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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r 12. 2023

2.2 강강술래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8 고시원 (D)

감사 인사를 전하고 카페 문을 나선다. 스무 발자국 남짓 옆으로, 고시원 올라가는 유리문이다. 잠금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 말끔히 물청소를 한 뒤라 동물 흔적은 없지만, 범인의 동선을 그려본다… 1초 컷, 피 흐르는 케익 상자.


/INS 상상/ 수도 계량기, 쓰레기장, 계단… 누구든 쉽게 들어오는 곳. 지나가는 척, 상상속의 인물이 태연하게 걸어들어와 상자를 내려놓고 나간다. 여자? 남자? CCTV 카메라를 올려다 보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는 켜져 있었는데... 지율, 주변을 살핀다. 전봇대에도, 구청 관할의 카메라는 없다.


시환 (옆에 서며) 카페 사장님은 아닌 것 같죠?

지율 왜요? 미인이라서요?

시환 (머쓱한 웃음) 에이,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냥 그럴 분이 아닐 것 같아서요.

지율 (잠시 생각) 아까 주무너 보니까, 어제 딱 두 테이블 손님이 있었어요. 첫번째 손님이 커피 한잔, 두번째가 두잔, 합해서 커피 세 잔... 그걸로 월세 내고, 장사가 유지 될까요? 가게 세 얼마인지 알아보고, 두 사람 사이가 어떤지 탐문도 해봐야하구요. 그렇지만,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제 생각에도 저 분은 범인이 아거에요. 가게가 너무 깨끗해요. 저런 분은 자기 말대로, 쥐 죽은거 못 만져요.

 

시환 .그렇죠? .. 저도 못 만져요. (눈치)

지율 으음... (웃음을 꾹 참는다. 애써 끄덕끄덕..그럴것 같다..)

시환 뭐가요? 왜? 그런거 못 만진다구요? 아니, 뭐.. 일이면 하는데, 싫다구요. 그런거.. 왜 웃어요? 선배는 만질수 있어요?

지율 필요하면 해야죠, 증거라거나…

시환 그럴대는, 장비 다 갖추고.. (지율 키득키득) 그만 웃어요, 일이면 나도 한다니까요, 다 하는데, 그냥은 싫다... (지율 웃음, 건물 안으로) 아 뭘로 보는거야. 진짜 할 수 있다니까요. (따라간다)


 9 고시원 (D) 내부

/디졸브/ 웃는 소리 멀어지며 어두침침한 고시원 안. 남편과 마주앉은 두 사람. 좁은 고시원 부엌, 해가 들지않는다. 두칸뿐인 수납장, 한사람 겨우 서는 싱크, 엎어놓은 밥그릇…


/Ins/ 마주앉은 세 사람과 겹쳐지며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 치익… 살충제를 뿌리고 사라진다. 잠시 후에 들어와 물을 마시던 두 사람이 쓰러진다.. 디졸브


시환 CCTV 녹화분이 없다구요?

남편없어요. 있는 척 껍데기에요.

시환 (의심) 그동안 수차례, 사건이 계속 있었는데, 가짜를 달아놨다구요?

남편 공사 많아요, 건물 오래되서.. 장사 그만해요

시환 그만 둘거라서 카메라 안 달으셨어요? 어디 다른데로, 옮기세요?

남편 아니오, 와이프 아파요. 요양 필요해요.

시환 아, 그러세요.. (메모) 그리고 저기 죄송한데, 지금 와이프 분 말고, 예전에 여자 친구분도 여기 몇번 오셨다고..

남편 (언성 높아지고 지율 본다) 그 여자 아니에요. 결혼해서 살아요, 터키 살아요.

시환 그럼 의심가는 분 누구 있으세요?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요? 사이 나쁘거나, 돈 때문에 싸우거나..

남편 없어요. 사람들은, 여기 없으면 집 없어요. 다 여기 좋아해요.

시환 여기서 쫒겨난 사람들 있었죠? 월세 못 내서..

남편 월세 아니고, 공사. 물 쏟아져서 벽, 바닥 썩어, 사람 나가고 공사했어요.

시환 (아.. 하는 표정) 그럼 동네 사람들은 어때요? 외국 사람 많아져서 싫어하거나, 욕하거나..

