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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Mar 27. 2023

이쯤에서 잠시 (번외)

쉬어 갑니다

드라마 대본 쓰기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


국문과도 아니고 드라마 쓰기 강의도 들은 적 없는 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평을 시작합니다. 거창한거 아니구요… 혼자서 무엇을 써야하나, 어게 써야하나, 그리고 연 나는 기존의 ‘싫어하는 드라마’를 피해 ‘좋아하는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렇게 무형식, 무상식, 무대뽀의 쓰리 콤보로 저의 생각들을 정리했습니다. 좀 더 나은 드라마를 쓰기위한 혼자만의 수칙입니다.


먼저, 드라마는 설정부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장소, 사건 구성이 주를 이루는데요, 모든게 허구라 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적당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너무 허무맹랑한 상상은 오히려 결과가 빤해서 재미가 없어요. 특히 요즘처럼 시청자들의 지적 수준이 많이 높은 시대에는 기본 상식부터 전문 용어들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골고루 신경써야 하죠. 시작은 허구로 하지만, 전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백프로 정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드라마의 기본이 되어 온 이야기 – 전설, 동화, 소설 - 들을 가지고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여전히 저의 주문입니다... 기본 마음가짐...수리수리뿅)


1.1   등장인물


대대손손 전세계 어디서든지, 드라마 역사의 끝점은 신데렐라였습니다. 지고지순한 착한 여자 – 그러나 예뻐야만 하는 – 주인공은 모든걸 가진 능력남을 만납니다. 왕자가 되었든, 정의의 기사가 되었든.. 남자 주인공은 자고로 학력, 재력, 인력 그리고 무력 (!)을 다 갖춥니다. 절벽을 통째로 차지하고 들어앉은 천하무적의 성곽에 안주하려면, 10키로는 족히 나갈 드레스를 들고 옮겨줄 시종이 있어야하고, 종일 우물물을 길어다 바칠 마을 사람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유독 주인공들만 훤칠한 훈남으로 묘사되고, 여자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선택되고, 씻고, 가꾸어 공주가 되는, 현실의 매매혼과 다를바 없는 상투적 해피앤딩이 주였습니다. 저는 이런 뻔한 것이 싫습니다...


시간이 지나고,사람들은  너무 완벽하기만 한 주인공에 싫증이 납니다. 약간의 변형에 쌍수를 들죠. 예를 들면, 다 좋은데 성질이 더럽다든가, 저주에 걸렸다든가, 뭐가 딱 하나 부족하다든가 하는 걸 강조해 그 빈자리를 여주인공으로 채우게 합니다. 예쁜거 말고 실제로 ‘역할’이라는 게 생기는데요, 지역에 따라 책 읽는 여자, 칼 쓰는 여자, 수영하는 여자, 가끔은 개구리에 뽀뽀하는 여자 등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까칠하고 외로운 재벌 남자와 랄랄라 해맑은 여직원이나 고딩 친구가 나오구요. 저는… 다 가졌는데 글을 못읽는 남주와 귀신 보는 여주의 조합을 좋아했답니다 (과한 분장은 감점)


우리는 여전히 뒤웅박을 탑니다. 일제와 전쟁을 겪으며 생겨난 일종의 강박이죠.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남자를 만나야 안전하고 행복할거라는 진심. 혹여 남자 주인공이 조금 너저분(?)해 보여도 속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여자 짝꿍은 더 약자에요. 순진한 시골 경찰 아저씨가 미혼모를 따라다니고, 중국집 요리사는 이혼녀를 사랑하죠. 혹여 상속녀와 남직원의 사랑이 탄생하기는 해도, 잘 보면, 주로 여자 가문이 남자 집안을 망하게 했다던가, 남자가 꽤 쓸한 개천 출신 용이거나.. 뭔가 여주를 한계단 내려가게하는 요상한 수를 씁니다. 못된 심뽀입니다.


1.2   배경


그렇다면 배경은, 돈을 이야기 하려면 당연히 부가 몰리는 도시나 재벌가가 나올것이고, 권력을 이야기한다면 대통령이나 요즘 유행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빠질수 없는 절대 권력 - 종교집단이 등장해야겠지요. 온갖 권모술수가 서로의 뒤통수를 치고 빠지는 가운데, 그 결론은 사실 돈 ( =부동산 ) 인 것 같습니다. 권력도 결국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고, 없는 부는 모으고 있는 부는 늘리는, 그러기 위해 정략결혼 같은 사생활이나 합동유세, 언론 플레이를 등장 시켜 일을 크게 키웁니다. 장소와 시대가 어찌되었든, 드라마는 성공을 목표로 해요.   


