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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봄 그리고 홈(Home)

쉴만한 물가 - 90호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10314 - 몸과 봄 그리고 홈


조석(朝夕)으로 일교차가 커서일까 감기라는 ‘놈’(者)이 코막힘과 콧물을 동반해 찾아왔다. 이틀간 화장지로 틀어막고 연신 따뜻한 차를 들이키고, 지끈지끈 찾아오는 두통은 해열제 몇 알로 다스려 가면서 일을 해야 했다. 책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래 저래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다 소용이 없고 우선순위들은 몸으로 집중된다. 몸이 아프면 책을 보는 일도 그리고 일도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거기다가 마음에 여유도 없으니 무엇을 봐도 시원치 않고 즐거움과 감사보다도 여유 없는 마음의 자리들이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된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하면 지식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방바닥을 등에 지고 누워서 몸을 한번 내려놓고 겸손히 내 몸마저도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겸손함으로 포기하고 나서야 다시 그 몸을 가눌 힘이 생긴다. 그래서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 않던가!


몸이 아프면 누군가 찾아'옴'(來)이 부담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마음이 몸에 집중 하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오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봄'(春)이어도 따뜻한 햇살에도 두터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더욱 마음의 빈자리들을 비좁게 한다. 그래서 웅크린 그 자리에 누군가를 안아줄 여유가 여간해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그 고통이 익숙해 질라하면 감기란 ‘놈'은 슬그머니 언제 왔냐 싶게 꽁무니를 슬쩍 감추고 사라진다. 처음부터 오래도록 함께 할 생각 없이 지나가던 손님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찾아온 감기는 해를 거듭하면서 익숙해지면 이제는 급히 보내기보다는 잘 다스려가며 견뎌내는 요령도 생긴다. 특히나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환절기의 손님이 지독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봄’(春)을 보는 ‘봄’(視)을 더 간절히 고대하게 하는 친절 아닌 친절을 베푼다.


타향에서 제일 힘들 때가 몸이 아플 때 라고들 한다. 여기저기 ‘촘'촘거리며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종일토록 놓을 수 없는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아픈 상황에 잠시도 쉴 수 없는 벅찬 여러 상황 속에서도, 그리고 산적한 일이나 염려로 답답한 시간에 갇혀 숨을 쉬기 힘들어도, 노력한 성과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겨워도 오는 ‘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훨씬 더 이 모든 힘겨움 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홈'(Home)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마주’ 봄’으로 ‘몸'의 시름도 마음의 아픔도 하루의 피곤도 금세 잊고 마는 것이다. 그런 가족이 얼마나 고마운가!


‘솜’ 털 같은 버들강생이 피고 산수유꽃 매화꽃 그리고 머지않아 배꽃과 벚꽃이 필 것이라는 고향의 봄소식이 멀리서 더 그리워진다. 지난겨울 감기몸살처럼 그렇게 괴롭히던 시간들이 어느새 지나고 자신을 봐달라고 수줍은 듯 봄이 온다. 곁에 있을 땐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후회스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가진 건강한 몸에게, 그리고 추위를 보내고 해산하듯 다가온 봄과, 가장 최고의 위로와 격려와 응원을 해 주는 가족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맘으로 바라보는 ‘봄봄’(春視)을 아낌없이 선물해보면 어떨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풍성하게 줄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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