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목과 고동

푸풀쉴물 - 20050725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20050725 - 등목과 고동


불볕더위와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잠시 밖에 나갔다가도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와
건물 유리가 반사되어 비취는 햇빛에 눈이 부시고
머리가 벗어질 지경으로 내리쬐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입니다.

절로 시원한 개울물 졸졸 흐르는
실개천이 흐르는 냇가가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입은 옷에 젖은 땀을 줄줄 짜낼정도로
이런 낮에 일을 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면 거의 녹초가 되기 일수입니다.
그래도 해가 넘어가면
어느새 바람이 서늘해져서
땅위의 열기가 식어질 즈음이면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에 있을 만했습니다.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으면
우물가에 가서 윗옷을 벗어 재끼고
등목을 했습니다.
대나무 밭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샘물이나
깊은 우물에서 금세 퍼올린 물을 등에 부을라치면
어느새 입에서 슬슬 거리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더위가 싸악 가십니다.

남자들이랑 우리 아이들은 낮에도 아무 때고
그렇게 냇가나 우물가에서 등목을 할 수 있었지만
누나들이랑 여인네들은 아무 때나 그렇게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동무들이랑 함께
개울가로 가기도 했었습니다.

저녁에 개울에 가면
컴컴한 물에 들어가기가 여간 싫었지요.
하지만 잠시라도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해도
그 밤 내내 더운 열기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그런 일로만 밤에 개울에 간 것은 아닙니다.
달빛에 올라온 고동을 잡기 위해서 밤에 가기도 했습니다.
물살이 졸졸 내려오는 바위를 이렇게 손으로 더듬으면
손에 한 줌 가득 고동이 잡힙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잡아내면
어느새 가져간 양재기에 고동이 가득합니다.

집에 가져와서 한참으로 깨끗한 물에 담가 두면
흐리라고 하는 더러운 오물들을 뱉어 냅니다.
그러면 다시금 오돌오돌 문대서 박박 씻어 내어서
된장을 조금 넣고 끓여 내면 맛있는 고동국이 됩니다.
그 국물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익은 고동을 까먹는 재미도 여간했습니다.

멍석에 앉아서 고동 양재기를 꿰어 차고
고동 뒷부분을 입으로 깨물고 앞부분을 쪼옥 빨아들이면
안에 있는 알맹이가 쏘옥 들어왔습니다.
그걸 먹는 것도 고수가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 중에서 그 속도가 무척이나 빠른 사람도 있었지요.
우리들은 보통 바늘을 가져다가
하나씩 찔러서 알맹이를 까먹기도 했습니다.

때론 그런 국 말고 수제비를 끓이기도 했지요
고동을 넣고 끓인 수제비는 색깔이 참으로 맛깔스럽습니다.
푸르스름한 그 국물을 한 입 떠 넣으면서
어른들은 "시원하다"하십니다.
그땐 몰랐는데
뜨거운 국물이 왜 시원한지 알게 된 나이가 되었습니다.

샤워기에서 나온 물이 아무리 시원해도
우물가에서 철철 넘치는 물에서 퍼올린 바가지 물만 못합니다.
유명한 식당에 가서 옛날 음식이라고 내어놓은 진수성찬이
그 시절 고동된 장국이나 수제비 맛에 비하면
그 가치는 비길 데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휴가들 가신다고 난리들입니다.
가는 분도 계시겠고, 못 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등목처럼 시원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시원한 고동 국물 같은 맛깔스러운 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일에서라도 행복을 찾아서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셨음 하는 바람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멀티형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