남편 (생각) 항상 있어요. 그러나, 다친 사람 아직 없어요.

지율 (불쾌) 다치거나 죽어야 범죄인 건 아니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에요?


한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온다. 속옷 차림에 술 냄새가 풍긴다.


뱉고, 돌 던지고… 뒤 따라오면서 머리카락에 껌 붙이고? 그런 피해요? (돌아보는 두 사람에게 악수를 청한다) 경찰이죠? 오랜만에 오셨네. 나는 존이에요, 존 바울. 예전에는 미국 사람, 지금은 한국 사람. 전에는 영어 선생님, 지금은 알바.


악수를 하며 저도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지는 두 사람, 존이 입을 가린다.


미안해요, 아직 이를 안 닦았어. 어제 과음. 많이 과음 했어요. 공짜 술 있어서..

시환 (존 손에 든 라면 봉지를 보며) 브런치에요?

 응, 해장 브런치, 용산 스타일! 라면 최고! (배를 흔들며 익살스러운 몸짓. 물을 올리고 벽에 기대선다) 나 여기 반년 살아요. 폭행 많이 봤어요. 때리는 폭행 아니고, 술 던지고, 물건 뺏고, 돈 내노라 그러고.. 욕하고 뒤따라오고.. 많아요.

시환 이 동네가요? 신고 들어온거 별로 없는데? 이태원이 가까워서 외국 사람들 살기 편한 줄 알았어요.


노,노,노! 한국은, 돈 쓰는 외국인한테만, 관광객한테만, 친절한 나라. 쇼핑, 술집, 클럽… 그런거 말고, 일하는 외국인을 싫어해요. 무시해요. 나는 미국 백인, 별로 폭력 없어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 작고 까맣고 마른 친구들, 많이 당해요.   

시환 (명함) 경찰서에 한번 들러주세요. 다른 분들도, 수사에 도움 될 만한 일이 생각나면 전화 주시거나..

오호, 나 여기 경찰서 자주 가요. 밤에 술 먹고 버스 없으면 (윙크). 근데 여기 사람들은 아마 못 가요. 비자 없어서 경찰 무서워요. 쫒겨나요.. 나중에 나 술 안 취했을때 부르면 나는 갈께요, 오케? 나는 한국사람. 비자 걱정 노노노.


물이 끓는다. 사발면에 물을 채워 들고 나간다. 윙크 한번 더 하고는 큰 몸을 흔들며 사라진다.


지율 (사장에게 제보 영상 보여주며) 어제 낮에 이 근처에서, 고양이를 죽인 사람이 있었어요. 영상 한번 보세요, 아는 사람인가 (시선 사장에게 고정)

남편 (시큰둥, 봐도 반응이 없다) …

지율 (표정 변화를 관찰한다) 본 적 있어요?

남편 아니요.

지율 주변에 왔다갔다 했다거나..

남편 아니요.

지율 (핸드폰을 넣고 명함을 여러장 꺼낸다) 여기 계신 분들께 알려주세요.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남편 (받으며) 근데, 많이 신경쓰지 마세요. 별일 아니에요.

지율시환 ??? (사장을 본다)

남편 (당황) 누구 다친 사람 없어요. 경찰은 다른 일 많아서 이런 일, 고양이, 개… 안 중요해요.

시환 (침착) 불편하신거, 불쾌하신거… 그것도 저희 일입니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부담 갖지말고 연락주세요. 그리고, 사모님도 뵈었으면 하는데요, 언제 오세요?   

남편 집에 있어요. 밖에 못 나와요. 아파요.

시환 저희가 전화를 드려도 될까요? 고시원 주인이 사모님이셔서, 직접 전화 통화라도 해야 합니다.

남편 (망설) 제 핸드폰으로 전화해요. 저녁때.. 9시 지나면.. 아니면 아침 일찍. (눈치) 그때는 일 안하죠?

지율 (재빨리) 합니다, 저희는 24시간 일 합니다. (남자 실망) 여기 이 번호 맞죠?

남편 (번호 확인) 예.


 10 편의점 (D)

과자, 사이다, 바나나 우유.. 시환 계산대로 간다. 띵, 띵, 띵… 멀찌기에서 알바생을 지켜보는 지율.


