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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r 12. 2023

2.3 강강술래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17 건물 화장실 (D)

물을 뚝뚝 흘리며 세면대에 선 지율,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여자 (냉랭)   저기요, 거울 다 쓰셨어요?

지율 아, 죄송합니다..   쓰세요. (비켜주고 밖으로 나온다)

(뒤에서 째려보고 다시 거울로 향하는 여자, 치장에 열중한다   )


 18 복도 (D)

물을 닦아 축축한   셔츠를 손으로 펄럭거리며 복도를 걷는다. 식당 쪽으로 꺾어지려는 순간, 가볍게 뛰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 꾹 눌러쓴 모자 위로 한겹 더 뒤집어 쓴 모자티.. 다른 사람들을 피하려는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걷는다. 화장실 방향으로 직진한다. 좋은 일을 상상하는지, 슬쩍 웃고 있다...


저벅저벅저벅.. 철커덕..   쿵.. 멀리서 화장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린다.. 그 여자... 혹시 아까 그 여자가 나오는 소리일까 잠시 기다려본다... 여자의 구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되돌아간 지율이 철문을 벌컥 열어제낀다.


 19 화장실   (D)

혼자 있던 여자가   깜짝 놀란다. 누구와 전화 중이었는지 째려보며 전화를 끊는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시선을 돌린다. 남자 소변기   쪽에는 아무도 없다. 좌변기가 있는 두 칸 중 하나가 잠겨있다. 찾았다... 여기다..


여자가 짜증난   얼굴로 가방을 챙겨들고 나간다.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지율도 귀를 기울여본다. 화장실에 볼일이 있는 사람 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발소리를 죽이고, 놈의 옆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칸막이 사이 사이와 위 아래까지 꼼곰히 살핀다. 핸드폰이   들어 올 틈은 없다. 변기 뒤, 아래, 안까지 다 들여다 봐도 카메라는 없다.. 고개를 갸웃

지율 (시환에게 문자) ‘1층 공용 화장실 몰카범 추정 남…’

순간 이상한   느낌.. 눈을 들어보니, 송곳처럼 길쭉한 꼬챙이가   문틈으로 이만큼.. 들어와있다.


/플래시 컷/   

어린 시절 문틈으로   들어오던 피묻은 칼날… 남자의 눈, 어린 아이의 공포에 질린 얼굴..

놈은 정확히   걸쇠 위치를 알고 있다. 서서히.. 걸쇠를 들어 올린다...   찰 ...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꼬챙이가 멈춘다. 찰칵... 한장 더 찍었다.   남자가 피식 웃는다..


후드티남 너 뭐하냐? 그래, 찍어. 강도강간 너의 마지막 기념 촬영이야.

지율 (강도강간… 한두번 해 본 놈이 아니다..하는 표정)


멈췄던 칼날이 갑자기 움직인다. 걸쇠가 확 올라가는 걸 핸드폰으로 재빨리 찍어 누른. 걸쇠를 사이에 두고,   위에는 핸드폰, 아래는 쇠꼬챙이... 놈이   또 웃는다..


후드티남 어쭈? 빠른데? 소용없어, 너 벌써 무섭잖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건데 뭐할라고 개겨? 순순히 나와.. 나 꽤 괜찮아, 살살 할께..   여기 싫으면 방 하나 잡을까? 나와봐, 나와서 얘기해..


/E/ 너 거기 있는거, 아저씨는 다 알어,   그만 숨고 나와…


몸이 싸늘해진다.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놈을 잡겠다는 떨림이다.. 미처 다 보내지 못한 문자를 멈추고,   핸드폰을 소리나지않게 변기위에 올려놓는다. 손을 가볍게 풀고 다음을 준비한다.   변기 옆으로 바짝 붙어 문과의 공간을 최대로 늘린다. 차가운 눈빛,   조용히 기다린다…


/E/ 다 끝났어, 새끼야, 내 눈에 띄었으니 넌 죽은거야…


저주였던 그 말은, 이제는 주문처럼, 식전 애국가처럼, 반복한다, 너는 죽은 거야… 죽은거야… 죽은거야.. 죽는다… 죽여버린다…

놈의 날카로운 꼬챙이가 훅 들어와 걸쇠를 올리고 문을 당긴다.

콰광!!!

변기를 딛고 튀어나가며 체중을 한가득 실어 몸을 날린다. 벌컥 열린 문에 맞고 놈이 나동그라진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흉기를 떨어뜨린다. 먼저 주워 싱크대 위로 던져버린다. 사냥을   시작한다..


