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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r 12. 2023

2.1 강강술래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1 도시 (D)


출퇴근 차량으로 슬슬 밀리기 시작하는 한강 주변 도로, 다리, 자전거를 즐기거나 아침 조깅을 하는 평화로운 모습.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햇살, 일찌감치 장사를 시작한 토스트 아저씨.. 발발거리며 골목을  휘젓는 통통한 강아지 한 마리를 따라가는 카메라 - 강아지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카메라 멈췄다 올려다보면 멋없는 네모 건물 – 경찰서


 2 사무실 (D)


혼자 일하고 있는 은석, 아몬드와 두유를 먹고 있다. 많이 줄어든 책상위의 파일들, 그러나 여전히 바쁜 손놀림… 갑자기 생각난 듯, 서랍에서 약을 꺼내 두유와 함께 삼킨다. 문이 열리고 종태 들어오고, 은석 - 슬쩍 약통을 집어넣으며 조용히 하라 손짓한다. 맞은편의 소파를 가리킨다. 종태 그가 지시하는 곳을 보고 깜짝 - 소파 등받이 쿠션 사이로 축 늘어져나온 힘없는 마른 손목.


종태 아이 씨, 깜짝이야… 뭐야? 왜 여기서 자?

은석 (씩 웃으며 말없이 아몬드만 먹는다)

종태 (투덜투덜 옆에 앉으며 낮은 목소리) 덩치는 불곰 만한게 다람쥐인척 하냐? 맨날 콩만 까먹고 있어, 밥 좀 먹고 다니지.

은석 늦게 일어났어요, 배 안고파요

종태 그놈의 땅콩에 두유에 콩죽… 콩밭매는 아낙네가 너 때문에 맨날 우는거야

은석 아몬드에요.

종태 그거나 그거나… 콩 까는 건 다 똑같애 (손을 뻗어 한줌 집는다)


은석 (집어가기 편하도록 가운데로 밀어준다) 어제는 좀 주무셨어요?

종태 맨날 그렇지, 뭐.. (씹다가) 야, 근데 쟤는 손을 왜 저기다 끼고 자냐, 사람 무섭게? (소파쪽을 째려본다)

은석 (여전히 눈은 모니터에 고정) 무서워요?

종태 놀랐잖아, 범죄 현장도 아니고.. 어디 저기, 모텔방 같은 데에.. 저런 사체는.. 하나둘이야?


은석이 슬쩍 소파를 보고 피식 웃는다. 두개의 커다란 쿠션 사이에 손목을 꼭 찡겨놨다. 뒤로 삐져나와 힘없이 매달린 하얀 손 – 아물지 않은 새 상처, 오래된 흉터, 대충 감은 반창고.


종태 (빈정) 꼬라지 봐라, 방어흔도 아니고 완전 공격흔… 무고한 놈 잡아죽이는 못된 경찰 놈. (표정 풀고) 소파에서 떨어질까봐 저러고 자나? 그럴거면 집구석에 가서 자야지. 아무튼 요즘 애들은 어딘가 이상해. (아몬드 우걱우걱.. 잠시 생각. 컴퓨터를 켜며 피식) 내가 얘기 했냐? 전에 있잖아, 무지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우리 딸래미가, 지엄마 자는데, 지는 몰래 거실에 나와서 친구랑 문자를 한거야. 그러다가 아빠 오는 소리가 나니까 탁자 밑으로 확 숨었는데, 나는 집에 딱 들어갔는데.. 거실에 아무도 없는데 시커먼 머리카락이, 기다란게 이만큼 탁자 밑에서 쑤욱 나와 있는 거야. 어우~, 그때 막 심장이... 뭐 강도라도 당했나, 애가 약을 먹었나…. 아니면 다른 그런 거… 아 왜, 미친것들이 하도 많으니까, 놀래가지고.. 바로 뛰어가서 테이블 보를 후왁 제꼈는데, 애가 기겁을 해가지고 소리를 꺄아아악~~ 그러니까 안에서 지엄마가 자다가 놀라가지고 또 꺄아악 ~~


은석 (조용히 웃음) 많이 혼 나셨겠네요

종태 엄청 혼났지, 그 긴 밤을 내내… 하나는 잠 안자고 문자질 했다고 혼나고, 하나는 애 잡을뻔 했다고 혼나고.. 하아... 근데 있잖냐, 해 뜰때까지 탁 자리에 누워있는데, 심장이 막, 이게 진정이 안되고 쿵쿵쿵쿵… 한잠도 못 잤어, 그날.. (다시 소파를 째려본다)


/CUT TO/ 커다란 소파, 축 늘어진 여자 손


종태 저놈도, 다 알고 다시 보면 별거 아닌데… (눈 비비며 뺨 찹찹찹) 현장밥을 너무 오래 먹었어. 세상이 다 이상하게 보여. 전에 있던 사건들이랑 막 겹치고.. (손사래) 어유, 아침부터... (심호흡) 정신병이 이러다 오는 거야. 괜히 경찰이 병원 다녀? 몸땡이 다치는거 보다 이런게 아주 사람 미친다고..


