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70호
20130719 - “기록은 역사입니다”
제목의 문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4월 11일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개관 때 써 보낸 문구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시면서 제작한 “이지원(e智園)”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전자정부를 운영하고 메모 한 장까지도 기록에 남길 정도로 일하셨다. 그래서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치부를 드러내기 힘든 자신들의 기록물을 폐기했던 것과는 달리 그 어떤 정부보다 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남긴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였다는 사실이다. ‘모든 기록은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린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비록 아베가 그렇게 신념이 강한 사람으로 살거나 다시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의 말이 씁쓸하게 들리는 것은 지난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니 그의 말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역사 기록물의 중요성은 아주 작은 종이 한쪽이나 유사한 유물 하나까지도 많은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TV 역사 스페셜”이나 여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상형문자로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문자의 발견과 파피루스나 양피지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도구들이 발견되는 것은 역사 전환에 큰 자취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자나 종이 또는 그 어떤 유물보다 더 오랜 세월 역사의 전달 수단이 된 것은 구술된 “이야기"였다. 어릴 적 베갯머리에서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부터 전해진 이야기들은 구술 형태로 이어져 내려오고, 이러한 구전된 이야기의 최고 기록물 중의 하나가 성경이다. 이 구술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그대로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이 기록이나 물리적인 기록물보다 더 우리 곁에 고스란히 남겨진 것은 바로 사람들의 정신 속에 심어진 역사다. 그것이 삶이 되고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총독 아베는 바로 그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지금 기록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어리석은 이들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치부를 가리는 행태가 가관이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숨길 수 없는 것은 이미 우리 현실 가운데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들이다. 역사는 결코 과거를 말하는 것 같지만 바로 오늘에 보인다. 지금 우리들의 말이나 삶이나 사회와 문화들이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분오열된 나라, 법이 고무줄처럼 집행되고, 민(民)이 맘 편히 살 수 없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고, 버젓이 거짓으로 왜곡된 모습을 보면서도 먹고살기 힘들어 손을 들 수도 없게 된 민초들의 삶에서 가까운 역사가 어떻게 흘렀는지를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에서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와는 달리 지난 5년과 현재의 극한의 상태가 고스란히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데 권력과 이권에 눈이 먼 이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기록은 역사라는 사실에서, 그 기록은 종이와 파일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과 삶에 더 고스란히 기록되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면 그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앉은 그 권력의 위치에서 깊이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