그렇다면 시간적 배경은요.. 과거 크나큰 한과 희망이 공존하 4-50년대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혼란과 불평등, 개혁의 의지를 불사르던 청춘들이요. 통탄스럽지만, 시카고에서 주워온 타자기로 대박치고, 사은품으로 딸려 온 그 작은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신 그 분.. 부디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정말 바른 모습으로 그 시절 우리를 대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탈 쓰고 독립운동 하시던 그 분도, 아직까지 저의 베스트 장면 중 하나이구요, 비록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 아하하… 송구합니다) 짧게나마 브런치에 공개했던 저의 영화평도 그 시절입니다.     

https://brunch.co.kr/@smilekay/129

https://brunch.co.kr/@smilekay/130

하지만 지식이 짧은 저로서는…역시 사극, 시대극하면 떠오르는 건 조선 시대입니다. 고증도 부족하고 남아있는게 적다보니 매번 같은 분들이 환생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즐거운 건 아마 배우분들 덕이겠지요. 저의 첫사랑 (본조비 말고 한국 사람 중) 이신 주얼리 정 님의 스카이 스카이… (크흑 여전히 너무 멋져요) 그리고 조금 생뚱맞지만 그 시절 전설의 홈타운은 참으로 참신한 발상이었습니다. 요즘은 시간을 이동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가기도 하는 형태도 유행합니다. 전래동화 속 뿔 달린 그 분이요. 초능력은 원죄처럼, 애당초 인간의 영역에 불가능을 박아놓고 시작하기에… 딱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분들의 노력과 고민으로 탄생한 뿌듯한 결과물 앞에 겸허해집니다.   


물론 보는 눈이 있다보니 예쁜 배우들을 따라가기도 해요. 역사가들에게 혹평은 받았어도, 처음으로 방탄조끼 한분을 알게해 준 화랑 이야기도 참 좋아했구요, (이럴때 하는 말 - 드라마는 드라마잖아요.) 탄수화물 안 드신다는 킹의 남자는... 주변 배우들을 안보이게하는 미친 연기력으로 그분 출연작은 빠짐없이 거의 다 본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정통 사극이 조금 싫증나는 걸까요. 소재를 좀 바꿔주면 좋을텐데요.. 태조, 세종, 연산군, 사도세자께서는 역사책 분량만큼, 드라마에서도 가히 불사조이신 것 같습니다.

    

1.3 사건 구성  


인류의 기본은 뭐니뭐니 해도 사랑이죠 – 드라마의 기본은 그 사촌 쯤 되는 치정입니다. 순조로운 만남, 연애, 결혼, 애기 뿅 낳고 3대가 오순도순 아낀다.. 참 자연스러운데 작정하고 가만히  보만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아마 일일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들이 이런 류 겠죠. 어찌나 밥먹는 장면이 그리 많은 지.. 밥 먹고 전화하고 싸우고 따귀 때리고 울고 화해하는, 저한테는 그저 시간 때우는 씬으로 보이는데, 제가 성질이 좀 급해서 그런가요.. 뭔가 부족합니다. 밥먹고 엄마아빠랑 전화하는 건, 드라마가 아닌 일상입니다..


그렇다면 관심 끌기용 사건 구성은 뭐가 있을까요. 첫째는 치정, 둘째는 돈, 세째는.. 요즘 시대라면 폭력이나 마약 같은 범죄의 재구성이겠지요? 아침 드라마가 삼각관계, 불륜, 혼전임신, 혼외자식과 이혼재혼을 다룬다면, 저녁 (!) 드라마는 조금은 진지한, 그래도 조금 머리를 쓰게하는 소재를 다루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들은 너무 복잡해 그냥 포기하게 되기도 하구요, 진지한거 싫어하는 저로서는 어지럽거나, 별거 아닌데 울고 짜는 거 정말 못 봅니다. 감정이 메마른, 그래서 더 목이 마른 저는.. 사람 안에 들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심리 상담가는 아니지만, 아니기에, 아니니까.. 궁금하거든요. 저 사람 머리속에 뭐가 들었을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배경이 어디든, 등장 인물이 누구든.. 속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폭력도 폭력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또라이 머리 속에 뭐가 들어서 그런지, 동기나 합의점이 있는지 그냥 개또라이인지.. 불륜도 그냥 불륜이 아닌 어쩌면 다른 차원 정신세계로는 공감이 될수도 있는 합도의적 행위였을지.. 범죄가 아닌 경찰을 이야기하던 파출소 이야기나 소소한 복수를 펼치던 부암동 리벤지는, 강한 충격에서 오는 중독성보다 돌아가는 상황에 공감하고 녹아드는, 은근한 흡입력이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제 이쯤에서, 아장아장 이제 걸음마 시작한 저의 어린 드라마를 들여다 봅니다. 얘는 뭘.까.요… 커서 뭐가 되려고.. 참으로 까마득한 여정을 시작했을까요.


