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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칠흑 같은 밤을 지나는 그대에게

시편 143:1-12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시편 143:1-12 영혼의 칠흑 같은 밤을 지나는 그대에게

우리의 어둠은 하나님의 자비를 담는 그릇이며, 마른 땅같이 갈급한 영혼 위에 비로소 은총의 단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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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예고 없이 틈입해 들어오는 짙은 어둠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 앞에 설 때 비로소 윤리적 주체가 된다고 했지만, 때로는 나 자신의 고통이 너무나 비대해져 타인은커녕 하나님조차 보이지 않는 '존재의 칠흑'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쳐 든 시편 143편의 시인 다윗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지금 원수들에게 쫓겨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3절)라고 탄식합니다. 그의 영혼은 황폐해졌고, 마음은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앙의 길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벗들이여,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다윗과 같지는 않으십니까?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상처뿐인 것 같고,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한 그 답답함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그의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자신의 '비루함'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2절). 그는 압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임을 말입니다. 신앙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 도덕적 주체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를 고백하는 자리에서 깊어집니다.


다윗은 기억의 힘을 빌려 절망에 맞섭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5절). 과거에 베푸셨던 은혜의 기억을 끌어와 현재의 곤고함을 견디는 버팀목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6절).


여기서 '마른 땅'은 저주받은 땅이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땅, 은총의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빈 그릇입니다. 신앙의 회의가 찾아왔습니까? 영혼이 메말라 갈라진 논바닥 같습니까?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갈급함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가장 거룩한 틈입니다. 꽉 차 있는 것에는 더 담을 수 없지만, 비어 있고 갈라진 틈 사이로 하나님의 빛과 생명은 스며듭니다.


시인은 아침을 기다립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8절). 여기서 '인자함'은 히브리어로 '헤세드(Hesed)', 즉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잊지 않고 손을 뻗어 그분을 찾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아침 빛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율법 준수를 요구하며 윽박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주의 선한 영이 나를 공평한 땅으로 인도하소서"(10절). 우리의 의지가 박약함을 아시기에, 주님은 당신의 선한 영을 보내어 우리를 비틀거리지 않는 평평한 땅, '평지'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주를 향해 빈 손을 펴십시오.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주의 이름 때문에(11절) 우리를 살리시는 그분의 손길을 믿으십시오. 마른 땅 같은 우리의 일상 위에, 거부할 수 없는 은총의 비가 내릴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넉넉한 사랑의 신비 안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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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3:1-12 심연(深淵)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긍휼과 인도하심

우리가 삶의 어둠 속에서 "주의 영으로 인도하소서"라고 솔직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게 하시어 낯선 세상 속에서 당신의 변함없는 긍휼과 동행을 깨닫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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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홀로 있는 실존 속에서 때로 "이게 아닌데"를 되뇌이며 길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심연에 빠지곤 합니다. 시편 143편의 시인이 "내 영혼이 답답함에 나를 둘러싸고 있나이다"라고 울부짖었듯(시 143:4), 삶이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깊은 물"과 같아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가 있습니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헤셸이 말했듯, 고난과 시련은 우리 실존의 비약을 가능케 하는 한계 상황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절박함과 무력감 속에서, 우리는 자기 삶을 지탱하는 모든 인위적인 논리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신앙인이기에 늘 고상하고 흠 없는 말만 해야 할 것 같은 영적 자기 검열(自己檢閱)이 우리를 옥죄지만, 시편은 우리 내면의 가장 진실한 감정을 하나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도 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허락된 보편적인 경험이며, 이는 우리의 자기중심적 삶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목마름을 자각하는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겪는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섣불리 해석하거나 정죄한다면, 그것은 상처 입은 영혼을 괴롭히는 죽은 말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의 자리에서 설교를 듣기보다,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을 직시하고 긍휼히 여김 받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절망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일을 묵상하며"(시 143:5) 과거의 은총을 반추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처럼 주어진 선물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비애를 덜고 감사할 수 있는 홀가분한 마음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의 기억을 바탕으로 간절히 구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신 말씀을 듣게 하소서... 주의 영으로 나를 인도하여 평탄한 길에 이르게 하소서"(시 143:8, 10). 여기서 구하는 '평탄한 길'은 세상이 약속하는 안락하고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타자의 고통 속으로 이끌어 궁극적으로 우리를 참사람의 길로 이끄는 낯선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살갗처럼 만드시어 우리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비의 사람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거나 연약함에 좌절할 때,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떳떳하게 행해야 하는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실존을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에 대한 신뢰에 있습니다. 이 은총 안에서 우리가 용기를 내어 세상의 불의에 아니오라고 말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이웃들의 곁에 다가서는 사랑의 순례길을 걸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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