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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16. 2017

민수기 16:12-24 광야학교의 쿠데타

민 16:12-24

민수기 16:12-24 광야학교의 쿠데타

반역한 고라에 대한 책망에 이어 르우벤 자손들에 대해서도 모세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응하지 않고 반역을 정당화하며 모함하자  모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결국 여호와께서 반란 무리들을 멸하려 하자 모세와 아론은 중재를 시도하지만 하나님은 무리에서 떠나라 한다.

* 16장의 두개의 반역 사건 : 
 - 첫번째 반역(1-40절) : 고라, 다단, 아비람, 온, 250명의 지도자들
 - 두 번째 반역(41-50절) : 온 회중

12-14절 왕되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하나님의 나라)이다.
  르우벤 자손들에게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은 모세의 요청을 거역한다. 그 이유는 모세가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않았고, 땅도 기업으로 주지 않고 속였기(눈을 뺀다)때문이라고 말한다.
  르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제시한 이유들은 결국 쿠데타적인 의도가 가득하다. 먼저 약속의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지만 애굽도 마찬가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애굽의 압제에서 출애굽 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다시 역출애굽하려는 시도와도 같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생각이다. 또한 모세가 스스로 왕이 되려 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르우벤 지파의 의도는 모세가 왕이 아니라 자신들이 왕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만 것이다. 또한 지금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고 지파별로 땅을 나눌 것인데 지금 당장 그곳으로 인도하지도 않고, 땅도 기업으로 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일을 빌미삼아 무리한 반역을 정당화한다. 결국 이러한 르우벤 지파의 의도는 자신들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욕망을 애써 모세를 모함하고 거역하면서 드러내고 있다.
  왕되신 주님을 향하여 우리가 온전히 순종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잠시 당하는 고난을 원망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오해하는 것은 르우벤지파 자손들이 범한 것과 같은 반역이다. 주님을 알기 전을 동경하면서 지금과 그때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도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권을 주님께 온전히 이양하지 않았다면 역시 이들과 같다.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반역의 죄와 같다. 지금 주님을 알기 전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신앙하면서 오늘 왕되신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15-18절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자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모세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군림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어 모세는 고라와 반란의 무리들에게 여호와 앞으로 향로를 들고 나와서 회막 문에 함께 선다.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았기에 모세는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사례도 보상도 손해도 받거나 끼치지 않았음을 말하고 당당하게 여호와 앞으로 향로를 들고 회막문 앞에 나오라 한다. 그리고 자신도 아론과 함께 회막문 앞에 나아가 선다. 250개의 향로를 든 무리들과 모세는 아론과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간 것이다.
  반역한 무리들이나 군림하지 않고 살아온 모세나 지금은 동일하게 회만문 앞에 나아갔지만 머지 않아 여호와께서 선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세우시는 자만 살아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주 안에 있다고 자고하거나 교만하지 말라. 참된 주님의 판단 앞에 나아간다면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 중 남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많은 무리들이 걸어 간다고, 동조하고 있다고 다 옳은 일은 아니다. 평소의 삶이 거짓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진리의 길로 행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주를 향하여 집중할 때만이 분별있는  처신이 가능해진다.

19-24절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아신다.
  고라가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회중에게 나타나 멸하려 하자 모세와 아론은 급히 엎드려 중보한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회중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에서 떠나라 명한다.
  수적인 우위 앞에서 자신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호와께 판단을 의뢰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려 한다. 이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서 이들을 멸하려 한다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한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중재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여호와께서(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아뢴다.
  무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고, 무지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지도자는 늘 깨어서 기도하는 자다. 아직도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있어서 주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 많다. 그런 교회를 바로 세워가고 말씀으로 세워가고 복음으로 세워가는 일이 교회된 우리의 사명이다. 이러한 중보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온 회중은 이들 반역자들의 장막에서 떠나라 명하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이들의 반역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부각된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이라면, 우리의 신앙이 신실하다면, 우리의 소망이 주께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일들을 주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삶의 우선순위가 주께 있음에 대한 고백이다. 모세 뿐 아니라 아론이 함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간다. 그렇게 깨어 있는 거룩한 이들의 생명을 다한 섬김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워가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지체들을 향하여 오늘은 엎드려 기도하고 손을 내밀때다.

* 기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탐욕으로 인해 주님의 역사를 무시하지 않고
주님을 알기 전과 후에 분명한 변화와 신앙을 고백하게 하시오며
왕같은 제사장이지만 군림이 아니라 섬김의 제사장이게 하옵고
많은 이들이 가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행케 하시며
어떤 위협에도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섬김을 위해 부름받은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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