놈이 일어서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주먹을 퍼붓는다. 공간이 좁아 발차기가 어렵지만, 급소만 찾아 정확히   가격한다. 기어서라도 도망가려는 놈의 머리를 움켜쥐고 소변기로 끌고 간다. 한번, 두번, 세번… 쩍… 금이 갈때까지 내려 찍는다.   비명도 못지르는 남자를 바닥으로 툭… 가볍게 내려놓는다.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친다.   꼼수를 읽는다. 무기가 하나 더 있는지, 슬금슬금 손을 옷 속으로 가져간다. 여유있게 걸어가 무릎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있는 힘껏,   손이 있을 곳을 밟는다. 뿌드득…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후드티남 으허억…. .

고통에 눈이 튀어나올듯 시뻘개진 놈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발로 자근자근 밟는다. 털썩 올라앉아 모자를 벗기고 주먹을 날린다.


/E/ 죽어! 죽어! 죽어 이새끼야!!

/플래시 컷/ 침대에 누운 오빠를 칼로 내리 찍으며 소리치는   남자, 국방색 우비, 모자.. 이미 숨이 끊겨 아무 움직임 없이 당하고만 있던 모습… 온 벽으로 튀어오르던 피, 검정   바디백, 양말에 젖어드는 피, 들것을 든 구급대원,   경찰차 불빛… 뒤늦게 뛰어온 아버지…


/E/ 아빠야, 아빠 왔어..


지율 (아빠 왔어… 주먹을   멈추고 놈을 본다)

놈은 이미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지율의 몸에도 온통 피가 튀었다. 땀과 섞여 흘러 내린다. 손바닥으로 눈 주위를 한번 쓱 닦고, 놈의 옷을 뒤진다. 윗주머니에서 공업용 커터칼이 하나 나온다. 역시나... 손이 닿지않도록 싱크대 위로 던져놓고 멱살을 잡아 놈을 질질 끌고 나온다.


 20 복도 (D)

화장실 쪽으로 걸어오던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한명, 두명,   지나가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상가 복도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진다.


지율 (담담한 목소리)   화장실 사용 못하십니다, 2층 가세요..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낸다. 신고를 한다.. 잘 됬다, 신고하도록 놔둔다..


축 늘어진 남자를 바닥에 내팽기친다. 무거워 헉헉 거린다. 지원 요청을 하려 핸드폰을 찾는다.   화장실에 두고 왔다…! 놈을 한번 본다.. 죽은 듯 누워있다. 무릎을 잡고 구부린채 잠시 한숨 돌린다. 놈을 한번 쳐다보고, 화장실 쪽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힘을 낸다. 핸드폰을 가지러 돌아선다. 두세걸음   옮겼을까, 통증이 온다… 놈이다.. 찔렸다…


/CUT TO/


카메라 이동 - 다리에 송곳이 박혔다, 인상쓰는 지율,   


/Cut To/

누운채로 송곳을 꼭 쥐고 씨익 웃는 놈..


사람들 꺄아악~~~


 21 식당 (D)

대충 식사를 마치고 어색하게 앉아있는 사람들. 동시에 문자가 뜬다.


/원효로 용산 경찰서   뒤, 한영빌딩 1층 화장실 폭행 혹은 강도 2명 중상 흉기소지/


중원 뭐야? 여기잖아?

종태 강지율이 안들어왔지? (벌떡 일어나 가게 안을 둘러본다)


시환이 전속력으로 뛰어나간다, 뒤따라 나가는 진우와 은석..


종태 (악을 쓴다)   지율이 막어!!

일행 (뛰어나가려는데 종태가   막는다)

종태 정환이는 출동했다고 서에 알리고, 건물 입구 막아. 박 형사, 구급차 부르고, 민규, 1층에 있는 사람들 다 내보내.   중원이하고 찬영이는 계단막아. 1층에 아무도 못들어오게 해.

박 형사 구급차는… 부상 여부 확인을 먼저 하고..

종태 (조팀장과 밖으로 뛰며)   그때는 영구차를 불러야 될거야


 22 복도

쫒겨나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현장으로 향하는 종태

민규 경찰입니다, 나가세요, 출입구 봉쇄합니다

조 팀장 위험합니다, 다들 나가세요..


웅성웅성 몰려가는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우뚝 선 은석과 눈이 마주친다. 무전기를 들고 있다.   종태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무전을 친다..


