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만한 물가 - 117호
20140718 - 장마
장대 같은 비가 내리다가 금세 해가 뜨기도 하고, 시커먼 먹구름이 덮이며 어두워지기도 하고, 보슬비가 내리다가 끈적이듯 더위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모든 것이 눅눅해질라치면 이내 또 세찬 바람이 불기도 하며 빨래하는 주부에겐 여간 고생스럽기도 하고, 출근과 등교하는 이들에겐 손에 든 우산이 사라졌다 아쉬웠다 귀찮아지기도 하고, 운전하는 이들에게도 잔뜩 신경이 많이 쓰인다. 해마다 유월과 칠월 즈음에 찾아오는 장마철이 올해도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다. 언뜻 비가 오래도록 오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가 있을 법한데 의외로 ‘장마'는 우리 고유어이다. ‘맣'이라는 물이나 비를 뜻하는 단어로 ‘장마'그대로 장마철을 뜻하는 말이다.
의외로 장마는 좋지 않은 결과들이 많다. 집중호우로 인한 산산태나 침수의 피해, 오랜 시간 습도가 많아져서 생기는 곰팡이의 피해, 더위를 식혀줄 것 같지만 오히려 증가한 습도로 인해서 더 칙칙한 기간, 여러 가지 식중독이 발생하기도 하고, 모기의 번식이 왕성해져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다. 일반 작물들도 여차하면 수해를 입어 채소 등은 다 녹아 버린다고들 한다. 이래저래 장마는 그리 반가운 손님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어서 지났으면 좋겠다고 많이들 생각한다. 때로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현상들 앞에서 멀리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한없이 부러울 일에 대한 불평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반가움보다는 짜증 나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장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긴긴 장마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를 짜증 나게 하는 일들이 켜켜이 그리고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 큰 사건들이 채 봉합도 되기 전에 또 다른 국지성 호우 같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는다. 아픈 생채기나 가슴이 채 아물기도 전에, 미처 정신도 차릴 수 없이 여기저기 일들이 생긴다. 개인과 가정사도 벅찬데 사회 곳곳에서 나라 안팎으로 그리고 멀리 해외에서도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이 산사태처럼 기가 막히게 하고 우리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꽃다운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 아직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팽목항 앞바닷 속 사람들의 소식들이 그렇고, 지방 선거 속의 혼탁한 정치와 무지한 이들의 부화뇌동하는 모습들이 그랬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나라님들의 모습들이 그렇고, 도덕과 원칙을 물에 밥 말아먹듯 하는 이들을 지도자랍시고 세우는 인사들이 그랬다.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기어이 원칙을 무시하고 부득부득 고집부리며 갔던 소위 국가를 대표하던 이들이 고스란히 추태와 국위 선양이 아니라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돌아와 결국 꼬리를 자르듯 여론의 뭇매를 맞던 모습들이 불과 엊그제였다. 노후된 기기와 장비로 생명을 구하는 소방수의 안타까운 부음은 산사태만큼 더 가슴을 철렁 이게 했다. 그 많은 세금은 대체 다 어디로 가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건지는 그 귀한 일들에 안 쓰이고 수 십 년 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하는 전쟁 무기로 허비한 천문학적인 비용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제 또 그 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또 보궐선거를 한다고 한다. 그 어떤 장마보다 더 심기가 불편해지는 모습을 또 고스란히 보고 있어야 한다.
노란 리본과 깃발들이 전국을 순례하고, 국회를 향하고 청와대를 향하는데도 연약한 나비처럼 깃발이 찢기고 펄럭이는데도 도무지 반응이 없다. 탐욕스러운 이빨과 발톱을 가린 채 공수표만 남발하고 정작 특별법이든 진상규명이든 진전되거나 책임지는 이 하나도 없다. 전 세계의 조폭 같은 별나라의 은밀한 지원하에 중동의 하늘은 포격과 포성으로 소란스러운데 자칭 세계평화와 전쟁의 방지를 위해 세워진 유엔은 도무지 감감무소식이다. 어린 생명들을 핑계 삼아 홀로코스트의 복수인지 당한 만큼 분풀이를 하는 것인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틴을 향한 가자 지구의 사태는 장마 속에서 들려오는 침수보다 더한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이다.
해마다 오기에 대비한다 하고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해년마다 장마철이 되면 짜증 나고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때가 되면 이 도한 지나리라 위안을 삼지만 장마도 아닌 시국의 장마철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계속 물이 불어나는 형국이다.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장마철을 견뎌내던 그 인내와 도전들이 마침내 장마가 끝나고 폭염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추억할 그 날이 꼭 오리라 믿으며, 장마의 한 복판을 희망 가운데 견뎌 본다.