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왕따, 아웃사이더… 그렇지않은 자들의 오만으로 지어진 이름들이다. 무리를 지어야만 힘이 세지는 비겁한 인류, 무리밖의 약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그 친분. 어차피 끼워주지도 않을거면서 희생, 봉사, 헌신을 요구하는 ‘센 자’ 들의 광기가 두렵다. 더럽고 치사해서, 가혹하고 무서워서, 더이상 굽신거리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보란듯이 재기했고, 부러워 침흘릴만큼 돈을 모았다. 승승장구를 넌지시 흘린다. 불쌍한 것들. 동정의 가치조차 없는 그 역겨운 영혼들이 옛정을 들먹이며 주위를 어슬렁댄다. 꿈틀해 봤자 지렁이라고, 발악을 할 수록 더 밟아 짓이겨버리겠다던 그 고귀한 발뒤꿈치를 들고, 뭐하나 떨어지는 것 없나 내 눈치를 본다. 추악하다. 사람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좋다. 내게 가해진 칼질, 병을 고치기위한 수술이 아닌 병을 만들기 위한 고문. 그들의 파워를 기리려 한줄 한줄 조각칼로 도려낸 상처. 절대 잊지 않는다. 눈물로, 피로… 내 목젖을 잘라낸 너의 그 저주 가득한 혓바닥은 평생 용서받지 못한다.
죽음보다 힘들던 날들이었다. 매일을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훈이가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는 강줄기, 바로 옆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차도에 서서 바라만 본다. 춥다.
“늦었잖아, 빨리 가야지. 비행기 놓친다니까…”
짜증 가득한 엄마. 남편은 그림자도 보이지않는다. 전화를 건다.
“빨리 와. 훈이 떠내려가.”
“내가 왜? 걔가 누군데? 내 자식 맞어?”
전화기 저 편에서 시어머니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애만 싸질러놓고 뭘잘했다고 큰소리야? 당장 이혼해! 넌 새 장가 가고, 세상에 어디 여자가 없어 첩년의 자식이야?”
전화가 끊어진다. 다시 걸어보려하지만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5854? 5458? 5484? 계속해서 눌러보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얼른 걸어야 하는데, 아이가 떠내려 가는데… 결국 받지않는 전화기에 대고 찢어져라 소리만 질러본다.
“빨리 받어! 네가 데려갔잖아! 네가 뺏어갔잖아!”
남편이 웃는다. 한때는 지적이라 생각했던 가늘게 째진 눈가와 얇은 입술… 꼭 닮은 모자가 나를 보며 웃는다. 둘은 다정히 팔짱을 끼고 무어라 속닥거리며 나와 내 아이를 비웃는다.
“더러운 것들! 첩년의 피! 잘 됬어. 그딴 집구석이랑 얽힐 수 없지. 그리고, 걔가 우리집 핏줄인지 어떻게 알어? 어디서 지만 닮은 못난 거 하나 덜컥 낳아서 손주라고? 멀쩡히 공부 잘 하던 순진한 애 꼬셔서 꽃뱀질이야?”
***
밴쿠버에서 출발한 7일간의 크루즈. 한국의 5월이면 날씨가 한참 좋을 때인데 바다 한복판이라 그런지, 아니면 배 위라 그런지, 늦가을만큼 쌀쌀하다. 얼굴로, 목으로 몰아치는 서늘한 바람에 요동치는 단발머리가 걸리적 거린다. 꼭대기 옥상. 헬리켐으로 위에서 내려찍는 그런 광고에서 보던 유람선 맨 윗부분이지만, 띄엄띄엄 조명 몇개만 있어 화면보다 스산하다. 허리 높이의 난간이 생각보다 많이 부실하고… 낮다…! 성인이라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정말 쉬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본다. 너댓명 바다를 구경하던 사람들마저 어깨를 쪼그리고 내려간다. 바다 위 12층, 알라스카로 가는 노리지안 썬. 누구도 이 밤에 여기서 뛰어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줄 알았으면 미리 유서라도 써 놓을걸… 괜찮다, 가방안에 일기장이 있으니 발견될거야…
누구 한국어 통역하는 사람이 올까? 안와도 어차피 한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안 쓸건데 뭐… 혹시라도 실족으로 처리되면 보험금도 나오겠지만, 그럴리 없다. 이런데 혼자 온 것 부터, 병원 기록, 내가 살아온 이야기… 지쳤다. 난 여기까지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다. 밑에 뭐가 있는지, 얼마나 높은지, 겁나지 않는다. 한강 다리 같으면 누군가 신고 할거고, 구조되고, 시끄럽고… 죽은걸로도 벌금까지 낸다지… 여기서, 빠르게 달리는 이 거대한 유람선 뒤로, 그저 물 한방울 튀는 소리조차 들리지않게 거품으로 사라진다. 시체도 못찾을테니 민폐 끼칠 일도 없고… 다행이다, 날 씹어댈 사람들이 없어서. 부모? 푸훕… 그럴리가… 태어날때부터 평생을 나만 미워하던 사람들, 아니, 미워하려고 나를 낳은 사람들이다. 절대 슬퍼할 리 없지. 결혼할 때도 뭐라고 했어? 남자가 그렇게 좋냐, 없어도 살 수 있다, 결혼 같은 게 뭐가 중요하냐… 돈이고 혼수고 필요없고 제발 식장에만 와달라고 애원하니 그제서야 그럼 그렇게 하자, 옷값은 현찰로 들고 와라… 하아… 그러고도 부모라고 어버이날, 생일, 명절… 평소에는 생각도 않던 무슨 날만 되면 한달 전부터 전화걸어 나와 남편을 괴롭혔다. 얼마 준비했냐, 뭐 사줄거냐… 내 인생에서 제일 먼저 끊어냈었어야 했을 사람들. 그래, 그들만 아니었으면, 그들의 죄만 아니었으면, 나는 아주 보통의 여자로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다.