조용히 문이 열리고 조심조심… 강력팀 강진우 살금살금 오다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침. 활짝 미소. 뽀얀 피부에 세상 예쁜 눈웃음. 손에 뜨거운 커피 하나, 아이스 커피 하나를 들었다.


진우 (살금 멈추고 꾸뻑) 형님들, 오셨습니다? 좋은 아침?

종태 진우! 언제 왔냐? 너네집 안가고 여기부터 와? 나 보렬구?

진우 (미안) 아닙니다, 지금은.. 지율이 깨우러 왔습니다. 어제 늦게 자서.. (아이스 커피를 흔들어 보인다) 깨워주기로 했거든요.

종태 젊어서 좋겠다. 며칠을 잠복을 가도 피곤한 티가 안나네. 이번에도 기다리면서 얼굴에 팩 좀 하고?

진우 그럼요, 짜식들이 어찌나 안 나타나는지, 제일 비싼 걸로 엄청 오래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뻐졌죠? (뺨 내보임)


은석 (웃음) 근데, 강 형사를 알아? 우리도 어제 처음 봤는데?

진우 아, 아까 새벽에.. 저도 처음 봤어요, 복귀하다가.. 불이 켜져 있길래 들어왔더니 일하고 있더라구요. 얘기 좀 하다가.. 찜질방 가자니까, 싫다그래서, 제가 아침에 깨워주기로 했죠.

종태 커피는? 쟤 줄라고? 얼음 동동?

진우 예.. 그럼 저는 이만, 하던 일 마저… (소파 뒤로 빙 돌아 지율 옆에 슬쩍 앉는다) 지율아, 노올자… (커피를 내려놓고 자고 있는 지율을 톡톡 건듬) 친구야, 눈 떠봐, 일어나야지?

종태 걔가 왜 네 친구야? 너보다 어려.

진우 (해맑게) 친구하기로 했어요. 뭐, 위아래 다섯살은 친구.. (은석을 보며) 형님 빼고.. 형님은 형님! 얘는 친구! (툭툭) 일어나자!!


지율 (누워서 꼼지락.. 일어나기 싫다) 끄으응...

진우 (우쭈쭈) 눈 떠야지, 커피 사왔어. 일어나! (두 팔을 잡아 일으킨다)

지율 (눈도 못 뜨고 이끌려 앉는다. 산발한 머리 소파에 눈 부비부비, 종태 한심한 얼굴)

진우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치우며 빨대를 입에 대준다) 자, 입.. 마셔.. 잠 깨야지?


지율이 쭈욱 들이키고, 그제서야 가까스로 눈을 뜬다. 반대편의 종태와 은석을 발견하고는 손가락만 까딱까딱… ‘하이, 굿모닝..’. 웃어주는 은석, 어이없는 종태


진우 여기 안되겠네, 야 우리팀 가자. 사람들이 말이야, 깨워주지도 않고, 인사해도 반응도 없고.. 분위기 꽝인데?

종태 가긴 어딜가? 어제 온 애를.. 너 그럴려고 커피 사왔지? 애 빼갈라고?

진우 에이, 아니에요, 뭐하러 빼가요.. 어차피 같이 할건데. 잘해봅시다, 강지율! 근데, 너 아침 안먹어? 시간 좀 있는데 요기, 앞에 잠깐 갈래?

지율 (대충 담요 접고 일어남. 소파 중간에 돌돌말려있는 수건. 바라보는 은석) 아니. 씻어야지. 커피 땡큐.

진우 (주변 정리를 도우며) 유 아 웰컴이지. 야, 다음에는 찜질방 가는거다. 잠은 편하게 자야돼. 골병 들어.


