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21호
20120712 - 국밥과 보리밥
잘 끓인 육수에, 콩나물과 묵은 김치를 넣고 양념을 한 후에 끓인 국. 거기에 기호에 따라서 날계란이나 김 혹은 들깨 가루, 잔파, 매운 고추, 새우젓을 얹어서 밥 한 숟갈 넣고 먹는 국밥,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 굴을 넣으면 굴국밥, 또 다른 고기를 넣으면 또 그렇게 국밥이 됩니다. 지금이야 이것저것 좋은 재료들을 많이 넣었지만 예전엔 김치에 콩나물 넣어서 끓인 국에 밥만 말면 국밥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잔치나 큰 일을 비롯해서 주막이나 함바집에서 많이 먹는 음식인데 지금은 국민음식이 되었습니다. 숙취해소에 한 그릇,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는 점심에도, 퇴근길 간단하게 먹고 싶은 시간에도 국밥집을 찾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먹으면 이내 콧잔등에 땀이 송글 거리지만 한 숟갈만 먹어도 뜨거운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하는 맛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주는 행복이 참 큰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 땀 흘려 일한 뒤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음식 가운데 감자랑 옥수수 그리고 수제비나 보리밥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지금에야 보리밥이 건강식으로 일부러 찾지만 그 시절엔 입안에 오글거리는 그 밥을 먹는 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앉혀서 해놓은 보리밥은 소쿠리에 담아서 처마에 걸어둡니다. 밥때가 되면 대청마루나, 원두막, 정자나무 아래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이미 식어버린 보리밥, 대나무 숲 속에 떠온 냉수에 보리밥 한 덩어리 말아서 노란 된장에 풋고추 찍어서 둘둘 먹었습니다. 이럴 땐 풋고추도 매운 놈이 더 입맛을 돋웠지요. 감자 넣은 수제비도 더운 여름날 저녁엔 또 그만이었는데..
여하튼 국밥이든 보리밥이든 어른들의 정서엔 서민 음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서민적인 그림이 필요한 사람들은 곧잘 시장터에서 국밥을 먹곤 하나 봅니다. 지난번 선거에는 국밥집 욕쟁이 할매 앞에서 밥 말아먹은 사람이(?) 있었는데, 먹어도 배고프다며 국민을 배부르게 해 줄 것처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진짜 배고픈 사람처럼 살림을 하면 할수록 손대는 것마다 이것저것 다 말아 드시려는 것 같아서 불편해집니다.
밥을 국에 말 때는 다 먹는다는 표시고, 그래서 다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배고픈 시절에는 다 말아먹어서는 안 되고 남겨두어야 다른 가족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아먹는 밥은 남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언가를 ‘말아먹었다'는 말은 재물 따위를 송두리째 해치우거나 없앴다는 이야기로 통용됩니다. 서투른 사람이 살림을 맡아서 하다 보면 이내 다 말아먹는 법이죠. 수온이 올라가는 것도 짜증스러운데 괜스레 말아먹는 일을 보니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안타까운 생각들. 이 더운 여름 장마나 태풍 소식 말고 서민들 맘을 냉수처럼 시원케 할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시원한 국물이나 시원한 냉수에 말은 보리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