“뛰어내려! 미친년, 그래, 나도, 너같은 건 낳지 말았어야 했어, 알어? 내 인생을 망친게 너야. 난 널 낳아주기라도 했지, 넌 나한테 뭘 했는데?”
웅웅 거리는 기계소리를 뚫고 날선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나이를 먹어도 수그러들지 않는 사나움. 그 잔혹함에 갈갈이 찢겨나가던 나. 손가락 끝까지 힘을 주고 난간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심호흡을 한다. 단 한번만이라도 날 예뻐했으면… 어린 시절, 외갓집에 버려져 혼자 자란 몇년동안 그렇게 보고싶었던 엄마였는데… 일년에 한두번 있던 ‘엄마 오는 날.’ 그나마 저 멀리 얼굴 보이는 순간부터 쏟아지는 비아냥. 쟤는 머리가 왜 저 모양이야, 오빠는 하나도 안 닮고 저따구로 생겼어, 촌년, 새까매가지고… 돌대가리, 평생 어디가서 밥한숟갈도 못 얻어먹지… 눈은 누굴닮아 저렇게 작아? 확 째버려야지, 아우, 답답해… 이유없이 날아오던 발뒤꿈치, 주먹, 손에 잡히던 아무 살림살이들… 한겨울 양말바람으로 쫒겨나 쪼그리고 숨어있던 차가운 시맨트 담장…
바람이 세진다. 상투 잘린 노비처럼 머리카락이 온 얼굴을 가리지만 놔두었다. 차라리 그게 낫다. 눈을 감자. 앞을 보지말고, 그냥 이대로 한 발자국만 더 가자. 철없이 뛰어 놀던 침대에서 내려오듯이, 그저 계단 두개를 큰 걸음으로 한번에 내려가듯이, 그렇게 가는 거다… 조금 멀리 딛도록 다리를 쭉 펴고, 난간을 넘어 몸을 기울인다… 발끝이 가벼워진다. 작두 타듯 바람을 탄다. 차가움이 단추를 헤집는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번지 점프처럼, 온몸이 쪼그라들고 오금이 저린다. 팔다리가 어쩔줄 모르게 후들거리고, 두 주먹은 꽉 움켜쥔 채로 굳어간다. 차가워진 코끝으로 눈물이 방울져 들어온다. 자유… 멀리 남의 바다에 와서야 나는 자유로워진다. 어디서부터 들어갈까... 눈, 코, 입이 막혀온다. 숨을 쉴 수 없다. 커억… 꼼짝할 수 없다. 아주 잠깐, 무섭다… 죽는다... 혼자 여기저기 떠다니다 누군가에게 발견될거다. 시간이 많이 흘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퉁퉁 부은 끔찍한 모습으로, 물고기가 먹어버린 살 구멍에는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버려진 어망에 걸려 발견 될거다. 신원 확인이 안되어도 좋다. 나를 모르는 그 사람은, 적어도 처참한 죽음을 동정하고, 궁금해 해 주겠지. 따뜻한 모래 사장으로 끌어 올리며 찢겨나간 옷가지를 추스려 주겠지. 그를 위해서 너무 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걱정하지 말자. 이미 죽었는데 부끄러울건 없다. 살아온 내내 부끄러웠으니, 죽을때는 당당해도 된다. 이제 그만 끝낼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훈이… 눈꺼풀로 꾸욱 누르고 있던 눈물이 기여히 비집고 나온다. 참았던 숨이 잠을 깨운다. 축축히 젖은 이불깃을 꼭 움켜쥐고있다. 오한이다. 정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방금 건져진 사람처럼, 온몸이 젖었다. 슬픔? 원망? 공포? 원인 모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난 세월을 그렇게 울었어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 꺼윽, 꺼윽… 깊은 함정에 빠진 맹수처럼 발광한다. 죽창에 잘려나간 팔다리에 포효한다. 입안 가득 틀어막은 침대 시트가 젖어든다. 구역질이 난다. 땀, 눈물, 콧물… 오장육부를 비틀어 짜는 고통으로, 혼자 쓰는 2인용 객실, 알래스카를 향한 호화 유람선 안에서, 나는 그렇게 미쳐간다. 차가워진 두 손으로 가방을 뒤져 간신히 약병을 꺼냈다. 하루 두번… 거른지 며칠 되었다. 심해졌나… 한국시간에 맞춰 먹어야 하나… 머리쓰기 싫어 다시 아무데나 집어 던진다.
