑 싸웠어요?

운전자 이 여자가.. 이봐, 당신 어디 소속이야? 경찰 맞아? 아무 차에나 불 하나 달았다고 단속이야? 함정 수사야, 이거! 인권 침해!


시끄러워지자 조수석 쪽 사람과 이야기 하던 시환이 건너온다. 열린 창문으로 조수석에 앉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


여자 아, 닥쳐! 당신이 운전 개같이 했잖아! 얼른 면허증 주고 딱지 받어!

시환 (지율에게) 제가 이쪽에 있을께요, 선배가 여자분 맡으세요. 두분 다 기분이 안좋은것 같아요.


시환에게 맡기고 걸어가며 차량 뒷자석을 확인하는 지율. 아이들 셋이 타고 있다. 게임에 너무 열중했는지, 아니면 자주 겪는 일인지, 놀라지도 않는다. 차 뒤로 한바퀴 돌아간다.


시환 안녕하십니까? 용산 경찰서 류시환 경위입니다. 선생님 조금전에,   교통 법규 위반 하시는거, 저희 카메라에 다 녹화되었습니다. 직접 출석 하셔서 확인하시겠습니까?

운전자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저 여자는, 다짜고짜 면허증부터 내놓으라잖아. 이분은 교육 잘 받았네, 그렇게 상냥하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시작하니 서로 얼마나 좋아? (지율에게) 너는 좀 더 배워! 어린게 싸가지가!!


지율 (같이 언성을 높히며) 선생? 누가 선생이야? 너 교대 나왔어? 몇학년 뭐 가르쳐? 도덕? 윤리? 바른 생활???

운전자 (더 소리친다) 저게 진짜, 야! 왜 반말이야?

지율 네가 하니까 나도 한다. 너 선생이라며? 배운대로 하는데 왜? 뭐?


운전자 (뛰쳐나오려 문을 열며) 이게 진짜??

시환 (문을 막는다) 운전석에 계십시오. 나오지 않습니다.

운전자 저게 반말에 소리까지 지르잖아요! 안들려요?

지율 선생은 무슨, 대한민국 선생님들 욕먹이지 말고, 면허증 내놔! 애들 태우고 다니면서 난폭 운전이야?

여자 (차에서 내리며) 아우, 다들 왜 이래? 당신 내려! 내가 운전한다 그랬잖아! 그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라니까 이젠 경찰하고도 싸움질이야?


잰걸음으로 운전석으로 간 여자, 시환을 밀치고 남자 멱살을 잡는다. 남자도 참지못하고   차에서 내려 여자를 밀친다. 몸싸움… 시환이 가운데에서 말려보려 하지만, 두사람의 개싸움이 시작된다. 뒷자리의 아이들은 여전히 게임 중이다..


지율 (번호판을 보며 한숨, 경찰에 전화) 용산서 강지율입니다. 차량조회 부탁 드립니다. 서울 XXX, 3235 파란색 BMW SUV, 주소지와 운전자 정보 필요합니다… (수첩을 꺼내들고 적다가) 예? … 예… 알겠습니다, 여기… 청파로 47, 신한은행 앞 사거리입니다. 응급은 아니고, 지원 차량만 한대 부탁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이리밀리고 저리 밀리고 심한 몸싸움을 하는 두 사람, 지율이 여자 뒤로 가 두 팔로 상체를 제압한다.


지율 (여자를 들어 올려 인도로 옮기며) 두 분 분리 합니다. 안전하게 계십시오. 여자분, 차량 밖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죠?


조수석에 앉아 거울로 헝클어진 머리를 들여다 보는 여자. 시환에게 다가가는 지율.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또 달려들 듯 노려보는 남자를 당당히 마주본다.


지율 이석현씨, 차주 맞으시죠? 가정폭력으로 맞고소, 현재 상습 폭행과 양육권 문제로 재판 중이구요, 세금 미납으로 차량도 수배 중이라, 지원 요청했습니다. 두 사람 분리해서 면담합니다.

운전자 (싹 바뀌는 표정) 아니, 잠깐, 그게요, 서로 오해가 있어서 재판을 하기는 했는데, 지금은 잘 해결 되었구요, 세금도 내러가는 길이었어요..

시환 (남자를 막아서며)   잠시 이쪽으로 가셔야겠습니다. 차량 쪽은 보지 마시구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니, 제가요… 남자가 따라가며 하소연한다. 갑자기 차 밖으로 뛰어나오는 여자,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구토. 물끄러미 보는 지율.


지율 불편하세요? 도와드릴까요?

여자 아뇨, 이게 입덧 하느라고.. 그러게 운전 좀 살살하라고   해도 저 인간이.. 우우웩..