알바 (기계적) 8천5백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시환 아니오, 먹고 갈거에요. 고맙습니다.

알바 (쳐다도 안보고 무성의) 맛있게 드세요(의자에 앉아 핸드폰)

지율 손님이 별로 없네요. 점심 시간 다 되어가는데.

시환 낮에 뭐 있겠어요. 다들 밤 되어야 들어오겠죠.

지율 학생들도 안보이고, 노인분들만 계신가... (알바에게) 학생 또래는 별로 없어요?

알바 (눈은 폰에 고정) 여기가 교통이 좀 안 좋아서요, 학교도 멀고.. 애들은 별로 없어요.  


밖에 나와 테이블에 앉는 두 사람. 시환이 사이다를 따서 지율에게 내민다.


지율 어려보이는데 학교를 안 다니네요?

시환 알바생이요? 그런 애들 많잖아요. 대안학교, 홈스쿨, 아님 그냥 독학.. 자체 졸업. 뭐 학교도 멀다니까..

지율 보호자는? 그냥 알바만 하게 놔두나..?

시환 왜요? 뭐 이상해요?

지율 어디서 본 애 같애요.

시환 (일어서 운동하는 척, 몸을 돌리고 기지개를 펴며 안쪽을 본다) 평범한 십대, 중간 체격, 보통 외모.. 학대 받는 느낌은 없고, 사춘기? 약간 반항기?

지율 별로 반항 못하는 반항기라면요?

시환 소심한 반항기.. 와, 그게 더 무서운건데, 속을 알수가 없어서.


지율 그 고시원 사장님 남편분 같지 않아요? 뭔가 할말 있는데 안하는 느낌. 꾹 참는..

시환 그 분, 꼭.. 범인이 누군지 아는 거 같죠?   

지율 (사이다만 꼴깍. 대답없다)

시환 어제 저녁에 우리가 갔을때, 분명히 CCTV 잘 돌고 있었어요. 근데 아까는 누가 일부러 껐어요. 넘겨주기 싫은 거죠. 껍데기만 달았다, 거짓말 하면서.

지율 제보 영상 보여줄때도, 아무 관심이 없었구요. 그놈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시환 (과자를 연다) 범인 잡을 생각이 없나본데, 그럼 신고는 왜 해, 그냥 놔두지.

지율 사장이 신고했나요? 잠깐... (멈칫) 신고자가 누구죠?

시환 (아차…) 그러게요, 그걸 확인 안했네. 내 건물, 내 장사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혐오 사건에 관심이 없다, 그럼 신고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지율 (사이다를 마시며 서둘러 일어선다) 좀 더 알아봐야겠어요. 최초 신고자가 누구인지, 이후에는 누구였는지. 카페 사장님 말대로 출동도 몇건 있었다면, 그것도 다시 찾아보구요.


시환 주섬주섬 남은 걸 챙겨들고 차로 가고. 굳이 쓰레기를 모아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지율. 쓰레기를 버리며 다시 한번 알바생을 훑어본다. 꼼짝않고 게임만 하는 알바.  


 11 차 안 (D)


시환 (운전하며) 아직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단 기간이나 피해 정도로 봐서는, 정신 상태가 아주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아요. 감정 컨트롤도 잘 되고, 정상인데, 나쁘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하고 있어요.

지율 홧김이나 술김은 아닌거죠.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여요.

시환 뭐랄까, 느낌이… 범죄라기 보다는, 가까이에서 약올리는 거 같아요. 거기 사는 외국인들을 겁주려는 의도라면, 지금쯤은 다른 것도 시작했을 거에요. 흔한거 많잖아요, 뭐.. 유리창에 돌을 던지던지, 담벼락이나 문에 협박 메세지를 쓰거나..

지율 특정인을 노린다고 생각해요? 원한?

시환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겠죠. 그것도 좀 쎈거같구.. 그냥 항의? 시워? 나 기분 안좋아, 알지? 뭐 이런 정도?

지율 (끄덕끄덕) 나 좀 봐달라.. 그래요, 협박도 보복도 아닌.. 어린애 반항.. (멈칫)

시환 어린애, 어린애 반항..


둘다 생각.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깜짝 놀라는 두 사람, 시환 웃음. 깜짝이야...