***
학교 선배였던 그는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조금 눈에 띄는 남자였다. 돈이 없어 동아리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나에게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일만큼, 잘 생기고 친절한 복학생이었다. 술만 아니었다면 - 물론 술이 아니었다면 그가 나와 사귈 이유도 없었겠지만 - 술만 아니었다면, 헤어질 이유도 없었을테고, 하여간 그랬다. 우리는 술로 맺어진 사이였다. 헌병이었다던 반듯한 모습으로,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 군인 말투가 남은 채로 술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며 몸을 사렸고, 모두가 믿었다. 늘 자상한 얼굴로 취한 후배들을 하나하나 다 챙겨주던 그는, 술자리 후 막차도 모텔도 필요없던 나와 끝까지 남았다.
“딱 요거 남았는데, 한 잔만 하실래요?”
처음에는, 내가 권했다. 정말 순수하게 한 모금이라도 남은 게 아까워서, 다음에는 내가 조금 더 마시고 싶어서, 마지막에는 헤어지기 싫어서, 내가 그를 꼬득였다. 그렇게 가까워지면서 마음을 놓기 시작했고, 본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개… 였다. 욕, 주먹, 발길질… 보이는 건 모두 부수고, 던지고, 밟고, 찢고, 때렸다. 처음 한동안은, 비밀을 지켜준다는 영웅심에, 나만 알고 있는 그의 하나뿐인 흠에 스릴있고 행복할 만큼, 그를 짝사랑했다. 저는 술 안 마십니다, 집안이 간이 좀 안 좋습니다, 몸에 밴 예의바른 거절. 등뒤로 몰래 눈짓을 교환하며, 그의 치부을 숨겨주며, 그에게 내가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너니까 내가 이렇게 마음놓고 한잔 하지, 어디가서 입에나 댈 수 있겠냐.”
남의 눈을 피해 둘이 몰래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한번 들킨 습성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분좋게 한잔 하고나면, 마지막은 꼭 폭행이었다. 다음날이면 진심이 가득찬 미안한 얼굴로, 내가 있어 다행이라며 꼭 안아주었다. 멍든 곳, 찢어진 곳에 약을 발라주고, 부서진 안경을 새로 사주며, 고맙다 너밖에 없다 했다. 그가 과 학생장으로 선출되고 다음해 학생회장으로까지 거론될 만큼 인기가 많아지면서,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굴레가 되었다. 네 남자친구 진짜 멋있다, 좋겠다, 부럽다… 밤새 밀린 숙제를 대신 해주고, 시험을 위한 요약 노트를 만들어주었다. 아침 일찍 어지러운 방을 치우고, 피묻은 옷가지를 손빨래하고, 따뜻한 새 밥으로 아침을 차렸다. 완벽한 매너와 호감형 외모로, 그는 철저히 자신을 숨기며 교내 인기 스타가 되어갔다. 그리고 늦은 밤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하루동안의 스트레스를 술과 나에게 풀었다.