지율 두분이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이혼에 가정폭력으로 소송 중이시죠?

여자 그거, 저 아니구요, (손을 내저으며 퉤퉤…) 저기 저, 제일 쪼끄만 애, 걔 엄마가요. 이혼소송 하면서 위자료에 양육비, 상간녀 소송까지 왕창 같이 해서 아주 똥물 싸움이에요, 아유, 지겨워.. (휴지로 닦고 길에 버리려다 지율의 눈치를 본다.. 망설이다 차 안에 버린다)


지율, 게임하는 아이들을 살핀다. 두 형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세째, 그리고 여자 뱃속에 들은 넷째… 여자를 본다. 임산부 같지 않은 짙은 화장과 하이힐, 악세사리..


여자 내가 잘못 봤지, 저게 쌍판 좀 생기고   돈 꽤나 있길래 혹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애새끼가 저렇게 많은지 까맣게 속은거 있죠? 성질도 더러워가지고 툭하면 화르르.. 아주 지랄 맞아요, 아우, 말도 못해..

지율 (수첩을 집어 넣는다) 걱정마세요, 잘 사실 거에요. 닮으면 잘 산대요.

여자 뭐… 뭐라구요?

지율 구두 신고 힘드니까, 차에 들어가 계세요. 경찰차 곧 올거에요. 허락할때까지 운전 못하시구요, 아이들도 차 안에 남습니다. 남자분은 저희랑 밖에서 대기 합니다.


할말 많은 여자를 차에 밀어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저만치에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메모하는 시환. 분노가 쌓여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오바스럽다.


지율 지랄 맞네.. 주제에 선생 소리가 듣고 싶냐. 애들이 본다, 인간아.. 철 좀 들어라…


멀리서 싸이렌


 27 /디졸브/   (D)

견인차에 끌려가는 BMW. 다 포기한 듯, 힘없이 경찰과 이야기를 마치는   여자. 아이들과 택시를 탄다. 경찰차 뒷자석의 남자는 반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 얼굴을 가린다. 지원 나온 동료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시환, 출발하는 순찰차에 손까지 흔든다. 길 옆 자판기에 가서 사이다 두개를 뽑아온다. 지율을 보며 활짝 웃는 얼굴 위로, 교복 입은 남학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씬 28 /INS/ 햇살에 가려진 얼굴, 그러나 하얀 반팔 남방에 베이지색 바지, 똑같은 반달 웃음. 사이다를 내민다. 다정한 목소리. 10대 소년의 목소리

“다리 아프게 왜 나와있어? 들어가서 기다리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


씬 29 /도로

시환 다리 아프게 왜 나와있어요? 들어가서 기다리지.. 생각보다 오래 거렸죠?


시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는 지율… 꿈이었나, 멍하니 본다


시환 선배,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지율 아니에요… 잠깐 다른 사람이 보였어요, 목소리도… 잊어버렸었는데…

시환 누가요? 저랑 비슷한 사람이에요?

지율 (본다)... 지금 보니 그러네요.. 목소리, 말투.. 얼굴도… (사이다 받아들고) 가요, 늦었죠?

시환 키 주세요, 제가 운전할께요. 쉬어요.


 30 차 안(D)

운전중인 시환. 갑자기 입을 꼭 다문 지율이 걱정된다. 자꾸 힐끔거리다가 일부러 밝은 톤으로 말을 꺼낸다.


시환 누워서 편하게 가요, 아니면, 노래 하나 들을까요? 가수, 누구 좋아하세요?


대답없는 지율… 잠깐 생각하다 천천히 핸드폰을 꺼낸다. 옛날 노래.. 촌스러운 비트, 허스키한 목소리..


3 Rainy night and we   worked all day
   We   both got jobs ‘cause there’s bills   to pay
   We   got something they can’t take away
   Our   love, our lives


창에 기댄다. 시환도 귀를 기울인다. 누군 노래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4 You were born to   be my baby
   And   baby, I was made to be your man


5 We got something   to believe in
   Even if we don’t know where   we stand


알듯말듯, 생각날듯 말듯 하다… 애쓰는 시환, 무표정한 지율


시환 아, 아… 알것 같은데… 혹시 본조비인가요? 목소리가 비슷한데… 옛날 노래죠?

지율 맞아요, Born to be my baby.

시환 후렴 들으니까 거기만 알겠다… (웃음) 선배 나이가 몇인데 본조비를 들어요?

지율 (같이 미소) 어렸을때, 오빠가 좋아하던 노래에요. 밴드 같은 걸 했는데, 집에서 연습도 하고, 아마 공연이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한번 무대에서 노래하는 거, 응원하러 갔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아버지가 이 노래 틀어놓고 어머니랑 춤추는 영상이 있어요. 기억은 하나도 안나는데, 그거 봐서 알아요..


