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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Jan 08. 2021

이광수와 천상병

캘리포니아 입양인 이광수 교수의 이야기 입니다.

I.              Lee Herrick


Lee Herrick 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인이자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이다. This Many Miles from Desire (2007년) 와 Gardening Secrets of the Dead (2013년) 을 출간했으며, 그의 시는 미국내 유수 문학 잡지에 실려왔다. In the Grove 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한국 입양인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들의 문학잡지 New Truth 의 객원 편집자를 역임하는 등, 문학인으로써, 동시에 한국인으로써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Fresno 시립대학과 Sierra 네바다 대학에서 창작문학을 가르친다. 2015년에는 ‘프리스노의 대표시인’ 으로 선정되었다.


Lee Herrick 의 시는 철저하게 자신, 혹은 ‘사람’ 의 이야기이다. 행복하던지, 고통스럽던지... 걷고, 숨쉬고, 먹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삶’ 이라 노래한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거기서 생성되는 인과 관계 – 결국 세상은 작은 인생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지는 거대한 삶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가 종종 밝히듯이, 그의 시는, 그에게 휴식이고, 재발견의 동기이며, 행복의 시작점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안드레스 몬토야 시문학상 2등 수상자인 Rigoberto González 는 Lee Herrick 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Lee Herrick 의 시는, 깊은 고뇌와 날카로운 관찰, 그리고, 놀라운 통찰력의 총집합이다… (중략) 그에게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한국이든, 캘리포니아이든, 과테말라이든, 마치 고향처럼, 집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힘이 있다... (2007, Poetry Foundation)”   


Rigoberto González 의 표현대로 Herrick 의 시는 과장되지않다. 기쁨은 기쁜대로, 슬픔은 슬픈대로, 이른 아침 사뿐사뿐 주위를 산책하는 다람쥐처럼, 그저 조용히 할 일을 다 할 뿐이다. 서툰 흥분으로 뇌를 자극하거나 억지 눈물을 쏟게하지 않는다. 그가 사는 곳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는 석양을 사랑하는 곳이다.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조금은 지쳤지만, 푹신한 침대와 향긋한 와인 한잔이 기다리는 그 곳. 그의 시 속에는 캘리포니아의 노을이 흐른다.


II.       어린 시절


이러한 화려한 성공을 이끌어준 그의 ‘마법의 힘’ 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Herrick의 작품들은 그의 어린 시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그의 뉴스 기사와 인터뷰들을 종합해보면, 그의 본명은 ‘이광수’ 이며, 1970년 생이다. 대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5개월쯤에 버려져 겨우 10개월 되던 때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보내졌다. 그의 양부모는 친아들 하나와 미국 안에서 입양한 딸을 두고 있었고, Lee 는 그들의 첫 동양인 가족이 된다. 그들은 고향을 잊지말라며 새 이름을 짓는 대신 한국 성씨인 ‘Lee’ 를 법적인 미국 이름으로 쓰게 했다. Herrick 은 존경하는 사람이로 양아버지를 꼽을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Herrick 가족은 매우 화목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특히나 두살 위의 백인 입양아 누나와 무척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우연찮게도 그녀 역시 영문학을 전공하여, 남매가 모두 교편을 잡고있다.


그가 입양 된 샌프란시스코는, 자유와 바닷바람, 여러 인종이 섞인 다양성으로 그의 시상을 자극한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와인과 바다, 원예 등은 그냥 아무렇게나 얻은 소재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히, Lee Herrick 만의 독특한 시제가 있다면, 바로 그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뿌리찾기에서 비롯된 질문, 대답, 절망과 희망이다. 신문지에 쌓여 교회 앞 계단에 버려지기까지의 5개월동안, 친부모는 그를 키우며 어떤 생각을 했고, 무슨 말을 했으며, 어떻게 행동을 했는가, 내게 무슨 노래를 불러주었을까 (Salvation, 구원, Herrick 의 시 중에서) … 아기 (나) 를 버린 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한순간이라도 그를 그리워하며, 혹시라도 버린 걸 후회했을까… 하는, 아직은 답을 알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 혹은 희망들이 그의 시 속에 쌓여간다.


상상으로 그려갈 수 밖에 없는 친부모의 얼굴과 목소리, 마치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듯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뭇잎에서 나는 소리,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도, Herrick 은 그들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어한다. 그의 입양에 관한 시, <세가지 한국의 꿈> 에서는 그가 상상해 온 ‘버려진 날’ 혹은 ‘발견된 날’ 이 이상하리만큼 담담하게 그려진다. 특히나, 자신을 돌돌 말아 싸서 버린 그것이, 첫번째 시에서는 신문지였다가, 두번째 시에서는 ‘하늘색 담요’ 로 바뀌는 부분에서, 찾지 못한 친부모에 대한 숨은 애정이 드러난다. 버리는 그 순간까지 그들이 그다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버려지기 전까지는 분명 극진한 보호와 사랑을 받았을 거라는 믿음으로, 오히려 그들을 보호한다. 그는 흔해 빠진 신문지와 아가 담요에도, 친부모가 남긴 ‘단서’ 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잡고있는 몇가닥 안되는 지푸라기인 셈이다.