너무 맞아서… 온몸이 아파 학교를 못가는 날이 많아졌고, 곳곳의 멍자국을 가리기 위해 늘 긴 옷을 입었다. 감기 핑계로 얼굴을 가린 마스크 속으로 입술에 붙은 피딱지가 스쳐 따끔거렸다. 공강 때 잠깐씩 내 안부를 체크하러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누굴 만나 소문내지 않나 감시하러…?) 집에 들르는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학교앞 제과점의 조각 케익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어이없게도, 그가 건져주는 티백 홍차 한잔에 감사하며, 그 사랑에 감동하며, 나는 행복했다. 함께 사는 동안, 내 학점은 보란듯이 바닥을 쳤고, 출석 일수만큼 친구들도 뚝뚝 떨어져 나갔다. 반대로 그는 점점 학교 일에 빠져 지냈고, 여자들과 어울렸고, 나에 대한 애정도 식어갔다. 애당초, 애정이란 건 없었다. 나는 그저 그를 위해 밥 해주고, 청소 해주고, 숙제 해주고, 잠자리 해주는, 때릴 때 찍 소리 안하고 후련하게 맞아주는, 참 쉬운 동거인 일 뿐 이었다.
동거인.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안다… 덫에 걸린 그림자. 인간의 가장 낮은 곳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이리저리 몸부림 쳐 봐도 빠져 나갈 수 없는, 하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 소유주의 일부라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위로해보지만, 정작 주인은 엄청 할 일 없어야만 한번씩 쳐다봐 주는 미천한 것.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발바닥에게까지 꾹꾹 밟혀져야 살아지는 밑바닥의 끝… 싫어도 반항하며 떨어져 나갈 수 없는 이상한 공동 생활. 나는 그런 그의 그림자 - 동거인이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의 비위를 맞추려 광대가 되었다. 동아리 방 더러운 마룻바닥이 아닌 따뜻한 자취방에서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신혼 같은 묘한 그 관계에 중독 되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남들 앞에서는 내 남자인 그가 좋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술에 취해 헝크러져 있던 우리 앞에, 그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다 알고 왔다며, 잘난 본인의 아들이 더이상 나와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개도 못 들고 훌쩍거리던 나를 대신해, 그가 이야기했다. 출마 연설처럼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모두를 매료시켰던 그 당당하고 강한 어조로, 똑부러지게 이야기 했다… 날 ‘불쌍한 후배’라 칭하며, 집이 가난해 갈 곳이 없다해서 잠깐 자기 방에서 지내게 해 주는 것 뿐이다, 절대 아무 사이 아니 걱정 안하셔도 된다… 몇 번이고 강조했다. 아르바이트 하고 있으니 보증금이 모아지면 당연히 방을 얻어 나갈거고, 사귈 마음은 전혀 없다…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린 내 옆에, 양반 다리로 당당히 앉아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정 걱정되시면 당장이라도 내보낼께요.”
지난날 그토록 설레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는, 깨진 소주병보다 더 흉악한 무기가 되어 나를 난도질했다. 어머니가 오신지 십오십분만에 버려졌다. 1년도 못 간 ‘사랑’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환상이었다. 나쁜 놈. 다시 동아리 방으로 짐을 옮겨 최대한 그를 피했다. 몇 번인가, 이야기 좀 하자고 찾아왔지만 거절했다. 딱 그 한마디, 돌아오라는 말을 기다렸는데, 듣지 못했다. 악에 받쳐, 한번만 더 찾아오면 그동안의 일들을 다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내가 그의 짐승같은 습성을 알고 있다는 걸 되새겨 주면서, 내게 싹싹 빌고 모셔가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계획대로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손목이 빠져라 다시 자취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드라마 속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에 못이기다 힘으로 제압당하는 그런 키스는 여배우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한번 먹자는 제안을, 수백번 수천번 연습해 온 대로, 단칼에 거절했다. 다행이다. 자존심을 지켰다. 먼 훗날 언젠가, 매달리는 그를 내가 찼다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는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바로 닥쳐온 학기말에 나는 학사 경고를 받았다. 전공 필수 두 과목을 다시 들어야했지만 그것도 다행이라 여겼다. 적어도 내년에 재수강 할 때는, 그와 수업시간에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했지만, 그래도 죽을 것 같던 치욕은 그렇게 조금씩 사라져갔다. 생각보다 쉽게 벗어나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이젠 정말, 그 주정뱅이 놈에게서 떠나 정신차리자며, 한동안 뜸했던 친구들과 위로주를 마셨다. 꼴에 의리라고, 성격차이로 헤어졌다고만 말했다. 그렇게 이별을 공식화하고 격려와 위로를 받은 다음 날, 새벽부터 찾아온 심한 구토… 임신이다. 폭행으로 몸이 안좋다고만 생각했었다. 멍들고 피나는 껍데기만 보느라 잊었었다, 내 몸 안쪽의 이상 신호… 바란적 없던 내 분신이 보내는 소심한 메세지를 그제야 감지했다. 어쩜 그렇게 바보 같은지… 아파서 소화가 안된다고만 생각했었다. 둔했다. 멍청했다. 그에게 음성 메세지를 남겼다. 번호 누르기도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어쩔건데 하는 마음도 있었다.