시환 아오, 깜짝.. 소리를 언제 켰지? (미안) 죄송합니다... 간 떨어질 뻔.. 예, 문형사님, 무슨 일 이십니까?

종태 /F/ 어디야? 사고 안 쳤어?

시환 서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왜요?

종태 /F/ 24시야, 들려. 10분?

시환 (지율 눈치보며) 15분 주십시오.

종태 /F/ 오케이, 시켜놓는다 (전화 끊김)

지율 어디요?

시환 (머뭇) 경찰서 뒤에 식당이에요. 형님들이 자주 가시는데, 24시간 영업이라… (눈치) 선배 불편하셔도, 이제 한 팀이니까, 같이 하셔야죠..


지율 무표정 답없다. 더 걱정스러운 얼굴의 시환이 손을 뻗어 톡톡.. 지율의 손등을 토닥인다. 시환을 본다. 시환도 돌아본다.


시환 제가 옆에 붙어있을께요. 힘들면 말씀하세요.


운전.


 12 골목 (D)


정류장을 지나며 경찰서 간판이 보인다. 사거리 뒤로 돌아 꺾어지는 차. 두대 간신히 지나는 작은 골목 안쪽으로 의외의 커다란 건물 하나가 나온다. 당구장, 만화방, 식당, 노래방… 빼곡한 간판들이 정신없다. 불가능해보이는 공간에 차를 끼워넣는다. 반밖에 안 열리는 문으로 겨우 빠져나온다. 역시, 운전 잘 한다..


시환 (일부러 쾌활하게) 어서 오십시오, 절대 경찰서 부속 아닌 부속, 이 동네 유일한 아저씨 종합 레저타운 <한영빌딩> 입니다.

지율 (둘러보며) 여기를 자주 오신대요?

시환 큰 길은 비싸잖아요, 젊은 사람들 먹는것만 많구요. 여기는 반값까지는 아닌데, 동네 장사라 양도 많고, 주로 한식이에요.   

지율 (안으로 들어감) 문형사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시환 그죠?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13 24시 식당 (D)


식당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저 끝에서 손을 흔든다. 단단한 체격의 남자들이 모여있다. 몇몇 아는 얼굴들과 인사한다. 테이블마다 하나씩 끓고 있는 부대찌개. 살짝 긴장하며 지율을 살피는 시환.   


종태 앉아. 이 맴버 한번에 모이기 힘들다. 니들 본다고 억지로들 시간냈다. 이쪽은 알지? 우리 팀 막내 류시환, 그리고 어제 새로 조인한 강지율. 둘이 파트너야.

조 팀장 (반찬 집어먹으며) 뭉치들이지, 뭉치. 사고 뭉치.

종태 초치지 말고, 어제 늦어서 정식으로 인사 못했으니까 이렇게라도 약식으로 얼굴 보자고. 그래야 같이 뛸거아냐. 강지율, 이쪽에 이 인상 더러운 애들은 우리 앞집, 강력 1팀. 조 상현 팀장은 어제 잠깐 봤지? (목례), 나랑 20년지기 베스트 프랜드고 (일동 키득키득 웃는다), 정환이하고 박 형사 둘이 짝꿍, 이찬영이 송중원이는 2팀 최고참들이고, 진우랑은 아는 거 같고, 그 옆이 1팀 막내이고 진우 짝꿍 민규.. 시환이랑 민규는 너보다 2-3주 먼저 왔으니까, 그래봐야 너나 얘들이나 아는 거 없어.

  

조 팀장 (툭) 이석호는 어디가고?

종태 업무가 바쁘십니다. 조상 덕이 많아서, 어찌나 윗줄에서들 그렇게 불러제끼는지. 팀은 뒷전이에요.. 앉아, 밥부터 먹고, 우리 주말끼고 한번, 얘들 갈 때 동네 한바퀴 같이 돌자고. 그 얘기하자고 모였어.

조 팀장 아무나 끼워주는 거 아니야. 형님이 부탁해서 특별히 가이드 한번 해주는 거니까, 농땡이 치지 마.

시환 유흥가요? 단속 가나요?

정환 번화가라고 하자, 어감이 안좋다 (박 형사 피식, 밥 뚜껑 오픈).

