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10-20 소통과 중재 그리고 책임

여호수아 22:10-20

여호수아 22:10-20 소통과 중재 그리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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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동편 지파들이 제단을 쌓았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것을 중앙성소를 배격하고 다른 신을 섬기려는 의도로 보고 싸우려 하고, 먼저 제사장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도록 합니다. 이들은 브올의 죄악과 아간의 죄악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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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2절 여호와를 향한 열심이 때로 오해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는 요단 가에 보기에 큰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 소식을 듣고 실로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고 합니다.

이전에 모였던 실로에서 요단 동편으로 가는 길갈 근처에 큰 제단을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큰 제단은 일단 요단 동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보기에 동편에 쌓은 것은 또 하나의 예배처소로 생각해서 야웨를 반역하는 의도로 간주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성소를 세우는 것은 결국 다른 종교를 갖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동편 지파가 단을 쌓는 것에 대해 신명기 12장의 규례를 따라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말씀의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위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법적인 성소는 단일성소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중앙성소 이외의 다른 제단을 쌓는 것은 이방인에게 영향을 받아 혼합주의로 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둘째 신앙공동체의 배교와 연관해서 만일 두 지파반이 배교하면 공동체 전체가 멸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심하게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요단 동편 사람들의 열심이 큰 오해가 되어서 동족간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시도한 이들의 행동에서도 신중함이 결여되었고, 이러한 일에 대한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채 급히 회중들이 모여서 싸우려 하는 태도 또한 성급한 태도입니다. 실상 오늘 교회와 성도와 이웃간에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자신의 시각으로만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객관적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채 쉽게 정죄하고 혐오하고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관철시키려는 태도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신중하고 올바른 분별력을 위해 평소에 선악을 분별하는 말씀의 기준들과 지혜들을 축척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민감한 훈련이 있을 때라야 보고 듣고 아는 것에 국한되지 않은 건강한 분별력들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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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0절 대화와 소통 그리고 역사에 대한 기억은 현실을 제대로 분별하고 처산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사장 비느하스와 지파별로 지도자 열명과 함께 요단 동편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왜 이 제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는지 묻고, 브올의 죄악과 아간의 범죄로 인한 여호와의 진노에 대한 역사를 상기하며 경고합니다.

비느하스는 민수기 25장에서 브올의 사건을 해결한 제사장입니다. 이를 보내서 제단을 쌓는 것이 여호와를 배반하는 행위로 말하게 합니다. 또한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행동이라 하고 이는 곧 언약적인 성격의 범죄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레위기에서 이 것은 하나님의 성물을 훔치거나 율법을 어긴 죄를 말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마알). 지금 요단 동편 사람들이 제단을 쌓은 행위가 바로 이러한 ‘마알’행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너희의 소유지가 부정하다면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요단 서편의 두령들은 자신들의 기업 중 일부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고(종교적 거역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의미), 우리에게도 거역(정치적인 의미로서 무책임한 삶을 사는 것)하지 말라 합니다(19절하).

이스라엘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묻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은 신중하고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또한 브올의 사건과 아간의 사건을 상기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간과하지 않고 매사에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 가는 일 또한 공동체 문제 해결에 있어서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더불어 요단 동편의 땅이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자신들의 기업을 일부 양보할 각오도 되어 있다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중재에는 반드시 자기 희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희생과 댓가 지불없는 대화와 소통과 사랑은 공거할 뿐 진심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역사적 사건들을 회고하는 신중함과 자기 희생의 각오로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판단은 신중하고 지혜롭게, 해결을 위해서는 자기 부인과 희생을 전제로, 그리고 이해를 위해서는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다 드린 신실하심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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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중보자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오해와 편견을 돌아보며

우리가 성급하게 혐오하고 정죄했던 일을 돌아봅니다.

조금더 신중함으로 분별하는 지혜를 더해 주옵소서.

우리 삶의 역사적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의 말씀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잘 배우고

화해와 소통을 위한 희생과 섬김을

기꺼이 감당하며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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