“임신했어.”
딱 한마디…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당황했을테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배려했다. 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으니, 며칠간 연락이 올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만약 어머니께 말씀드리자고 하면? 다시 시작하자고 하면..? 혹은 지우자고 해도, 그는 내게 또 하나의 빚을 지는 거다. 그와 결혼을 하던 안하던, 평생 내게 미안해 하며 살겠지… 내가 또 이겼다… 며칠 후, 그가 고향으로 내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에게도, 연락처도, 주소도 남기지 않고, 송별회도 없이 가버렸다고 했다. 집안일로, 혹은 어학연수로 휴학했을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주 잠깐… 멍… 했다. 자취방, 친구 집, 학교 안 어디에서도, 이미 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그렇게, 폭행보다 더 끔찍한 배신으로 또 한번 내동댕이 쳐졌다. 울지 않았다. 찾지도 않았다. 고향집 주소쯤이야 과 사무실에 부탁하면 알 수 있겠지만, 하지 않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쓰레기. 걸레. 악마. 개. 새. 끼. 너는 정말 그런 놈이구나. 단 1퍼센트만이라도, 어머니 때문에 잠시 포기하는 척 했었다 사과를 듣고 싶었다. 홀가분하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진심의 구석 어딘가에, 나중에 한번쯤 그리워해 주기를 바랬었다. 끔찍한 놈. 성장한다. 철이 든다. 미친개에 물렸다는 말을 피눈물로 배운다.
***
“집에 가는거 처음본다?”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에 서울까지 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작고 마른 몸에 깐깐해보이는 금테 안경... 멀리서만 스치듯 지나던 대학원생 조교 선배는 생각보다 친절했다. 해 떨어질때 도착한 터미널에서 간단히 저녁이나 먹고 가자 했는데, 어쩌다보니 2차, 3차… 에라, 될대로 되라, 취한다, 토한다… 닭꼬치가 한번에 다 올라온다. 진작에 소화된 줄 알았던 팔천원짜리 돈까스, 구운 마늘, 매운 닭발… 세상이 뒤집어진다. 술 냄새가 입 안에, 코 안에 가득한 채로, 선배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잠에서 깨니 토할것 같다.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모르는 곳이다. 냄새를 지우려 이를 닦는다. 칫솔이 부러져라 박박 문질러본다. 몇 시 일까. 의자에 앉은 선배 뒤로 커다란 거울, 싸구려 로션과 헤어 드라이기… 모텔이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두꺼운 커텐을 제끼고 나서야 간신히 시계를 보니 아침 9시가 지났다.
“잘 잤어?”
담배 냄새에 위장이 조였다. 화장실로 뛰어가 또 토했다. 술 때문인가. 아니면…? 다시 이를 닦고 모텔을 나섰다. 선배가 앞장서 간다. 큰길가 정류장에서 어정쩡하게 인사하고 버스에 오르는데, 선배가 따라 탔다. 맨 뒷자리에 같이 앉았지만, 전날과는 다르게 아무 말이 없다. 피곤했는지 팔짱을 끼고 졸고 있다. 불편하다... 어디까지 같이 가는 걸까… 출근 전쟁이 끝난 도심은 조금 한산해 보였다.
“이번 정류장은 돈암동입니다. 내리실분은 벨을 눌러주세요”
“내려.”
벌떡 일어나 선배를 따라 내렸다. 성신여대 앞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왔다. 정류장 부근은 역겨운 냄새로 가득했다. 새벽녁 사람들이 남기고 간 오물이 사방에 널렸다. 신 김치 먹고 토한 것 같은 냄새, 한 여름 폭염속에 일주일 지난 쓰레기처럼, 숨을 쉴 수가 없다. 전봇대 뒤로 숨어 들어가 입안 가득 차오른 신물을 게워냈다. 뒤돌아 보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도데체, 왜, 같이 있는 걸까? 그가 가는대로, 골목골목을 돌아 허름한 병원앞에 멈춰섰다.
<봄 산부인과 / 소아과>
선배가 앞장서 들어갔다. 돌처럼 굳어있는 내게 따라 들어오라 문을 잡고 서있다.
“수술이세요?”
지금 막 진료를 시작한 듯, 책상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선배가 써내려 갔다. 글씨 쓰는 소리, 시계 바늘 소리, 침묵의 소리….
“어제 약속 했잖아, 병원 같이 가 주기로. 걱정마, 여기서 기다릴께.”