첫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할 수 있는것도 많았는데, 이제는 글로 대신할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단 하루도 결석 없이 꼬박꼬박 살아왔지만, 애당초 인생이라는 건 개근상 말고는 별로 건질게 없었나 봅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잘 살아야 본전이라는 걸.. 크게 뒤쳐질것도 없고, 엄청 앞서 나갈것도 없는, 다름을 인정하기에 다양하고 복잡해진 것 뿐, 각자 인생 사는데는 1등도 2등도 없다는 거요. 그래서 조금 게을러지기로 했습니다. 직접 나서서 뭘 하기보다는, 다른 인물로 저를 다시 살게 해보려구요.  드라마 속 인물이 되어, 평범하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은, 다른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신데렐라 빼고, 신분 상승 버리고, 과도한 승부욕은 무시하고.. 부족한 남주를 채우고, 고통스런 여주를 구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부족함을 서로에게서 찾아내는 - 내 덕이다 복받았다 너희는 불가능하다 라는 천상계의 포상이 아닌, 우리 일상에서의 고민을 끄집어내고 싶습니다. 허황된 돈 놀이도 권력 다툼도 아니고, 숨쉬고 울고 웃는 내가 아는 현실의 ‘삶’을 내보이려 합니다.  


사실, 젊은 시절이 잘 기억 안나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꼭 그렇게 괴로웠어야 했는지… 지나고 보니 상처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값어치 있고, 자랑스럽습니다. 부딪히고 데이는 그 고통이 절대 쓸모없지 않음을, 한사람 한사람의 매일매일이, 빠지지 않고 살아가야 할 만큼 소중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저의 드라마 <언콜>은, 요즘을 사는 젊은 경찰들을 중으로 세웁니다. 당당한 성인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고, 위선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독립된 모습도 있지만, 반대로 선배들에게 여전히 보호받고 욕 들어먹는 철없는 아이들이기도 한 그들입니다. 왜 우리 오래전에요… 위문편지 받던 그 씩씩한 군인 아저씨들이 지나고보니 겨우 스무살 남짓한 애들이었다는 혼돈말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제 이야기는 사회가 만들어준 어른이라는 타이틀에 적응해가는, 젊은이들의 성장기록 입니다.      


하필 왜 경찰이였냐 물으신다면… 첫째는 저의 환타지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찰은, 재벌, 국회의원, 김정일 등 너무 말도 안되는 초능력자들보다 훨씬 적당한 현실성을 가졌고, 알맞은 힘과 권력과 성공과 실패와 멋짐과 추함을 다 장착합니다. 그래서 부럽고, 질투합니다. 경찰은 ‘그럴수 있다’ 와 ‘그러면 안되지’ 라는 이중 잣대 위에서 매우 아슬아슬한 곡예를 합니다. 저는 용서가 싫습니다. 합의도 싫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적절한 복수와 그에 합당한 불이익을 당해야 합니다.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합법적 복수를 진행하기에, 경찰은 저에게 영웅이고 대리 만족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경찰이어야 했느냐 물으신다면… 둘째는 저의 삐딱함 때문입니다. 작가님들이 인정하시는 저의 다크함이요.. (^^; 저는 참 다크한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식과 교양을 겸비했지만 (부끄), 한번씩 차오르는 불만과 쌍욕을 감당해야 하기에… 모범 경찰과 밑바닥 경찰을 두루 이용해 욕구를 해소 합니다. 그리고 타고난 다크함으로, 더 못되먹은 무리들을 만들어냅니다. 상상속의 범죄가 드라마 속 현실이 될 때, 그걸 이겨내야하는 때묻지않은 청춘들과, 이미 다 겪어 너덜해진 고참들이 갈등하고 이해해가는 구도가 탄생합니다. 때로는 삐걱거려도 결국은 끌고 밀고 당기는.. 같이 산다는 건 그런거니까요.        


이상, 드라마에 관한 어설픈 중간 점검을 마칩니다. 다음 번외편에는 드라마에서 가장 가장 가장 행복한 부분 – 배역 맡으실 분들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저의 부끄러운 주특기 ‘설레발’ 혹은 ‘과대망상’인데, 저는 배우들을 생각하며 작업을 해야 진도가 팍팍 나갑니다. 톤이 다양해 지거든요.


가끔씩 이렇게 스토리에서 나와있을 때도 있어야지.. 요즘 머리 속이 온통 경찰들로 바글바글 합니다. 본조비를 들으며 운전할때는 저는 지율이 되어 서울 도심을 지납니다. 초콜렛을 먹으며 시환이가 되기도 합니다.. 정신이 많이 왔다갔다 해요... 그래서 이렇게 잠시 쉬고, 있다가 저녁부터 다시 4편을 시작하려 합니다. 봄방학이라 조금 여유있을 것 같습니다.       


대사 위주다 보니 엄청 길어져요... 말 안하고 지나가는 것도 ‘답 없음,’ ‘생각’, 한숨’… 이렇게 한줄씩 차지하니까요. '생 노가다' 라는 말은 여기에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함축적이고 속도 빠른 단편 소설하고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전투를 치룹니다. 그것도 아주 긴 전투를요.  


긴 글 폰으로 보기 불편하실텐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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