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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pr 19. 2017

나물 이야기

쉴만한 물가 - 54호

20130329 - 나물 이야기


논두렁 밭두렁 누나는 나물바구니 들고 나물을 캐러 갔습니다. 누나가 논두렁에서 나물을 캐는 동안 야산 듬성이 흐드러진 진달래 따다가 누나 한 잎 나 한 잎 머금어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기도 했습니다. 봄노래 흥얼거리며 나물바구니 채워지길 기다리며 봄바람에 숨을 들이키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먼 산 녘을 마냥 바라만 보기도 했습니다.


캐온 쑥을 잘 다듬은 후에 쓴 물이 좀 빠지도록 비벼서 꾸욱 짜버린 후에, 멸치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어 넣고 간을 해서 끓인 쑥국 향기는 국물 한 숟갈 입에 머금으면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쑥 건더기 입에 넣을 땐 쑥에서 나온 물이랑 된장 국물이 조화를 이루는 맛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향긋한 맛입니다. 만일 쑥국에 냉이가 함께 들어가 있다면 정말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지요. 냉이 뿌리 역시 입에서 씹힐 때 들척하고 향긋함은 역시 단연 최고입니다. 간혹 가마솥에 보리밥 하면서 쌀가루 입혀서 함께 쪄낸 쑥버물은 특별한 간식 없던 때에 밥상에 함께 올려질 때면 쑥과 하얀 가루의 조화로운 맛이 입에서 절로 녹았습니다.


달롱개라고도 하는 달래는 깨끗하게 다듬어서 쫑쫑 썰은 후에 맛간장을 내고 고춧가루 조금 넣어서 달래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달래 특유의 향기와 간장이 조화를 이루면 한 숟갈 뜨거운 밥에 얹어서 비벼 먹으면 간장게장만 밥도둑이 아니라 달래장도 어느새 뚝딱 그릇을 비워야 할 정도로 맛깔스러운 반찬이 되었습니다.


돈나물도 있습니다. 순과 잎이 특히나 바위 위에 많이 있어서 돌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우린 돈나물이라고 했습니다. 늘 왜 이게 ‘돈’ 나물일까 늘 궁금했지만 이 나물을 먹을 때면 돈 주고 못 사 먹는 맛이어서 그런가 보다라고도 했습니다. 일단 무침은 깨끗하게 다듬은 돈나물에 갖은 양념과 초즙으로, 또는 된장만으로 무침을 해도 맛있습니다. 물론 된장국에 넣어도 맛있구요. 그러나 최고의 맛은 바로 비빔입니다. 커다란 그릇에 뜨거운 밥을 툭 부어 놓고 물론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상관없습니다. 돈나물이 입에 맴돌기에 보리밥이랑 비슷한 면이 있어 재미있기까지 했었는데요, 아무튼 돈나물 무침을 여기에 넣고서 뜨거운 된장국을 부어서 맛깔스러운 고추장도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둘둘 비비면 돈나물 비빔이 완성됩니다. 입가에 돈나물 시퍼런 물이 새어 나올 정도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나물이었습니다.


머위도 있습니다. 우린 머구대라고도 했는데 이 나물은 귀했습니다. 귀해서 자주 먹지 못해서도 그랬지만 특유의 쓴 맛 때문에 어릴 때는 귀한 줄도 맛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제일 만이 해 먹었던 것이 머위대를 살짝 껍질도 다듬고 데쳐서 된장에 무치는 나물이었습니다. 된장 말고 고추장 양념으로 무치거나, 조금 대가 더 굵어지면 아예 대로만 초즙으로 묻힌 머위나물은 정말 귀한 분들에게만 내는 반찬이었습니다. 입으로 쌈도 싸 먹고...


참나물, 씀바귀, 취나물, 쑥부쟁이.. 보리고개 배고프던 시절에 봄에는 산에 된장만 가지고 올라가도 먹을 것이 쌔부렀다(많다) 하시던 어머님 얘기 귀에 쟁쟁합니다. 지금에 보니 이 봄나물들이 모두 기운을 돋우고 생기를 돋게 하는 효능들이 있는 것이 밝혀져 별미로 먹습니다. 나른해져서 쳐지기 쉬운 일과 속에서 힘내서 살라고 때를 따라 이렇게 맛난 봄나물 주셨나 봅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저녁 밥상에는 이런 봄나물 가득 올려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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