백지처럼, 백치처럼, 아무 기억이 없다… 멍청한 것… 어디까지 이야기 했을까?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잘못이다. 시작해서는 안될 악연이다. 하지만, 그상황에서 나를 보살펴 준 그는, 내 막장 인생의 딱 하나뿐인 동아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잡아보기라도 해야 한다는 본능에 양심이 밀려났다. 악몽에서 깨어나듯, 현실에서도 훌훌 털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온 하루하루가 가상이고, 그동안 만나온 모두가 실존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내게 한 짓, 내가 한 짓… 지난밤 꿈 이야기처럼 간단히 웃어 넘길 수 있다면, 이른 아침 세수 한번으로 떨칠 수 있는 개꿈이라면 좋겠다…
아무일 없다는 듯, 조용히 학기가 시작되고, 일부러 선배와 마주칠 일을 만들었다. 빚 갚는다며 한두번 저녁을 사기도 했고, 시험을 핑계로 함께 도서관을 들락 거렸다. ‘정’ 이라기보다는 아마 의리나 동정심으로, 철없는 후배 잘못 될까 챙기느라 선배 역시 자발적으로 얽혀주는 것 같았다. 또 한번, 사랑이었다. 솔직히 이번에는 치밀한 계획 아래, 대책없지만 아이를 먼저 가졌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곁에 두고 싶었다.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잡아두고 싶었다. 역시나 그의 어머니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혼전 임신에 미루어진 졸업, 복잡한 가정사… 뭐하나 내세울 것 없기에 지독한 반대를 하셨지만, 아이를 이유로 그가 결혼을 밀어부쳤다.
오년전, 십년전 일들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생생하게 남았다. 지옥같던 얼굴과 목소리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사위 며느리 볼 면목은 있냐? 뭐 자랑이라고 남의 자식까지 다 불러 잔치를 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 여자는 끝까지 참 낯짝도 두꺼워. 그러니 평생 그 꼬라지로 살지.”
친정가는 길에 인사 드린다며 일부러 들어간게 화근이었다. 그냥 약속한 대로 집 앞에서 만나 아이만 데려 올 걸... 엄마 환갑이라고 크게 하는 건 아니었다. 오빠네도 막 결혼했을 때라, 겸사겸사 식구끼리 간단히 점심 한번 먹자는 거였지만, 시어머니는 항상 그랬듯이, 친정일이라면 눈에서 불부터 쏟아져나왔다.
“뭐 자랑스럽다고 우르르 다녀? 훈이랑 애비는 여기 있어. 그 집구석을 왜 가?”
식사 약속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 드렸었는데, 또 억지를 부린다. 별로 예뻐하지도 않으면서 아이까지 못가게 하는 걸로 보아, 이번에도 억지 분풀이다.
“어떻할래요?”
“너만 가. 집에 있으라 하시잖아. 여기서 더 놀게 해.”
한번쯤은,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해주길 바랬지만, 그날 따라 또 효자값 한다. 병원까지 데려가 수술실을 지켜주던 배려는 이제 흔적도 안 남았다. 이럴거면 왜 결혼했을까. 그래도 아들은 데리고 논다기에 참기로 했다. 그래, 마누라는 싫어도 아들한테는 정이 좀 남았겠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엄마 볼 낯이 없다. 그래도 생신이니 사위에게 뭐라도 기대 할텐데 또 무슨 핑계를 대어야하나. 엄마도 잘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아주 많이 심각하다는 걸. 그런데도 본인 잘못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내 탓을 했다.
“그러게 누가 결혼 하래? 니가 니 발등 찍은거야. 요즘 세상에 부모 문제로 결혼 반대하는 사람이 어딨니, 사생활인데? 다 이혼하고 재혼하지, 천년만년 한 사람만 보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어? 너네 시엄마도 이혼했다며? 왜 괜히 나를 꼬투리 잡어?”
“그 집은 시아버지가 바람난 거고, 그쪽에서 보면, 엄마가 유부남 꼬셔서 이러고 사는 거잖아. 재혼도 아니고 여지껏 동거인이고...”
“사실혼 40년이면 결혼이야. 내가 혼인신고 안하고 싶어 안하냐? 너네 큰집이 지금까지 이혼을 안해주니까 못하는 거지. 그리고, 법적으로, 혼인 신고했으면, 쉬쉬 해서 편했을 것 같애? 그나마 아버지 밑으로 출생 신고 해서 성씨라도 같은게 어디야? 고마운 줄 알어.”
맞는 이야기다. 법적으로 부부더라도, 또 뭐 후처네 재취네, 욕하는 건 똑같았을 거다. 첩의 자식이라는 건 핑계일 뿐, 내가 싫었던 거다.
