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187호
20160401 - 꽃 몸살
따듯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화사하고 얇은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가 아직 떠나지 않은 꽃샘추위의 한기가 흠칫 살을 파고들면 이내 오한이 깃든 감기 몸살을 앓기 일수입니다. 거기다 조석 변동하는 큰 일교차까지 제대로 만나면 감기 몸살에 걸리기 딱입니다. 꽃가루에 덩달아 날아온 황사까지 알레르기를 일으키면 이내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실내에서 막힌 코가 답답해 연신 풀어 재끼기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코 밑이 빠알갛게 헐어 꽃이 핍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연신 풀다가 기어이 밤에는 몸살을 않게 됩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임에도 나른한 날씨는 기력을 쇠하게 하는 듯 춘곤증까지 겹치고 겹치면 몸살 난 몸을 침대에 철썩 붙이고선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봄에 몸이 앓게 되는 꽃 몸살입니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꽃이 많은 곳이었나요? 도로변 곳곳에 핀 개나리, 다압과 백운산 이곳저곳에 핀 매화, 가야산과 국사봉에 핀 진달래, 도로마다 가로수로 제철 단지 내에 그리고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대는 벚꽃, 읍에 조성한 전시장의 꽃들, 인근의 순천 여수 구례 하동 화개 등 핀 꽃들까지 실로 꽃 천지, 꽃 대궐, 꽃 장관, 꽃 나라, 꽃 세상입니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도록 꽃이 부르는 아우성은 동네뿐 아니라 멀리 있는 이들까지 부릅니다. 상춘객들이 몰려온 꽃 동네마다 차와 사람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길 위에 꽃과 함께 피어 있습니다. 꽃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몸살을 앓았고, 사람들은 꽃구경하며 길들마다 몸살을 앓아 댑니다. 봄에 꽃 동네 길 여기저기서 앓게 되는 꽃 몸살입니다.
빨강, 파랑, 주황, 녹색, 노랑, 흰색 등등 원색의 옷들, 강렬한 색상의 홍보물을 들고 환한 웃음을 띤 얼굴과 플래카드와 선거 유세와 홍보차량들, 거기에 빵빵한 사운드를 울리며 봐달라 외치는 풍경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곳마다 거리마다 사람 꽃이 핍니다. 일사불란하게 흔들어 대는 춤사위에, 사거리에서 연신 인사하는 모습들, 비록 선거 자봉들이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종일토록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시민을 대표하고 싶다고, 시민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바지하고 싶다고 하며 전문성과 비전과 소망들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내건 외침들보다는 이름 석자 알리고 도와달라 잘해보겠다는 눈도장 찍기에 여념이 없고, 정작 공약은 허허실실 한 명분뿐이고 사람의 됨됨이와 정치적 역량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람보다 당이, 정책보다 돈이, 공약보다 약삭빠른 임기응변으로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 이 봄에 후보자와 유권자들이 수 일 동안 앓게 되는 꽃 몸살입니다.
1947년 3월부터, 그리고 이듬해 48년 4월 3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국전쟁이 마칠 때까지 있었던 제주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4.3 사건의 양민학살이 벌어진 지도 벌써 70여 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같은 섬에서 최근에 있었던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일들은 잔인하리 만치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피지도 못한 꽃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도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작년 이맘때쯤 4월 남도에 꽃이 많은 것이 한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꽃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맘을 피력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억울한 아픔들이 풀린 것도 해결된 것도 싸매어진 것도 없이 여전히 그 아픔은 진행 중입니다. 이 봄에 산과 바닷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픈 유가족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많은 이들이 앓고 있는 꽃 몸살입니다.
몸살을 앓으며 이불 위에 밤새도록 몸부림치다 보면 바닥과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갑니다. 온몸의 사지백체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지끈거리고 뼈마디 마디마디가 시리고 아립니다. 땀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르게 몸에서 진액들이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더욱 바짝 말라서 푸석거리는 입술에 물을 축이고 간신히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가 따뜻한 봄 햇살 아래에 나아가 멍하니 연분홍 진달래 꽃 핀 먼 산을 바라봅니다. 뿌옇게 낀 황사가 걷히면 몸도 마음도 몸살도 개운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 날이 오리라 애써 자위하면서 이 아픈 현실의 몸살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버텨냅니다. 아이들은 몸살로 아픈 후에 큰다 하고 어른들의 몸살은 아픈 후에 기력이 쇠해진다 하던데, 우리네 주변에서 앓고 있는 몸살은 부디 더 성숙해지고 자라는 몸살이길 기원해 봅니다. 봄 꽃들의 그 오랜 기다림과 열정과 끈기로 피워낸 꽃의 향기가 우리네 삶의 자리들마다 앓고 있는 꽃 몸살들을 변화와 성숙의 몸부림으로 열매로 귀결될 수 있게 하길 또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