시환 사이가 좋으셨나봐요, 가족끼리..

지율 그랬겠죠, 죽이기 전까지는…?

시환 (당황) …


 31 상도동 19년 전 (N)


무음. 평범해보이는 가정집 거실 벽,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둘과 막내 여자아이. 카메라가 가까이 클로즈업 해 들어가면, 혼자 웃지않고 무표정한 큰 아들의 셔츠에 묻은 핏방울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CUT TO


사람들 소리, 카메라 소리, 무전기 소리, 전화 소리.. 하얀 비닐 덧신을 신고 거실을 왔다갔다 분주한 사람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웅성웅성 사람 소리.. 식탁 옆에 혼자 서있는 사진 속 여자 아이. 엉망이 된 긴머리 위로 헤드셋이 걸려있다. 손에 꼭 쥐고 놓지않는 찢어진 종이 조각. 편안한 추리링 차림에 흰양말… 축축하게 피에 젖어들며 붉게 변한다.


현관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훅 들어온다. 머리카락이 휘리릭 얼굴을 때린다. 아이가 움추린다. 들것이 들어온다. 무심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 - 거실 바닥에 나란히 놓인 세개의 검정색 바디백.. 어른 두세명이 하나씩 들어올려 들것에 태우고 집밖으로 나간다.


이상하다.. 누가, 어느 가방에 들어있는 걸까. 왜 세개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이. 가족 사진을 본다. 다섯 식구, 바디백 세개…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작은 아들에서 아이의 시선이 멈춘다.


씬 32 /플래시컷/

좁은 문틈으로 밖을 훔쳐보는 아이, 침대에 누워 미동없이 칼을 맞고 있는 작은 오빠


씬 33 거실

아이의 시선 - 사진 속 엄마 얼굴


씬 34 /플래시 컷/

연말 음악 프로를 보며 빨래를 개던 엄마.. 누군가의 그림자, 돌아보다 그대로 쓰러지고


씬 35 /거실/

아이의 시선이 사진 속 아빠와 큰오빠에게 향한다. 혼자에게만 들리는 아빠 목소리

"아빠 오늘 야근이야, 대신에 내일 유리 생일이니까 하루 종일 놀자"


씬 36 /몽타주/ 아버지와 큰오빠의 모습이   0.5초 컷으로 빠르게 지난다 – 퇴근하는 아빠, 경찰복, 춤추는 모습, 오빠들과 팔씨름한다, 아이를 번쩍 안고 빙빙 돌린다, 까르르 웃는 아이, 큰 오빠...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말없이 지하실로 내려간다, 들어가! 나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모습, 애원하는 엄마를 뿌리치는 손…


씬 37 /거실/

세번째 들것이 나간다. 문이 열렸다 닫히고 한번 더 찬 바람이 들어온다. 춥다. 발을 오무린다. 그제서야 양말을 본다. 발등까지 젖어오른 피… 눈이 핏자국을 따라간다. 거실바닥을 훑는다. 질퍽한 피바다, 엉망이 된 가구, 벽지, 깨진 유리 조각, 널브러진 옷가지..


혈흔이다. 거실 바닥에 어지러운 족적 - 미끄러졌거나 끌려간 흔적, 아직도 소파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 엄마다. (상상 오버랩) 도망가는 엄마, 혹은 질질 끌려가서 저기에서 죽었다..


소파 옆 작은 방. 작은 오빠… 활짝 열린 문으로 붉게 젖은 침대가 보인다. 다 흘러내린 이불, 베게, 벽지 저만큼까지 튀어오른 핏자국, LG 트윈스 야구 포스터에 주르륵 가랑비처럼 흘러내린 피. 경찰이 증거를 수집한다.


씬 38 /플래쉬 컷/

뚝뚝 방울져 떨어지던 피마저 어둡게 보이던 국방색 우비, 허스키한 목소리의 중년남자, 문큼으로 들어오던 가늘고 기다란 칼 - 피 묻은 칼. 광대뼈 위에 도드라진 ㄱ자 모양의 흉터.


(E 아이에게만 들리는 소리) 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씬 39 /거실/


젊은 남자 “유리야!”


돌아본다. 피 묻은 국방색 자켓을 입은, 목 아래를 손수건으로 묶은 젊은 남자가 뛰어들어온다. 붉은 피… 셔츠 가슴팍까지 흘러내렸다. 차가운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고 꼭 안는다. 숨을 쉴수가 없다. 그대로 쓰러져 긴 잠에 빠진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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