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22호
역사를 보는 눈 - 20120720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책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었음을 주장했다. 그래서 서양은 동양을 볼 때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망을 정당화하고 식민통치를 강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오히려 무지하고 미개한 동양을 근대화시켜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동양이 자신들에 대한 정체성을 서양이 왜곡된 이해로 보는 시각으로 배우게 되고 이것은 식민사관의 뿌리가 되어 수많은 사상과 문화의 저변에 왜곡된 관을 형성케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자기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탈 식민의 시작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이야기는 벌써 3~40여 년 전의 얘기다.
더더군다나 서양과 동양의 구분 기준이 어디가 기준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 로마시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오리엔트와 서양을 나눴다고 볼 수 있다. 둥근 지구의 중심이 왜 우리로 보면 변방이 기준이 된다는 말인가? 결국 세계사에 동양은 훨씬 뒤에야 포함되었던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을 뛰어넘고 리오리엔트 하기엔 남의 살인지 내 살인지 모를 만큼 우리에게 너무도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뛰어넘고자 세계화라는 말을 했을까?
우리 현대사의 뒷이야기(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가?) 아니 숨은 이야기들을 알고 나서부터는 오리엔탈리즘만큼이나 우리도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고 나서는 안타까운 반사신경이 극단으로 치우져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는 경향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가 아닌 숨은 그림들이 들춰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면을 보게 된 것이다. 며칠 전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설전 뉴스에 대해서 네티즌이 올린 촌철살인의 댓글에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두운 밤거리의 젊은이들아 그대들은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친일과 독재를 알고자 하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알면 되고, 배신과 살인을 알고자 하면 전두환과 노태우를 알면 되고, 거짓과 깡통 경제를 알고자 하면 김영삼과 이명박을 알면 되고, 민족과 평화를 알고자 하면 김구와 김대중을 알면 되고, 민주와 정의를 알고자 하면 노무현과 문재인을 알면 되고, 성실과 봉사를 알고자 하면 박원순을 알면 되고, 일 안 하고 잘 사는 것을 알고자 하면 유신 박씨 할머니에게 물어 들 보아라”(포털 DAUM의 ‘남산’님 댓글 중에서 펌)
이와 같은 역사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너무도 익숙한 인식에는 다른 시각이 있음을 재고해야 하는 것이 바른 역사관을 세워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거사의 바른 이해와 정리 없이 내일도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인데, 오늘 역사를 보는 우리 눈은 얼마나 넓고 멀리 바로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