III.           작품 속 한국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넉넉한 양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부족함없이 자란 어린 시절 동안은 ‘한국’ 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잊고 지냈다. 대학에 간 후에 재미교포들과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문화’ 를 접하게 되었고, 그가 우연히 읽게 되었다는 강석경님의 소설 A Room with a View (한국 제목 - 숲속의 방) 은 그에게 문학인으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실제로, 이후에 발표되는 Herrick 의 시와 인터뷰에는 한국 이야기가 꼭꼭 뿌려져 애잔함을 더한다. Herrick 의 대표작인 자화상 (Self-Portrait) 에서, 그는 이렇게 시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한국인… 단절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가족이 겪었고, 나라가 겼었고, 언어가 겪었다…

(중략)

여인은, 나만은 생존의 가치를 이해할거라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깊은 숨을 내쉰다.

다시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Lee Herrick, Self-Portrait /자화상)


그의 나이 (1970년생) 로 미루어 보아, 여기서 이야기하는 ‘단절’ 은, 전쟁보다는 입양에 의한 헤어짐이다. 20만명을 훌쩍 넘는 한국 입양아들 중 하나가 되어 40년 이상 지속되고있는 친부모, 친가족과의 단절… 2008년, 가족을 찾기위해 오랜기간 머물었던 한국에서의 언어문제, 미국 입양아라는 눈총과 비아냥을 감수해야하던 그의 가슴아픈 상처와 충격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럼에도 Herrick 은 꾸준히 한국 문화를 배워간다. 이제는 단순히 가족을 찾고싶다는 어린 아이의 본능을 떠나, 시인의 마음, 예술인의 눈으로, 한국의, 한국어의,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알고 싶어한다. 그가 밤새워 빠져들었었다는 천상병 시인의 이야기는, 시로서 뿐 아니라 그 위험했던 시절의 모든걸 한눈에 보여주는 다큐맨터리 같은 존재였다.


IV.        Lee Herrick 의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Herrick 의 시에는 언제나 ‘자아’ 가 존재한다. 나와 그녀, 나와 그들… Herrick 은 소통하는 시인이다. 그는 ‘나’ 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고, ‘그녀’ 혹은 ‘그들’ 을 통해 치유하고 공감한다. Herrick 의 시에 등장하는 ‘그녀’ 는 모든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구세주이며, 연인이며, 어머니다. 그의 작품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Herrick 은 거대한 언어의 장벽을 뚫기위해, 아마 상당한 연구조사를 거쳐 천상병의 그녀 ‘문순옥 여사’ 를 찾아냈을 것이다. 인사동 차한잔에서도 천상병 시인과 ‘그녀’ 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안도했을 것이다. 공권력에 짓밟혀 아스라졌던 한 사람이 ‘그녀’ 를 통해 치유되고 ‘부활’하는 그 순간을 그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겸허하고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절대 적지않은 환희와 부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 그녀같은 사람들은,

생명수같은 당신의 시라면,

차 한잔으로 우리의 쇠약함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Lee Herrick 의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눈물 콧물 쏙 빼는 사적인 감정을 애써 추스리며 Herrick 이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는 천상병의 ‘그녀’ 는, 시인 본인이 간절히 찾고있는 ‘친어머니’ 를 닮았다. 그런 이유로 Herrick 은 수많은 한국 문인들 중에서 하필 ‘천상병’ 을 골라 헌시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중요했을 졸업 논문에서 그의 시를 이야기 한다. 동시대의 인물도 아니고, 해외에 알려진 유명인도 아니다. 일면식이 있을 수도 없었던 지구 반대편 사람, 그렇다고 Herrick 이 70, 80년대의 한국의 운동권이나 정치에 영향을 받은 사람도 아닐진데, 그는 천상병 시인에 주목할만한 친근감을 보인다. 왜 일까?


미국인으로서의 Herrick 은 아마 ‘인사동’ 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관광책자를 펼쳐 보아도, 인사동은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게다가 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입양인 전용 숙박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흘러들어간 인사동에서 ‘귀천’ 을 찾고, 그의 시를 처음 읽게 된 이후, 수많은 관련 자료를 검색했으리라. 그는 천상병 시인의 작품 자체보다는, ‘시인 천상병’ 과 그가 살았던 ‘세상’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귀천’ 을 이야기하지 않는 Herrick 의 시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는,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상병 시인에 대해 다시 찾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나 이런 점은, 천상병 시인을 잘 모르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그에 대해 참으로 궁금해지게하는 뜻하지 않은 동기가 될듯하다.