커피를 빨며 책상으로 가 셔츠를 흘러덩 벗어던지는 지율. 뻐근한 목과 어깨를 돌리며 캐비넷 앞으로 간다. 나시 티 하나로 다 가려지지 않는 피멍… 잔뜩 부풀어 오른 살갗에 주근깨처럼 다닥다닥 맻힌 피. 놀라는 진우와 불편한 종태. 못본척 고개를 돌리는 은석. 잠이 덜 깬 지율이 캐비넷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번호가 뭐였더라… 몇번을 해도 안열린다. 짜증이다. 긁적긁적.. 이마로 콩콩콩...아이씨….


지켜보던 종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책상을 뒤진다.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서랍 안에서 약을 찾아보지만, 다 썼거나, 오래되었거나.. 진작에 파손되었거나… 버릴 물건들 뿐이다. 옆자리 은석의 서랍을 연다. 은석이 바퀴 의자를 타고 슬쩍 옆으로 비키며 다리를 치워준다. 손은 여전히 워드 작업 중. 종태 - 새 물파스를 찾아 손톱으로 비닐 포장을 뜯는다. 노안이라 어디를 긁어내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멀찌기 불빛에 이리저리 돌려본다.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는 시환의 손에 약봉지가 들려있다


시환 안녕하십니까? 어? 형 왔네? 어땠어?

진우  기름값 했다. 눈치 깠는지 안 와서.. 쫄따구만 둘. 약국 갔다온거야?

시환 어, 선배님 꺼.. 뭐하세요? 안열려요? (지율에게 다가간다)


종태가 물파스를 열다말고 서랍으로 던져넣는다 쿵… 닫아버린다. 다시 쭈우욱 바퀴로 굴러와 아무말 않는 은석. 찰칵찰칵찰칵… 자판 소리.


지율 번호 뭐였죠? 어제 했는데...?

시환 제가 할께요 (띠릭띠릭 철커덩) 이거잖아요..


지율 뒤적뒤적 옷을 찾고.


시환 아이구, 멍든거봐. 얼른 씻고 오세요, 어제보다 심해요. 약 좀 더 발라야겠어요.

진우 야, 너 그래서 팬다야? 맨날 멍들어서?

시환 (당황하며 조용히하라 손짓한다)

지율 (무심) 아니, 꼭 그런건 아니고.. 미쳐서, 미친 팬다... 어떻게 알았어? 저쪽에서 쓰던 말인데..? (옷가지를 꺼낸다)

진우 시환이가 너 찾아 다닐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사촌이 그러더라. 너 거기 차이나타운에서 엄청 유명하다고.. 완전 폭력 경찰...

시환 (말 끊음) 얼른 씻고 오세요, 팀장님 오시기 전에..


지율이 씻으러 나가고, 시환이 진우에게 짜증


시환 아, 형! 그걸 다 말하냐? 내가 무슨 스토커 같잖아?

진우 스토커 맞어. 쟤 찾는다고 미국에 있는 사람 다 동원하고.. 너 때문에 내 사촌동생이 거기까지 간거잖아?

종태 야, 야, 잠깐!! 너네, 전부터 쟤 알고 있었어? 필라델피아에서 왔대? 그럼 교포야?

시환 (우물쭈물) 뭐 비슷해요.. 형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해. 빨리 가. 출근해.

진우 어쭈, 야! 살인미소! 네가 나를 구박할 짬밥은 아니지?

종태 아침부터 뭔.. 살인미소는 또 뭐야. 류시환이가 실실 잘 웃기는 해도, 그정도까지는…

진우 아, 연예인들 그 살인미소가 아니구요, 얘 경찰대 졸업반때 ..


시환 (버럭) 아, 진짜.. (밀어낸다) 빨리 가, 출근해.

진우 (조금씩 밀려가준다) 네가 날 민다 이거지? 진심이야? 야, 경찰 몸에 손 대면 최소 벌금형이야. 경찰은 국민의 지팡이, 국가의 자산.. 몰라?

시환 시끄러, 빨리 가.. (밖으로 쫒는다) 가서 지팡이를 하든, 곰팡이를 하든.. 형 혼자 해! 여기 오지 마! (문 쿵… 닫고)


 3 복도 (D)

진우 (장난) 해보자 이거지.. (문자 틱틱틱) 짜식이 어디 선배를… (키득거리며 맞은편 사무실로)


 4 특별팀 사무실 (D)

카톡, 카톡… 종태와 은석에게 동시에 톡. 단숨에 읽고 낄낄거리는 종태. 궁금하지만, 묻지않는 시환.