진우 (맨 끝에서 손짓하며) 지율아, 이리와, 앉어.


서빙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고 밥 두개를 내려놓고 가버린다. 시환 재빨리 진우 옆으로 앉고


진우 너 말고, 지율이 자리야.

시환 (아랑곳없이 반찬들을 옆 테이블로 넘긴다. 부대찌개도 민규 앞으로 바짝 밀어 놓고 몸으로 가린다. 멍하니 보는 진우, 민규) 선배님, 앉으세요. (음식이 보이지 않도록 맨 끝자리를 가르킴) 뭐 드실래요? 다른거 시켜도 되요.

진우 다 치웠으니까 다른걸 시키자고? 뭐하냐 너?

시환 (아랑곳 않고 메뉴를 본다) 선배 드실만한게..

지율 (눈치) 괜찮아요, 같이 드시고, 저는 사이다만 하나..

종태 강지율이 또 사이다야? 밥을 먹어, 임마. 하루 종일 사이다만 먹냐? 왜? 부대찌개 싫어?   

시환 그게… (눈치) 선배가 좀.. 못 먹는게 많아서..


지율 (잠시 망설) … 제가, 드릴 말씀이… (다같이 지율을 본다, 난감) 사실 오래전부터, 음식을 잘 .. 섭취..합니다. 좋아졌는데, 아직 먹는게 많이 힘듭니다.

정환 (찌개를 뒤적거리며 무심하게) 뭐야? 섭식장애? 그럼, 먹고 토하나? 거식증 같은거?

지율 예, 가끔....

정환 에유, 괜찮아. 우리는 더 드러운것도 맨날 보는데 뭘 (툭 치는 박 형사) 아니, 토하는게 더럽다는 게 아니라, 그런 거 다 이해한다, 이거지.


조 팀장 그럼, 강 형사는 뭘 먹어? 이런거, 한국 밥.. 못 먹어?

지율 먹는것만 먹습니다...

시환 메뉴 뿐 아니라, 속이 안보이는 걸 잘 못 드십니다. 하나씩 떼어놓거나, 얇게 펴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봐야..

조 팀장 지랄도 풍년이… (참는다) 가지가지 한다. 대충 먹어, 임마. 가뜩이나 먹다말고 뛰쳐나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 그걸 헤집고 있어?

진우 너 그래서 맨날 사이다만 먹는 거야? 과자랑?

박 형사 그럼 진우랑 비슷하네, 쟤 맨날 앉아서 젤리 까먹잖아 (일동 웃음)

진우 저는 후식입니다, 당…! 충전.. (웃으며 지율을 본다) 뭐가 들었는지 보여야 먹는다고? 그럼 김치 같은 거는, 이건 어떻게 분리해?

시환 빨간 건 어차피 잘 못 드시니까, 백김치 같은 거는 괜찮아. (지율이 그만하라 손짓)


민규 빨간 걸 다 못 드세요? 그럼 양념한거 다 안되겠네? 여기 이 부대찌개 안되고, 김치, 고추장 들은거 다 안되고.. 떡볶이, 양념치킨, 젓갈.. (시환이 다급히 손을 내젓는다)…응? (눈치, 조그맣게) 그거 다 안 되고..

종태 너 고기는 먹냐?

지율 .. 아니요.. (눈치) 마른 오징어는 먹습니다.

정환 (푸하 웃으며) 마른 오징어가 언제부터 고기야. (부대찌개 한 국자를 덜으려다 눈치) 야, 그러면, 옆 사람이 먹는 거 봐도 힘들고 그러냐?

지율 (망설) 가끔 상황 봐서..   

조 팀장 상전이야, 상전. 야 이 자식, 너… 너랑은 같이 밥도 못 먹겠다. 술은 좀 하나?

지율 예.. 많이는 안 합니다.


진우 먹고 자야되는데 술을 어떻게 마셔? 잠도 안자는 애가.

찬영 밤에 안자? 그럼 뭐, 낮에 자나? 야아, 미국에서 왔다더니 아직도 시차 적응이야? (일동 낄낄낄…)

시환 아니, 그런거 아니고..

종태 시끄럽고! 강지율! 뭐 좀 먹으려고 노력은 하는거야? 고치는 중인거지?   

