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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12. 2024

예레미야 31:23-40 구원신탁 5 : 새 언약 *

예레미야 31:23-40  

예레미야 31:23-40 구원신탁 5 :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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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제 유다의 회복과 이스라엘과 유다 전체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시고, 새 언약을 통해 영원한 보호의 약속과 예루살렘 재건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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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6 여호와께서 유다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15-20절이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당한 북 왕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주어진 말씀인 반면에, 23-26절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멸망당한 유다에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심판을 받고 유배 갔던 유다의 운명을 야훼께서 되돌리실 것입니다. 귀환한 유배민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나안 땅에서 풍족하고도 평화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성읍에 거주하는 자들과 농부와 목자들이 함께 사이좋게 살 것입니다. 

히브리적 사고는 영과 육의 이분법적 분리를 모르기에 ‘피곤한 심령’과 ‘연약한 심령’(25절)은 ‘지친 사람들’과 ‘허약해진 사람들’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26절의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하나의 꿈이나 꿈에서 본 환상으로 해석해주는 말일까? 아마도 ‘꿈’이 아니라 ‘잠’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내 잠이 달았다’는 걱정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의 표상입니다. 미래적 사건인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을 예언자가 이미 맛보고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달리 말하자면 유배민들의 구원과 회복에 관한 약속은 값싼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벌써 현재화되고 있는 말씀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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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0 여호와께서 심판을 극복하게 하심은 

이 단락은 회복과 축복을 선포하는 27-28절과 죄책의 문제를 다루는 29-30절의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멸망과 흩어짐으로 인구가 격감한 이스라엘에 야훼께서 다시 축복하여 사람들과 가축들을 중다하게 하실 것입니다. 회복은 유배에서 돌아옴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과 기근과 흩어짐으로 많은 주민들을 잃었습니다.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구의 증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죄의 책임이라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cf. 겔 18장). 조상의 잘못으로 나라가 멸망했는데, 왜 그 멸망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는 후손들이 유배를 당해야하는가? 조상이 지은 죄의 책임을 왜 후손이 담당해야하는가?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지 않는가? 본문은 이에 대한 사변을 거절하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것을 권면합니다. 구원의 시대에 각 개인은 자기의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집니다. 

공동체와 개인 : 개인의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합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개인이 개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공동체 안에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공동체 누군가 잘못하면 공동체가 같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이면서 또 공동체의 한 구성원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동체가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공동체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공동체는 평면적, 개인 가정등 공간적 시간적 공동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한반도에 태어났기에)으로부터 물려받았기에 우리도 그 안에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있기에 연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 한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다루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만 다루지 않고 개인의 책임만 다루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일 뿐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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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4 여호와께서는 때가 되면 새 언약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 → 32:40)

시내산 계약의 파기는 단순하게 갱신에 의해 회복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교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필연적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적으로 거절하며 그분께 등을 돌리고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계약 파기의 결과로 이스라엘과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됐습니다. 그렇다면 심판 이후에 이스라엘과 유다의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수 있을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의지적임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능력이 없음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 의존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는 내적 능력이 전혀 결여되어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불순종을 말하기 이전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심판/멸망 이후의 새로운 출발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야훼의 용서로 시내산 계약이 갱신된다 해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이를 준수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원천적으로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근본적인 내적 변화가 불가능한데 관계정상화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본문은 이런 당혹스런 문제에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야훼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계약은 시내산 계약의 갱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순종과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 조건적인 시내산 계약하고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계약입니다. 새로운 계약에서는 그 의무규정이 더 이상 돌비(신 9:9-16)에 새겨지지 않고 각 사람의 [사고와 의지와 결정의 자리인] 마음 속에 기록됩니다. 야훼께서 계약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계시의지를 각 사람의 마음에 두어 계약에 따른 규정을 준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무능력과 죄가 근본적으로 치유되어 야훼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마음에 야훼의 의지가 각인 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옛언약은 돌에, 새언약은 심비에 새기고, 옛언약은 누군가 가르쳐 주어야 배울 수 있지만, 새언약은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순종할 수 있는 언약입니다.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신 9:9-16) 

33절은 왜 갱신이 아니라 새 언약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광야의 언약이 갱신해서 더 잘 지키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차원이 다른 파괴될 수 없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애굽에서부터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은 용서해도 다시 범죄할 확률은 100%입니다. 그래서 새언약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서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겠다는 것입니. 우리로 회개할 수 있는 길과 능력, 영까지 해결해 주셔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자발적, 자의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 아닙니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입니다. 신약은 마음에 기록한 것이라 안하고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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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7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야훼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가 폐지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구원의지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야훼께서 비유를 사용해 그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야훼께서 지으신 하늘과 땅을 측량하는 일이 [그분의 창조의 업적을 조사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처럼,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를 살피시고 진멸시키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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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40 여호와의 성전 재건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성전된 교회에서 성취됩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에 관해 아마도 북쪽에서 서쪽을 거쳐 남쪽을 지나 동쪽 방향으로 기술하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하나넬 망대에서 서쪽의(?) 모퉁이 문으로 해서 예루살렘 성이 재건됩니다. 가렙 언덕은 힌놈 계곡 북동쪽에 있는, 주전 587년 이전에는 아마도 예루살렘 성벽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아는 힌놈 계곡 북쪽과 기드론 계곡 서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서쪽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벤-힌놈 골짜기(cf. 2:23)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기드론 계곡은 도성과 감람 산 사이의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계곡을 가리킵니다. ‘마문’(말들의 문)은 아마도 예루살렘 남동쪽의 모퉁이에 있었던, 기드론 계곡으로 나아가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 언약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세우시고, 그들의 터전을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곳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난미의 영원한 백성이 되고(롬 8:38,39)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는 성전이 됨으로(엡 2:20-22) 성취되었습니다.”_매일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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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새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주를 멀리 떠났던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다시금 회복과 인도하심과 만족케 하심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공동체와 개인의 죄에 대한 상호책임의 무게를 깨닫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함께 자라가야 함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의 법을 심비에 새겨 주의 백성됨을 깨닫고

주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하는 일에 있어

모든 능력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한량없는 주의 은혜에 대해서도

여호와께서 확증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회복과 재건에 대하여서도 

반드시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 우리가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 됨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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