종태 (목소리 가다듬고 정색) 류시환. 성동구 덕테이프 브리핑하다 웃었냐?

시환 아, 강진우 진짜…. (짜증) 저 웃은거 아니구요, 원래 웃는 얼굴이라서..

종태 (핸드폰 톡 읽음) "류시환, 성동구 덕테이프 연쇄 살인 사건 브리핑하면서 실실 쪼개다 청장님한테 까이고, 학장님한테 불려가고.. 그 이후로 별명이 살인 미소. 연쇄살인만 보면 헤벌레 웃는다../       


시환 진짜 아니에요. 그때... 저 경찰청 대변인될거라고, 인상 좋고 말 잘한다고.. 그거 되게 어려운 자리였는데, 추천 받아가지고 힘들게 뽑힌거에요. 연습도 진짜 많이 했는데…

종태 그럼 잘했어야지, 높은 분들 다 모아놓고 뭘한거야?

시환 저는 잘 했는데, 나중에 자기들끼리 막 책임 떠넘기면서 싸우시더라구요. 그런거 처음 보기도 했고, 당황하고 어색하고.. 약간 어이없게, 슬쩍 픽 웃는 것 처럼 보였대요. 뭐, 솔직히 조금 웃기기도 했는데… 그거 가지고 욕 엄청먹고, 평점 다 깎이고..


종태 그래서 꼴찌 졸업하고?

시환 (발끈) 꼴찌 아니라니까요!

종태 발령도 못 받고?

시환 나중에!! ... 좀 늦게 받았는데, 그것도.. 출근하자마자 다쳐가지고 병원에 있느라고..

종태 완전 부실하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시환 와, 우리 아버지랑 말하는거 완전 똑같애. 진짜 싫어..!

종태 얼씨구? 아버지가 왜 싫어??

시환 싫으니까 싫지요. 우와, 삼촌 진짜.. (살짝 당황)

종태 삼촌은 무슨..


지율 들어와 대화 중단. 시환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진 얼굴로 약 봉지를 집어든다. 나란히 앉아 속닥속닥 다정하다. 자연스럽게 연고를 발라주는 시환.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는 지율. 남은 약을 넘겨받아 여기저기 찍어바르고 옷을 추스린다. 여지껏 지켜보다 눈을 돌리는 종태. 인상 꾸깃. 마음에 안든다. 못마땅하다.. 이석호 출근.


석호 일찍 오셨네요? 강 형사 좀 어때요?

지율 괜찮습니다.

종태 (혼잣말) 뭐가 괜찮아, 팬다새끼 온몸이 얼룩덜룩.. (은석 혼자 웃음)

석호 간단하게 스케줄만 점검하겠습니다. 문 형사님, 차형사님은 이달내에, 전에 맡으셨던 일들 보고서 다 마무리되는 거죠? 어제 올리신거 봤습니다. 빠르시네요.

은석 별일 없으면, 나머지도 수일내에 끝날것 같습니다.

종태 (혼자 중얼) 기계야? 이걸 다 언제 끝내?


석호 (은석 책상 위에 쌓인 파일들을 본다) 아직 특별히 큰 사건은 없으니까, 그나마 한가할때 마무리 작업에 신경 써 주세요. 그리고, 문 형사님, 전에 해외 유학생 성매매 알선책 잡으신거요, 추가 영장 나온거 보셨죠? 오전에 거주지 압수수색 갑니다. 팀 꾸려서 가능한한 빨리 종료하시고, 검찰로 바로 넘겨주세요. 저한테는 나중에 이매일로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종태 (감정 없이 메모) 예.


석호 그리고, 강 형사랑 류 형사는.. 오늘은 근처 순찰 돌면서 지리만 좀 익혀둬요. 수상하다고 바로 뛰어들지 말고, 꼭 지원 요청하라는 지시 있었습니다.

종태 편하게 일하네? 왜? 저쪽은 미제라서 봐주냐? 경찰이 언제부터 슬렁슬렁 동네 길 익히고 다녔어?

석호 (침착) 서장님 뵙고 오는 길입니다. 징계는 아니지만, 따로 전달사항 있을때까지, 다른 문제없이, 조용히 지내라는 말씀 있으셨습니다. 이번 주에 윗분들하고 일정 있으시답니다. 그때 자세한 이야기 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종태 (못마땅) 어제 고시원 나갔던 거는? 의심스러운거 있어?

