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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Apr 15. 2023

열 여섯 그리고

16살에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한게 없어 기억이 없는 건지요.. 학교 가라면 가고, 밥 먹으라면 먹고, 책 읽으라면 읽고.. 저는 그게 다 였던 것 같습니다. 별 특별한 재미도, 모험도, 그렇다고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그냥 아주 평범한 대다수의 학생 중 하나였지요.


작은 아이가 16살입니다.

여름생이라 벌써 11학년, 조금 빨리 끝내게 되어 고등학교 졸업을 겨우 한달반 앞 둔, 예비 대학생 입니다. 운동도 잘 하고, 알바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하루 반을 자기도 하는.. 곱슬머리 싫다고 돈 모아 한국 미장원 가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고 오는, 평범하기도 하고 비범하기도 한, 똘한 아이입니다.


친구들은 아직 다들 11학년이구요.  

졸업 1년 여 남은거죠. 내년 여름에 다들 대학  아이들.. 딱 한 그룹 있습니다. 7살에 선발해 한반에만 몰아놓고 키우는, 교육부 정책대로 잘 설계해 놓은 영재반에서 곱게 곱게 자란 우등생들입니다. 사고 한번 안 치고, 동네 상이란 상은 다 휩쓸며, 만점 아니면 만점 +몇점으로.. 그야말로 창창한 애들이죠.


그중에서 유난히 저희 아이와 친하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동안 못 알아볼만큼 키가 훌쩍 크고, 많이 어른이 된 모습으로 모든 스포츠를 다 섭렵하던 아이었어요. 엄마가 동양인이라 그런가 묘한 매력이 있는, 게다가 늘 친절한 미소 여학생들한테도 인기가 좋았구요, 얼마전까지도 타도시와의 게임에 출전해 골을 때려넣는 유망주였습니다.


주말에 죽었네요.

막 17 생일을 앞두었는데, 그렇게 가버렸습니다. 유서도 없이, 인사도 없이.. 타지에서 대학 다니는 형, 누나에게 전화도 없이, 출근한 엄마아빠한테 문자도 하나 없이.. 그렇게 조용히 가버렸습니다. 믿기 힘든 소식에 몇번이고 이름을 다시 검색해보고, 가족들을 찾아봤는데, 정말 그 아이였습니다.


이태리 가족 여행 이후 많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엄마아빠의 직장인 바로 그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암이었대요. 16살 한창 나이라 전이가 빨고.. 입원하고 첫 치료를 받은게 겨우 한달 전, 그리고 주말 지난 월요일 아침에, 아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동생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힘들었겠죠?

무섭고 슬펐을텐데, 참 덤덤하게 티도 안 내고 있다 그렇게 갔네요. 친한 친구에게도, 몇년을 같이 한 코치에게도..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나중에 직접 알릴테니, 그때까지는 아무말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중학생 막내는 (ㅠ 초딩때 제 학생이었는데..) 오빠가 암인것도 몰랐구요.         


잠이 안 옵니다.

모두가 좋아하고 예뻐하는 아이였기에, 그동안 아팠던 것 조차 몰랐기에... 저도 제 아이도, 이렇게 멍 한채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뒤늦게 아이 엄마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남은 흔적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장난꾸러기 꼬마 적 모습부터, 어제에서야 새로 올라온 - 아무 메세지 없이 덜렁 한장 올라온 마지막 사진에, 이만큼 자란 청년의 모습으로 웃고 있네요.


좋아요, 사랑해요, 슬퍼요..

아무것도 누를 수 없어 그냥 눈으로만 보고 나오기를 몇 번... 메세지를 남기는 것도 미안해서 다,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습니다. 신도 아니고, 부모형제도 아닌, 그저 아는 사람인 제가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장례식입니다.

둘째는 친구들끼리 가기로 했다하고요... 할아버지 장례식 말고는 어디 가본적도 없는 둘째가, 첫 친구의 장례식을, 그것도 자살로 떠난 십년지기 친구의 장례식을 갑니다. 데려다 줄까 물었더니, 차없는 친구들 태워서 가야 한다고, 괜찮다네요... 저는 괜찮지 않지만, 그러라고 했습니다.


안아줘야겠죠.

17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가야할만큼, 서둘러 사라지고 싶을만큼 그렇게 아팠을테니, 원망이나 실망이 아닌 그리움으로 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딸래미 책가방까지 앞뒤로 두개 매달고, 일부러 버스 안타고 둘이 걸어걸어 집으로 와 띵똥... 제 집처럼 들어와 배고파요, 라면 주세요.. 하던 아이를.. 용서 아닌, 이해를 해보려합니다.


다행이에요.

남은 사람이 어른이라..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견뎌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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