은석 사건 종료, 원효로 한영빌딩 폭행 사건 종료합니다. 흉기 소지   20대 남자, 현장에서 검거했습니다. 구급차   지원 바랍니다. 용의자와 경찰, 각 한명씩 부상입니다… 속히 이송   바랍니다..


사람들이 쓸려나가고 휑해진 복도… 은석의 발 아래 벽에 기대고 앉은 지율이 보인다. 종아리에서 피가 흐른다. 진우가 셔츠를 벗어 지혈하고   있다. 복도 이쪽편에는, 용의자가 시체처럼 누웠다.   놀랍지도 않다.. 헐떡거리는 걸 보니 그래도 살아는 있다… 한번 째려보고 핏자국을   좆는다. 복도 저편으로 이어진, 질질 끌고 온 듯한 혈흔.. 종태가 머리를 감싸고 엉거주춤하게 주저앉는다. 안심인지 분노인지, 알수 없다..


조 팀장 (나가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지율 앞에 선다) 찔렸어? 칼이야?

진우 송곳입니다. 지금 막 뽑았습니다.   큰 부상은 피한 것 같은데, 깊이가 꽤 됩니다.

(뽑은 송곳을 들어 보여준다.   3-4센치 이상 피가 묻었다)

조 팀장 약은?

진우 류시환이 가지러 갔습니다.

종태 (가까이에 쭈그리고 앉아   지율을 본다) 2타석 2 홈런.. 네가 아주 사람 심장을 개작살 내는구나.

지율 (아픈걸 꾹 참고 미소)   검거율 백프로면 상 주나요?

종태 우리 아직   팀도 다 안꾸려졌어. 너 계속 이런식이면, 상이 아니라, 상, 치명상, 초상을 치룰거야. 살살하랬지? 다른 사람도 많아, 니가 다 안잡아도   돼

지율 그거에요? 내가 범인 잡는게 싫은 이유? 내가 다 잡을까봐?

종태 사고 좀 치지 말고, 며칠만 조용히 있으랬지?

지율 사고 아니고, 검거잖아요. 지 입으로 말한 강도 강간 미수,   특수 폭행… 그것도 현행범. 즉석 3분  카레처럼 후다닥.. 검거 완료.


종태가 지율을 본다. 이번에는 꽤 깊은 자상이라 그런지 아파보인다… 진우가 셔츠 자락을 끌어당겨 얼굴의 땀을   닦아준다. 눈만 감았다 떴다하며 아이처럼 얌전히 앉아있는 지율. 힘없이 기대어 앉은게 졸린 것 같다..


종태 (포기한 목소리) 저런 놈 만나면, 지원 요청하랬지?   이런 그지같은 거에 찔리면,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소리를 지르라고... 도와달라고, 저 놈 잡으라고.. 오늘 아니면 내일 잡으면 되고, 저거 반만 해도 멀리 도망 못가. 왜 꼭 니 몸 다칠때까지 죽자고 버텨?   여자애가 겁대가리가 없냐.


지율 (당연한걸 묻냐는 듯   진심 웃는다) 경찰이잖아요! 경찰이니까 경찰이 잡아야지, 누구한테 저놈 잡아주세요, 내가 미쳤어요?

종태 깡통 로봇 같이 시끄럽기만 한 놈이.. 소리만 요란하고, 툭 치면 다 부서질 자식이 왜   센 척이야? 위험한 건 피할 줄도 알아야지. 오늘만 살어? 다음에 잡으면 되잖아!

지율 (뚫어지게 본다) 내가 봤으니까 내가 잡고, 오늘 봤으니까   오늘 잡고... 경찰은 내일 같은거 없어요… 옛날에는, 어려서,   무서워서, 가만히 앉아서 보내줬는데, 십년   지나고, 이십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못 잡은 놈이 있어. 삼촌이   말려도, 난 내 방식대로 해.

종태 내가 왜 니 삼촌이야? 난 너 싫어.

지율 (씨익)   그럼 남들처럼 ‘형님’ 하던가.. 이상할텐데?

종태 (질색)   이상해, 많이 이상해. 삼촌도 이상하고,   형님도 이상하고… 그 꼴로 앉아서 실실 웃고 있는 니가 제일 이상해... 몇살이라 그랬지?

지율 (의미심장한 미소)   … 스물, 열, 하나..

종태 스물 열하나… (피식) 오랜만에 듣네.. (일어나 가까이 온다. 한쪽 무릎을 꿇고 마주 앉아 상처를 살핀다) 찔린데는? 걸을 수 있어?


