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92호
20140328 - 인생의 계절
봄이 성큼성큼 다가와 버렸다. 어느새 낮에는 덥다 하고 그늘을 찾는다. 그렇게 꽃이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으며, 잎이 나올 때가 있고 또 그렇게 무성하게 푸르르다가 쇠하여 떨어질 때가 있으며, 물이 오늘 때가 있고 또 물이 마를 때가 있으며, 열매를 맺을 때가 있으며 또 익어 갈 때도 있으니... 그래서 모든 것의 때와 기한이 있다 노래했을까?
어른들이 사계(四季) 중 봄이 유독 슬프다 하신다. 가는 계절 오늘 봄맞이하며 어느 계절인들 떠나보냄이 좋다 하실까만은, 봄에는 고목에도 싹이 나고 만물이 소생하는데, 사람은 기력이 쇠해진 몸이 봄이 와도 꽃피기는커녕 더 상대적으로 사그라지는 느낌 때문이라 하신다. 이런 환절기엔 안타까운 부음(訃音)이 유난히 많다. 꽃피는 봄이 오면 화전놀이 가자던 그 바람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계절과 함께 떠난 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불현듯 주어진 하루의 삶에 대한 소중함에 감사하면서도, 때론 덧없이 보내는 세월과 떠난 이들 앞에 산자로서의 부끄러움도 만만치 않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랑, 살아가는 계절이 다르다. 계절이야 제 알아서 오고 가는 것이지만 삶의 자리마다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 꽃피는 봄도 그렇고, 더운 여름이 좋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풍성한 가을이 좋다면서 또 낙엽이 슬퍼 싫다거나, 추운 겨울이 좋다면서도 추워서 싫다 하며 그렇게 저마다 오는 계절을 향해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간다. 그렇게 오는 계절들은 우리의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가야 하지만, 사실 사람들 각자가 실제로 살아가는 계절은 다르다. 사는 지역이 달라서도 그렇겠지만 그보다 더 큰 계절의 차이는 정작 다른데 있다.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는가? 물어보면 각자 나이와 관계없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계절을 언급한다. 몸은 노인이어도 청년의 열정을 가진 계절을 사는 이가 있고, 몸은 청년인데 굳어진 마음의 계절을 살아가는 이가 있으며, 꿈꾸는 계절을 살기도 하고, 사랑과 일의 성취를 꽃피워 가는 계절을 사는 이도 있으며, 곤고한 터널 같은 인생의 계절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금세인데 그 한가운데서는 왜 그리도 계절이 더디 가던지..
인생의 계절들이 불가에서는 찰나(刹那)라 하며 무상(無常)타 하고, 성경에는 살(虄)과 같이 빠르다 하여 일촌광음(一寸光陰)이라 하고 또 헛되고 헛되다 한다. 또 해아래 사람들이 수고하는 모든 일들도 헛되다 한다. 사실 그 계절의 시간들 하나하나 즐거운 날들보다 기다림과 고민과 아픔과 슬픔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지나갈 뿐이니 모두에게 빠른 그 시간 속에서도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 열매 맺는 그 시간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며,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지혜롭다 하지 않겠는가?
계절이 가고 오는 것을 보면서도 삶을 회고하거나 반추하거나 꿈꾸지 않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거부할 수 없이 다가오는 자연의 계절은 어찌할 수 없지만 각자가 살아갈 인생의 계절은 사람 하기 나름이다. 이래도 한세월 저래도 한세월 덧없이 보내든지 할 일 많은 세상이나 젊어서 노새 하든지 그거야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인생의 계절 끝에서 무상(無常)이 아니라 보람을, 헛됨의 후회가 아니라 삶의 감회를, 덧없음의 음미가 아니라 의미 있음의 열매를 맺는 그런 계절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