시환 주인을 못 만났습니다. 대신 놔두고 간 고양이 사체하고, CCTV 있는 것만 확인했구요, 오늘 다시 가서 녹화된 것 받기로 했습니다. 열시에 약속입니다.

석호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불필요한 대응은 자제하시구요, (종태, 지율을 보며 삐딱한 미소, 시환 목격, 불만) 다들 일찍 들어오시게 되면, 오후에 업무 분담 문제로 미팅 한번 했으면 합니다. 팀이 새로 생겼다고 여기저기에서 넘겨 받은건 많은데, 추릴것들은 좀 추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이 모여서 차근차근 검토하고, ... (석호 전화, 진동, 번호 확인) 질문 없으시면, 마치겠습니다.


전화를 받으며 자리로 가는 석호, 종태와 은석이 먼저 일어난다. 시환도 지율에게 눈짓.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서고.. 예, 서장님, 거기서 뵙겠습니다.. 뒤로 석호의 통화소리 작아지며 디졸브


 5 차 안 ((D)

조수석에 앉은 지율 - 칸초 한 봉지, 사이다.


시환 (운전하며 조심스럽게) 선배님, 아까 진우형이 얘기한거요.. 선배님 별명..   

지율 팬다 맞아요. 거기서는 아시아 사람은 다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관할구역이 차이나 타운이었어요. 성질 더럽다고, 약간 비하해서 부르는 거죠, 미친 팬다.

시환 너무... 무섭게 해서요…?

지율 글쎄요? 그것보다는 무시하는 말 아니었을까요? 아시아 여자애가 경찰이라고 휘젓는거.

시환 몇년하셨다 그랬죠? 6년? 7년..?

지율 예. 처음 발령 받고, 여기 오기 전까지.. 거기에만 있었어요.


시환 중국어 잘 하시겠네요?

지율 하긴 하는데 (피식) 욕하고, 겁주고 그러는 거.. 움직이면 죽어 뭐 그런 말이요. (시환 웃음) 거기는 통역이 많아서, 중국계 미국인 경찰들이요. 전원이 다 외국어 하고 그럴 필요 없어요.

시환 그렇겠네요. 아유, 여기는... 우리는 통역 못 구해가지고 난리인데.

지율 (사이다 비우고) 한국 들어왔을때, 같이 일하던 사람한테 연락이 한번 왔었어요. 어떤 한국 남자가 저를 찾고 있다고.. 그게 시환씨였어요?


시환 그 사람이 진우형 친척인데요, 그쪽에서 유학중이라 그러길래, 제가 부탁드렸었어요. 선배 좀 찾아달라고... 저 사고 났을 때, 주고 가신 명함이요, 거기 써있는대로 필라델피아에 가서, 일 하셨던 경찰서까지는 찾아갔는데, 그만 두셨다 그랬대요. 어디로 갔는지는 말해 줄 수 없고.. 나중에 보니까 그때 이미 한국에 계셨더라구요. 그것도 모르고..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어요. 조금만 일찍 찾아볼걸, 후회도 많이 하고.. (지율을 보며 웃는다. 같이 미소짓는 지율) 선배는, 이젠 한국은.. 지내기 어때요? 괜찮아요?

지율 괜찮아요. 나는 다 적응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아직 나한테 적응을 못하는거 같아요

시환 (큭) 선배님 성격이죠.. 매력?


지율 그런거 없어요. 남들처럼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보질 못해서, 그런게 잘 안 맞는거 같아요.

시환 (머뭇) 이제부터 맞추면 되죠. 적응 했으니까..

지율 (생각난듯) 사실 어제, 문 형사님이 저 야단치면서, 서장님하고 팀장님한테 죄송하다 그래라, 너 때문에 고생하신다, 그랬는데… 밤에 다시 그 말이 생각났어요. 아 그게 혹시, 문 형사님도 고생했다는 말이었나? 자기한테 사과하라는..?

시환 에이, 괜찮아요, 그 분은 그런거 신경 안 써요.

지율 제가 신경을 썼어야 했던거죠. 아침부터 그 난리가 났는데, 문제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랬어야 됬을건데.. 그게 하루 다 지나고 나서, 나중에서야 생각이 나는 거에요. 사회성이 꽝.. 이라서..


석호 전화. 스피커 폰.


석호 /F/ 도착했습니까?

시환 거의 다 왔습니다.