/CUT TO/


시환이 뛰어온다. 구급 약품과 감식반   키트를 가져왔다


시선을 돌려 다시 종태를 물끄러미 보는 지율,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한 눈빛.. 두 사람을 지켜보는   진우… 종태가 약통을 건네 받는다.


종태 내가 할께, 류 형사는 저놈 혈흔이랑,   증거 될만한거 다 수집해. 미성년자 일수도 있으니까 지금 정신없을 때 지문 열개 몽땅 떠. 서에 가자마자 바로 돌려서 미제사건들 대조하고, 비슷한 범죄 신고 된거 있는지, 수배자 명단도 뒤지고.. 샅샅히 밝혀야돼, 알겠지?


시환 예.. (몸은 가지만 마음이 안 놓여 뒤로 걸으며 지율을 본다) 선배 괜찮아요?

지율 괜찮죠. 빵꾸 하나 더 났어요.. (거리가 멀어져 목소리를   키운다) 화장실 가면, 싱크에 칼인지 송곳인지, 두개 더 있어요.

시환 수거하겠습니다. 편하게 계세요.. 좀있다 뵈요? (감식반 키트를 들고 돌아선다. 드러누운 놈 옆에 앉아 작업한다. 은석이 돕는다.. 아아악… 거칠게 손목을 휘어잡는다.. )

종태 (약통을 열며)   대낮에 공용 화장실, 흉기 세개… 뒤돌아선 무방비에 공격이라… 많이 준비했네.  (거즈에 소독약을 콸콸 부어 상처에 댄다)

지율 끄아악… (꾹 참는다) … 두개 뺏고… 방심해서 찔렸어요..   설마 하나 더 있을 줄..

종태 (지혈제를 바르고 붕대)   상처가 깊다. 병원가서 제대로 치료하고, 파상풍 맞을 때 되었으면 땡겨서라도 한번 더 맞고 와… (진우에게 손짓하고 일어선다)

지율 딸 이뻐요?


종태, 진우 둘다 멈칫.. 어이없는 얼굴로 본다


종태 내 딸? 지금, 이 난리통에 내 딸 이쁘냐고?

지율 형사는 예쁜 여자랑 결혼한대요. 사모님이 이쁘면, 딸도 이쁠거 아냐..   삼촌 닮았으면 꽝이고..

진우 (알콜솜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형수님 최고! 요 앞에 응급실 수간호사… 너 지금 실려갈 그 병원이야.   가서 인사나 드려라, 이런 꼴로 오는 거 아주 좋아하셔. 살아있다고.

지율 오호.. 공주마마 둘..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흙먼지 한 톨 안 묻히고.. 고이 잘 모시나요?

종태 버릇 나빠진다. 마음으로만 공주야... (보며) 강지율이, 내가 널 잘 모르겠지만… 네 부모님도 그런 마음이실거야. 그러니까 최소한, 몸이라도 상하지 않게, 살살 좀   하자, 응? 자꾸 이러면 걱정하신다.

지율 (빤히 올려다 본다 웃음기   없는 얼굴)


시끄러워진다. 구급대가 온다

종태 (한숨)   정신없다.. 진우야, 얘 데려가고,   머리 다친데 있나 물어봐라, 자꾸 헛소리한다.

진우 (고개만 끄덕..   지율을 보고 다행이다, 잘했다, 엄지척   미소)

놈이 먼저 들것에 실려 나가고, 종태와 조팀장이 뒤따라간다. 가방을 챙겨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시환, 지율도 진우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선다.

지율 (혼잣말)   그렇게 힌트를 주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네..

진우 누구? 종태 형님?

지율 응.. 머리가 나쁘면 눈썰미라도 있던가..

진우 뭔 소리야?

지율 그런게 있어. 평생   고생하는 거…


진우의 어깨를 잡고 깡총깡총 한발로 뛰어간다. 대화를 듣고 선 은석, 뒷모습을 지켜본다.


 23 영상 - 25년전 (D)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아이 동화책과 인형, 음식 만드는 소리,   간간히 들리는 여자 남자 웃음 소리.. 오래된 영상 속에, 머리가 짧은 젊은 남자가 5-6세 남짓한 어린 아이와 놀아주고 있다


젊은남자 환자는 삼촌이 할께, 너는 의사해. 우리 공주님은 아픈거 하면 안돼… 아야,   아야, 배가 아파요…

아이 (까르르 웃는다 벌써   의사 가운을 입었다) 밥 잘 먹으면 하나도 안 아파요. 이거 약이니까   다 먹어요 아~~ (과자를 입에 넣어준다)

젊은남자 아~~ 암냠냠냠… 공주님이 주니까 약도 맛있네요? (웃음)   나중에 삼촌도 너같은 딸 낳을거다? 먼지 하나 안 묻히고, 업어서 키울거야, 진짜 공주님으로..