시환 (씩씩하게) 예, 노력중입니다… (아차..)

지율 … 예,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태 몸 쓰는 놈이 사이다만 먹고 어떻게 살어. 난 따라다니면서 먹을거 챙기고 그런거 못해. 니가 알아서 먹어. 뭘 먹든 뭐라고 안 할테니까.

 

조 팀장 (삐딱) 야, 형님, 엄청 젠틀맨이시네.. 하여간에, 이래서 나는, 가끔 한번씩 여자애들 왔다가면 힘들어.

박 형사 (단호) 여자애라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약점 하나씩은 다 있잖아요.

조 팀장 약점이고, 단점이고,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이 힘들잖아. 봐라, 인제.. 우리 회식 한번 할라그래도 쟤 때문에 이거먹네 저거먹네 좀 복잡한가.

종태 (열받음) 앞집 아닌데 왜 신경쓰십니까?

조 팀장 (같이 열받음) 아 언제는 두 팀이 잘 지내 보자면서요? 같이 할 일도 많고..?

종태 (빈정) 밥은 우리끼리 먹을테니까, 앞집은 빨간거 많이 드세요..

정환 아오, 또 왜들 그러십니까, 그릇이나 주세요, 덜어드릴께요..


종태, 조팀장, 입을 닫는다. 불편해진 식사 자리, 곤란한 지율… 속까지 힘들어진다. 참아보지만, 안색 안좋아지고.. 지율의 눈치를 보며 찌개를 한쪽으로 숨기고 먹는 민규, 아예 국물 없이 반찬만 집어 먹는 진우.. 속에서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고 앉은 지율..


시환 (눈치채고) 아주머니, 여기 사이다 두개 주세요 (지율에게 낮은 소리로) 선배, 괜찮아요? 나갈래요? (지율 고개 젓는다) 아이, 사이다 왜 안 줘.. 잠깐만요, 제가 가져올께요 (일어서서 가지러 감)


지율이 말리려다 말도 못하고 헛구역질을 한다. 진우, 민규 식사를 멈추고 걱정스런 눈빛, 줄줄이 식사를 멈추며 지율을 본다. 시선이 부담스러운 지율, 자리를 뜨려는데 또 한번 올라온다.. 우욱… 결국 입을 막고 뛰어나가고. 수저를 탁… 내려놓는 조 팀장과, 그런 그가 불쾌한 종태. 불편한 분위기.


진우 (따라나가려는데 시환이 사이다를 들고 나온다) 야, 지율이 지금..

조 팀장 (참았던 호통) 다들 앉아!!! (두사람 깜짝) 밥이나 먹어! 애기야? 토 하는거까지 따라다녀?


걱정되지만 일단 자리에 앉는 두 사람. 민규가 눈칫것 찌개를 덜어 둘에게 내민다. 사양하는 시환   


민규 (속닥) 강형사님 오기 전에 우리가 얼른 먹고 치워요. 빨리.. (억지로 받는 시환)


서둘러 한입씩 뜨는 사람들,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제일 먼저 한그릇을 비운 정환


정환 오우, 뱃속이 아직도 뜨거워. 야, 근데, 왜 그러는거야? 왜 저러는데? 다이어트는 아닌거 같고..

시환 (머뭇) 그건 아니고, 어렸을때,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정환 그러니까, 그게 무슨 사고냐고? 뭔데 밥을 못 먹어?

시환 누가 반찬통에 뭐 이상한 걸 넣어놨는데, 모르고 삼켰다가.. 그 다음부터...

진우 (식사하며) 뭔데? 뭘 삼켰는데?

시환 (형까지 왜 물어, 하는 얼굴) …

정환 야, 말을 해, 그래야 우리도 조심하지.. 뭐야? 빨간 반찬이야, 그것도 못 먹는거야?

시환 젓갈.. 이요.


정환 그래? 그럼 인제 밥먹을때 젓갈 다 빼고.. 그래서, 거기에 뭐가 들었었는데?

진우 (망설이는 시환을 보며) 형님 말이 맞아. 우리도 알아야 조심을 하지. 먹을때마다 이꼴이면 서로 힘들다. (국물 한 수저를 뜬다)

시환 (결심) 지문이요. 끝에만 도려낸 살점..