시로써의 ‘귀천’ 을 논하는 대신, 스무줄도 안되는 짦막한 자신의 시에서, Herrick 은 많은 것을 언급한다. 함축적이고, 매우 의미심장한 빠른 전개는 마치 축지법이라도 보는듯, 천상병 시인의 인생철학과 사랑, 사회상, 정부와 안기부의 잔혹함을 시원하게 간추렸다. 70년대의 풍파가, 그 혹독했던 탄압이, 그에 무너진 자포자기의 한숨이… 그렇게도 간단히 (그럼에도 절대 무심하거나 소홀치 않게) 종이 한장에 깔끔하게 정리될수 있는 것이었나. 이것이 바로 한국의 이방인 Lee Herrick 의 매력이다. 그는, 많은 평론가들이 인정하듯, 정치적, 사회적 소신을 가진 시인이며 지식인이다.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하나만으로도 그가 이 모든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또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생생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한국 시문학의 거인인 ‘천상병’ 이라는 엄청난 소재를 앞에 두고, 하고싶은 말이 무한히 많았을 거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복잡했을 마음을 정리하고 절제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오히려 고인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진다.


Herrick 은 왜 그렇게 담담했을까. 그는 천상병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답은 간단하다. Herrick 은 천상병 시인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 한다. 천상병이 사랑하던 사람들과 생이별을 하고, 고문을 당하고, 술로 세상을 멀리하고, 결국 정신병자로 몰려 외진곳에 격리되었을때, Herrick 은 본인의 과거를 본다. 마치, 친부모에게 버려져 차디찬 교회 계단에서 발견되고, 정책적이고 조직적으로, 그리고 사회의 외면이라는 모두의 합심으로, 먼 나라에 내동댕이쳐진 어린 아기. 이유도 모르는 채 당해야 했고, 대들지 못해 받아들여야했던 억울함, 서러움, 분노, 그리고 그 깊은 곳 어딘가에 남은 그리움까지 겪어낸다. 떨어져 지낸 40여년간의 지독한 기다림에도 싫증내지 않고, 지금쯤이면 나타나주리라는 바램을 포기하지않는 그만의 ‘그녀’ - 어머니. 천상병은 Lee Herrick 에게 동지이고, 그 자신이다. 이름도, 생년월일도, 출생지도 정확치 않은 입양아 이광수를 세상에 드러내며, 그만의 ‘그녀’ 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그의 추모 시 속의 천상병과 많이 닮아있다;


언젠가, 산사람, 죽은 사람 상관없이 다섯명을 초대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누구누구를 부르겠냐는 다소 황당한 인터뷰 질문이 있었다. Herrick 은 거기에서도 자신의 친어머니를 잊지 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살아있다면 꼭 산타 바바라 해변가의 가족 별장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답한다. 만약 그녀가 죽었다면, 꿈에서 대화 할수 있다며 차라리 언어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라며 웃는다. 그만큼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그가 꼭 보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단 한사람이다. 천상병 시인의 그녀처럼, 버려진 한 시인을 보듬어주고 다시 살게 해 줄, 세상의 단 하나의 그녀로 남을거다.  


V.            미래, 그 아름다운 여정


아이스크림과 한국 음식을 먹어야 글이 더 잘 써진다는 미국 시인 Lee Herrick은, 중국에서 한 장애아를 입양해 스스로 양아버지의 길을 간다.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이외의 모든 시간은 아이를 위해 쓴다는 가정적인 그는, 요즘도 한국 문학에 푹 빠져, 번역되어 나오는 시와 소설 등을 읽는다. 그가 이야기 하듯이, 입양은 작품 활동에 동기가 되고, 힘이 된다. Herrick 의 작품들은 이제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글과 페이스 북은 전세계 곳곳으로 보내진 한국 입양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연결끈이 되었고, 기댈수 있는 공공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한없이 감사하고, 자랑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어느새 그의 첫 책이 나온지 10년이 다되어간다. 내년에도, 변함없는 감성과 선한 눈으로, 세상의 모든 반쪽 한국인들의 아픔을 아물게 해주는, 묘약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참고> 번역시


귀천 - 천상병 시인을 위하여 (1930-1993)

                       Lee Herrick (이광수, 캘리포니아, 미국)

                       번역: 신소운 (미네소타, 미국)


끌려가 당한 고초가 있으셨기에

그들이 휘두르던 몽둥이를 삼켜버리듯

그렇게 크게 입 벌려 웃으셨나요


흔적없이 사라졌던 1971년

사랑하던 사람들은 당신의 시를 추모하며

늘 노래하셨던 것 처럼 천국으로 가셨다 믿었다지요


을왕리 노을을 꿈꾸는 오늘밤이 있음에

아직도 인사동 대추자 한잔은 우리를 기다립니다


1972년 일분일초는 모두 술로 잊으셨나요

이름 세 글자 믿어주지 않음에도

당당히

시인이라 밝히셨지요

스스로를 위한 해답을 찾고 계셨던가요


듣는 이 없는 허공에 간절한 부탁을 하셨겠지요

아무라도, 누구라도,

다 부서진 노랫가락과 지친 뼈다귀,

그리고 달랑 펜 하나 밖에 가진게 없던 당신을

다시 꼭 찾아달라는…


그녀같은 사람들은,

생명수같은 당신의 시가 있어  

차 한잔으로 우리의 쇠약함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참조문헌>

LeeHerri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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