아이 남자애면 어떡해? 남자는 공주 못해.

젊은남자 아니야, 삼촌은 아들 싫어. 남자애들은 사고쳐. 나는, 진짜 딸 하나만 낳을거야. 원래 형사는,   예쁜 여자랑 결혼하는거거든, 너네 엄마처럼... 그러니까 예쁜 언니 만나서, 결혼해서,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잘 살다가, 너처럼 이~~쁜 공주 낳으면,   멀리 여행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거야.

아이 몇살에 결혼해? 나는 열살에 할거야.

젊은남자 큭… 열살? 삼촌은 아직 몰라. 지금이  열여덟이니까… 십년만  있다가 할까?


/E 멀리서 남자 목소리/ 뭘 십년씩 기다려?   너 그때까지 우리집 와서 밥먹을라고?


크흐흐흐… (아이에게) 너네 아빠가 안된대.. 그럼 5년? 너 열살되면?

아이 (끄덕끄덕..   까르르 웃으며 남자에게 안긴다) 삼촌 공주랑 나랑 같이 놀자!   (목말 타러 어깨로 기어 올라간다)

젊은남자 (안떨어지게 잡아주며) 그래야지, 공주님끼리 언니동생 해.


/E 여자 목소리/ 삼촌, 식사해요.. 아이구, 유리야, 삼촌 일하고 와서 힘들어, 얼른 내려.. 여보 당신이   안아야지.


아니에요, 형수님,   안 힘들어요. 가자, 밥먹고 또 놀자..   (아이를 빙글돌려 가슴팍에 바짝 안고 일어서는 남자,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햇볕 잘 드는 작은 창가, 벗어 놓은 겉옷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나온 뱃지.. 클로즈업 <순경 문종태>


 24

진우의 차 (D)


바지 한쪽을 걷고 종아리에 붕대를 감은 지율. 조수석에서 멍하니 창밖을 본다. 하늘을 지나는 새 떼, 공원을 지나는 가족들, 한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들..


진우 (전화) 지금 막 치료 끝났습니다. 곧 복귀하겠습니다.

종태 (목소리) 애는?

진우 (힐끔) 괜찮아 보입니다.

종태 뭐라도 먹이고 들어와. 맨날 먹는 그 과자라도..

진우 알겠습니다. (전화끊고) 배고프지? 걱정하신다.

지율 아니.

진우 난 고파. 밥 먹다 말았어... (젤리 몇개 꺼낸다) 너 이거 알어? 먹어봤어?

지율 (무심히 내려다 보고   피식 웃는다)

진우 (안도하며)   아는 구나? (초록색을 집으며) 넌 무슨   색 좋아해?

지율 그거. 초록색.. (빤히 본다..)

진우 (한번 보고 삐죽.. 아깝지만 까서 내민다)   자, 먹어. (받아먹는 지율을 보며 다른

색을 집어든다) 어렸을때 많이 먹었어.   나 이거 박스로 주문해. 갖다먹어,

서랍에 많아.

말없이 젤리만 까먹는 두 사람, 하얀색이 남는다.

진우 너 먹어, 하얀거 안 좋아해.

지율 나도 안 좋아해. 조 팀장님 줘.

진우 흐흐.. 종태 형님 줄라 그랬는데…


지율이 웃는다. 곁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진우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다.

진우 먹는거 있잖아, 억지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지율 반응이 없다) 먹는거 말고, 사람을 먼저 믿어. 다 믿지는 말고, 딱 몇 명만..나를 믿으면, 내가 주는 건 먹잖아.   생존문제야. 그러니까 나부터 믿어, 시환이랑.   


지율이 들고 있는 젤리 컵을 가져가 쓰레기 봉지에 담는다. 물티슈로 손가락을 닦아주고 자신도 닦는다.


진우 그러다보면, 형님들도 믿게 될거고,   24시 사장님도.. (주저) 너한테 이상한거 주실 분 아니야. 다들 걱정 하시잖아. 말투가 달라서 그렇지..

지율 (뜬금없이)   젤리 왜 좋아해?

진우 ... 사이다 왜 좋아하냐?