진우 (입안에 넣던 국물이 주르르. 황급히 냅킨으로 닦고 시환을 본다, 눈으로 ‘미친거지…?’)


다들 경악스러운 표정, 수저 내려 놓는 박 형사.. 착잡한 종태.. 인상 찌푸리는 조 팀장.


시환 범죄를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범의 신원을 숨기려고 손끝만 도려내서 냉장고에다가 넣고 도주했답니다.

조 팀장 범인은?

시환 못잡았습니다.

중원 어렸을때라며? 현장에는 왜 갔어?

시환 선배님 댁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고, 나중에 혼자 밥 먹다가 발견했다고..  

조 팀장 돌겠구만… 그럼 가족이 죽은거야? 언제?

시환 초등학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정환 에이씨.. 밥 못 먹을만 하네, 어린애가.

   

묵묵히 식사하는 은석. 그릇을 싹 비운다. 눈치보며 하나 둘 깨작거려보지만 이내 그만 둔다.


조 팀장 다들 밥 먹어! 찌개로 누룽지 만들거야?

종태 (혼자 중얼중얼) 어떻게된게 멀쩡한 놈이 없어? 팀장은 현장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지, 한놈은 하루 종일 실실거리고 똥오줌 못 가리지, 성질 드런 어떤 놈은 밥도 혼자 못먹지.. 하아.. 쉽게 가자고 옮긴건데, 똥 밟았어. 안그러냐, 은석아?

은석 (못들은 척, 핸드폰을 꺼내든다)

종태 (째려본다) 그래, 한 놈이 더 있지. 말 드럽게 안하는 팔뚝 두꺼운 놈. 세상을 지 혼자 사는 괘씸한 놈의 시끼…


 14 건물 화장실 (D)

같은 시간, 지율이 긴 복도 끝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향한다. 몇 걸음 앞인데 결국 못참고, 입안 가득 물고 있던 것들을 쏟아낸다. 한낮에 술취한 여자처럼 휘청거린다. 위경련까지 겹쳐 허리도 똑바로 펴기 힘들다. 바지와 신발에 토사물이 튄다. 멀찌기 둘러가며 피하는 사람들. 입을 꾹 막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하나뿐인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던 여자가 힐끔 쳐다본다. 변기에 제대로 토하려고 들어갔지만, 게워낼 것도 없다. 힘겨운 헛구역질에 노란 위액만 뽑아낸다. 두어번 연거퍼 물을 내린다.


세면대로 나온다. 여자 얼굴 찌푸리며 자리를 비켜준다. 시큼한 입을 헹군다. 혀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숨 쉴때마다 올라오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린다.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땀도 씻어낸다. 수건이 없어 셔츠 소매로 물기닦는다. 거울 속 화장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15 회상 - 상도동19년전 (D)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는 여자 아이. 환자복을 입었다. 햇반을 데우고 김치와 김,   조개젓을 얹어 밥을 먹는다. 너무 조용한 집. 불도 안켜고, 그림자 내려진 거실 탁자에서 수저만 달그락 거린다. 젓갈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만히 들어올린다. 왼손 검지손가락까지 동원해 잘 펼쳐서, 창문 쪽 노을지는 햇살에 비추어 본다. 빨간 양념이 묻었지만, 빛이 통과할 만큼 얇은 껍데기에 눈에 보일만큼 선명한, 구불구불한 줄무늬...   


아이가 불을 켠다. 싱크대에 서서 물에 살살 헹구어 다시 펼쳐본다. 서랍에서 지퍼백을 꺼내 조심스럽게 집어 넣는다. 조개젓 뚜껑을 닫아 반듯하게 정리한다. 지퍼백을 젓갈통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본다. 속이 불편하다. 가슴을 두드린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어수선한 광경... 바닥에 그려진 사람 형태의 테두리, 방문 앞에 붙은 노란 테이프... 벽, 바닥, 가구 여기저기 시커멓게 변색된 핏자국... 그리고 정신 사나운 여러명의 발자국.


 16 골목 (D)


골목길을 걷는다. 젓갈통을 꼭 안고 걸어간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수퍼까지 온 아이.. 코트를 입었어도 추워서 파랗게 질렸다. 호빵기계를 살피던 수퍼 아주머니에게 다가간다.