***
뜨거운 햇볕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린다. 하늘도 바다도 깜깜한 늦은 시간,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틈을 타 훈이를 데리고 갑판으로 나간다. 발아래에 농구공만한 얼음 덩어리들이 배에서 비추는 불빛에 희끗희끗 모습을 드러낸다. 6월의 첫날, 훈이의 생일이다.
“벌써 여덟살이네. 육지에 내리면 너 좋아하는 탕수육 해줄까?”
“땅까지 못 가. 좀있다 가라앉어. 내가 봤어, 저밑에 이만한 구멍난 거.”
아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난간 밖, 아래쪽 바다를 가르킨다. 하얗다못해 소름돋는 형광빛의 앙상한 팔이 어두운 밤바다를 가른다. 아이가 이렇게 말랐었나… 아직도 애기 같네…
“저기? 엄마는 잘 안보이는데?”
“물속으로 한참 내려가야 보여. 배에 크게 구멍이 났어.”
“바다 속에 있는데 보여?”
아이가 잠시 쉬었다 이야기한다. 간이 녹을 만큼 긴장되는 조용한 목소리...
“난 잘 보여. 지금까지 물 속에 있었어. 엄마 볼려고 잠깐 나왔어.”
“물에 있었어? 이 밤에?”
“어, 저기있는 튜브 타고, 근데 구명 조끼가 없었어. 그래서 빠졌다가 못 나왔어.”
심장에, 갈비뼈에, 커다란 돌이 무너져 내린다. 또다시 숨이 막힌다. 귓속으로 무언가 가득 차오르는 것 처럼 먹먹하다. 훈이야.. 부르고 싶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엄마 없을때, 밥먹다 튜브탔는데 물이 갑자기 빨라졌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꼭 안아주고 싶지만 손가락 하나 구부리리 수 없다.
“그때처럼 물이 막 입으로 들어올고, 그러면 가라앉는 거야. 엄마는 꼭 구명조끼 입어, 내복도 입어야 돼. 물속은 많이 추워.”
…너는? 안 추워? 이제 괜찮은 거야...? 지금까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던 말... 그러나 차마 한번도 하지 못한 말… 아이가 자기 뺨을 만진다. 저 창백한 형광색이 싫다… 연두빛이기까지한 다 죽어가는 누런 피부… 목뒤가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안 추워. 그래도 아직 많이 젖었어. 난 계속 이렇게 축축해. 이거봐, 이렇게 하면 자꾸 물이 나와.”
훈이가 손가락으로 마른 팔뚝을 누른다. 물… 아이의 몸에서 물줄기가 흘러 손가락을 타고 후두둑 떨어진다. 아이의 팔이 점점 가늘어지고 물줄기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다. 훈아, 하지마, 그러지마… 작은 어깨를 안으려는 손끝이 얼음에 베이는 듯이 아려온다.
“내가 하는게 아냐, 저절로 나오는 거야.”
아이의 얼굴에서, 눈에서, 코에서, 입에서… 바닷물이 쏟아져 나온다. 울고 있다.
“엄마, 물이 너무 많아, 엄마…”
…안돼… 훈이야… 이리와, 엄마 꼭 잡아… 아이의 눈동자가 물을 타고 녹아내린다. 그 작은 몸이 온통 녹아내린다. 무너진다. 갑판으로, 난간으로, 바다로 흐른다. 손에 남은 옷자락이라도 꼭 잡아본다. 차가운 젤리 처럼, 미끄덩하니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잡히지 않는다. 손안에 남는 것이 없다. 난간 사이로 팔을 넣고 휘저어보지만 이미 아이는 바다로 스며들었다. 훈아... 훈이야… 바다로 간다… 훈이에게 가자... 난간을 넘으려 몸을 뻗었다. 겨우 허리 높이였던 난간이 훈이의 물방울을 먹고 자라 오른다. 온몸을 감아올라 나를 짓이길 듯이 조여든다. 몸부림 칠수록, 팔을 뻗을 수록 쑤셔드는 쇠창살에 가시가 돋는다. 쇠바늘이 솓는다. 새끼를 지키지 못한 어미를 응징하며, 수십개, 수백개의 창과 칼날이 살갗을 파고든다. 아프지 않다. 근육과 뼈를 뚫고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나를 찢어내어도, 작은 살점으로 떨어져 나간 자리에 따뜻한 물이 고인다. 괜찮다. 이만큼의 눈물, 이까짓 피, 다 뽑아 줄 수 있다.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아이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이정도는 기꺼이 쏟을 수 있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가져가도 좋다. 핏빛 꽃을 만개시키며 커다란 가시가 목구멍을 가른다. 가여운 성대는 아무소리 내지 못하고, 뭉쳐진 핏덩이가 기도를 막는다.