지율 어렸을때, 삼촌이 그랬어. 사이다 먹으면 아픈거,   더러운거 다 없어진다고.. 나, 그때 뭐   이상한거 먹었을때…

진우 … 나는.. 동생 있었다 그랬잖아. 걔가 좋아했었어.   걔가 딱 너처럼 뭐 잘 안먹어서, 밥상에 젤리 하나씩 올려놓고 밥먹었어.   이만큼 먹어야 젤리 준다..


문자가 온다. 시환이다.


시환 선배님, 언제 오세요? 영상 분석팀에 부탁하신 거 나왔답니다. 누굽니까?/

지율 (전화를 건다) 키 170 오차범위 3센치, 70키로 미만, 10대 중후반,   왼쪽 발만 10도 바깥으로 틀어 팔자걸음, 보폭 좁고 검은색 가죽 목걸이, 양쪽 귀걸이.. 이거   말고 다른거 있어요?

시환 /F/ 와,   선배 어디 천장에서 보고 있어요? 보고서 온거랑 완전 똑같애. 다 맞췄어. 키 최소 68, 최대   72 나오구요, 목걸이랑 팔찌 세트래요. 누구 조회했어요?

지율 고양이 죽인 영상이요, 젊은 남자.

시환 /F/ 그건 또 언제   부탁했어요? 진짜 빨라..

지율 갑자기 마음에 훅 들어온 사람이 있어서요, 첫인상을 못 잊을만큼 강하게....(진우, 지율을 본다) 용의자, 범인... (진우 고개 절레)

시환 /F/ 혹시 아까 보신 그..   알바요? 일치해요?

지율 제 눈에는요... 편의점에 연락해서, 보호자랑 같이 출석하라고 연락   한번 주실래요?

시환 /F/ 뭘로 부르죠?   일단은 참고인입니까?

지율 그래야겠죠. 용의자인데, 실질적 고소인도 없고..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생활팀으로 넘겨야 할거에요. 저희 사건하고도 관련없고, 애도 어리구요.. 주인이 없는 고양이라면 어차피 처벌도 안될거고... 사체 아무데나 버렸으면, 뭐, 고작 쓰레기 무단 투기..??   

시환 /F/ 영상만으로 부족하지   않을까요? 아니라고 우길텐데..

지율 왼쪽 팔 안쪽에 고양이 손톱 자국이 있어요. 아주 최근에 생긴, 깊지 않은, 작은 새끼 고양이 거요.. 그래도 아니라고 부인하면, 편의점 근무 스케줄이랑 주변 CCTV 다 따야죠. 고양이 동선 나오면 좋고.. 사체 누가 신고한거 없대요? 손톱 자국 대조해야되는데.

시환 /F/ 알겠습니다.   팀장님 오셨으니까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화 끊는다).

진우 (시동을 건다)   에휴, 요즘 애들은… 그런 애들, 부모랑 같이 앉아 있으면 더 아니라고 우긴다.

지율 우기기만 해. 루미놀 갖다 부을거야. 집안 다 뒤져서 그 스키니   바지 찾고.. 혈흔 나오면 할말 없겠지.

진우 (웃음)   살살해라, 아직 애라며..

지율 애가 어딨어. 손에 남의 피 묻히는 순간, 더이상 애가 아닌거야. (고양이 영상을 재생해 알바생과   한번 더 대조한다)


 25 주차장 (D)


진우의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나선다. 조수석 창문으로 영상에 몰두한 지율이 보인다. 기다란   주차장 맨 끝 칸, 다리 옆 그늘진 곳에 승합차가 하나 서있다. 진하게 썬팅을 하고, 작고 귀여운 하트가 그려져 있다. 곁눈으로 한번 보며 무심히 지나는 진우...


 26 승합차 안 (D)

박스를 세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남자.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작은 박스   30개, 그보다 조금 큰 박스 20개,   그리고 노트북 만한 고급 박스 중 하나를 열어, 잘 포장된 내용물을 살핀다.   화려하게 장식한, 비싸 보이는 수제 초콜렛이다. 몇 박스인지 세어보고, 두툼한 현찰을 건넨다. 봉투를   받는 다른 사람의 손, 긴 소매에 라텍스 장갑을 끼었다...


 27 주차장 (D)

남자가 먼저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내려주는 박스를 받아들고 몇 칸 떨어져 세워놓은 자신의 승용차로 간다. 트렁크에 넣기도 전에, 승합차가 옆을 지나 멀어진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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