석호 /F/ 관련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어제 낮 1시경, 형제 고시원에서 약 40여 미터 떨어진 주택가 골목이구요, 누가 고양이를 죽이는 걸 목격했답니다. 사체를 종이 가방에 담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혹시라도 고시원 사건이랑 관련이 있는건지, 조금전에 신고하셨답니다. 지금 보내드릴께요, 확인하시고, 촬영하신 분 주소지에 들러서 말씀 나눠보세요.

시환 예, 알겠습니다 (전화 끊김)


띵… 영상이 들어온다. 골목으로 진입하는 시환. 지율 영상 확인. 주차. 함께 본다.   


/INS/ 제보영상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줌으로 한껏 당겨 찍은 짧은 영상. 화질이 선명하지 않다. 한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로 보이는 축늘어진 동물 사체를 담는다. 한쪽 다리를 들어 작은 종이 가방 안으로 넣고. 땅바닥에 핏자국으로 추정되는 얼룩. 맨손인지, 연신 손을 바지에 닦는다. 가방을 들고 골목 밖으로 사라진다.


시환 (인상) 어제 놓고 간 그 고양이는 아니에요. 박스도 없고, 복장도 다르고.. 박스 안에 있던 애랑 색깔도 달라요. 혹시 다음 걸 준비했을까요?

지율 (건조) 너무 빨라요. 많아야 한달에 한두번 이라고 했는데.. 별개의 사건일것 같아요. 흉내만 내봤거나.. 거기다가 죽이고 나서 손을 털고, 바지에 닦고 하는건, 많이 안 해본 사람이에요. 싫은거죠, 더럽고.. 몇번 해 봤으면 저렇게 맨손 보다는 뭐 하나라도 준비 했을거에요.

시환 장갑이나, 비닐봉지 같은 거... 밧줄, 아니면 살상을 위한 다른 도구들. 최소한 손 닦을 물티슈라도 하나 가지고 있었을텐데요.

지율 (폰 돌려받아 군데군데 다시 돌려본다) 그랬겠죠.

시환 지나가다 심심하다고 저러는 거면… (짜증) 할 일 없는 인간들 많아. (차에서 내린다, 영상을 끄고 함께 내리는 지율)


 6 고시원 골목 (D)

고시원 주변 살핌. 아주 큰 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진곳도 아니다. 현관에 보이는 CCTV. 불빛이 없다. 주차금지 벽보,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노점 트럭 하나, 평범한 주택가. 낡은 2층 건물,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인 오래된 간판 - 글자 떨어짐 <혀제 고ㅅ원>. 아래층 카페. 눈짓하는 시환. 앞장서 들어간다.


 7 1층 카페 (D)

여사장 어서오세요, 차 드시게?


화사하게 꾸민 중년여자. 재빨리 안을 둘러보는 지율.


시환 아니요, 경찰입니다. 말씀 좀 여쭐려구요


비슷한 나이의 또 한 여자와 나란히 앉아 메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가지런히 꽂혀있는 잡지책, 조화가 담긴 꽃병, 많지는 않지만 몇 종류의 커피가 투명한 유리병에 쪼르르 담겨있다. 동네 장사와 어울리지않게 고급스럽다.


여사장 잠복 나왔어요? 애인인척 하고?

시환 예? 아, 아니요, 그냥 순찰.. 입니다. 근처에 뭐, 잠복을 해야할 이유라도..?

지인 (깔깔) 아니에요, 아유, 언니도 참.. 이 언니가 경찰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해. 앉으세요. 커피 드려도 되죠?

여사장 왜요? 고시원 때문에 오셨어요?

시환 예. 동물 사체를 유기한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여사장 말도 말아요, 그렇게 신고를 해도 한번와서 쓱 보고 가고, 아무 조치를 안해요. 쥐새끼, 개새끼, 새 새끼, 고양이 새끼… 어디서 그렇게 잘도 주워 오는지, 내가 아주 가슴이 벌컥벌컥해.

지인 (정수기 물로 커피를 탄다) 우리랑 여기, 건물 뒤에 쓰레기통을 같이 쓰잖아요. 그 옆으로 올라가는 현관문이 있고.. 거기에다가 맨날 그런 걸 갖다놔요. 우리가 아주 기겁을 해가지고, 인제는 쓰레기 버리러 갈때도 둘이 같이 다녀요.

시환 거의 매달, 그렇다는 거죠?


여사장 전에는 그보다 더 자주 왔어요, 우리가 신고를 다 안 한거지. 왜냐하면, 처음에는, 쥐 같은거는 신고를 안했어, 길고양이가 잡았나보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그 놈인거야.

