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216호
20170709 - 산이 효자다
머드시오?(무엇 하세요?) 고추좀 따고 있그마! / 어디시오? 노인정에서 뭐 흔다고 나와 있그마! / 식사는 흐셨는가요?(진지 잡수셨는지요?) 그냥 된장국에 묵었그마! 요새는 뭐 맛난것도 없그마! / 오늘은 별일 없소? 뭔 별일이 있간디? 별 일 없그마? / 몸은 좀 어떠시오? 갠찬해, 인자 다 나샀그마! 일 안하믄 암시랑토 안흐그마!
근디 언제나 오냐? 언제 오면 읍내 고추 방앗간에 좀 가야겄는디 시간좀 못내까?. 다리가 좀 아픈께 뭘 들덜 못흔께 성가시그마! 올 때 수도 꼭대기도 하나 사오면 좋겠그마, 어찌 터져서 물이 자꾸 새그마! 올해는 벌초를 언제나 흘랑가? 시간되면 도랑끝에 밤밭에 풀도 좀 베야 흐꺼신디… 얘들은 학교 잘 댕기냐? 주그매는 잘 있다냐? 서울 큰 성은 요새 일이 많다네? 누나는 엊그제 매형이랑댕이갔그마, 뭘 많이 싸가꼬 와서 잘 묵었그마! 낼 모레 어디 여행 간대.. 아이 근디 저그 웃동네 당재 종곤이 짐센이 죽었대, 진즉에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수술 했는디 잘 했다등마 그냥 그리 되부렀대, 고생도 마이하고 그리 부지런흐드마 그리 가뿠대… 언제나 올랑가 한번 다녀가재? 예~! 이번 주는 바쁘고 시간봐서 함 갈게요. 언제고 다녀 가야지요. 너무 걱정 마세요~! 함 갈랑께요! 잘 지내세요~잉!
홀로 고향에 계신 엄니랑 평소에 전화로 하는 대화다. 큰 형님은 매일 아침 문안 전화를 드리는데 저는 그렇게 못 챙기고 아주 가끔 전화를 하면 이렇게 하는데 그것도 못할 때면, 일주일에 한 번은 엄니가 먼저 전화하셔서 오히려 안부를 전한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지척의 거리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꾸 한 번씩 다녀오는 일이 뜸해진다. 팔순 중반을 넘어섰고, 심장 관상동맥을 시술한지라 2-3개월에 한번은 모시고 병원에도 다녀야 하는데 그 일도 이제는 약만 타서 보내 드리곤 하느라 고정적으로 못간다. 고향집에 판 지하수가 워낙 수질이 좋은지라 그 핑계로 일부러 생수를 시골에서 떠다 먹는다. 그래서 물떨어지면 그 핑계로 일부러 한번이라도 더 가려고… 그런데 생수 통이 많아지니 그것도 가는 날이 더 뜸해 진다.
가끔은 모시고 나와서 평소에 봐둔 맛난 곳에 일부러 모시고 가서 대접해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어릴적엔 그렇게 말썽을 부리더니 늙으막에는 가까운데 있어서 덕분에 별걸 다 먹어 본다 하신다. 시골집에 뭔가를 수리하거나 외출할 때 그렇게 한 번씩 모시고 다녀오면 7남매 가족들에게 전화해서는 일일이 중계방송을 하신다. 막내가 와서 뭐 고치고 일하고 갔고, 어디서 맛난거 사주고, 어디도 데려다 주었다고, 좋은 것 먹고 보고 하셨다고 말이다. 멀리 계신 형님과 누님들은 자주 와 보지 못하는데 그래도 가까이 있는 아들이 있어 늘 고맙다고 전화 하신다. 그런 전화를 받자면 늘 송구할 뿐이다. 더 잘해 드리지도 못하는데 제가 뭘 다 하는 것인양 그리 생각해 주고 고맙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고향에 갈 이유는 또 있다. 건너마을이 처가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장인어른이 몸이 좋지 않아서 오래도록 광주에 있는 병원을 오가셨다. 여러 날을 모시러 오가기도 하고 치료와 검사의 과정 속에서 다녀오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서 서운함도 있었으리라. 평소에 말도 없으시던 장인어른을 처음으로 검사하고 오던 날은 일부러 주암댐을 돌아 별미를 하는 집에 모시고 갔더니 아들보다 더 많이 사위에게 사랑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하나에 고마워 하신다. 장모님은 눈시울이 붉어지시면서 그동안 장인어른께 너무 일만 시켜서 미안타고 지병 고치시는데 돈 아끼지 않고 다 해 주고 싶다 하셨다. 그런 일이 있고선 그 많던 농사일들을 금새 그만 두실 수 없기에 하나 있는 처남이랑 같이 일을 도와 드려야 해서 더더욱 고향에 갈 일이 많음에도 맘만 가고 뭐가 그리 분주한지 제대로 못간다. 아마도 일을 핑계고 맘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사위 자식은 뭐라 하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 싶다.
오늘은 친지의 팔순 잔치에 오신 장인 장모님 모셔다 드리고 생수도 뜰겸 토요일임에도 일부러 고향에 다녀왔다. 바쁜데 괜찮냐고 연신 말씀하시면서 벌써 텃밭에 심은 상추며 고추랑 쑥갓이랑 뜯어가라고, 논가에 있는 복숭아도 새가 다 먹는다고 따가라고 하시면서 시골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한가득 보내실 것들을 챙기신다. 엄니댁에는 물새는 수도 고치고 생수 뜨면서 이것 저것 챙기는 사이에 쉴새 없이 며느리와 손자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나누신다. 사람이 고프고 자식들이 보고싶어서일게다. 노인정에 어른들 있어도 자식만큼 속이야기 할 사람들이 있으랴. 그러면서 언능 상추랑 다 물러진다고 또 뜯어 주시고, 누님이 사다준 반찬도 되려 우리 먹으라 싸주시며 뭘 더 못 사줘서 안달이시다.
마당 끝에 가서 비온 뒤 자욱한 안개로 허리 둘린 앞산과 뒷산 풍경을 보았다. 부모님들은 어느새 이곳에서 수십년을 살으셨을 터, 녹음이 짙어진 그 산들과 마당 한켠에 심겨진 감나무가 이제는 지붕을 훌쩍 넘어갔다. 문득 띠엄 띠엄 오는 자식들, 훌쩍 왔다 금새 또 가는 우리들보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홀어머니와 연로하신 장인장모님 지켜보고 오래도록 함께 있던 그 나무와 산이 더 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부모님 닮은 감나무,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 그러나 어디로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고향 땅에 그대로 그 자리에 늘 계신 부모님 같은 산. 그 이들이 자식보다 더 효자다. 굽은 소나무가 산소를 지킨다더니 아직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그런 마당 끝 나무와 산이 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