아이 아줌마, 전화 좀 빌려주세요

아주머니 어머, 어머… 너 저 집 막내잖아? 여기 어떻게 왔어? 너 혼자야?

행인 1 (소리를 듣고 하나씩 모여든다) 얘 맞네, 사건 난 그 집..

행인 2 아이구, 애기야, 혼자 다니면안돼. 옷도 아직 병원 옷을 입었어.

아주머니 병원에서 나온거야? 집에 가 볼려고? 거기 인제 못 들어가..


(눈물을 글썽이며 담요를 가져다 덮어준다)


아이 (무표정) 전화 좀 빌려주세요, 아빠한테 전화해야돼요.


/E/ (멀리서 목소리) 야 이 자식아! 너 말도 안하고 막 사라지면 어떡해?

아이 돌아보고


젊은 남자 (헉헉거리며 뛰어온다) 누가 데려간 줄 알고 기절할 뻔했잖아! 창밖에 본다더니 왜 여기까지 와? 얼마나 찾았는데?

아이 배고파서..

젊은 남자 아직 집에 가면 안돼. 가자, 병원 데려다줄게 (잡아 끈다)

아이 (버틴다) 삼촌, 나 이상한 거 먹었어. 위세척 해야돼.

젊은 남자 네가 몇살인데 위세척을 해? 뭘 먹었는데? … 손에 든 건 뭐야?   

아이 조개젓. 이 안에 지문이 들어있어. 삼촌들이 찾던 그건가봐. 그 놈 손끝 잘라낸거 찾는댔지? 아빠랑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남자가 반찬통을 받아든다.


아이 내가 몇개 삼킨거 같애. 위세척하면 나와? 지금 토하면 증거로 쓸수 있어? 토해볼까? 이것만 있으면 범인 찾는거지?   


젊은 남자가 아이를 평상에 앉히고 통안을 살핀다. 잘 안보인다.. 아이가 지퍼백을 내민다.


아이 이게 더 잘보여. 내가 건져서 물에 씻었어. 맞는지 자세히 볼라고.   


남자가 지퍼백에 담긴 살점을 들여다보고 얼굴이 굳는다. 애써 태연하게 아이를 내려다본다.


젊은 남자 아니야, 유리야, 이거 지문 아니야. 할머니가 젓갈 담으시다가 다른 거, 생선 같은거 들어갔나보다 (안심하는 사람들) 이거보고 놀란거야? 에이, 사람 손가락 이렇게 안 생겼어, 삼촌이 잘 알잖아. 왜? 속이 안좋아? 사이다 하나 마실래?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웅성거리는 사람들, 가게 주인이 문을 닫아준다.


 16 가게 안 (D)


따뜻한 가게 안에서 몸을 녹인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사이다 캔.


젊은 남자 아빠한테 비밀이다? 병원에서 혼자 나온거, 여기까지 걸어온거, 집에 들어갔던 거, 내가 사이다 사준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생각하지도 말고… 오늘 일은, 이 세상에 없던 일이야. 알았지?

아이 (사이다를 마시며) 응..

젊은 남자 사이다가 있잖아, 뱃속에서 뽀글뽀글하잖아, 그게 아픈거, 이상한거, 불편한거 다 없애주는 거야. 삼촌도, 아프고, 화나고, 슬프면 사이다 마신다? 먹고 트림 한번 꺽 하면, 다 없어지거든. 머리속, 뱃속, 마음 속… 전부 다. 사이다가 다 녹여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이거 마시고, 속 다 나으면 병원으로 돌아가자. 추운데 택시 탈까? 아빠 오기 전에 가야지, 들키면 우리 둘 다 혼나.(웃음)

아이 응.. (같이 웃으며 서둘러 사이다를 마셔보지만, 탄산 때문에 힘들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꾹 참는다. 아이가 보지 못하게 반대쪽 등 뒤로 숨겨놓은 젓갈통과 지퍼백. 최대한 태연하게, 억지로 미소 짓는다. 아이 역시 알면서 모르는 척, 가짜 미소를 보이며 사이다를 비워간다. 사이다를 들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을 몰래 쥐었다 폈다 하며 진정시킨다. 토할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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