시환 남자.. 라고 생각하세요?

여사장 설마 여자가 그랬겠어요? 그런 짓을 어떻해 해? 아니, 지난 겨울에는 요만한 강아지를, 계단에다가 팔다리를 쫙 펴가지고... 아우, 남자니까 그런걸 만지지, 여자가.. 으으, 끔찍해.

시환 (지인이 가져온 믹스 커피, 두 잔 다 받음. 못본척 안쪽을 살피는 지율) 특별히 사이가 안좋거나, 싸우거나 그런거 있었나요?

여사장 엄청 많죠, 사람이 몇이 사는데? 맨날 시끄럽지.


/CUT TO/

지인이 자리로 돌아와 손을 호호 불며 메니큐어를 정리한다. 지율 지켜봄. 카운터 안쪽의 수납장으로 집어 넣는데 깔끔하게 잘 정리된 서랍속. 깨끗한 테이블을 한번 더 닦고. 비즈 달린 레이스 장식의 커텐도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유리창까지 반짝거린다. 지율이 슬쩍 손으로 쓸어본다.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는다.


여사장 고시원 사장이 사교성도 없고, 좀 냉랭해요. 그렇게 오래 봤어도, 건물주고 세입자고 그렇지, 속얘기하는 사이가 아니야. 하긴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은 특별히 웬수 질 일도 없을것 같은데.. 아무튼 그집 식구들이 다 그래. 가끔 딸이 왔다갔다 하는데,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그래야 좀 친해질걸, 눈도 안마주치고 쑤욱 지나가고 그래요. 거기다가 사장도, 재혼하고 나서는 자기는 거의 안나오고, 남편만 왔다갔다 청소하고, 일 보고 그래요.

시환 재혼은 언제 하셨어요?


지인 꽤 된것 같지..? 올라가봐요, 남편이 있을거에요. 터키 사람인데, 오래 살아서 한국말 잘해요. 방 얻었다가 친해져 가지고 결혼했는데, 남자가 일부러 수염 기르고 그래서 그렇지, 사실은 한 스무살 차이 나요. 영계야, 영계. 사람은 참 좋아요. 뭐 돈을보고 했든, 국적 때문에 그랬든 그런건 모르겠고, 아침마다 골목 혼자 다 청소하고, 겨울에 눈 치우고.. 누구보면 인사도 할 줄 알고. 사장보다 나아요.

여사장 그 사람 오고 나서부터 손님들이 다 외국 사람들로 바뀐거에요. 자기들끼리 소개시키고 그러는지, 인제는 다 외국 사람들이야. 한국 사람은 하나도 없을거에요.

시환 손님들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 있으세요? 원한 살만한…


여사장 많아요, 나도 안그래도 누가 있을까 맨날 생각해보는데, 봐봐요 (바짝 당겨 앉는다), 처음에, 뭐 죽은 거 갖다버린게 일년 됬다치면, 그러면 그 이전에 감정이 상한 사람이잖아. 나갔든지, 아직 여기 살던지, 아무튼 한국에 있는 사람이고. (관심있게 돌아보는 지율) 그 부분을, 경찰이 알아봐야되요. 출국 한 사람들은 일단 아닌 거 잖아요. 그리고 남은 사람들 중에서, 꾸준히 여기에 오는 사람,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사람. (시환 슬쩍 미소) 근데 내가 제일 이상한 건, 맨날 그것만 갖다 버리지, 더 심해지지는 않는다는 거야 (시환 미소 사라지고 관심. 지율도 집중)


지인 이상하죠? 그게 포인트에요. 소문은 엄청 많은데, 사실 그 이상 진전이 없어. 누가 정말 해꼬지를 하는 거면, 지금쯤 뭐라도 더 해야되는 거 아니야?

여사장 피해는 보긴 봤지. 손님도 줄고, 있어봤자 막일하는 불법들이니까 맨날 사라지지, 돈도 못 올리지.. 어디 다치거나, 그런 피해가 없다는 거지, 저런게 또 얼마나 스트레스야. 계속 괴롭히겠다 그건데.