***
집을 나와 버스를 탔지만, 덜렁 혼자 가족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평생 그래왔듯이, 누구도 내가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내어놔도 창피할거야… 원래도 모자란 애가 이젠 애까지 딸려 시집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다. 못 간다고 문자를 하자. 누구 찾는 사람이 있었나 중간중간 전화기를 켜봐도, 전화도, 문자도, 어느쪽에서도, 찾는 사람이 없다. 잘 있겠지… 모처럼 하루 종일 아빠랑 노는데 말은 잘 듣고 있는지… 해 떨어진 저녁에서야 처음 울리는 진동.
“어디야? 지금 바로 와.”
남편이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 병원이라고 했다. 별 설명도 없이 빨리 오라고만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침착하려 애쓰며 다시 걸었다. 받지 않는다. 지 할말만 하면 되는 전화… 몇 번을 계속해도 마찬가지다. 열이 뻗치면서도 걱정이 된다. 가는 내내 시어머니와 남편, 이모님께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아이가 다쳤을까? 혹시 어머님이…? 만약 그렇다면, 병수발을 하러 다시 집으로 들어 오라고 할지도 모른다… 잘 된걸 수도 있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입원실이 아닌 영안실에 있음을 알았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어머니의 친정 식구들이 모여 있었다.
“저거, 저거… 지새끼 잡아먹은 년, 니가 뭐라고 여길 와?”
시어머니가 소리쳤다. 쓰러질듯 부축까지받으며 악을 썼다.
“따라 간다는 애 억지로 던져놓고, 그 어린 애를 달랑 남겨놓고, 너는 친정가서 밥 쳐먹고 노니까 좋았냐? 하나밖에 없는 내 손주를, 훈이야, 아이고, 내 새끼, 얼마나 무서웠을까…”
멍하니 서있었다. 남편은 넋놓은 얼굴로 바닥만 보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과한 곡소리가 거슬렸다. 수근거리는 소리… 못 마땅한 시선… 전화벨 소리…
“무슨 일이에요? 훈이가 뭘? 같이 이모님댁에 갔다면서요?”
답이 없다.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누구도 시원히 답을 해 주지 않았다. 훈이가 죽었다고? 우리 훈이가? 왜? 직원을 찾아갔다. 가족 관계를 묻는다. 엄마라고 답했다. 시체 보관소의 문을 열고, 바퀴달린 침상를 한껏 당겨 끄집어냈다. 흰 천에 덮힌 조그만 물체. 발목에 사망 진단서를 매달고 있는 사내아이… 훈이다. 만 4세, 남아, 익사… 성의 없이 휘갈겨 쓴 글씨… 날짜, 시간, 담당 의사 서명… 조심스레 천을 들어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꼭 안겨 자던 그 얼굴 같기도 한데, 조금 더 자란, 큰 아이 같아 보였다. 아이의 뺨을 흔들어 깨웠다.
“훈아, 왜 그래? 훈이야…?”
차갑다. 온기가 없다. 그 뽀송하던 피부도 느낌이 다르다… 정말 훈이일까?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고무 인형같다… 남편을 찾았다.
“훈이 왜 저래? 누가? 왜? 왜 그랬어?”
내 엄마의 생일날, 아빠를 따라 강으로 놀러갔던 아이는, 어른들끼리 점심 겸 술 한잔 하는 사이에 없어졌다. 한참 후에서야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오후 늦게서야 하류지역 주민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이미 죽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이가 떠내려가는 걸 본 사람도 없고, 비명 소리라도 들은 사람이 없다. 세상에서 날 진심으로 사랑하던 딱 한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 지치기만하던 삶도 거기까지다. 더 연장해야 할 의미도, 이유도 없다. 세상을 닫고 혼자 지낸 몇 년 간, 그저 아이를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 뿐 이었다. 이제 여기쯤이면 만날 것 같다. 내 아이가 놀던 물, 내 아이가 죽어간 그 물이, 이 안에 섞였을 거다.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해…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더 미안해. 이제부터는 너하고만 놀께. 엄마랑 같이 있자…
알래스카의 여름 바다에 축구공만한 얼음 덩어리가 떠다닌다. 많이 차갑겠지. 그날처럼, 그날 훈이처럼 춥겠지… 내일은 배가 육지에 도착할테니, 그전에 나는 이만 내려야겠다. 훈이야, 여덟살 생일 축하해. 엄마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