지인 왜, 사람이.. 운전도 그렇잖아요. 처음에 한두번은 눈치보면서 과속하다가도, 이게 안걸리잖아? 그때부터 마음 놓고 계속 하고, 점점 빨라지고.. 자꾸 그러다보면, 위반하는게 재미있단 말이야. (사장이 째려보며 툭... 시환 눈치를 보며 사장에게) 아이, 괜찮아.. 근데 여기는요, 심해지는 거 하나 없이, 꾸주~운히 똑같애. 거기다가 큰 피해가 없으니까, 형사 고발도 아니고, 잡아봐야 동물학대나 경범죄 밖에 안되잖아요. 꼭 그걸 아는 인간이, 딱 거기까지만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시환 (감탄) 엄청 많이 아시네요. 경찰하셔도 되겠어요.

여사장 (허탈하게) 할머니 다되어 가는데 무슨 경찰을 해요. 다 티비에서 본 거지. 경찰이었으면 내가 벌써 잡았지, 여태 못 잡고 이러고 있어요.

지율 (피식. 눈을 돌리다 청소함 발견. 슬쩍 보는데, 파는 것처럼 다양하고 종류도 많음)


지인 언니, 나는 있잖아, 예전에 인도 사람같이 생긴 애기 아빠, 애 엄마 없이 혼자 갓난 애기를 데리고 들어왔다가 유괴범으로 신고 당해가지고 쫒겨난 사람.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 고시원 사장이 신고를 해가지고요, 경찰 오고 막..

시환 (수첩에 적으며) 언제인지 기억나세요?

지인 그 사람 이후로 쥐 죽은거 나오고 그랬으니까, 재작년이죠, 1년이 넘었네.. 시기상으로는,

그 사람이 딱이더라고. 어린 애 데리고 겨우 숨어 살았는데, 지가 하지도 않은 다른 걸로 걸렸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    


여사장 사실 그 전에도 뭐 많긴 했어요. 여자 하나랑 옆방 남자랑 눈이 맞았는데, 사람들한테 죄다 돈을 빌려가지고 야반도주를 한거야. 액수가 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 사람들한테는 크지. 다음달 방값 못내고 이랬으니까. 근데 사장이 진짜 야박한게, 그거 얼마 좀 깎아주던지, 뒤로 밀어주던지 하지, 돈 만원이라도 모자라면 다 내쫒았대요. 그때 우르르 모여가지고 패싸움처럼 아주 엄청 무서웠어요. 간판 때려 부수고, 경찰 오고.. 신고 기록 있을거에요. 가서 한번 찾아봐요. 숨고, 불려가고, 난리였어요.


/INS/ 지율 생각


흥분한 외노자들이 내던져진 짐을 보며 화를 낸다. 우는 사람, 애원하는 사람.. 냉정한 사장 여자.. 급기야 문을 발로 찬다, 입간판을 던진다. 글자가 떨어져 나가고... 경찰자가 오자 당황하는 사람들, 도망가거나, 따지거나..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


지율이 시환 앞에 놓인 빈 종이컵을 들고 간다. 일부러 쓰레기통 속으로 팔을 쭉 뻗어 깊숙히 넣으며 안을 본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다. 카운터로 가 손 소독제를 바르는 척 주문서를 본다. 겨우 두장.. 카드 기계도 꺼져있다.


지인 그 남자도 말이에요, 남편.. 결혼할때 양다리였어. 애인인지 부인인지, 여자 하나가 몇번을 찾아와서 울고불고 매달렸다고. 조기 구석 자리에 앉아가지고 둘이 그러는거 우리는 다 봤지.


/INS/ 지율 눈에만 보이는 상상 – 구석 테이블, 우는 여자, 달래는 남자.. 3초 컷


여사장 아참, 그리고, 국제 결혼했다가 남편이 밥 안주고 때리고 그래가지고 도망 나왔던 베트남여자도 하나 있어요. 나중에 그놈이 몇번을 와서 행패를 부렸어. 여자 내놓으라고, 고시원에 불지른다고… 아유, 말도 말아요, 우리가 여기다 숨겨주고..


/INS/ 행패부리는 남자를 내다보는 카페 사장, 경찰이 데려가고 나서야 카운터 뒤에 숨은 여자와 아기를 도망시킨다. 손에 쥐어주는 만원짜리 몇장..


지인 우리 덕에 애기 안뺏기고 잘 도망갔어, 그지? 잡혔으면 정말 죽었을거야. 그 남자, 생긴게 아주.. 아우 (진저리)   

여사장 (시환을 보며 바짝 앉는다) 경찰관님, 왜 관상이 꼭, 사람 죽이게 생긴 그런 얼굴 있잖아요. 내 평생 그런 얼굴은 진짜 처음 봤어요. 범죄자 상이요... 덩치도 이렇게 커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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